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 맞아요. 그는 전혀 의심하지 못할 거예요.
소장 - 어제 우리 집에서 자네 보호자와 저녁을 함께했네. 자네에게 좋은 소식이 있더군. 아직 좀 이른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이렇게 내 사무실로 오라고 한 걸세.
혹시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닌가?
피고 - 아니에요, 소장님. 전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 일은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하기 때문에... 파리시 씨께서 뭐라고 말하던가요?
소장 - 아주 좋은 소식이지, 몰리나. 자네가 사면될 가능성이있다고 하자, 자네 어머니의 건강이 아주 많이 회복되었다는데……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말일세.
피고 - 정말이지요?
소장 - 물론이지. 자네가 기다리고 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렇게 우나? 그게 무슨 행동인가? 아주 기뻐해야 할일에⋯⋯
피고 - 예, 소장님. 너무 기뻐서 울음이.......
소장 - 자, 이제 그만 울게...... 손수건 없나?
피고 - 없어요. 그냥 소매로 닦으면 돼요. 그러니 없어도….
소장 - 내 손수건을 받게나...
피고 -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죄송해요.
소장 - 내가 파리시 씨와는 형제나 다름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가 자네 이야기를 하자, 이 일을 생각해 내기 시작한 거라네. 그런데 몰리나…… 우린 자네가 일을 잘하리라 믿고 있네. 무슨 단서라도 보이던가?
피고 - 예, 그런 것 같은데... - P200

「내 말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둘, 그러니까 우리 관계는,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래, 우리 관계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우리 관계는 그누구도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수는 없는 거야」
「물론 그렇지. 계속해. 듣고 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야. 알겠지?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무인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마도 여러 해 동안 둘이서 외롭게 지내야만 하는 무인도 말이야. 감방 바깥에는 우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이 안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여기에는 누가 누구를 억압할 수 없어. 단지 있는 것이라고는지쳐 있는, 아니 뒤틀려 버린 내 마음을 괴롭히는...... 어느 한사람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날 잘 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야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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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해」
「정말이야. 너한테만 그런 게 아니야. 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어. 난 네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어. 하지만 네게 영화 이야기 대신에, 진짜로 일어났던 일을 말해 줄게. 전에 말했던 내 여자동료에 대한 것은 모두 거짓말이었어. 너한테 말한여자는 내가 무척 사랑했던 다른 여자였어. 그 여자동료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 아주 순수하고 착하며 화도 잘내는 여자였기 때문에 넌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했지「그만. 제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 그건 아주 골치 아픈 문제가 될지도 모른단 말이야. 난 네 정치 문제나 비밀에 관해서는 알고 싶지 않아.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아「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누가 내 일에 대해 너한테 묻겠어「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날 취조할 수도 있으니까」「난 너를 믿어. 너도 날 믿지?」
г......
「여기에서는 모든 게 공평해야 돼. 그러니까 날 너무 무시하지마......」「그게 아니라......」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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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하트와 파머, 그리고 여러 부족원들은 토지분할의 조건을 놓고 정부 관리들과 몇 달 동안 협상을 벌였다. 오세이지족은 땅을 부족원들에게만 나눠준다는 조건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각자에게 돌아가는 땅의 면적이 160에이커에서 657에이커로 늘었다. 나중에 백인들이 부족원들에게서 땅을 사들일 수는 있겠지만, 일단은 땅을 차지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는 사태를 피하려는방책이었다. 오세이지족은 또한 합의서에 언뜻 이상하게 보이는 조항도 끼워넣는 데 성공했다. "땅 밑에 묻힌 석유, 가스, 석탄, 기타광물은 (…) 이로써 오세이지족의 몫이 된다. 오세이지족은 땅 밑에 석유가 어느 정도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0여 년 전, 한 오세이지족이 그레이호스에서 상점을 경영하던 존 플로러에게 보호구역 동쪽의 개울물 위에서 반짝이는 무지개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오세이지족 인디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담요를 개울물에 적신 뒤 그릇에 물기를 짰다. 플로러는 자기 가게에서 파는 차축 윤활유와 비슷한 냄새가 그 액체에서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 액체를 들고 서둘러 달려가 다른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다들 그의 짐작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그액체는 석유였다. 플로러는 부유한 금융가와 짝을 이루어, 부족의 허락을 받아서 땅을 빌려 시추를 시작했다. 오세이지족이 막대한 재산을 땅 밑에 깔고 앉아 있다고 짐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토지분할 협상이 진행될 무렵에는 이미 소규모 유정 여러 개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세이지족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지하자원, 자기들은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지하의 영토를 기민하게 지켜냈다. 1906년에 토지분할법의 조항들에 합의하고 난 뒤, 파머는 의회를 향해 이렇게 자랑했다. "내가 오세이지 합의서를 제대로 작성했다. "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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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의 가족은 200년의 역사 위에 걸터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문명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 1890년대 말에 미국 정부가 동화정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토지분할을 실시하면서 몰리 가족의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는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의 땅을 160에이커씩 분할해서 진정한 ‘부동산‘으로 만든 뒤, 부족원 한 사람당한 필지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남는 땅은 이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이미 많은 부족에게 실시된 적이 있는 이 분할제도는 옛날식 공동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미국 인디언들을 개인 재산 소유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인디언들의 땅을 손에 넣기가 쉬워지는 것 또한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오세이지족은 체로키 영토의 일부였으며,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의 서쪽 경계선 근처의 광대한 초원지대인 체로키 하구가 어떻게되었는지 이미 보았다. 미국 정부는 체로키족에게서 이 땅을 사들인 뒤, 1893년 9월 16일 정오에 4만 2,000필지를 이주민들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겠다고 발표했다. 이주민 한 명은 한 필지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며칠 전부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만 명의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저 멀리 캘리포니아나 뉴욕에서 온사람들도 있었다. 누더기를 입은 더러운 사람들이 필사적인 표정으로 지평선을 따라 장사진을 이루었다. 마치 내분이 일어난 군대 같았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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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오세이지족에게 캔자스의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주민들이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나중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원의 집>을 쓴 로라잉걸스 와일더의 가족들도 그런 이주민이었다. "왜 인디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엄마?" 책 속에서 로라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그냥 싫어. 손가락 빨지 마라, 로라."
"여긴 인디언의 땅이잖아요." 로라가 말했다. "이 사람들이 싫다면서 왜 이 사람들의 땅에 온 거예요?"
어느 날 저녁 로라의 아버지가 정부가 오세이지족을 곧 이주시킬것이라고 딸에게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로 온 거야, 로라. 백인들이 이 일대에 정착할 거다. 우리가 가장 먼저 와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땅을 얻을 거야."
비록 책에서 잉걸스 일가는 병사들의 위협을 받으며 인디언 보호구역을 떠나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무력을 동원해서 무단으로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1870년에 오세이지족은 무덤이 약탈당하고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견디다 못해, 캔자스 땅을 에이커당 1.25달러를 받고 이주민들에게 팔기로 했다. 그런데도 성급한 이주민들은 오세이지족 여러 명을 죽여 시체를 훼손하고 머리가죽을 벗겼다.
인디언실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야만인인가?" - P58

오세이지족은 새로운 땅을 찾아 헤맸다. 당시 인디언 영토였던땅, 즉 자기 땅에서 쫓겨난 많은 부족들에게 ‘눈물의 길‘의 종착지가 된 캔자스 남쪽 지역에서 체로키족의 땅을 거의 150만 에이커나 사들이자는 논의가 있었다. 오세이지족이 눈독을 들인 이 땅은 델라웨어주보다 더 크고 아직 비어 있었다. 인디언실 관리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백인들은 이 땅을 "형편없는 바위투성이 불모지라서 경작에 전혀 맞지 않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오세이지족 추장인 와티안카는 위원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족이 이 땅에서 행복해질 것이다. 백인은 이 땅에 쇠붙이를 들일 수 없다. 백인은 이 땅에 오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산이 많다. (•••) 백인은 산이 많은 땅을 좋아하지 않으니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부족이 오두막 바닥처럼 땅이 평평한 서쪽으로 가면, 백인들이 우리들의 집으로 와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에게 땅을 내놓아라.‘ (••• 곧 땅은 사라지고 오세이지족은 집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오세이지족은 에이커당 70센트로 그 땅을 사서, 1870년대 초에 대이동을 시작했다. "노인들, 특히 영원히 두고 떠나야 하는 자식들의 무덤 때문에 탄식하는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 당시의 목격담이다. 오세이지족은 새로운 보호구역으로 이동을 마친 뒤, 여러 곳에 캠프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포허스카에 있었다. 인디언실도 포허스카의 우뚝 솟은언덕 위에 현장 지부가 들어갈 건물을 사암으로 위풍당당하게 지었다." 이 땅의 서쪽에 있는 그레이호스는 새로 지은 오두막 몇 채가모여 있는 곳에 불과했다. 리지와 네카에세이는 1874년에 결혼해서 이곳에 정착했다.
연달아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백인들의 질병"인 천연두까지 겪는 바람에 부족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오세이지족의 인구가 약 3,000명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70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었다. 인디언실 관리는 이렇게 보고했다. "한때 이 일대 모든 땅의 주인이었던 영웅적인 부족의 흔적은 이 사람들이 전부다. - P59

1877년에는 사냥할 버펄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당국이이주민들에게 들소를 아예 멸절시키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더욱더 당겨졌다. 한 장교의 말에 따르면, 당국은 "버펄로 한마리가 죽을 때마다 인디언 한 명이 사라진다""고 확신했다. 인디언 부족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은 억제와 봉쇄에서 동화 강요로 바뀌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점점 오세이지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옷을 모두 갖춰 입고 밭을 갈게 만들려고 애썼다. 정부는 캔자스 땅을 판매한 것에 대해 부족에게 배당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었으나, 네카에세이처럼 건강한 남자들이 농사를 시작할 때까지 돈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부족이 농사를 시작한 뒤에도 정부는 돈 대신 옷과 음식을 배급하는 방식으로 지불하겠다고 주장했다. 오세이지족의 한 추장은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는 먹이를 줘야 하는 개가 아니다." - P61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줄을 지어서 이리저리로 행군하듯 이동했다. 그들은 피아노 글씨 쓰기, 지리, 산수 등을 배웠다.  세상이 낯선 기호들로 정리되었다. 이 학교의 가르침은 몰리를 백인사회에 동화시켜, 당국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으로 만들기 위한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오세이지족 소년들이 농사와 목공을 배우는 동안, 몰리는 바느질, 빵 만들기, 세탁 등 ‘살림의 기술‘을 배웠다. "인디언 소녀들을 세심하게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 정부 관리의 말이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남자가 근면하게 열심히 일해서 식구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주더라도, 아내가 요리를 할 줄 모르고 바느질에 익숙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하는 습관이 없어서 즐겁고 행복해야 할 가정을 더럽고 불결한 곳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이교도의 의식과 미신에 끈질기게 집착하며 그가르침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바로 여자들이다."
몰리의 학교에 다니던 많은 오세이지족 학생들이 도망치려고 시도했지만, 보안관들이 말을 타고 그들을 쫓아가 밧줄로 묶어서 다시 데려왔다. 몰리는 매년 8개월씩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그레이호스의 집으로 돌아가면, 담요를 걸치고 모카신을 신은 소녀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년들도 허리에 천을 두르는 대신 바지를 입었고, 투구 장식 모양으로 머리를 깎는 대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영어를 배우지 않고 과거의 관습을 지키는 부모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오세이지족의 한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아이가 귀를 닫아버렸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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