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심부름꾼이 와서 몇 냥어치 술을 마실지를 묻는다. 여기서는 술을 저울에무게를 달아 판다. 나는 술 넉 냥을 따라오라고 했다. 심부름꾼이 가서 술을 데우려 하기에 기세 좋게 외쳤다.
"어이! 데우지 말고 찬술 그대로 달아 와!"
심부름꾼이 웃으면서 술을 따라 가지고 오더니 작은 잔 둘을 탁자 위에 먼저 벌여 놓는다. 나는 담뱃대로 그 잔을 확 쓸어 엎어 버렸다.
"큰 술잔으로 가져와!"
그러고는 큰 잔에다 술을 몽땅 따른 뒤, 단번에 주욱 들이켰다. 오랑캐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호오~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가 꺾인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은 술 마시는 법이 점잖아서 한여름에도 반드시 데워 마신다.
심지어 소주까지도 데워 마신다. 거기다 술잔은 콩알만 하다. 한데도, 잔을 이에대고 홀짝홀짝 마신다. 단번에 털어 넣는 법이 절대 없다. 다른 오랑캐들 역시 술 마시는 법이 대개 이런 식이다. 큰 잔으로 마시거나 한꺼번에 주욱 들이키는 풍속 같은 건 일체 없다. 그러니 내가 넉 냥이나 되는 찬 술을 단숨에 들이켜는걸 보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들을 겁주기 위해 부러 대담한 척한 것일 뿐이다.
솔직히 이건 겁쟁이가 호기를 부린 것이지 용기있는 행동은 아니다. 내가 찬술을 따라오라고 했을 때 여러 오랑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단숨에 주욱 들이켜는걸 보고는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기선 제압에 성공한 셈이었다. 그러고선 엽전 여덟 푼을 꺼내어 술값을 치르고는 여유 있게 몸을일으키려는데, 아뿔사! 오랑캐들이 모두 의자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자리에 앉기를 청하는 게 아닌가. 그 중 한 놈이 제 자리를 비우고는 나를 붙들어앉힌다. 딴엔 호의를 베푼 것이다. 순간 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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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가 세워진 후, 한족 남자들은 청나라 풍속을 따라 변발을 해야했지만 여자들은 따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여자들은 자신들이 한족임을 드러내기 위해 더더욱 전족을 고수하게 된 거지요."
"모양도 흥하고 걷기에도 불편한데, 대체 왜 전족을합니까?"
"만주 여자들과 똑같이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그럴 겁니다." - P230

잠시 후, 군기대신이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와서 전했다.
*서번의 성승(당시 열하에 있던 판첸라마를 말함)을 알현할 생각이 없는가?"
"황제께서 이 보잘것없는 사신들을 한 나라 백성과 다름없이 보시니 중국인사들과는 거리낌 없이 왕래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과는 함부로 교제할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법입니다."
군기대신이 휑하니 가버린 뒤, 모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당번 역관들은 허둥지둥 분주하여 술이 덜 깬 사람들 같았다. 비장들은 공연히 성을 내며 투덜거렸다.
"거참, 황제의 분부가 고약하기 짝이 없네. 망하려고 작정을 했나. 그럼,
그렇고말고. 오랑캐가 다 그렇지 뭐. 명나라 때야 어디 이런 일이 있었겠어?"
수역은 그 와중에도 비장을 향해 핀잔을 준다.
지금 춘추』 대의를 논할 때가 아닐세."
조금 있다가 군기대신이 다시 급히 말을 달려와서 황제의 명령을 전한다.
"서장의 성승은 중국인이나 다름없으니, 즉시 가보도록 하라."
이에 사신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하였다. 어떤 이는 친견을 하게 되면 종국엔 아주 난처한 일에 연루될 거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예부에 글을 보내 이치에 맞는지 따져 보자고 한다. 당번 역관은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맞춰 건성으로 "예예" 할 뿐이다.
나야 한가롭게 유람하는 처지인지라 조금도 참견할 수 없을뿐더러 사신들또한 내게 자문 같은 걸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에 나는 내심 기꺼워하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거 기막힌 기회인 걸."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권점을 치며 속으로 생각을 요리조리 굴려보았다.
"좋은 제목이다. 이럴 때 사신이 상소라도 한 장 올린다면, 천하에 이름을날리고 나라를 빛낼 텐데. 한데, 그리 되면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치려나?
아니지. 이건 사신의 죄니, 그 나라에까지 분풀이를 할 수야 있겠는가. 그래도 사신이 운남이나 귀주로 귀양살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야. 그렇다면 차마 나 혼자 고국으로 돌아갈 수야 없지. 그리 되면 서촉과 강남 땅을 밟아 볼수도 있겠군. 강남은 가까운 곳이지만 저기 저 교주나 광주 지방은 연경에서 만여 리나 된다니, 그 정도면 내 유람이 실로 풍성해지고도 남음이 있겠는걸." - P234

박보수가 예부에 가 이것저것 탐문하고 와서 말을 전해 준다.
"황제께서 그 나라는 예를 아는데 사신들은 예를 모르는구먼‘ 했답니다."
그러자 통관들이 모두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난리다.
"아이고 우린 이제 다 죽었습니다요."
이는 본래 통관 무리들이 잘하는 짓거리라 한다. 비록 털끝만큼 작은일일지라도 황제의 명령과 관계된 것이면 무조건 죽는 시늉을 하기 일쑤인데, 하물며 중도에 돌아가라고 한 것은 황제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분명함에랴. 또 ‘예를 모르는구먼‘이라는 말은 황제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니 통관들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도 괜한 엄살만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 행동거지들이 하도 흉측하고 왈패스러워, 보는 이로 하여금 요절복통 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역관들 역시 두렵긴 마찬가지일 텐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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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린이푸는 충격 요법을 통한 소련 개혁을 부추겼던 서구의 주류관점에 대해 점점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중국이 성장하려면 시장경제와 강력한 정부의 결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확신을 굳혀 갔다. 이전까지 앞다투어 자유 시장을 추진했던 상당수의 동유럽 국가들이 소비에트 붕괴후 10여 년 동안 실업과 불경기, 정치 불안에 직면했고 더불어 충격 요법 방식에 대한 지지도 떨어졌다. 반면 1990년대의 중국 경제는 스펙트럼의 양극단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혼성체의 모습으로 격동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어떤부분에서는 무제한에 가까운 자본주의를 보였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강력한정부 통제를 보여 주었다. 발전에 집중하는 양상은 예외가 없었다. 공산당은성장과 환경 사이에서 선택에 직면할 때마다 항상 성장을 선택했다. 사회 보장과 성장 사이에서도 성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변화의 대가는 혹독했다. 건강보험기금과 퇴직 기금이 증발했고, 환경 오염이 나라 전체의 풍광을 집어삼켰으며, 도시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도시의 많은지역을 파괴했다. 대중의 불만이 깊어졌지만 공산당은 번영을 향한 꾸준한 전진과 강압을 통해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그럼에도 수치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 주었다. 1949년에 중국의 기대 수명은 36세였고 식자율(識字率)은 20퍼센트였다. 2012년에 들어서는 기대 수명이 75세, 식자율이 90퍼센트 이상이었다. 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중국이 20세기까지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였다면 21세기 들어서는그들 중 최초로 가난의 고리를 끊은 듯 보인다>라고 썼다. 2008년에 불어닥친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때, 이미 너무나 많은 공항과 고속 도로가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그밖에 다른 무엇을 건설해야 할지 선뜻 결정할수 없을 정도였다. - P214

중국이 지금 이 시점에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패입니다. 빈부의 격차도 바로 부패 때문이죠.
그렇다면 부패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정부가 계속해서 너무나 많은 자원을 통제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왔습니다.
일련의 격렬한 소론과 저서를 통해서 우징롄은 중국의 경제 모델이 한계에 즉 경쟁적인 수요들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다 많은 정치적 개방을 허용하지 않고도 가능했던 한계에 봉착했다는 증거로 정실 자본주의와 빈부격차를 제시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가 민족주의자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맹비난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논쟁은 인신공격으로 번졌다. 예컨대 인민일보」는 우징롄이 미국 스파이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인터넷상의 소문을 그대로 보도했다. 도대체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었다. 종국에는 중국 내각에서 우징롄을 지지하고 해당 혐의를 반박하는 성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처럼 두드러진 공격으로 보건대 그의 비판이 「인민일보」에 줄이 닿는 유력한 사람들을 격분시킨 게 분명했다.
상황이 진정되었는지 묻자 우징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략 한 달 전쯤에도 내가 벽돌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글이 웹사이트에 올라왔었어요.」 두말할 것 없이 사실무근이었다. 그에게 그 글을 어떤 의미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런 악성 루머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힌트를 줍니다.」 기사에는 <중국 변절자 근절협회>라는 서명이 되어 있었다. 그를 모함하려는 노력의 배후가 누구인지 우징롄 자신도 전혀 몰랐지만 다양한 용의자들이 물망에 올랐고 그 범위 또한 확대되고 있었다. 비주류 우익 민족주의 세력일까? 아니면 개혁에 반대하는 유력 인사들일까? - P223

류샤오보의 낙관주의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중국이 세계와 융합되어 갈수록,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의 정권도 보다 자신감을 얻을지모른다>고 예상했고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으면서 자신의 전망에 담긴 여운을 음미했다. 「점점 더 관대해지고 유연해지고 개방적이 되겠죠 그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논쟁하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행위가 효과가 있든 없든 나는 계속해서 정부에게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했으며 더욱더 의욕을 불태우는 가운데 몇 개월이 지났다. 그사이에 가을이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그와 소수의 동료들은 비밀프로젝트- 인권과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상세한 선언문-의 완성을 향해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는 정치적 현실에 따르면 중국에는 수많은 법률이 존재하지만 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은 있되 입헌정치는 없다. 집권한 엘리트들은 계속해서 독재 권력에 의존하고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일반적인 반체제 선언문과 달리 그들은 그들의 선언문을 단일 사건이나 모호한 조항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정기적인 선거와 사법 분리, 군대의정치적 이용 금지,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말을 범죄로 간주하는>관행의 종식 등 모두 열아홉 가지의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촉구했다. 그들은「77헌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77헌장」은 당사자들의 표현에 따르자면<우리 나라와 전 세계에서 인권과 시민권 존중을 위해 개별적, 집단적으로 투쟁하려는 의지>로 단결한 바츨라프 하벨과 동료 체코 행동주의자들이 30여년 전에 발표한 선언문이었다. 한편 중국의 류샤오보와 공동 집필자들은 <현행 체제의 쇠퇴는 변화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시점에 도달했다>라고 말하면서 시간이 없다는 충고로 서문을 마무리했다.
내부 논의를 거쳐 그들은 해당 선언문을 그해 겨울 UN의 세계 인권 선언60주년 기념일인 2008년 12월 10일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선언문은「08헌장」이라고 명명되었다. 초기 서명자는 총 303명이었지만 누군가는 주된발기인이 될 필요가 있었고 류샤오보가 그 역할을 맡는 데 동의했다. 아마도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된 발기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을 터였다. 중국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로 가장 먼저 고개를 드는 새가 총을 맞는 법이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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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이라 한국의그 어떤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말.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하지만 대답 따위 아무도 들려주지 않을 테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지수가 절망적인 얼굴로 뭔가 결심한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방금 전 낙숫물에섞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이 집에 일부러 홀리고 간 단어마냥 툭툭.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부디 살라고 얘기하는 물소리가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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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에이미.
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 쨍한 자줏빛 스웨터에 잿빛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게 뭔지 아는 남자의 옷차림이었다. 나는 로버트가 평소 옷을 잘 갖춰 입는 게 좋았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노동 앞에서 어떤 격식과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서였다. 그건 본인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몇 년간 그런 존중에 좀 목말라 있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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