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가 세워진 후, 한족 남자들은 청나라 풍속을 따라 변발을 해야했지만 여자들은 따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여자들은 자신들이 한족임을 드러내기 위해 더더욱 전족을 고수하게 된 거지요." "모양도 흥하고 걷기에도 불편한데, 대체 왜 전족을합니까?" "만주 여자들과 똑같이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그럴 겁니다." - P230
잠시 후, 군기대신이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와서 전했다. *서번의 성승(당시 열하에 있던 판첸라마를 말함)을 알현할 생각이 없는가?" "황제께서 이 보잘것없는 사신들을 한 나라 백성과 다름없이 보시니 중국인사들과는 거리낌 없이 왕래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과는 함부로 교제할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법입니다." 군기대신이 휑하니 가버린 뒤, 모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당번 역관들은 허둥지둥 분주하여 술이 덜 깬 사람들 같았다. 비장들은 공연히 성을 내며 투덜거렸다. "거참, 황제의 분부가 고약하기 짝이 없네. 망하려고 작정을 했나. 그럼, 그렇고말고. 오랑캐가 다 그렇지 뭐. 명나라 때야 어디 이런 일이 있었겠어?" 수역은 그 와중에도 비장을 향해 핀잔을 준다. 지금 춘추』 대의를 논할 때가 아닐세." 조금 있다가 군기대신이 다시 급히 말을 달려와서 황제의 명령을 전한다. "서장의 성승은 중국인이나 다름없으니, 즉시 가보도록 하라." 이에 사신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하였다. 어떤 이는 친견을 하게 되면 종국엔 아주 난처한 일에 연루될 거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예부에 글을 보내 이치에 맞는지 따져 보자고 한다. 당번 역관은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맞춰 건성으로 "예예" 할 뿐이다. 나야 한가롭게 유람하는 처지인지라 조금도 참견할 수 없을뿐더러 사신들또한 내게 자문 같은 걸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에 나는 내심 기꺼워하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거 기막힌 기회인 걸."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권점을 치며 속으로 생각을 요리조리 굴려보았다. "좋은 제목이다. 이럴 때 사신이 상소라도 한 장 올린다면, 천하에 이름을날리고 나라를 빛낼 텐데. 한데, 그리 되면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치려나? 아니지. 이건 사신의 죄니, 그 나라에까지 분풀이를 할 수야 있겠는가. 그래도 사신이 운남이나 귀주로 귀양살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야. 그렇다면 차마 나 혼자 고국으로 돌아갈 수야 없지. 그리 되면 서촉과 강남 땅을 밟아 볼수도 있겠군. 강남은 가까운 곳이지만 저기 저 교주나 광주 지방은 연경에서 만여 리나 된다니, 그 정도면 내 유람이 실로 풍성해지고도 남음이 있겠는걸." - P234
박보수가 예부에 가 이것저것 탐문하고 와서 말을 전해 준다. "황제께서 그 나라는 예를 아는데 사신들은 예를 모르는구먼‘ 했답니다." 그러자 통관들이 모두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난리다. "아이고 우린 이제 다 죽었습니다요." 이는 본래 통관 무리들이 잘하는 짓거리라 한다. 비록 털끝만큼 작은일일지라도 황제의 명령과 관계된 것이면 무조건 죽는 시늉을 하기 일쑤인데, 하물며 중도에 돌아가라고 한 것은 황제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분명함에랴. 또 ‘예를 모르는구먼‘이라는 말은 황제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니 통관들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도 괜한 엄살만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 행동거지들이 하도 흉측하고 왈패스러워, 보는 이로 하여금 요절복통 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역관들 역시 두렵긴 마찬가지일 텐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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