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경험이 사라져가는 시대
이 책은 경험의 멸종에 관한 책이다. 물론 모든 경험이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쌓아간다. 그 경험들은 자아감을 확인해주기도 하고 거기에도전하기도 하며,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바꾸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개 경험을 우리가 세상을 접하고 익히는 방법으로여긴다. 직접 경험은 우리의 첫 번째 선생님이다. 우리는 주변 세계를 탐색하는 법을 배우면서 마주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경험과 의미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지만 거기에는 공통된 맥락이 있다. 저마다 언어와 관습은 다르지만, 모두 언어와 관습을갖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공통된 인간성을 드러낸다. 특정 유형의 경험들이 우리 삶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서로 얼굴을 맞대는 상호작용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여러 활동과 같이 진화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경험들이 그렇다. 최근의 문화적 규범을 반영하는 경험, 즉 공유하는 환경이나 장소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은 역사 내내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현실을 만들고 유지하고 강화해주었다. - P11
디지털화, 매개, 초연결, 감시, 알고리즘에 의한 통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세상에서 어떤 인간이 만들어질까? 인간의 조건이 아닌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인간은 몸을 갖고 있고,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하며, 매개된 경험과 매개되지 않은 경험 사이를 자주 오가고, 성찰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며, 결국 유한하다. 반면 사용자 경험은 실체가 없는 디지털이고, 추적 가능하며,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고, 항상 매개자가 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무한을 약속한다(몇몇 신기술이 장담하듯이 죽음 이후에도 남은 디지털 데이터를 모아 챗봇을 설계함으로써 비통해하는 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 P16
기술은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도구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게 한다. 줄서기, 손 글씨, 원격 학습, 길 찾기, 권태 등을 말이다. 현재 많은 기술은 사람조차 문제로 보는 것 같다. 장치,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문제로 말이다. 과거의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기술은 자신의 감각을 불신하고 대신 기술에 의존하도록 우리를 훈련시킨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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