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느끼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충동은 마음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또는 동굴 입구에서 부는 바람과 같다. 프로이트나 융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동굴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잠수함을 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보자. 횃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자. 심리 상담이나 분석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자문자답이 우리의 잠수함이고 횃불이다. - P116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뭘까. 나는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그 대상을 유심히 헤아리게 된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좋은 에세이에는 그렇게 삶에 대한 남다른 관찰과 애정이 담긴다.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에세이를 읽는 이유이고, 좋은 에세이를 읽고 나면 저자에게 호감을 품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소설과 다르다. 틀림없이 좋은 소설인데 읽고 나서 저자에 대해 무섭다거나 불쾌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으니까. 훌륭하지만 섬뜩한 소설도 많다. 하지만 그런 에세이는 읽은 기억이 없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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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가의 꿈을 버렸다. 그러나 그 꿈은 버려지지않았다. 그도, 나도 안다. 앞으로도 그에게 작가의 꿈은 버린 것과 버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상태로 살 것이다.
이런 림보에 사는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다. 그런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화가 난다. 어쩌자고 이따위 종이 쓰레기 같은 책을 낸단 말이야? 겨우 이런 글을 인쇄하자고 나무를 베어냈어? 모든 재화가 과잉생산되고 시시한 물건들이 넘쳐나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그는 유독책, 그것도 신간에 대해 분노한다. 이런 형편없는 책은 펴내면 안 된다고! 이따위 일기장 같은 책은•••••• 이런책은•••••• 나도 쓰겠다!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그랬다. 서점 신간 코너에 가면분노에 휩싸였다. 지인이 책을 냈다고 하면 관심 없는척하면서 내용을 몰래 살폈다. 그 책에 신통한 데가 없으면 그때서야 겨우 안심했다. 결국 나무의 소중함 운운은 그냥 핑곗거리였다.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같아 포기한 작가라는 거룩한 영예를, 다른 녀석이 제값을 치르지 않고 길에서 주웠다고 여겨서 부린 트집잡기였다. 정의감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질투심이다. 그흉한 감정은 내 책이 나온 뒤에야 겨우 사라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비슷한 시기심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책을 쓰는 편이 낫다. 최악의 경우에도 전과 다른 차원의 독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 한권의 책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힘든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의 방법론과 기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피아노를 칠 줄 알면 라흐마니노프가 다르게 들린다. - P54

20대 초중반에 신춘문예 여러 곳에서 낙방했다. 출판사로 응답 없는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한동안은 책쓰기를 포기하고 지냈다. 초짜 신문기자로 일할 때에는
"많이 보고 들어서, 퇴직하고 나면 그때까지 모은 소재로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6년 8월21일에 (날짜도 기억하고 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는데 그냥은 못 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틀에 박힌 기사만 쓰다 보니 너무 공허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펴고 젊은 신문기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환상적인 기분으로 눈을 떴다. 몇 년묵은 변비가 사라진 개운함. 나는 그런 글을, 소설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재능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그날부터 밤에 한두 시간씩 신문사나 세상을 위한 글이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썼다. 수면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졌다. 장편소설 원고를 마치는 데 꼭 3년이 걸렸다. - P56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의미의 우주‘에 한 발을들였고, 그 우주에 자신의 의미를 보태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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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거울
크리스마스 주일(週日)의 이야기

나와 아내는 응접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이끼와 습기 냄새가 났다. 백 년은 켜지 않은 벽 쪽의 등에 불을 붙이자, 크고 작은 수많은 쥐들이 구석으로 잽싸게 도망쳤다. 문을 닫자 바람이 일어 몇 발짝 떨어진 구석에 놓여 있던 종이가 살짝 움직였다. 불빛에 비친 종이에서 우리는 옛 문자와 중세의 그림을 보았다. 세월에 바랜 벽에는 선조들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선조들이 준엄하게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 이놈. 맞아 볼 테냐!>
우리의 발소리가 온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나의 기침 소리는 예전에 나의 선조들 때도 그랬을 그대로의 울림으로 울렸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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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정치인들이 폭력적이거나 반민주적인 행동을 거부할 때, 극단주의자들은 고립되고, 힘을 잃고, 포기한다. 1950년대 미국의 경우, 반공주의 극단주의자인 조지프 매카시 Joseph McCarthy는 1954년 초당적인 투표에서 상원으로부터 지탄을 받은 이후로 불가촉천민 신세로 전락했다. 그가 일어나서 발언하면, 상원 의원들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매카시가 기자회견을 요청했을 때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류 정당이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를 용인하고 암묵적으로 지지할 때, 이는 반민주적인 행동에 따른 처벌 수위가 낮아졌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에 대한 억제는 사라진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반민주 세력을 정당화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그들을 격려하고 심지어 더 급진적으로 만들기도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평범성 banality of authoritarianism이 의미하는 바다. 민주주의 붕괴를 주도하는 많은 정치인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려는 야심 찬 경력지상주의자다. 그들은 심오한 원칙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단지 민주주의에 무관심할 뿐이다. 그들이 반민주적 극단주의를 묵인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 정치인은 단지 앞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붕괴에 반드시 필요한 조력자 역할을 맡게 된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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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 복용했던 약이 할돌(할로페리돌]인지 멜라랄(티오리다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두 약물 다 출시 후 수십 년이지나 전수 조사 대상이 되었다. 1994년 대부분의 사람이 그했듯, 나는 정신의학이 감옥-산업 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와 깊이 연루되어 있어서, 항정신성 약물이 감금 통제에 이용되며 정신질환이 점점 더 범죄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무지했다. 때로는 화학적 감금의 한 방식으로 투옥 이후에 정신과 진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을 제대로 치료하는 대신 감금하는 추세는 계속되어, 구금 시설에 갇힌 정신질환자수가 의료 시설 내 환자 수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이들은 주로 흑인이나 라틴계로, 사회적 질병의 표식을 단 사람들의 몸은 대형 교도소에 집결되었다. 인종 문제는 미국의 도덕 체계에 박힌 말뚝과도 같다. 그것은 미국적 정신에 너무 깊이 박혀버린 나머지 미국을 윤리적 조현병 국가로 만들었다. 2007년에 이르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감옥, 시카고 쿡 카운티 감옥, 그리고 뉴욕시의 라이커스 아일랜드 감옥은 미국의 "제3대 정신과 입원 시설"이 되었다. 이 시설들은 약물 처방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새로운 정신병동이 되었다. - P299

조현병에 대한 인종적 이미지는 1960년대 후반에 변화했다. 그 전까지는 중산층 백인 가정주부와 백인 남성 지식인의 질병이라 여겨졌다면,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백인에 대한 망상적 적대감"에 시달리는 흑인 남성 등 기타 집단의 "저항적 정신병"으로 탈바꿈한다‘ 할돌은 종종 블랙 파워 운동 Black PowerMovement"에 연루돼 정신과에 수용된 인사들의 저항 행동을 막기 위한 화학적 억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할돌의 초기 광고 중 하나엔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흑인 남성이 그려져 있었는데, 광고 문구는 이랬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입니까? 할돌을 사용하면더 협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수십 년이 지나, 당시 할돌을 처방받은 1세대 환자들이 적정용량의 열 배에 달하는 양을 복용했고, 거의 좀비 같은 상태가되었다는 연구가 나왔다. 멜라릴 역시 심장마비 및 수명 단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2005년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1994년 마침내 조현병 치료를 받게 된 엄마는 할돌과 멜라릴을 처방받았다. 모든 징후를 보면 엄마의 정신 상태는 점점 더혼란스러워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약물이 효과를 보일 때까지 계속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정신적 불편감이 점점 더 악화되어간다고 누누이 얘기했다. 이 약을 먹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신질환자의 목소리는 광산의 카나리아와 같다. 이들의 이야기는 고통에 대한 생물학적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신의학의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경고한다. - P300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거기에 담긴 폭력적 이미지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는 해도, 보편적이지는 않다. 조현병에 대한 비교문화적 연구를 살펴보면 미국인들이 듣는 목소리가 폭력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 예컨대 "그들이 나를 전장으로 데려가려고 해"와 같은 전쟁 이야기, 또는 "삶을 끝내는 게 어때?"와 같은 "자살 목소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이듣는 목소리는 그들에게 요리, 청소, 식사, 목욕 같은 평범한 집안일을 하라고 지시했다. "부엌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처럼
‘.
목소리 듣기 네트워크Hearing Voices Network‘ 자조모임에서는 목소리와 관계를 맺으면 그것이 더 평화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모임에서는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목소리에 집중해서 그 말을 따라서 해보고, 녹음하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삶에 통합시키는 시도를 해보라고 권유한다. 요컨대 목소리를 부정하기보다 수용함으로써, 목소리를 듣는 경험, 그리고 그것과 관계맺는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 P370

내가 방금 목격한 긍정적 변화가 실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소파에 앉아 모든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기만 하는 엄마의 모습이좌절스러웠다. 내가 품었던 기대는 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물론 달라진 점도 있었다. 엄마는 전에 비에 기분이 좋아보였고 말도 더 많이 했다. 새 약물 때문이거나, 혹은 사회적 접촉에서 오는 긍정적인 영향 덕택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변한 건 나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내가 엄마를 방에서 내보낼 수 있게 된건지도.
"엄마한테 정신질환이 있는 거 알아요? 조현병 있는 거?"
"응. 그렇지만", 엄마는 집게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평범한 정신질환자가 아니야."
정신과 의사는 엄마의 선언을 망상적 사고의 또 다른 증거라여겼을지 모르지만, 나는 엄마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는 신호라고 믿기로 했다. 프린스턴 하우스 사람들은 다들 내가 어렸을때 보았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며, 특별했는지를. - P417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눈 걸 제외하고, 우리는 67분이라는 시간을 거의 소파에 누워서 조용히 흘려보냈다. 폭신한 한국 이불 밑에 들어가 서로의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자 긴장이 녹아내렸다. 괘종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를 따라 우리 숨결도 오르내렸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면서 시계가 7시를 가리키며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릴 때까지 우리는 계속 그렇게 있었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몸을 숙여 엄마를 감싸안으며말했다. "3주 안에 다시 올게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도좋다는 손짓을 했다.
떠나려는데, 회한이 찌르는 듯이 가슴에 사무쳤다. 이미 작별인사를 하고 계단을 두 칸 내려왔지만, 어쩐지 뒤를 돌아보게됐다.
"엄마, 이것만 생각해요. 우리 다음에 만날 땐 봄이 와 있을 거야." 나는 말했다. "그러면 치즈버거 시즌이죠." -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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