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전에 없던 유행이나 인생관, 생활 방식 등 새로운 사상이 중국을 휩쓸 때마다 중국인은 이를 <열병>이라고 묘사한다. 중국이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초기에 중국인은 <서구식 정장 열병>과 <장 폴 사르트르 열병>, <사설 전화 열병》을 앓았다. 이러한 열병은 언제 어디로 튈지, 또는 그 뒤에 어떠한 흔적들을 남길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 P11
하지만 가까이서 보자 개인과 의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두드러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간과되기 쉬운 일상의 리듬 속에 묻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열병은 야망, 즉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한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이었다. 시도한 사람들 중 일부는 성공했고 상당수는 그러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그들에게 절대로 그러한 시도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역사를 그들이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작가 중 한 명인 루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희망은 시골에 나 있는 소로(小路) 같은 것이다. 원래는 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 길이 된다.> - P12
어떻게 보면 야망의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공산당이다. 201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90주년을 자축했으며 이는 냉전이 종료될 당시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다년간 중국 지도자들은 소련의 역사를 연구하며 그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2011년에 아랍의 독재자들이 쓰러졌을 때도 중국은 버텨 냈다. 중국 공산당은 살아남기 위해 당의 성전(聖典)을 버리면서도 그들의 성인은 꼭 쥐고 놓지 않았다. 마르크스 이론을 버리면서도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내려다보는 마오쩌둥 초상화는 그대로 간직했다.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평등을 약속하거나 고생을 끝내 주겠다고 약속하지않는다. 그들이 약속하는 것은 오로지 번영과 자부심, 힘뿐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갈구했고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 정보를 갈망했다. 신기술은 정치가를 수세에 빠뜨렸다. 한때는 비밀이었던 일들이 이제는 세상에 알려졌고, 한때는 혼자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연대했다. 검열되지 않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당이 막으면 막을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정보를 갈구했다. - P14
1979년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인민들에게 <주>나 <부농>이라는 딱지를붙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덩샤오핑은 다음과 같은 말로 최후의 낙인마저 없애 버렸다. 「우선은 일부 사람들 먼저 부자가 되게 하고, 그런 다음에 점차 모든 인민들이 함께 부자가 되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그들의 경제 실험을 확대했다. 사기업이 직원을 여덟 명 이상 고용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제한- 마르크스는 직원이 여덟 명이 넘으면 기업의 착취가 시작된다고 믿었다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소기업들이 빠르게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두고 덩샤오핑은 유고슬라비아 대표단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생소한 군대가 뜬금없이 등장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그 공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러한 성과가 우리 중앙 정부의 노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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