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 어깨를 후려치며 해마다 기념식을 치를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각자 다른 인생길을 향하기 시작했고, 에이드리언이라는 공동의 기억만으로 결속을 다질 수는 없었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을 만한 구석이별로 없었기에 그의 자살 사건이 더 수월하게 정리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평생토록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그의 죽음은 - 케임브리지 신문이 기계적으로 주장했듯이-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빠르다 싶을 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져 시간과 역사의 틈새 속으로 사라져갔다. - P97

생이 저물어가는 무렵이 되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마련이다. 안 그런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덕을 쌓은 만큼상을 주는 게 인생의 소관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또, 젊었을 때는 노년에 겪을지 모를 고통과 황폐를 미리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인, 이혼을 한, 상처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자식들도 커서 품을 떠나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입지가 사라지고 욕망이, 이성을 끄는 매력이사라지는 것을 상상해본다. 더 나아가 다가올 자신의 죽음, 세상 어떤 동반자를 구한다 해도 홀로 맞설 수밖에 없는 죽음까지도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국 앞을 내다보는 행위일 뿐이다. 앞을 내다보고, 그러고 나서 그 미래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정을 익히는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을 지켜봐온 사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깨닫게 되는 것. 부단히 기록- 말로, 소리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해도, 어쩌면 그 기록의 방식은 엉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무엇이었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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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향

나는 전에 어떤 책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있다고 농담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다. 전화 회사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수 없고, 식당에서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종업원을 만날 수없으며, 이제 고향에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1995년, 나는 이 중 세 번째 항목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나는 20년 넘게 살아온 영국을 뒤로 하고 영국인 아내와 네 명의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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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그 상실들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허기는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상실과 허기에는 혼란이, 거부가, 혹은 상처가 얼마나 섞여 있었을까? 그리고 그 후 자아의 고갱이는 얼마나 결핍되고, 얼마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얼마나 슬픔과 자기혐오로 가득한 상태가 되었을까? 본질적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정도에 관한 답이며, 또한 강박적으로 훔치는 이와 자기를 베는 이와 억지로 토하는 이. 그리고 그보다 덜 극단적인 방식이지만 역시나 자신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차이 역시 정도의 차이다. 수전은 특수한 허기의 감각을 갖고 성장했고 한 번도 충분한포만감을 느낀 적이 없고 한 번도 자신이 남들과 똑같이 먹여질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 아이였다 그 허기를표현하는 유난히 뚜렷한 방식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번도 주어진 적 없는 것을, 평범한 소비주의의 명랑신에게하고 개방적인 교환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가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헛소리하지 마. 난 도둑질당했어, 그러니까 나도 도둑질로보복할거야라는 방식이다. 재닛과 캐슬린은 표현 수단은 다르지만 표현하는 감정은 동일하다. 그것은 감정들이 자신을 너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절실히필요하고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감정이 너무 크다는 느낌, 그러므로 그 느낌들을 방출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애초에 그런느낌을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을 벌하려는 강박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말할 것도 없이 분노가 있다. 당신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너무나많은 필요를 느끼게 했으면서 그 필요를 채워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엇이었든 필요를 느꼈던 자신에 대한 분노. 그러나 그 분노 아래에는 가장 강력한 슬픔도 자리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아이의 슬픔, 그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고 상처 입히는 아이의 슬픔, 그 슬픔 앞에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대신 적절한 렌즈를 장착하기만 하면 누구나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는 슬픔의 무언극을, 그림자의 연기를 하는 아이의 슬픔. - P334

무언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허기가 우리를 압도할 때, 허기가 언어의 체계화 역량을 초과할 때다. 언어가 제 역할을 하지못할 때 우리는 다시 몸에 의지하게 되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몸의 행동과 강박과 충동을 허락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여자는 손으로 초코바 하나를 감싸 쥔다. 자기 팔의 여린 피부에서 피를 뽑아낸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상징으로 재편성된 사물과 신체 부위와 음식의 세계들이 세계들이 우리 문화에서 여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할당된 세계들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속에는 여성의 슬픔의 언어 전체가 감춰져 있다. 이 언어가 평범한 언어를 대신하고, 평범한 언어에대한 절망을 드러낸다. 마치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묘사할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P339

철학자 헤겔은 욕망을 결여, 부재로 상정했다. 라캉 역시 이 관념을 한층 더 전개하여, 욕망을 이전에 유쾌한 것 혹은 만족스러운 것으로 경험했으나 이후 상실하고 만 무엇에 대한 갈망으로 묘사했다. 두 사람 다 불완전함, 빠져 있는 무엇, 초기에 발생하고 이후 결코 회복되지 않은 어떤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이 욕망의 본질적 부분이라 믿었다. 그 ‘무엇‘이 묻혀버린 기억이든, 아니면 한때 경험했으나 이제는 놓쳐버린 사랑이든 인정이든 안전함이든, 아니면 그런 경험에 대한 결코 충족된 적 없는 소망이든 간에 그것은 우리를 계속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우리 정신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고, 영원히 순환하는 허기의 회로를 만든다. 그 회로 속에서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든 욕구의 구체적 외현들(저 남자, 저 아파트, 저렇게 깎아낸 몸)은 몸속에서 본능적으로 느낀 부재에 대한 또하나의 대체물일 뿐이다. 그리하여 결국 욕구의 이야기는 공허를 메우려는 모든 실패한 시도들이 다른 시도로, 다시 또 다른시도로 이어지는 대체의 이야기 혹은 연쇄적 대체의 이야기가된다. 영원히 물건에, 사람에, 행동에 집착하며 대체물을 찾으려는 갈망들은 결국 자체의 생명을 갖게 되고, 하나의 조직 원리가 되며, 매번 고통과 갈망에 대한 초월을 약속하지만 번번이 실망시키고 마는 희망의 파편들이 된다. - P340

우리가 원하는 것, 중요함이라고 표시된 선반에 들어 있는것은 물론 연결이고 사랑이다. 인간 허기의 가장 깊은 근원에이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억제의 상자들을 조각조각 박살 낼 수 있는도구는 공허함을 산산조각 내고 그 밑에 묻혀 있는 희망을 드러낼 수 있는 커다란 망치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사랑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안고 안기고자 하는 사랑받아야 하는입장에서 당신이 한 경험이 훼손되었거나 불완전했더라도 사랑을 주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허기에 항상 붙어 있는 상수이며, 거식증 환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을 잇는 연결고리이고, 음식을, 섹스를,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노력 뒤에 자리한 필요와 간절함의 끊임없는 박동이다. 우리는 이 광막한 느낌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묻혀 있던 갈망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일종의 영적 갈망의 한 형태로 볼수도 있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해는 이해에 그칠 뿐이다. 밤이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이해를 끌어안을 수도 없고, 이해를 먹을 수도, 이해의 손을 잡을수도, 이해에게 당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 허기를 이해하는 것과 허기를 만족시키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우리 다수에게 허기는 끈질기게 지속된다. 허기는 열망의 어떤 내적인 회로로 들어가거나 이 길 혹은 저 길로 노선을 정해 수많은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다이어트의 형태, 로맨스의 형태, 중독의 형태, 모든 걸 밀어내고 제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 구매품 혹은 저 직장, 이 관계 혹은 저 관계에 대한 갈망. 허기는 원래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깊이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허기를 채우려는 우리의 의지, 허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흔히 보이는 맹목적인 집요함은 엄청날 수 있다. 우리는 열망하면서, 저 안전한 뭍을 목표로 삼고, 오직 희망이라는 작디작은 튜브에 매달린 채 물에 계속 떠 있다. 때때로, 아주 운이 좋다면 (적어도 한동안은) 거의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깊고 진정한 방식으로 허기를 채워줄 적합한 형태, 적합한 종류의 만족을 발견하기도 한다. 욕구에 도장을 받고 마침내 충족되는 것이다. 기도를 마무리하며 마거릿은 바로 이거야라고 느낀다. 내털리는 아이를 안고서 바로 이거야라고, ‘여기가 내 집이야‘라고 생각한다. - P357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 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촉감, 얼핏얼핏 최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아주 잠깐의 순간들이. - P370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욕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 의식과 기쁨을 품고 자기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여자의 능력은 진보의 표지인 동시에 진보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얼마나 허기져 있는가? 얼마나 채워져 있는가?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가?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의 몸으로 방금 새로운 생명을 낳았고 이제 그 생명을 먹이고 어를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쌍둥이 언니에 관해, 모든 여자들과 그들의 몸에 관해,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몸을 축복이나 선물이 아니라 적이자 수치의 장소로 여기고 있는지에 관해,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문득 자신의 엉덩이와 허벅지와 가슴을 느끼고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절망과 질색하는 마음에 관해, 그 몸들이 과소평가되고 망각되고 무시되고 가장 잔인한 멸시의 원천이 되고마는 경악스러운 가능성의 강도에 관해.
새벽 두 시. 내 앞의 길은 텅 비어 있었고, 하늘은 검지만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아기가 자신을 창조하고 안식처가 되어주었으며 이제부터는 자신을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해줄 몸에서 고픈 배를 채우려 젖을 빠는 모습을 떠올렸고, 아기를 위한 기도를 읊조렸고, 변화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우주에게 속삭였다. 이 아기가 가득 채워지게 해달라고.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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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과 그들의 허벅지라니,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나는한 친구에게 이렇게 투덜댔다. 내가 욕구라는 주제에 다시 몰두하게 될 때까지, 나아가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라는 바로 그 질문을 여성의 권력, 에너지, 가치에 관한 더 광범위한 질문들과, 만약 만 한다면‘이 걸쳐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 전체와 연결 짓게 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체중에 대한 강박에 빠져 보낸 몇 년 동안 나는 더 넓은 세계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대안적 비전들을 고민하지 않았으며, 체중 강박이 초래하는 무자비하고 성가신 괴로움이 온갖참상과 불의로 가득한 더 큰 그림을 얼마나 깊고 완벽하게 가려버릴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테러 공격의 여파 속에서여러 감정이 닥쳐왔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더 씁쓸하고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감정 하나는 나 자신의 안일함, 이 세계의 다른 지역들이 미국에 대해 품고 있는 증오의 깊이와 그 증오를 키우는 데 우리가 한 역할에 대한 나의 무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경, 여자들을 미치게 몰아가고 남자들을 살인적 분노로 몰아가는 가난과 절망에 대한 나의 너무나도 안이한 무관심에 대한 깊은 창피함이었다. 그 창피함은 이렇게 표현해볼 수 있겠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부대들을 후에 탈레반의 씨앗이 될 거센 혼란 속에 남겨둔 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1980년대 말, 내가 하고 있던 걱정은 내 청바지가 너무 꼭 끼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나에겐 여자들과 그들의 허벅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거기 신경 쓰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신경이 파괴적일 정도로 여자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 P298

나는 보트를 부두에 대고 넓고 푸른 리본 같은 강물을 바라보며 잠시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 거울 조각을 박아놓은 듯 매끈한 유리처럼 빛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잔물결을 만들면서 햇빛이 뿌려놓은 다이아몬드 같은 광채를 되비추며 반짝거렸다. 나는 그 젊은이의 고양이와 담요 더미를 생각했고, 스컬이 나에게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컬은 나에게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다시 소개해주고, 몸을 기쁨의 원천이라는 새로운 틀로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고 욕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은 가슴 아플 정도로 복잡하고 힘겨운 작업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소비주의에 여전히 남성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엄격하게 구축된 기업문화와 정치 문화에,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 깊이 새겨진 가정들에 정면으로 충돌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 비전은 좀처럼 포착되지 않아 잘 논의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글래머>나 <레드북>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전일 수있으며, 외현화하는 문화의 요란한 소음 때문에 분별해내기가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비전은 분명히 만들어진다.
비록 그 비전이 넓은 사회적 의미에서는 정치적이지 않을 수있지만, 무엇이 효과 있고 무엇이 적합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의하는 일에서, 즉 개인적 정치에서는 분명 변화를 일으킨다. 어느 교회 지하실에 모여 허기와 포만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던 한 무리의 여자들, 굶기를 재정의한 패션모델, 상담실에 앉아 감각성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닦아가는 심리 치료사와 내담자, 홀로 강물 위에서 스컬을 하며 강함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한 사람. 공적인 전쟁터들이 오늘날에는 사적인 전쟁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두 전투에 적용되는 역학은 대체로 동일하다. 무엇이든 당신을 몸과, 자신과 다른 여자들과 연결하는 것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수 있다. 무엇이든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빈 곳을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 P310

뭔가가 빠져 있어. 이 말은 그나마 내가 그 느낌을 설명하는데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이것은 놓쳐버렸거나 좌절된 관계들에 대한, 한때 무언가 사랑스럽고 견고한 것이 존재했던 자리에 남겨진 거대한 공동에 대한 인식이다. 나는 이것이 그 허기의 대양, 욕구의 바다 바닥에 깔린 거친 모래알이라고, 그저 인간이기에 느끼는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그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일에는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추구와 갈망의 조건인 허기의 경험과, 일시적 만족을 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추구와 새로운 갈망에 밀려나고 마는 채워짐의 경험 사이에 감도는 긴장을 처음부터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일단 충족된 목표는 언제나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진다. - P320

라캉의 관점에서 필요는 순전한 생존에 필요한 요건들- 음식, 주거지, 온기, 움직일 자유, 타인들과의 최소한의 접촉과 관련된다. 필요는 선천적이고 본능적이며, 필요의 충족을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상-어머니의 가슴, 부드러운 담요, 깨끗한 기저귀 이 필요하다. 반면에 요구는 아이가 더욱 의식적으로 관계의 세계로 들어가 언어 사용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할때 발생하며, 이런 변화는 필요한 것과 그것을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을 불변하게 연결함으로써 필요의 본질을 바꾸어놓는다. 이제 허기는 관계에서도 육체적으로도 훨씬 더많은 의미를 품은 경험이 되고 (그리고 계속 그런 경험으로 남고)그 허기에 반응하거나 반응하지 않은 사람과 영원히 결부된다. 언어의 상징적 질서 체계 안에서, 음식과 온기와 거주지에대한 아이의 기본적인 생존상의 필요는 그 본능적 근원에서 분리되어 여러 층위의 사회적 의미와 대인 관계에 얽힌 의미를 띠게 된다. 나는 배가 고프다는 말은 나는 배가 고프고 내 어머니가 반응해준(반응해주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나를 먹여줘는 음식에 대한 육체적 필요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줘, 나를 보살펴줘, 세상이 안전한 곳임을 내게 보여줘, 나의 의지에 귀 기울여줘라는 의미까지 표현하기 시작한다. - P326

내가 아는 여자들 중 가장 슬픈 축에 드는 이들, 격렬한 슬픔과 절망에 유난히 잘 사로잡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은자기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손상되거나 어머니와 거리감이 있었거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기미가 배어 있었던 이들, 자기 어머니가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성장한 이들이었다. 내 어머니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기겁했을 테지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고,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심지어 어머니가 나를 좋아하고 기특해하고 가깝게 느끼는 것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지만, 생애의 많은 부분을 나는 우리 사이에 몇 가지 배선이 초기부터 어긋났고 중추적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유지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닌 채 살아왔다. 어머니와 나의 언니 오빠 사이에는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나는 체질적으로도 기질적으로도 아버지와 더 비슷했고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와 더 잘 맞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내가 매우 결정적인 측면에서 어머니의원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나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이얼마나 확실한지 혹은 안정적인지 결코 확신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어머니의 대화에는 언니와 어머니의 대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껄끄러움이 있었고, 우리 둘 사이에는 서로 진정으로 잘 맞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듯 약간이지만 조심스러워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수년간 나는 어머니와함께 있을 때면 내향적이고 화가 나 있고 어두운, 마치 질풍노도를 겪는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집에 들어갔다가는어떤 대립의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를 따라 들어오기라도한듯, 5분 만에 돌아 나오고는 했다.
분노는 식별하기가 쉽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이를 악물게되고 피가 뜨거워진다. 화를 내고 침을 뱉고 싶어진다. 나는여러 해 동안 어머니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근원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 사이의 거리가 나를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씁쓸한 분노로 가득 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하게 된것, 혹은 다가가게 된 것이 있다. 프로비던스에서 만난 그 8월오후 같은 날들을 돌이켜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들춰본 적도없었던 그것은 그 분노 아래 깊이 흐르고 있던 슬픔이었고, 너무나 격렬해서 평범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는 연결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소리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울부짖음으로, 더없이 길고 더없이 외로운 곡소리로 나왔을 것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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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정의의 집

"베스 하미쉬파스" (Beth Hamishpath, 정의의 집). 법정 정리가 큰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면서 세 명의 판사가 도착했음을 알렸을 때 우리는 모두 벌떡 일어섰다. 판사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검은 법복을 입은 채 옆문을 통해 법정으로 들어와 높게 만든 단 제일 앞줄에 자리잡았다. 곧 수많은 책과 1500편 이상의 기록 문서로 가득 채워질 긴 탁자 좌우 양편에는 법정 속기사들이 앉아 있다. 판사 바로 아래에는 피고인과 변호인, 그리고 법정 사이에서 직접적인 의견 교환을 도와줄 통역사들이 있다. 재판은 히브리어로 진행되어, 독일어를 쓰는 피고측 사람들은 대부분의 방청객들과 마찬가지로 무선 동시통역 장치를통해 재판 진행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 P49

 심지어 검사는 법정 건물 안에서
‘즉흥적인‘ 감정을 분출하기도 했다(그는 모든 질문에 거짓말로 일관하는 아이히만을 대질신문하는 데 신물이 났던 것이다). 법정에서 자주 방청객을 힐끔거리거나, 일상적 허세보다도 더 심한 연극적인 행동을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그는 결국 백악관의 인정을 받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업무를 잘 수행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정의는 이런 어떤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정의는 은둔을 요구하고, 분노보다는 슬픔을 허용하며, 그 자신을 주목받는 자리에 놓음으로써 갖게 되는 모든 쾌락을 아주 조심스럽게 피하도록 처방한다. 란다우 판사가 재판 직후 미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 방문을 담당한 유대인 기구들 외에는 알려지지않았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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