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고통에 농담이 대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어요. 적어도 제 삶의 고통은 농담으로 치유되지도, 훼손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요, 농담의 기능에 어떤 기대도 품지 않고 그냥 다 포기하고 웃을 수 있을 때 웃어 두는 거, 저는 이 방식이 좋아요.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고 내려가자!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하고 익힌 가장 중요한 원칙이에요. 오늘은 안 치웁니다. 아, 못치우겠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치매라고요. 부디 악몽 같은 밤 보내시길. 스탠딩 코미디언 원소윤이었습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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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우산 끝느로 나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소리쳤다. 또 뭔데? 왜 또 나야? 나는 우산 할아버지를 앙칼지게 째려보며 방금 뭐라고 하셨느냐 쏘아붙였다. 할아버지가 또박또박 힘주어 외쳤다.
"사람이! 씩씩혀!"
다시 보니 우산 할아버지의 눈가에 웃음기가 자글자글했다. 나는 허리 숙여 꾸벅 인사했다.
"히히. 감사합니다!"
헤벌쭉 웃어 버리다니, 속도 없나.
나는 우산 할아버지한테 고마웠고 곧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우산 할아버지 때문에 나의 마음이 또다시 열려 버렸기에 너무나도 헤픈 나의 마음……
할아버지가 내게 "사람이! 씩씩혀!" 이런 말을 들려준 바람에, 훗날 낯선 사람이 내게 무어라 말할 때, 나는 또 멈춰 서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 몰랐다. 그가 내게 어떤 장르의 말을 들려줄지 모르는 채로. 그냥 그를 믿어 버린 채로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무슨 말을 듣든지, 그건 다 우산 할아버지때문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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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전에 없던 유행이나 인생관, 생활 방식 등 새로운 사상이 중국을 휩쓸 때마다 중국인은 이를 <열병>이라고 묘사한다. 중국이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초기에 중국인은 <서구식 정장 열병>과 <장 폴 사르트르 열병>, <사설 전화 열병》을 앓았다. 이러한 열병은 언제 어디로 튈지, 또는 그 뒤에 어떠한 흔적들을 남길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 P11

 하지만 가까이서 보자 개인과 의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두드러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간과되기 쉬운 일상의 리듬 속에 묻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열병은 야망, 즉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한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이었다. 시도한 사람들 중 일부는 성공했고 상당수는 그러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그들에게 절대로 그러한 시도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역사를 그들이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작가 중 한 명인 루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희망은 시골에 나 있는 소로(小路) 같은 것이다. 원래는 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 길이 된다.> - P12

어떻게 보면 야망의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공산당이다. 201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90주년을 자축했으며 이는 냉전이 종료될 당시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다년간 중국 지도자들은 소련의 역사를 연구하며 그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2011년에 아랍의 독재자들이 쓰러졌을 때도 중국은 버텨 냈다. 중국 공산당은 살아남기 위해 당의 성전(聖典)을 버리면서도 그들의 성인은 꼭 쥐고 놓지 않았다. 마르크스 이론을 버리면서도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내려다보는 마오쩌둥 초상화는 그대로 간직했다.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평등을 약속하거나 고생을 끝내 주겠다고 약속하지않는다. 그들이 약속하는 것은 오로지 번영과 자부심, 힘뿐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갈구했고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 정보를 갈망했다. 신기술은 정치가를 수세에 빠뜨렸다. 한때는 비밀이었던 일들이 이제는 세상에 알려졌고, 한때는 혼자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연대했다. 검열되지 않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당이 막으면 막을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정보를 갈구했다. - P14

1979년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인민들에게 <주>나 <부농>이라는 딱지를붙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덩샤오핑은 다음과 같은 말로 최후의 낙인마저 없애 버렸다. 「우선은 일부 사람들 먼저 부자가 되게 하고, 그런 다음에 점차 모든 인민들이 함께 부자가 되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그들의 경제 실험을 확대했다. 사기업이 직원을 여덟 명 이상 고용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제한- 마르크스는 직원이 여덟 명이 넘으면 기업의 착취가 시작된다고 믿었다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소기업들이 빠르게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두고 덩샤오핑은 유고슬라비아 대표단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생소한 군대가 뜬금없이 등장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그 공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러한 성과가 우리 중앙 정부의 노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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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은 유한하다. 비록 기술이 인류에게 끝없는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 문화에서는 인간의 한계를인정하는 것이 인기 주제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확인하는 일은 그것을 되찾는 과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의 주장과 달리 역사는 항상 진보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에 대한 개선은 아니다.
인간의 미덕을 되찾고 가장 뿌리 깊은 인간의 경험을 멸종의 위기에서 구하려면 기술 예찬론자들이 제안하는 극단적인 변혁 프로젝트에 기꺼이 한계를 두어야 한다. 혁신을 억압하는 수단으로서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한계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육신이 있는, 기발하고 모순적이며 회복력 있고 창의적인 인간의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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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트birrot의 문제는 극복한다 해도 온라인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남기는 유일한 기억은 메타 같은 기업의 소유가 될 것이다. 이는 경험의 기록이 경험의 보존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오늘날 성장하는 아이들은 이전 세대처럼 물리적 형태로 기억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사진 앨범도, VHS 테이프도 편지도 없다. 그들은 더 덧없는 유산, 다시 말해 말소된 인스타그램 게시물과 틱톡 휴면 계정 형태의 디지털 무덤을 남길 것이다.
그런 세상에도 기억을 위한 공간이 있을까? 사진에서부터 편지와 책에 이르기까지 기억을 보존하는 물건들이 디지털 세계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검색과 연결 같은 새로운 힘을(그리고 인공지능을통한 기술로 새로운 창조의 힘을) 얻었다. 하지만 잃는 것들도 있다.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들이 메타나 구글 같은 대기업 소유의 플랫폼에 있는 경우 우리는 그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조상이 만진물건이나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만든 물건을 손에 쥐는 촉각적경험을 잃는다. 기억의 많은 물리적 단서를 잃는다. 우리의 취약성과 한계에 대한 감각을 잃고, 그 결과 육신 있는 인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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