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삼가며 쓴 것이 역시 이렇게 따분하게 되었다. 사실은 이 글의 의도는 마리서사를 빌려서 우리 문단에도 해방 이후에 짧은 시간이기는했지만 가장 자유로웠던, 좌·우의 구별 없던, 몽마르트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글쓰는 사람과 그 밖의 예술하는 사람들과 저널리스트들과 그 밖의 레이맨들이 인간성을 중심으로 결합될 수 있는 여유 있는 시절이었다. 그당시는 문명(文名)이 있는 소설가 아무개보다는 복쌍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더 무게를 가졌던 시절이고, 예술 청년들은 되도록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그 당시의 표준을 가지고 재어 볼 때 정도(正道)를 밟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진정한 아웃사이더가 몇 사람이나 될까. 가장 가까운 주위에 자랑할 만한 사람이라면 이활, 심재언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이들도 그때만큼 틈이 없다. 아웃사이더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되고, 공부하고 놀 틈이 있어야 되는데 이들에게는 공부할 시간도 놀 장소도 없다. 질식한 아웃사이더들이다. - P178
이 글을 쓰려고 까만 볼펜을 드니 둘째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이 변색을 한 것이 눈에 뜨이오.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오. 변색이란 것이 과장이 아니오. 하얗게 바래 있소. 아니 하얗게 떠 있소. 두 손가락의 피부가 표백을 한 거요. 술잔을 쥔 부분의 피부가 표백을 한 것이오. 어저께 당신이 준 5000원 중에서 2500원어치를 마신 거요. 내가 쓴 돈이 그것이지 마신 분량은 내가 지불한 돈의 배가 더 될 거요. 내가 낸돈은 일차의 대푯값하고 이차의 맥주값뿐이지, 삼차에 들어앉은 집에서 마신 것은 다른 친구가 냈으니까. 술 많이 마셨다는 자랑이 아니오. 괴롭단 말이오. 아침에 깨어 보니 또 요에 오줌을 쌌구려. 지금 이 글을 그 축축한 요 위에 팔을 비벼 대면서 쓰는 거요. 정말 괴롭소. 비명이 아니오. 세상에서는 자학이 나쁘다고 하지만 아직도 나는 자학의 미덕에 대신하는 종교를 찾지 못하고 있소. 속되어 가는 나 자신에 대한이나마의 변명이라도 없이는 어디 살겠소? - P184
이런 악덕은 누차 말해 두거니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나의일이다. 그래서 나는 전법(戰法)을 바꾸었다. 이왕 도둑이 된 바에야 아주 직업적인 도둑놈으로 되자. 아무개 아버지 같은 좀도둑이 아니라 남의 땅에 허가 없이 집을 짓는, 아무개 아버지가 도둑질을 한 집의 주인 같은 날도둑놈이 되자. 그래서 하다못해 무허가의 죄명으로 집을헐리고 때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편이 낫다. 그 편이 훨씬 남자답고 떳떳하다. 즉, 나다. 이 내가 되는 일, 진짜 속물이 되는 일, 말로 하기는 쉽지만 이 수입도 사실은 여간 어렵지 않다. 속물이 안 되려고 발버둥질을 치는 생활만큼 어렵다. 그리고 그만큼 고독하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고독은 나일론 재킷이다. 고독은 바늘 끝만치라도 내색을 하면 그만큼 손해를보고 탈락한다. 원래가 속물이 된 중요한 여건의 하나가, 이 사회가 고독을 향유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물이 된 후에 어떻게 또 고독을 주장하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속물은 나일론 재킷을 입고 있다.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는 고독의 재킷을 입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재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이 글 제목대로 ‘거룩한 속물‘ 즉 고급 속물의 범주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흥미를느끼고 있는 것은 이 나일론 재킷을 입은 속물이다. 고독의 재킷을 입지 않은 것은 저급 속물이지 고급 속물은 아니다. 고급 속물은 반드시 고독의 자기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규정을 하면 내가 말하는 고급 속물이란 자폭을 할 줄 아는 속물, 즉 진정한 의미에서는 속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 P189
속물의 특성은 겸손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얼마 전에 12층인가의 고층 건물을 지은 사람을 상대로 그 건물의 뒤에 사는 사람이 햇빛을 막아서 그늘이 진다는 피해로 오랫동안 소송을 걸었다가 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문화인이라면 옆의 집에 그늘이 지는 것을보고 집까지는 헐 용기가 없더라도 미안한 생각쯤은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문 소설가나 방송 작가들을 보면 그늘이 진 옆의 집에 미안한 생각을 품기는커녕, 왜 나만큼 큰 집을 못 짓느냐고 호통을치면서, 쓰레기와 오물까지도 아침저녁으로 내리쏟는다. 유독 신문 소설가나 방송 작가뿐이 아니다. 이런 그레셤의 법칙은 문화 단체와 예술 단체의 이름으로, 교수의 이름으로, 학장의 이름으로, 아나운서의 이름으로, 신문기자의 이름으로 날이 갈수록 더 성해 가기만 한다. 유능한 아나운서와 유능한 사회자는 대담자나 회담자나 청중을 리드해간다는 미명으로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람이다. 유명이 유명을 먹고, 더 유명한 것이 덜 유명한 것을 먹고, 덜 유명한 것이 더 유명한 것을잡아 누르려고 기를 쓴다. 이쯤 되면 지옥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의 대제도(大制度)는 지옥이다. 이 지옥 속의 레슬러들이 속물이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다 속물이다. 아무것도 안 붙인 가슴보다는 지옥의 훈장이라도 붙이고 있는 편이 덜 쓸쓸하다. 아무 목걸이도 없느니보다는개의 목걸이라도 걸고 있는 편이 덜 허전하다. 하나님이시여, 이 ‘테리어‘종들에게 구원을! - P191
목욕통에 얼어붙었던 물이 윗덮개가 조용히 풀리기 시작한다. 위의 3분가량에 흥건히 물이 괴어 있고, 얼음의 근심은 소리 없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직도 마당 위에 얼어붙은 먼지에 쌓인 얼음들은 요지부동이지만, 직경 2미터도 안 되는 목욕솔의 해빙이 알려 주는봄의 전조는 새싹을 보는 것보다도 더 반갑다. 새싹이 틀 때 봄을 느끼는 것은 이미 늦은 감이 들고, 가을의 낙엽을 보고 셸리처럼 지나치게 일찍이 봄을 예고하는 것은 너무 시적이어서 싫고, 그저 남보다 조금먼저 범인(凡人)처럼 봄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워 좋다. 새싹이 솟고 꽃봉오리가 트는 것도 소리가 없지만, 그보다 더한 침묵의 극치가 해빙의 동작 속에 담겨 있다. 몸이 저리도록 반가운 침묵. 그것은 지긋지긋하게 조용한 동작 속에 사랑을 영위하는 동작과 침묵이 일치되는 최고의 동작이다. 가라앉은 얼음을 겨우내 굳어 온 근심이라고 생각할 때, 이 불행의 잠수 행위는 희열에 찬 풍자까지도 풍겨 주고, 어지러운 현실의 걱정이야 어찌되었든 우선 까닭 모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수돗가에 씻어 놓은 저녁쌀이 튀어나올 듯이 하얗게 보이고, 마루에 올라와 난롯가에서 손을 비벼 보면 손의 두께까지도 제법 두툼하게 느껴진다. - P209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시인이란 반드시 시 작품을 신문이나잡지에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사람만을 말하고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소위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번 4.19나 4.26 을 냉담하게 보고있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는데 어울리지 않게 날뛰는친구도 보기 싫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이런 위인들을 보면 분이 터져서 따귀라도 붙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 나는 극언(極言)하건대 이번 4.26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시인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소위 시인들 속에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정말놀랐다. 나의 친척에 모 국민학교 교감이 있는데 이 작자가 4.19 날의 데모를 보고 집에 와서 여편네한테 ‘학생들도 이제 볼 장 다 봤어. 그런 폭도들이 어디 있어……." 하며 밤새도록 부부 싸움을 했다나. 그런 시인이나 이런 교감은 모두 다 모름지기 이승만의 뒤나 따라가 살든지 죽든지 양자택일하여라. 4.26 후 나의 성품이 사뭇 고약해져 가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무 흥분한 탓이려니 해서 도봉산 밑에 있는 아우 집에 가서 한 이틀 동안을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왔는데 서울에 와 보니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이 정 고약해져서 시를 쓰지 못할 만큼 거칠어진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대의 윤리의 명령은 시 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거센 혁명의 마멸(磨滅) 속에서 나는 나의 시를 다시한 번 책형대(책刑臺) 위에 걸어 놓았다. 《경향신문》, 1960.5.20 - P232
일전에 4월 이후의 새로운 현상에 대한 잡담이 나온 자리에서 어느문학지 기자가 하는 말이, 요즈음 통 잡지가 팔리지 않는다고 하면서이것이 ‘나츠가레‘‘가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정치에 몰두하여 문학잡지 같은 것은 보지 않게 된 바람에 그런 것이라고 하는말을 들었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문학지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그들이 문학을 애호하는 것은 (적어도 문학지를 구매한다는 것은) 평화 시절에만 국한될 한사(閑事)에 불과하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진정한 문학의 본질은 결코 한시(閑時)에만 받아들일 수 있는 애완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오늘날과 같은 개혁적인 시기에 처해있을수록 그 가치가 더한층 발효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와 같은 현상은 (그것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문학계 전반에 대한 기막힌 모욕이요 경멸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혁명이란 이념에 있는 것이요, 민족이나 인류의 이념을 앞장서서 지향하는 것이 문학인일진대, 오늘날처럼 이념이나 영혼이 필요한 시기에 젊은 독자들에게 버림을 받는 문학인이 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그 기자의 말을 듣고 내심으로는 오히려 통쾌한 감이 들었고, 우리나라 문학계도 이제야 비로소 응당 받아야 할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고 쾌재를 부르짖었다. 젊은 층의 전면적인 불신임을 받아야 할 것은 정치계에만 한한 일이 아니라 문학계도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각성의 시기는 빨리 오면 빨리 올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 P237
이(李) 정권 때의 일이다. 펜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 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 자유가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 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은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 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 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않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 문제이다.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모든 창작 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상으로는 38선이 있지만 감정이나 꿈에 있어서는 38선이란 터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너무나 초보적인 창작 활동의 원칙을 올바르게 이행해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문학을 해 본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과거 십수년 동안 문학 작품이 없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문학 작품이 없는 곳에 문학자가 어디 있었겠으며 문학자가 없는 곳에 무슨 문학 단체가 있었겠는가. 아마 있었다면 문학 단체의 이름을 도용한 반공 단체는 있었을 것이지만, 이 반공 단체라는 것조차 사실에 있어서는 반공을 판 돈벌이 단체이거나, 문학과 반공을 ‘이중으로‘ 팔아먹은 돈벌이 단체에 불과하였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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