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과거사 청산에서 이중적인 지위에 놓여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판결들을 포함한 사법부 자체의 과거사를 어떻게정리할 것인지의 문제와 더불어 국가기관 전체의 과거사 문제에대한 형사 재심과 민사적 배상 및 보상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에도 직면한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면서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거사 정리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보았다. 우선은 재심을 통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법원 내에서 인적 청산을 하는 방법, 세 번째는 과거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조사하는 방법이었다". 이중에서도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안정성 같은다른 헌법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려면 재심 절차를 통해 판결을 바로잡는 길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사법부 자체의 과거사 중 그동안 선고했던 형사판결에 재심사유가 있으면 재심을 받아들여서 새로 재판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머지 문제들은법원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것이었다.
문제는 2007년 1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참여한 판사 492명의 실명을 공개한 데 대하여 ‘방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우리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언급한 공보관실의 보도자료 수준으로 정리되었다. 그동안 사법부가 해왔던 판결 전반에 대한 반성은 2009년 말 사법부가 『역사 속의 사법부』를 펴내면서 주요 시국사건들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쳐버렸다. 과거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논의되지도 않았다. 과거사 정리에 대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의지가 철저하지 못했다든지‘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산산이 깨졌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용두사미에 그쳐버린 것이다.  - P136

그러나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안정성 같은 다른 헌법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선택된 이러한 재심절차를 진정한 과거사청산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재심은 형사소송법에 명시해놓은 재심의 사유에 해당해야만 개시된다. 재심 청구가 있어서 이를 심리했더니 타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었고, 그에 따라 재심 판결을 한 것인 이상 당연한 판결을 당연히 한 것뿐이라고 볼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조봉암 사건의 재심은 ‘원래의 사건에 관여했던 사법경찰관 등이 그 직무와 관련해 죄를 범한 것이 판결로증명되거나, 공소시효의 완성 등으로 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해야 한다는 재심사유에 따라 개시되었다. 육군 특무부대 수사관이 민간인인 조봉암 등을 수사할 권한이 없는데도 수사한 것이 직권남용죄가 되므로 재심사유인 ‘원래의 사건에 관여했던 사법경찰관 등이 그 직무에 관하여 죄를 범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재심의 법리를 새롭게 확장한 것도 아니고 과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반성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다만 판결의 마지막 부분에서 재심 판결의 역사적인 위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좀 특별했을 뿐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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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이제 메리는 신중해야 했다.
이 아이-어른이 그녀의 딸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자신은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그것에 거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완전하게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이 아이--지금껏사랑했던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삶이 그녀를 마모시키고 마멸시켜 그녀는 거의 죽을 준비가 되었으며, 아마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몇 년이라도 더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고, 메리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혹은 정말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랬다. 그녀는 지칠 대로 지친 느낌이었고 거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지만, 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 생각에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그 장면을 그려보고-그녀는 바로 이 방 이 자리에 누워 있고 파올로는 허둥지둥돌아다닌다- 겁에 질렸다. 다시는 딸들을 보지 못할 테고 남편도, 그러니까 딸들의 아버지인 그 남편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겁을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장 소중하고 귀여운 딸인 에인절에게 자기가 그녀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 P198

"그 다른 여자가 엄마라는 뜻이에요. 저는 엄마가 떠난 걸 극복할 수 없었어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 그러자 잭이 내가 엄마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어요."
"오, 아가. 오, 맙소사." 메리가 말했다.
"그이가 떠난 지 일 년이 넘었고, 저는 지난여름에 엄마를 보러 오려다가, 그이가 자꾸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해서, 여기 오지못하고 집에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잭은 이제 정말로 집에 돌아올거예요."
앤젤리나는 어머니가 자신을 안게 놔두었고,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이따금 앤젤리나가 고통에 못이겨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처절해서 메리는 외려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앤젤리나가 고개를 들고 코를 닦은 뒤 말했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그들은 한동안 카우치에 앉아 있었고, 메리는 한 팔로 딸을 감싸고 있었다. 메리가 반대쪽 손으로 앤젤리나의 다리를 쓸어주었다. 이윽고 메리가 말했다. "저기, 네가 이 청바지 입은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네가 혹시 다른 사람하고 바람이 났나 했어."
앤젤리나가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네?" 그녀가 말했다.
"그게 나인 줄은 몰랐구나."
"엄마, 무슨 말이에요?"
메리가 말했다. "음, 아가, 이 청바지는 네 나이의 여자가 입기엔 너무 꽉 끼어. 그래서 생각해봤지. 그러니까 혹시......"
앤젤리나가 웃기 시작했지만 얼굴은 여전히 눈물에 젖어 있었다. "엄마, 저는 여기 오려고 특별히 이 청바지를 산 거예요. 이탈리아 여자들은…… 옷을 섹시하게 입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오, 청바지가 섹시한 거로구나." 메리가 말했다. 그녀는 청바지가 섹시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청바지 안 좋아해요?" 앤젤리나는 금방이라도 다시울 것처럼 보였다.
"아가, 좋아하지."
그러자 앤젤리나-오, 그녀의 영혼에 축복을-가 정말로 웃기 시작했다. "음, 저는 안 좋아해요. 청바지를 입으면 머저리가된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걸 특별히 산 이유는, 이걸 입으면 엄마가 저를, 음, 세련되거나 뭐 그렇다고 생각해줄 것 같았거든요. 앤젤리나가 덧붙였다. "원피스 수영복도요!" 두 사람 모두 눈물이 고일 때까지 웃었고, 그래도 웃음이 멎지 않았다. 하지만 메리는 생각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앤젤리나가 이 순간만큼은 평생 간직할 수 있기를.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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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에 의해 성립된 근대 정치이론 및 실천은 공적 영역과사적 영역의 구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공적 영역에만헌법의 기본권 보호 원칙이 개입할 수 있었고 사적 영역은 계약자유의 원칙이 지배해 국가가 기본권 보호 문제를 들며 개입할 수 없었다. 노동현장에서의 불공정성이나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들에게휘두르는 가장의 폭력성 등은 모두 자유가 지배하는 사적 영역의일로 취급되어서 오랫동안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사적 영역도시민사회와 가정의 영역으로 나누어졌는데, 같은 자유의 영역이라할지라도 시민사회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자유방임주의였고 가정의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였다. - P109

고용주와 피고용자 사이의 문제는 피고용자의 노동권이 생존권적 기본권으로서 국가가 일정 정도 보장해야 하는 것으로 발전하면서 일반적인 계약자유의 문제와 조금 달라졌다. 그러나 개인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각종 계약에서는 여전히 계약자유의 원칙에따른 자기책임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즉 시장거래에서는 계층적 상하관계가 아닌 형식적 평등이라는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 형식적 평등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을 유리하게 보호하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근대의 정치이론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별한 것은 결과적으로 시민사회 영역이든 가정 영역이든 구분 없이 모든 사적 영역에 대한 공적 개입을 어렵게 했다. 그중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계층적 상하관계가 약화되고 계약자유, 자유방임, 자기책임 등의 원칙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는 결과가 되었고, 법은 계약자유의 원칙 뒤에서 이를 덮어주는 기능을 여전히 해오고 있다. - P111

쉬피오는 현대로 오면서 점차 계약에서 ‘특정 재화 간의 교환‘과 ‘대등한 쌍방간의 결연‘의 영역에 ‘충성allégeance‘의 영역이 더해졌다고 설명한다. "충성의 영역이 더해짐에 따라 한쪽은 다른 한쪽의 권력이 행사되는 반경 안에 자리하게 된다." 이는 구체적으로 의존식 계약이나 통제식 계약‘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중 의존식 계약은 자유와 평등의 원칙이 침해되지 않으면서도 구성원들을 다른법인격의 이해관계에 예속시키는 방식의 계약이다. 자유와 책임을빼앗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즉 충성이 작동하는 새로운 변종 계약인 것이다.‘ 강원랜드 사건이나 KIKO 사건이 이런 충성의 영역에 놓여 있는 사건은 아닐까. 개인들은 자기책임하에 계약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거대구조 속에서 주어진 선택지만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문자 그대로의 자기책임의 원칙을 관철하는 것으로 법률은 과연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일까. 생각해볼 문제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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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 조사에서 나온 가장 놀라운 결과는사람이라는 종이 놀랍도록 균일하다는 사실이다. 머리카락 색과피부색 또는 머리뼈 모양의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지구에 살고 있는 75억 명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은 놀랍도록 낮다. 사실, 지구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두 인간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보다 중앙아프리카의 어느 강 양쪽에 살고 있는 두 침팬지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이 더 크다. 하지만 사람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설사 우리가 화석 뼈나 초기의 고고학적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가진 것이라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DNA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은 여전히 확실하다. 게다가 유전자 연구는 오늘날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차례에 걸친 이주 물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아프리카 대탈출 사건에서 유래했으며, 그때 이주한 사람들이 수천 명을 넘지않았다고 시사한다. - P71

*자신들이 살던 환경에 나타난 현생 인류 때문에 큰 영향을 받은 좋은 네안데르탈인뿐만이 아니다. 현생 인류가 새로운 지리적 지역들로 확산된 사건은세계 각지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대형 동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약 1만 2000년 전에 유라시아에 살던 대형 포유류 중 약 3분의 1이 그리고북아메리카에 살던 대형 포유류 중 약 3분의 2가 멸종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간 사냥꾼이었다. 이 대형 초식 동물들은 이전에 이러한 사냥꾼을 만난 적이 없었다. 유일하게 대형 동물을 온전히 유지한 대륙은 아프리카였는데, 이곳에서는 대형 동물들이 수백만 년 동안 초미닌에게 적응하면서 살아온 반면, 호미닌의 사냥 능력은 느리게 발전했다. - P80

 하지만 아가시즈호에서 방출된 막대한 양의 민물이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자, 이 컨베이어 벨트를 작동시키던 염분 펌프가 돌연히 중단되었다. 적도 지역의 열을 재분배하던 해양 순환 시스템의 작동이 멈추자, 북반구 중 많은 지역이 빙기의 최성기 때 경험했던 조건으로 되돌아갔다.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강수량이 줄어든 환경 위기 때문에 나투프인이 살던 땅은 건조하고 나무가 없이 가시 많은 관목과 풀만 자라는 스텝으로 되돌아갔고, 풍부하던 야생 식량 자원이 눈앞에서 확 줄어들었다. 이에 반응해 적어도 일부 나투프인은 막피어나던 정착 생활 방식을 버리고 이동 채집 생활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다른 나투프인은 이 영거 드리아스 사건 때문에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가던 생활 방식을 버리고 농업을 발달시켰다고 믿는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충분한 식량을 구하려고 더 멀리 배회하는 대신에 씨를 가지고 돌아와 땅에 심었다. 이것은 순화馴化, domestication의 첫 단계였다. 나투프인이 살던 마을에서 발견된 통통한 호밀 씨는 이러한 발전을 알려주는 증거로 해석되었다. 이 주장은 논란이 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나투프인은 세계 최초의 농부였다. 우리의 생활 방식을 되돌릴 수 없게 바꾼 발명은 갑작스런 기후 변화의 역경 속에서태어났다.
지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아가시즈호에 갇혔던 물의방출, 대서양 순환 시스템 중단, 영거 드리아스 사건의 충격의여파로 나투프인은 씨를 뿌려 농사를 지은 최초의 인류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이미 정착 생활 문화를 발전시킨 이들은 아마도그 당시에 최초의 농사 실험을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던 유일한사람들이었을지 모른다.  - P92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우리가 재배하는 식물 중 여럿은 만약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영영 멸종했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스쿼시와 박, 호박, 주키니호박의 야생종 조상 열매는 모두 역겨울 정도로 쓰고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그것을 깨서 속의 씨를 퍼뜨리려면 매머드나마스토돈처럼 큰 동물에게 의존해야 했다. 그런 대형 동물들이 멸종하자, 이식물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약 1만 년 전에이 식물들은 새로운 동물 종인 사람과 공생 관계를 맺으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우리는 이 식물들을 순화시키고, 밭과 농장에 새로운 인공 서식지를 마련해주었으며, 여러 세대에 걸친 선택적 품종 개량을 통해 더 크고 껍질이 부드럽고 맛이 더 좋은 품종으로 개량했다. 아보카도와 코코아도 원래는 멸종한지 얼마 안 된 대형 포유류에 의존해 씨를 확산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멸종할 뻔한 이 종들도 우리가 이 유령 종들을 받아들여 씨를 대신 확산시켜준 덕분에 살아남았다. - P99

많은 풀은 생명력이 질긴 식물 종으로, 기후가 점점 건조해짐에 따라 기존의 숲이 사라진 곳이아 불이 나 황폐해진 곳, 또는 기존의 생태계에 큰 교란이 일어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잘 살아갈수 있다. 풀의 생존 전략은 빨리 자라고, 태양에서 얻은 에너지 대부분을 나무처럼 튼튼한 뼈대를 만드는 대신에 씨를 만드는데 투입하는 것이다. 이 특성 때문에 씨를 먹는 우리는 이 식물을 재배하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토스트나 시리얼을 먹는 생태학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밀빵, 콘플레이크, 쌀 크리스피, 오트밀은 모두 빨리 자라는 초본식물 종에서 나온 것이다(그리고 곡물은 다른 음식들에도 주 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곡물을 이용하려면 해결해야 할 생물학적 문제가 한가지 있다. 우리는 소가 아니어서 질긴 식물 물질을 분해해 영양분을 추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4개의 위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에너지를 낟알(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열매)에 농축한 식물 종을 선택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위보다는 뇌를 많이 사용했다. 낟알을 갈아 가루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맷돌(그리고 그것을 돌리는힘을 얻기 위해 발명한 수차나 풍차 같은 메커니즘)은 우리의 어금니를기술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곡물 가루를 조리해 빵으로만드는 오븐이나 쌀과 채소를 끓이는 데 사용하는 솥은 몸 밖의 전소화계통과 같다. 우리는 열과 불의 화학적 변화 능력을사용해 복잡한 식물 화합물을 분해함으로써 영양분을 흡수하기쉬운 형태로 바꾸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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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뒤 그는 전화를 끊을 만큼 아내를 진정시켰다. 그녀는그를 방해한 것에 대해 다시 사과했고 그와 통화하니 기분이 좀풀렸다고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끊어, 메릴린."
그는 침묵과 함께 방안에 홀로 남아, 앞서 중단된 그것, 지금그에게 다시 돌아온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거대한 고요였다. 오래전 그는 그것에 자기만의 이름을 붙였다. 엄지 치기 이론. 어린 시절 어느 여름에, 할아버지 집 지붕 위에서 망치로 타일을 세게 내려치다 알아낸 사실이었다. 실수로 엄지를 내려쳤을 때, 이것 봐, 그렇게 세게 쳤는데도 많이 아프진 않은데……하고 생각되는 찰나의 순간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어 어리둥절한 채 다행이라고 느끼며 안도하는 착각의 순간이 지난 뒤─살을 짓이기는 진짜 아픔이 몰려왔다. 전쟁에서도 이런 일이 수시로, 여러 형태로 일어났기에 그는 이따금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그의 이론은 그만큼 잘 들어맞았다 생각하곤 했다. 전쟁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메릴린이 지금 그가 참석중이라고 알고 있는 모임 시간에 그런 것을 언급하는 심리학자는 이제껏 한 명도 없었다. - P137

싸구려 캔디와 땅콩과 온갖 잡다한 것으로 가득한 서커스 텐트 같은 냄새가 나는 가게에서, 아내가 정확히 어떤 운동복 상의를 사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아내와 함께 상의하면서 아주 품위 있게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은 다큰 남자 어른의 그것이었다. 아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펴졌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이제 갈까요?"
그 단어가 떠올랐다. 깨끗하다. 그의 아들은 깨끗했다.
"난 괜찮아." 찰리가 한 손을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다. "천천히 고르렴."
그는 오래전 자기 자신을 극심히 더럽힌 찰리였기에, 그는 찰리이고 다른 누군가가 아니었기에, 그는 아들에게 이 말을 할 수없었다. 너는 품위 있고 강하지만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단다. 네 어린 시절이 온통 장밋빛은 아니었는데도 너는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고 네가 놀라워. 찰리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건 그 감정을 희석시킨 말조차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어서 오라고 하면서, 혹은 잘 가라고 하면서 아들의 등을 툭툭 칠 수조차 없었다. - P140

그르렁거리는 소리. 메릴린, 백치 같은 그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소곤거렸다. "이 사람이전쟁에 나갔었거든요."
하지만 그 애송이는 메릴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가 복무한 전쟁의 이름을 몰랐다. 그것이전쟁이기보다는 갈등이기 때문이었을까? 국가가 이 전쟁을,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제멋대로 행동해서 자신을 난처하게 만드는아이처럼 여겨, 창피함 때문에 뒤로 감춰버렸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역사란 원래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그는 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다 그렇듯 완벽한 치아를 가진 그 젊은 남자는 "잠깐만요. 뭐라 그러셨죠? 죄송하지만……" 하고 말한 뒤 사과라고 보기에는 전적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얼굴을 자조적으로 찡그리며 찰리의 나이를 가늠하려고 했다. "죄송하지만 그게, 음, 첫번째 이라크전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순간 찰리는 울고 싶어졌고 소리지르고 싶어졌고 호통치고 싶어졌다. "우리가 그걸 했어. 하지만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무엇때문에?"
그는 아시아인 모두에게 변함없이 혐오감을 느꼈고, 그 감정을 한 번도 거둔 적이 없었다. - P150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그에게 이런 생각이떠올랐는데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이 이번이 정말 처음일까?-그것은 고통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더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는 다른 남자들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눈 뒤의 텅 빈 공백, 그리고 그런 이들을 정의하는 결핍.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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