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보트들은 핍을 보기 전에 별안간 고래 떼가 한쪽 옆에 가까이있는 것을 발견하고 방향을 바꾸어 고래들을 추적했다. 스티브의 보트는 이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스터브와 그의 선원들은 모두 고래에 열중해 있어서, 핍을 둘러싼 수평선은 무참하게도 점점 넓어져갈 뿐이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본선이 나타나 그를 구출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 혹인 소년은 백치처럼 갑판 위를 거닐게 되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바다는 조롱하듯 그의 유한한 육체만 물 위에 띄웠고, 영원한 영혼은 익사시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익사시키지는 않았다. 영혼을 산 채로 놀랄 만큼 깊은 곳까지 끌고 내려갔다. 거기서는 왜곡되지 않은 원초적 세계의 낯선 형상들이 그의 생기 없는 눈앞을 미끄러지듯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혜‘라는 이름의 인색한 인어왕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자신의 보물을 드러냈다. 즐겁고 무정하고 항상 젊은 영원의 세계에서 핍은 신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수많은 산호충을 보았다. 그것들은물로 이루어진 창공에서 거대한 천체를 들어 올렸다. 핍은 신의 발이 베틀의 디딤판을 밟고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동료 선원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의 광기는 하늘의 분별이며, 인간의 모든 이성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인간은 이성으로 보면 불합리하고 황당무계한 천상의 사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 길흉화복을 초월하여 그가 믿는 신처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떳떳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 P501
하지만 보라. 저 세 개의 돛대 꼭대기에는 지금도 세 사람이 올라가서 더 많은 고래를 찾는 데 열중해 있다. 고래가 잡히면 낡은 떡갈나무 가구가 또 더러워질 것은 뻔하고, 적어도 어딘가에 기름 한 방울은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96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중노동이 끝났을 때, 온종일 적도에서 노를 저어 손목이 퉁퉁 부어오른 상태로보트에서 배로 올라와 잠시 쉴 새도 없이 거대한 체인을 운반하고, 무거운 양묘기를 들어 올리고, 고래를 자르고 난도질하고, 적도의 태양과 적도의 기름솥이 합세하여 내뿜는 열기 때문에 다시 그리고 태워지는 고역을당할 때, 그리고 이 작업이 끝나자마자 마지막으로 분발하여 배를 얼룩 한점 없이 깨끗한 낙농실처럼 청소하고, 깨끗한 작업복의 목단추를 막 채우고 있을 때, 갑자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 하는 외침소리가 들리면 가엾은 선원들은 깜짝 놀라 당장 또 다른 고래와 싸우러 달려가서, 진저리나는 그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할 때가 많다. 오! 친구들이여. 이것은 정말로 사람 죽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우리는 오랜 고생 끝에 이 세상에서 가장 덩치 큰 동물에게서 비록 적지만 귀중한 경뇌유를 빼낸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참을성 있게 몸에 묻은 오물을 씻어내고, 영혼의 임시 거처인 육신을 깨끗이 유지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자마자, "고래가 물을 뿜는다!" 하는 외침소리에 영혼은 분출되고, 우리는 또 다른 세계와 싸우러 달려가, 젊은 인생의 판에 박힌 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한다. 오, 윤회여! 오, 피타고라스여! 2천 년 전에 빛나는 그리스에서 그렇게 착하고 슬기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죽은 그대여. 나는 지난번 항해에서 그대와 함께 페루의 해안을 달렸고, 풋내기 소년으로 환생한 그대에게 나는 어리석게도 밧줄을 맞잇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 P516
"에이해브 선장!" 항해사는 얼굴을 붉히면서 선실 안으로 더 깊이 들어왔다. 그 대담성은 기묘하게 공손하고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항해사는 대담성이 조금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대담성을 거의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젊고 행복한 사람에게 걸핏하면 골을 내는당신을 너그럽게 봐줄지도 모르지만." "이 나쁜 놈! 네놈이 감히 나를 비난할 생각이란 말이냐? 어서 나가!" "아닙니다. 선장님. 아직 나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부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보다 좀 더 서로를 이해하면 안 됩니까?" 에이해브는 그물선반(남양을 항해하는 배의 선실에 대부분 갖추어져 있는 가구)에서 총알이 장전된 머스킷을 낚아채어 스타벅을 겨누면서 외쳤다. "지상에 군림하는 신은 하나뿐이고, ‘피쿼드호에 군림하는 선장도 하나뿐이야! 갑판으로 나가!" 순간 항해사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뺨은 불같이 뜨거워져서,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에게 겨누어진 총구에서 나온 불길을 그가 정말로 받은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격정을 억누르고 비교적 침착하게 돌아서서 선실을 나가려다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선장님은 저를 모욕한 게 아니라 화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저를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장님은 옷을지 모르지만,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경계해야 합니다. 영감님,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용감하게 불끈 화를 내지만, 그래도 내 말에 복종하는군. 그건 정말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용기였어!" 스타벅이 사라지자 에이해브는 혼자 중얼거렸다. "녀석이 뭐라고 했지?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경계해야 한다고? 그말에는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어!" 그는 무의식적으로 머스킷총을 지팡이 삼아, 굳은 표정으로 좁은 선실을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이마의 깊은 주름살은 퍼졌고, 그는 총을 다시 그물선반에 올려놓은 다음 갑판으로 올라갔다. "자네는 정말 훌륭한 사나이야, 스타벅." 그는 항해사한테 낮은 소리로말하고는 목청을 높여 선원들에게 외쳤다. "윗돛을 감아라. 앞뒤의 중간돛은 줄여라. 주돛대의 아래활대는 뒤로 밀어라. 고패를 감아라. 선창에서 기름통을 꺼내라." - P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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