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린은 모두를 소개했다. 대부분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각자 가지고 있는 접시나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장례식이나 결혼식에라도 가는 것처럼 모두 정장을 하고 있었지만, 한 무리의 소작인이나 태풍 피해자로 보였다. - P133
나는 응급실 일이 좋다. 나에게 피와 뼈, 힘줄은 삶의 긍정으로 보인다. 나는 인체와 그 내구력에 경외심을 갖고 있다. 다행이다. 몇 시간 뒤에나X레이실에 가거나 데메롤 투약을 보게 될 테니. 나는 마음에 병이 있는지도 모른다. 비닐봉지에 든 잘린 손가락이랄지, 칼에 찔린 어느 깡마른포주의 등 밖으로 비어져나온 번쩍이는 칼날 같은 것에 매료되니 말이다. 응급실에서는 모든 게 수선 가능하다는 사실이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나는 좋다. 코드 블루, 글쎄, 사람들은 모두 코드 블루를 좋아한다. 그때는 누군가는 죽는다- 심장이 뛰지 않고 호흡이 멈춘다- 하지만 응급팀은 그들을 살려낼 수 있고 또 실제로 살려내는 일이 많다. 환자가 여든 살의 지친 노인이라도, 이 경우 소생하더라도 잠시뿐일 수 있지만, 우리는 소생이라는것이 주는 극적 요소에 동요되지 않을 수 없다. 응급실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젊고 생산적인 생명을 건진다. 열 명에서 열다섯 명이 움직이는 속도와 흥분감. 공연하는 사람들 같다•••••. 마치 무슨 연극의 첫날 밤 공연 같다. 환자들은 주위의 소란에 흥미를 보이는 게 전부이지만, 그들도 의식이 있으면 그 공연에 참여한다. 그들은 전혀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다. - P140
모든 소생술에 기적적으로 반응한 다음 조용히 숨을 거두는 죽음, 호상은 좋은 코드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지오노티 씨의 죽음은 호상이었다•••••. 그의 가족은 처음에는 간호사의 요청대로 밖에서 기다리다가 하나둘, 차츰 안으로 들어가 지오노티 씨에게 자신들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나와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의료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대가족이었다. 그들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서로 쓰다듬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간혹 웃기도 했다. 나는 기념행사나 가족 모임 같은 데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죽음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좋은‘ 사람일수록 더 사랑이 많고 행복하고 배려심이 많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틈은 그만큼 더 작다. 지오노티 씨가 죽었을 때 그의 아내는 비탄했다. 친족 전체가 그랬다하지만 그들은 정말 모두 함께 울었다. 죽은 그를 포함해서. - P142
응급실에서는 모든 것을 좋은 코드와 나쁜 코드라는 측면에서 본다모두 각자 맡은 일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 환자는 반응을 보였는가 아닌가의 여부를 놓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것을 호상과 악상으로 나누어생각한다. 악상은 호텔 매니저를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둔 사람이 죽었을 경우, 또는 뇌졸중을 일으킨 뒤 탈수증으로 죽은 지 2주쯤 뒤에 청소부가 그 시체를 발견했을 경우다. 최악의 악상은 내가 연락을 취해서 먼 곳에서 오기 곤란한 자식들과 친척들을 오게 했는데 그들이 서로 잘 알지 못하거나, 자식들이 죽어가는 부모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다. 그럴 때는 별달리 할 말이 없다. 그들은 장례식 준비에 대해, 장례식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에 대해, 누가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한다. 집시들의 죽음은 대개 호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간호사들이나 경비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집시가 죽을 때는 언제나 수십 명이 모인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그들과 키스하고 포옹하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런와중에 티브이나 환자 모니터, 여러 기기의 전원이 뽑히거나 엉망이 된다. 집시가 죽을 때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은 어린 자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른들은 통곡하고 소리치고 흐느껴 울지라도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웃고 놀게 내버려둔다. 아이들에게 슬퍼해야 한다거나 경의를 표해야 한가은 말을 하지 않는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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