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생들과 카프카를 강독할 때 극심한 좌절을 느끼는것은, 카프카가 웃기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웃김이 이야기의 힘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왜 관련되는가 하면, 물론,위대한 단편과 위대한 농담은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둘 다 소통 이론가들이 종종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 이라고 부르는 효과에의존하는데, 이것은 소통에서 표면적으로는 지워져 있지만 그 소통을 통해 수신자의 마음속에서 환기됨으로써 특정한 연상 관계가폭발적으로 맺어지도록 만드는 핵심 정보를 뜻합니다. 단편소설과농담이 둘 다 느닷없고 격발적인 효과를 낼 때가 많은 것, 흡사 오래 막혔던 밸브가 뻥 뚫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 건 이 때문일 것입니다. 카프카가 문학을 가리켜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깨뜨리는 도끼"라고 말했던 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비평가들이 위대한 단편의 기술적 성취를 종종 압축compression 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압력과 그 배출은 둘 다 이미독자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카프카가 거의 모든 다른 작가들보다 더 뛰어났던 것 같은 지점은, 그 압력이 커져가는 과정을 교묘하게 조절함으로써 이윽고 압력이 배출되는 순간에는 독자가 거의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 P174

농담의 심리학은 우리가 카프카를 가르칠 때 겪는 문제를 일부 설명해줍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농담을 설명하는 것만큼 농담에 담긴 마법을 더 잘 빼앗는 방법은 없지요. 예를 들어 "루 코스텔로는 고유명사 후who를 의문대명사 누구who로 착각한 거야" 하는식으로 풀어주는 것 말입니다.(미국 배우 코스텔로는 짝꿍 버드 애벗과 함께하는 말장난 코미디로 유명했는데, 특히 한쪽이 ‘Who‘s onFirst? [일루에 누가 있지?"라고 물으면 상대가 "Who [후]"라고 대답하고 그러면 질문자가 다시 "Who? [누구라고?]"라고 물어서 무한 반복되는 말장난이 유명하다. 일루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 ‘후‘라서 빚어지는 착각인 것이다.옮긴이) 또한 누구나 알다시피, 이런 설명을 들으면 우리는 이상한 반감을 느낍니다. 따분하다기보다는 기분 나쁜느낌, 꼭 무언가 신성한 것이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카프카의 작품을 대학의 표준적인 문학비평 분석에 욱여넣으려고 하는 선생의 기분이 꼭 그렇습니다. 플롯을 표로 정리하고, 상징을 해독하고, 주제를 끌어내고, 뭐 그런 작업 말입니다. 이런 형식의 효율적인 비평 기계는 장미가 왜 향기로운지 알기 위해서 꽃잎을 낱낱이 떼어 으깬 뒤 그 곤죽을 분광계로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 P175

학생들에게 너희가 카프카를 ‘이해하지get‘ 못하는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카프카의 모든 이야기를 일종의 문으로 상상해보라고 요구할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문에 다가가서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우리는 점점 더 세게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데, 그냥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정확히 그 절박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 문으로 꼭들어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절박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들이받고 찬다고. 그러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데... 문이 바깥쪽으로 열린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곳에 그동안 내내 들어 있었던 거라고. 다스 이스트 코미시.(이것이웃긴 것이다‘라는 뜻의 독일어 - 옮긴이) - P181

 미국 문화가 도피를, 즉 환상이나 아드레날린이나 스펙터클이나 로맨스 등을 주된 기능으로 삼는 예술과 오락에 쉽게 넘어가는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농담은 일종의 예술이고,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예•술이란 사실상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므로-즉, 잠시나마 우리는 쥐가 아니고 벽은 좁혀들지 않고 고양이를 충분히 따돌릴 수 있는 척하는 것이므로-<작은우화>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별로 안 웃기게 느껴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작은 우화>는 심지어 죽음 - 세금 유의 울적한 현실을 대표하는 지긋지긋한 사례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도피처로서 오히려 ‘진짜‘ 유머가 필요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 P180

이것은 로널드 W. 레이건 대통령이 TV 중계되었던 그 유명한 ‘의회의 수장을 넘어서대중에게로‘ 연설에서 완벽하게 구사했던 바로 그 수사, 이후 똑똑한 정치인들이 줄곧모방하는 수사와 같은 종류의 전술이다. 요컨대, 당신이 앞에 둔 청중을 당신의 주장에 대한 지지자로 슬쩍 언급하는 전술이다. "여러분이 그 시행을 당부하며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셨던 바로 그 정책들을 이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첫발을 내딛었다는 사실을, 오늘 밤 기쁜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이런 식이다. 이 전술이 교묘한것은 (1) 청중에게 아부하는 말이고, (2) 이 자리에서 연설자의 진짜 목적은 청중에게정보를 주거나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고 지지를 규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슬쩍 숨기고, (3) 연설자가 제안하는 정책이 사실은 청중의 이익에 반한다고 지적하는 반대 측의 공격을 미연에 차단하기 때문이다.  - P200

 이때 ‘윤리적‘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에토스ethos‘
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의미와 꼭 같지는 않다.
하지만 비슷하기는 하다. 윤리적 호소는 ‘나를 믿으시오‘라는 말을복잡하고 세련되게 하는 것이다. 이 호소는 여러 종류의 수사적 호소들 중에서도 가장 대담하고 야심만만하고 민주적인 호소인데, 왜냐하면 연사가 청중에게 자신의 지적 명민함이나 전문적 유능함뿐아니라 기본적 품위, 공정함, 청중이 품은 희망과 두려움에 대한 감수성까지" 믿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P202

 오늘날 어디서나 자행되는 교묘한 단어의미 조작, 혹은 그저 무언가의 이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끝없는 논쟁을 떠올려보라. ‘약자 우대 정책‘ 대 ‘역차별‘, ‘생명 존중‘ 대 ‘선택존중‘" ‘미등록 노동자‘ 대 ‘불법 체류자‘, ‘위증죄‘ 대 ‘가벼운 말실수‘ 기타 등등. - P209

 ‘언어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그런 실재론적 가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다. 왜냐하면 언어 행위란 인간적인 행위인 동시에 근본적으로 규범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언어란 속성상 공적이라는명제를 사적인 언어란 없다는 사실을"이해하면 된다. - P217

 비트겐슈타인의 논증은 대단히 전문적이지만 대충 이렇게 진행된다.
(1) 단어는 그것이 실제 사용되는 방식과 떨어져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설령
(2) "내 용법이 남들의 용법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은 해결 가망이 없는 문제라서 포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3) 단어가 나 자신에게만이라도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고, 이때
(4) ‘올바르게‘는 ‘나 자신의 정의와 일관되게‘라는 뜻이다(즉, 내가 한번은 나무를 나무를 뜻하는 단어로 쓰고 다음번에는 마음을 바꿔서 나무를 골프공을 뜻하는 단어로쓰고 또 다음번에는 나무를 특정 브랜드의 고칼로리 완제품 과자를 뜻하는 단어로 쓴다면, 내 작은 유아론적 세상에서조차 나무는 어떤 ‘뜻‘도 갖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5) ‘나 자신의 정의에 맞게 일관되게 사용한다"는 이 기준이 충족되려면, 어느 한 언어 사용자와는 무관하게 (이 경우에는 나와 무관하게) 그 외부에 특정 규칙이 존재해야만 한다. 외부 규칙이 없다면, "나는 나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의 정의에 맞게 일관되게 쓰고 있다"라는 진술과 "나는 내가 나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의 정의에 맞게 일관되게 쓰고 있다는 인상을 품고 있다"라는 진술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적으로 정의한] 단어를 일관되게 쓰고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218 - P218

게 확인할까? 내가 그것을 실제로 일관되게 쓰는 것과 내가 그러는 것처럼 내눈에 보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아니면 그 구별마저 사라지는 것일까?
..만약 ‘올바르다‘와 ‘올바른 것처럼 보인다‘를 구별할 수 없다면, ‘올바름‘이라는 개념도 사라진다. 따라서 내 사적 언어의 ‘규칙들‘은 그저 규칙들이 있다는‘인상‘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하지만 내가 규칙을 따른다는 인상이 내게 있다고 해서 내가 실제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내 인상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무언가가 따로 있지 않는 한. "그리고 그 무언가가 또 다른인상일 수는 없다. 그것은 누군가 신문에 실린 기사가 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 신문을 여러 부 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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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sovereign)‘이란 ‘자주적인‘ ‘주권의‘ 정도의 뜻을 가진 영어 단어다. 소버린 AI는 국가가 스스로 AI 기술을 개발하고, 자기 나라의 필요와문화에 맞춰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이자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한 국가가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 인력, 산업 역량을 활용해 AI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제도와 문화, 역사,
가치관을 이해하는 AI를 자국 데이터와 인프라를 기반으로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AI는 산업과 경제, 비즈니스,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군사와 안보 등 모든 영역을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PC나 인터넷, 스마트폰을 뛰어넘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LLM 기반 생성형 AI 기술은 1~2개 국가의 소수 기업들에 집중돼 있다.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빅테크 기업과 앞선 연구 역량의 대학을 가진 미국이 선두이고, 막대한 인력과 자원, 데이터를 쏟아부을 수 있는 중국이 바짝 뒤쫓고 있다. 그외 모든 국가는 사실상 한참 뒤처져서 쫓아가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기반이 될 핵심 기술을 전적으로 1~2개 외국 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 P12

차별점으로 ‘피지컬 AI(Physical Al)‘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언어모델 개발에 머무르지 않고, 차세대AI로 주목받는 ‘피지컬 AI‘를 국가 AI 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피지컬 AI란 텍스트 중심의 언어모델 AI를 넘어, 현실 세계의 물리적 환경에서 데이터를 인지하고 상호작용하도록 설계된 AI를 말한다.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현실 세계에서 주변과 상호작용하며움직이는 존재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AI가 디지털 영역을 넘어 현실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주변을 인식하고, 상황을 이해하며, 복잡한 행동을 수행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몸을 가진 AI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다. SF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사람과 꼭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피지컬 AI는 AI 시장과 기술에 새로운 도약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 등 생물의 지능이 언어뿐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세상을 감각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는 인간과 같은 ‘일반인공지능(AGI)‘에 도달하기 위한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봐도 제조, 물류, 가사, 돌봄, 군사, 치안, 교통, 물류등 모든 분야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틱스타에 따르면, AI 로보틱스 시장은 2020년 약 50억 달러(약 7조 원)에서2030년 약 643억 달러(약 85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미 빅테크 기업들이 로봇과 피지컬 AI를 위한 AI 기술 개발에 나섰고, 정교한 휴머노이드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엔비디아 역시 피지컬 AI에 진심이다. 젠슨 황 CEO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AI의 다음 프론티어는 피지컬 AI"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황 CEO가 이재용 회장, 정의선 회장과 ‘깐부‘를 먹고 치맥을함께한 이유가 나온다.  - P20

우선 ‘치매‘라는 용어부터 살펴보자. 치매는 사실 특정 질환명이 아니다. 뇌의 여러 기능이 저하돼 기억력, 판단력, 언어 능력 같은 인지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그 결과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태를 통칭한다.
즉, 치매는 ‘증상군‘이지 하나의 원인 질환이 아니다. 열이 나는 것이 감기나독감, 장염 등 여러 감염병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듯, 치매 역시 여러 질환이 일으키는 결과를 묶은 이름이다. 이 때문에 치매를 일으키는 질환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 가장 흔한 형태가 바로 ‘알츠하이머병‘으로, 전체 치매 환자의 - P47

혈관성60~70%를 차지한다.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처음 발견했다. 알츠하이머병은 뇌 속에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쌓여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질환이다. 보통 65세 이후에 발생하며,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력 저하로 시작된다. 이후 언어 능력 저하, 판단력 상실, 그리고 결국에는 가족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로진행된다.
두 번째로 흔한 형태는 혈관성 치매로, 전체 치매 환자의 약 20~30%를 차지한다. 이름 그대로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혈류가 즐기고, 그 부위의 뇌세포가 손상되면서 발생한다. 알츠하이머병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것과 달리,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증상이 단계적으로 악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혈관 질환이 주요 위험 요인이다. 인지 기능 저하 외에도 손상된 부위에 따라마비, 언어 장애, 보행 장애 같은 신체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루이소체 치매, 전측두엽 치매, 파킨슨병 치매 등 다양한 유형의 치매가 있다. 루이소체 치매는 환각, 수면장애 등이 특징이며, 전측두엽 치매는 비교적 젊은 40~60대에 발병해 성격 변화나 충동 조절 장애가 두드러진다. 예컨대 알츠하이머성 변화와 혈관성 손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치매는 단일한 질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원인과 양상을 지닌 질환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따라서 치료와 예방법 욕시 한 가지 공식을 적용할 수 없으며, 정확한 원인 진단이 치매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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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상은 또 크루즈 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내 안에서 꾸준히 악화된 어떤 심리적 증후군의 좋은 징후인데, 그 증후군이란 처음에는 하찮았던불만과 불평의 목록이 금세 절망에 가까운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증후군이 그저 일주일 동안 네이디어에 익숙해진 데서 생겨난 경멸의 감정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애초에 네이디어 호가 모든 불만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보다는 평범한 인간다운 의식을 가진 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응석받이와 수동적 쾌락을 갈구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내 안의 원형적 미국인이원인이다. 내 안의 불만족하는 아기, 내 안에서 늘 또한 무분별하게무언가를 원하는 부분. 이 증후군 때문에 나는 가령 나흘 전만 해도선실 서비스로 공짜 음식을 시키는 것을 방종으로 인식하고 그것이 창피해서 꼭 열심히 일하느라 식사를 놓친 척하는 가짜 증거를침대에 늘어놓았던 반면 어젯밤에는 십오 분이 지나자 시계를 보고 진심으로 짜증을 내면서 벌써 쟁반을 갖고 나타났어야 할 빌어먹을 선실 서비스 직원은 대체 왜 안 오느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쟁반에 놓인 샌드위치가 좀 작다는 것을 깨닫고, 딜피클의 모서리가 늘 빵 껍질 우현을 적신다는 것을 깨닫고, 다 먹은 선실 서비스 쟁반을 1009호실 문밖에 내놓기에는 망할 좌현 복도가 너무 좁기 때문에 쟁반을 밤새 선실 안에 둬야 하고 따라서아침이면 1009호실의 후각적 멸균성이 산패한 호스래디시 냄새로더럽혀진다는 것을 깨닫고, 호화 크루즈 여행 닷새째에는 이것이너무너무 불만스러운 일로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 P113

심야 바다 위에서의 이 시점에서 우리 네이디어 호가 정교하게빛나는 모습을 본다. 천사처럼 하얗게, 안으로부터, 축제처럼, 웅장하게, 궁전처럼 빛을 발하는 모습을・・・ 그렇다. 바로 이거다. 궁전처럼. 배는 장엄하고 끔찍하게 바다에 뜬 궁전처럼 보일 것이다. 한밤중 바다 위에서 홀로 작은 보트에 탄 가련한 사람에게는, 혹은 보트조차 없고 그냥 끔찍하게 물에 떠서 선헤엄을 치며 시야에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에게는. 깊고 창조적인 시각적 무아지경은-나이절 엘러리가 무심결에 내게 안겨준 진정한 선물이다-이튿날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그동안 나는 1009호 선실에 틀어박혀 침대에 앉은 채 주로 깨끗한 선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쟁반이며 껍질 따위를 주변에 늘어놓고, 눈동자가 약간 흐리멍텅했을지는 몰라도 대체로 좋은 기분으로-이렇게 네이디어 호에 타고 있는 것도 좋고 곧 네이디어 호에서 내릴 것도 좋으며 (어떤 의미에서) 죽도록 응석받이당하는 일로부터 (어떤 의미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좋다- 침대에만 있었다. 그 무아지경의 정체 상태때문에 마지막 밤에는 클라이맥스인 ‘승객 장기자랑‘과 ‘석별 자정뷔페‘를 놓쳤고 토요일에는 정박을 구경하고 G. 파나요타키스 선장과 ‘여행 후‘ 사진을 찍을 기회도 놓쳤지만, 그래도 이후 육지에매인 현실에서 성인이 감당해야 할 일상으로 재진입했을 때 이 재진입은 이전에 내가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일주일 뒤에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만큼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
(1995년)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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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호화 크루즈 여행에는 견딜 수 없이 슬픈 무언가가 있다. 견딜 수 없이 슬픈 것이 으레 그렇듯 이것은 정체를 파악하기는 엄청나게 어렵고 원인은 복잡하지만 결과는 단순한 듯하다. 그결과란, 내가 네이디어 호에서 특히 밤에, 배의 놀이 활동과 안심과 즐거운 소음이 다 그친 뒤에 절망을 느꼈다는 것이다. 절망이 - P27

라는 단어는 워낙 남용되어 이제 진부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진지한 단어이고, 나는 지금 이 단어를 진지한 의미로 쓰고 있다. 내게 절망이란 다음 두 가지의 혼합을 뜻하는 말이다. 죽음에 대한 이상한 갈망, 그리고 나 자신의 시시함과 쓸모없음에 대한 통렬한 자각에서 비롯한 죽음에 대한 공포. 어쩌면 이것은 사람들이 불안이나 고뇌라고 말하는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같지않다. 최소한 정확히 같지는 않다. 절망은 내가 참으로 작고 약하고이기적이고 의심의 여지없이 언젠가는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느끼게 되는 견디기 힘든 기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죽고 싶은 것에 가깝다. 배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다. - P28

 내가 저널리스트답게 집요하게 문의한 결과, 셀레브리티 홍보를 맡은 회사의언론 담당자는(매력적이고 목소리가 데브라 윙거를 닮은 비센 씨) 유쾌한 서비스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제공해주었다. "배에서 직접 느끼셨겠지만, 선상의 모든 직원도-스태프도 대가족의 일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고객을 모시는 일을 좋아하며, 모든 고객의 바람과 필요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것은 내가 관찰했던 바와는 다르다. 내가 관찰했던 바에 따르면, 네이디어는 아주엄격한 배였다. 냉혹한 그리스 장교들과 감독관들로 구성된 엘리트 간부단이 배를 운영했고, 하급 직원들은 늘 자신을 또랑또랑한 눈으로 관찰하는 그리스 상사들이 무서워서 겁에 질려 있었고, 승무원들은 진심으로 쾌활하기는 힘들어 보일 만큼 디킨스풍으로 중노동을 했다. 아마 ‘쾌활함‘은 그리스 상사들이 클립보드에 끼워 다니면서 수시로 체크하는 직원 평가지에 ‘민첩함‘과 ‘고분고분함‘과 함께 평가 항목으로 올라 있으리라. 많은 직원은 손님이 아무도 안 본다는 걸 확인하면,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드러내는 초췌한 피로함과 공포 어린 분위기로 금세 바뀌었다. 내가 볼때 승무원들은 사소한 과실로도 잘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무서운 그리스 상사들에게잘린다는 것은 티끌 하나 없이 반들반들한 상사의 구두로 엉덩이를 뻥 차여서 무지무지 오랫동안 헤엄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할 것 같았다.
내가 관찰한 바, 하급 직원들이 승객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애정이었다. 아무리 턱없는 요구를 하는 승객이라도 그리스 상사들의규율지상주의에 비하면 친절하고 이해심 있는 것처럼 보였고, 직원들은 그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뉴욕이나 보스턴에서 아무리 기본적인 수준이라도 인간적인 예의를 접하면 그만 감동해버리는 것처럼. - P35

7NC 호화 크루즈여행에는 배가 롤링할 때 서로 걸음을 돕는 것 같은 뜻밖의 사소한낭만이 가득하다. 나이 든 커플들이 크루즈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만도 하다.
거친 바다는 숙면에도 좋았다. 첫 이틀은 ‘이른 아침 식사‘를먹으러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늦잠을 잤다. 불면증으로 몇년 고생해왔다는 사람들도 아홉 시간, 열 시간을 내리 잤다고 보고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눈은 놀라움으로 천진하게 커졌다.
잠을 푹 잔 사람들은 더 젊어 보였다. 사람들은 낮에도 방자하게 낮잠을 잤다. 일주일이 끝날 무렵, 온갖 종류의 날씨를 다 겪은 뒤, 그제야 나는 거친 바다와 경이로운 숙면이 무슨 관계인지를 깨달았다. 거친 바다에서는 누가 당신을 흔들어 재워주는 느낌이 든다. 선창에서는 포말이 부드럽게 쉿쉿거리고, 엔진은 어머니의 맥박처럼두근두근 뛴다. - P65

그런데 프랭크 콘로이의 ‘에세이‘의 경우, 셀레브리티 크루즈는" 독자가 에세이에 취하는 태도, 예술에 (최소한 예술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에) 취하는 태도, 즉 경계를 늦추고 무방비하게 대하는 태도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그 글을 배치했다. 예술인 척하는 광고는-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말하자면 당신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따스하게 미소 짓는 사람과 같다. 이것은 부정직한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해로운 것은 그런 부정직이 우리에게 미치는 누적적 영향이다. 진정한 선의 없이 선의의 완벽한 복사물이나 모조품만을 제공하는 그런 것을 자주 접하면, 우리는 차츰 혼란스러워져서 나중에는 진실된 미소와 진짜 예술과 진정한 선의마저경계하는 태도로 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 현상은 우리에게 혼란과외로움과 무력함과 분노와 두려움을 안긴다. 절망을 일으킨다. - P71

 여러분도 이 미소를 알 것이다. 입 둘레 근막은 강하게 수축하지만 연관됭 광대 움직임은 부족한 미소, 미소자의 눈까지는 미치지 못한 미소, 미소자가 피미소자를 좋아하는 척함으로써 미소자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계산된 시도에지나지 않는 미소, 고용주들과 감독들은 왜 프로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프로페셔널 미소를 내보이라고 강요할까? 그런 미소를 과량 복용하면 절망감이 느껴지는 사람은 나뿐인가? 오늘날 멀쩡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쇼핑몰이나 보험 회사나 병원이나 맥도날드에서 갑자기 자동화기를 꺼내는 사건이 갈수록 느는 현상은 저런 장소가 누구나 아는 프로페셔널 미소 보급소라는 사실과 어떻게든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사람은 나 혼자뿐인가?
대체 누가 프로페셔널 미소에 속는다고 그러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프로페셔널 미소의 부재 또한 절망을 일으킨다. 맨해튼 담배 가게에서껌을 사봤거나 시카고 우체국에서 소포에 ‘취급주의‘ 도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해봤거나사우스보스턴에서 여종업원에게 물 한잔 얻으려고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서비스 노동자의 찌푸림이 우리 영혼을 짓누르는 효과를 알 것이다. 그것은 프로페셔널미소를 거부당한 데 대한 굴욕감과 적개심이다. 게다가 이제 프로페셔널 미소는 무시무시한 프로페셔널 찌푸림에 대한 내 적개심마저 왜곡시켰다. 나는 이제 맨해튼 담배가게에서 나올 때 점원의 인간성 혹은 선의의 부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프로페셔널 미소를 주기를 거부한 그의 프로페셔널리즘 결핍을 미워한다. 미치고 팔짝 뛸만큼 엉클어진 상황이 아닌가.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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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은연중에 토론이 진실을 중재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그러나 토론은 종종 최고의 주장이 아니라 가장 기만적인 웅변가에게 보상해왔다. 양측 주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는명확성과 이성보다는 수사학적 말재주나 청중을 격앙시키는 능력이 자주 승리를 가져왔다. 다양한 범위의 의견을 대립적인 두개의 주장으로 깎아내면서 과정 자체가 가끔은 거짓 이분법으로바뀌기도 했고, 진실은 더 복잡한 저기 어딘가에 있는데도 우리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토론의 본질은 양극단의 대립이며, 마음을 바꾸거나 숙고 끝에 타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토론은 너무 자주 우리를 분열시키면서 정보는 주지 못한다. - P506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은 기후변화부터 항생제 내성, 지정학적 불안정성까지 진실로 벅찬 문제다. 이 문제들을 마주하고 견뎌내려면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반응하기 전에 숙고하며, 감정보다는 증거를 따라가고, 항상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분투에는 지적 능력만큼이나 용기와 연민도 필요하다. 인간의 시작은 한낱 어리석은 유인원이었을지 몰라도 그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낡은 생각은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포용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오류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오류도 용서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 번영할지 소멸할지는 우리가 실수를 통해 배우느냐 실수에 굴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 P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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