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이여." 다이달로스가 말했다.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죽을때까지 날마다 제물을 바치겠습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덕분에 해협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다른 남자들도 그를 따라 말하고중얼중얼 기도를 하며 큼지막한 손을 접시처럼 위로 들었다. 몇 명은동방식으로 이마를 갑판에 댔다. 나의 일족은 은혜를 베풀면 대가로그런 식의 숭배를 요구했다.
목에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이 바보들아, 내가 말했다. "내가 저 괴물을 만든 자다. 자존심과허영심에 눈이 멀어 그런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내게 감사한다고?너희 동료 열두 명이 죽었고 앞으로 몇천 명이 더 목숨을 잃겠느냐?아까 내가 그녀에게 먹인 약은 가장 강력한 약이었다. 알겠느냐, 인간들아?"
내가 내뱉은 말이 허공에 낙인처럼 찍혔다. 내 눈에서 뿜어져나온빛이 그들 위로 꽂혔다.
"나는 절대 그녀에게서 해방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 상태 그대로남을 것이다. 영원토록 너희를 잡아먹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어나라.
일어나서 노를 잡고 다시는 내 앞에서 어리석은 감사를 늘어놓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랬다가는 후회하게 만들어줄 테니."
그들은 몸을 움츠리고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벌벌 떨며 주춤주춤일어나 슬그머니 사라졌다. 머리 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열기가 갑판 위로 그대로 꽂혔다. 나는 망토를 벗어던졌다. 태양에 내몸을 태우고 싶었다. 뼈만남기고 모두 태워버리고 싶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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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왜 열심히 일하는사람들이
점점 가난해지는가

목숨을 건 여행의 시작-
몇 년 전 기차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시골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커피잔에 새겨진 아프리카 농부의 사진과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줍니다.‘
메시지 옆에는 공정 무역 인증 단체인 공정 무역 재단의 로고와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제3세계 생산자와 공정한 거래를 약속합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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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술수를 파르마케이아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변화를 유발하는 능력이 있는 약초 파르마콘을 쓰기 때문인데, 신들이 피를 흘린 곳에서 피어나기도 하고 지상에서 지천으로 자라기도 하죠. 그 약초의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재능이고 저 혼자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닙니다. 크레테에서는 파시파에가 독약으로 왕국을 다스리고 바빌론에서는 페르세스가 육신에 영혼을 다시 불어넣습니다. 키르케가 마지막으로 능력을 입증한 셈이죠." - P89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나는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생각과점점 부풀어오르는 숨가쁜 희망으로 따끔거리는 살갗을 달래며 그의 뒤를 따랐다. 미르라나무문이 등뒤에서 닫히고 우리는 복도에 섰다. 아이에테스는 기적을 일으켜 아버지의 말문을 막은 것치고는 표정이 침착했다. 내 입에서 천 개의 질문이 쏟아져나오려고 했지만 그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그동안 뭘 하고 있었어? 이렇게 한참이 걸릴 줄이야. 어쩌면 누나는 파르마키스가 아닌가보다는 생각이 들려던 참이었다고."
내가 모르는 단어였다.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모르던 단어였다.
"파르마키스." 내가 말했다.
마녀라는 뜻이었다. - P90

"게다가 모두들 이 능력을 갈구하거나 찾아 나선 적이 없다고도해두었소. 어떤 악의를 품거나 반란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고 다들약초의 마법을 우연히 발견한 것뿐이라고."
나는 놀라서 남동생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키르케만 예외일 뿐. 그 아이가 그 능력을 공공연하게 찾아 헤맸다고 고백했을 때 그대들 모두 이 자리에 있었소. 그 아이는 손을 떼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말을 거역했소."
외할머니가 상아를 깎아 만든 의자에 앉아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는 내 명령을 거부하고 내 권위에 도전했소. 독약으로 동족을 변신시켰고 다른 반역 행위도 저질렀소." 새하얗게 이글거리는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 아이는 우리 이름을 더럽혔소. 우리가 보여준 애정에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였소. 그렇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제우스와 합의를 보았지. 키르케는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는 무인도로 추방될 거요. 바로 내일."
천 개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소리를 지르며 애원하고 싶었지만숨이 막혔다. 그 가느다란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아이에테스가대변해줄 거야,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나머지 전부와 함께 나를 돌아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한 가지 더," 아버지가 말했다. "언급했다시피 이 새로운 능력은나와 페르세의 합궁이 그 원천인 게 분명하오."
의기양양한 어머니의 얼굴이 내 흐릿한 의식을 뚫고 환하게 빛났다.
"따라서 합의를 보았소. 그녀와는 더이상 자식을 낳지 않기로."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자매들의 무릎 위로 쓰러졌다. 흐느껴 우는 소리가 돌벽을 맞고 메아리쳤다.
외할아버지가 천천히 일어섰다. 턱을 문질렀다."자," 그가 말했다. "이제 연회를 벌일 차례구나." - P98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올 일이 없다는 것. 그 자체가두려운 사실이었지만 공포로 얼룩진 긴 밤을 보내고 났더니 모든 게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가장 못난 겁쟁이의 면모가 진땀과 함께 날아갔다. 아찔한 번뜩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새장에서 사육당하는 새는 되지 않을 거야, 흐리멍덩해서 문이 활짝 열렸는데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 P108

"당연하지. 제우스는 너희가 우리 모두에게 대항하는 독약을 만들고 있다고 확신해, 너하고 네 남동생 둘 다. 그가 얼마나 안달복달하는 성격인지 알잖아." 그는 무슨 공범인 양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었다. 제우스의 분노가 가벼운 농담이라도 된다는 식이었다.
"그럼 제우스의 염탐꾼으로 온 건가요?"
"나는 사자使者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지. 하지만 아냐, 이 문제는 아버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 내가 찾아온 건 형이 나한테 화가 났기 때문이야."
"형이라고요." 내가 말했다.
"응." 그가 말했다. "너도 그에 대해 들어봤을 텐데."
그는 망토 안에서 리라를 꺼냈다. 황금과 상아로 무늬를 새겼고새벽처럼 환하게 빛났다.
"아무래도 내가 이걸 훔친 것 같거든." 그가 말했다. "그래서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곳이 필요해. 너라면 나를 가엾게 여겨주지않을까 싶었어. 여기라면 그가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거든."
내 뒷덜미가 곤두섰다. 제정신이 박힌 자라면 누구나 햇빛처럼 고요하고 역병처럼 치명적인 아폴론 신의 분노를 두려워했다. 그가 이미 하늘을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지는 않은지, 황금 화살로 내 심장을겨누고 있지는 않은지 어깨 너머로 확인하고픈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공포와 경외라면, 하늘을 쳐다보며 무슨 허락이 내려질지 궁금해하는 거라면 지긋지긋한 마음도 있었다.
"들어와요." 내가 말하고 앞장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 P119

"이 섬의 이름을 알아요?" 내가 물었다.
"내가 명색이 여행자의 신인데 세상에 이름 모르는 곳이 있을 리없지.""알려줄 수 있어요?"
"아이아이에라고 해." 그가 말했다.
"아이아이에." 나는 그 발음을 음미해보았다. 어두워진 허공 속의날개처럼 부드럽고 조용하게 접히는 느낌이었다.
"어떤 섬인지 아는구나." 그가 말했다. 그는 나를 예의 주시하고있었다.
"당연하죠. 제 아버지가 제우스 앞에서 모든 능력을 내던지며 충성을 맹세한 곳이잖아요. 여기 하늘 위에서 티탄 신족 거인을 쓰러뜨려 땅을 피로 적셨고요."
"우연의 일치로군." 그가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다른 데도 아닌이 섬으로 너를 보내다니."
그가 내 비밀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해답으로 넘칠 듯이 채워진 잔을 얼른 내밀고 그가 원하는 걸 뭐든 내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신세를 진 일이 없었다. 그는 내가 내주는 만큼만 나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 강가의 돌처럼 노란 내 눈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 아버지가 내 독약을 두고 한 판단이 틀렸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물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약을 먹이지 않으리라는 걸 어떻게 알아요?"
"몰라."
"그런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 있겠다는 거예요?"
"나는 위험한 일이면 뭐든 좋아하거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 P123

"내 아이를 낳아줄래?" 그가 물었다.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아뇨. 절대, 절대."
그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식의 날카로운 대응을 좋아했다.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피 한 방울 흘릴 일이 없었으니까. 해답을 강구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찾는 것이 그의 천성이기에 오로지 호기심 해소 차원에서 물은 거였다. 내가 그에게 얼마나 빠졌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뱅충이는 모두 사라졌다. 낮동안 드러누워서 그의 꿈을 꾸거나 베개에 대고 그의 이름을 속삭이는 일은 없었다. 그는 남편이 아니었고 심지어 친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독사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런 조건으로 만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 P124

"여기서 멀지 않아. 인간의 배를 타고 하루도 안 돼서 닿을 수 있어. 마음에 드는 해협을 찾았거든. 한쪽에는 소용돌이가 있어서 배가됐든 물고기가 됐든 지나가는 걸 뭐든 빨아들이지. 그 반대편 낭떠러지에는 그녀가 머리를 숨길 동굴이 있고, 소용돌이를 피한 선박은 그녀의 입속으로 직행해 먹잇감으로 전락하지."
"먹잇감이라고요." 내가 말했다.
"응. 그녀는 선원들을 잡아먹거든. 입 하나당 한 명씩 여섯 명을 한꺼번에 노 젓는 속도가 느리면 열두 명을 잡아먹지. 싸우려고 드는인간도 가끔 있지만 어떤 식으로 끝날지 너도 알잖아. 비명소리가 제법 멀리에서도 들리지."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얼어붙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헤엄치며오징어의 차가운 살을 빨아먹는 그녀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스킬라는 예전부터 밝은 빛을 좋아했다. 남을 울리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빨이 가득하고 불사로 무장한 게걸스러운 괴물이 되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제우스나 너희 아버지는 가능하지, 마음만 먹으면. 하지만 뭐 하러 그러겠어? 괴물은 신들에게 요긴하거든. 다들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드릴지 생각해봐."
목구멍이 조여왔다. 그녀가 잡아먹은 인간들은 예전의 글라우코스처럼 행색이 남루하고 절망적이며 공포로 너덜너덜해진 뱃사람이었다. 그들 모두가 죽었다. 내 이름이 찍힌 싸늘한 연기가 되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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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신의 위엄을 풍기며 얼마나 뻣뻣하게 굴었던가. 하지만 그는 나보다 더 뻣뻣했다. 내 옷소매가 그의 옷소매를 스치고 지나가자 벌벌 떨었다. 내가 말을 걸 때마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내가 아는 몸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앞에서, 그때까지 만난 그 모든 위대한 신들 앞에서 내가 수천 번 반복해온 몸짓이었다. 공포의 연쇄 관계. - P51

"일어나거라." 내가 말했다. "얼른 나는 너의 그물을 축복한 적 없고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 나는 민물만을 관장하는 나이아스에게서태어났고 얼마 안 되는 그들의 재능마저 내게는 없다."
"그래도, 제가 또 찾아와도 되겠습니까?" 그가 물었다. "다시 여기서 뵐 수 있을까요? 제 평생 이렇게 놀라운 일은 처음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줄곧 아버지의 광휘 옆에 서 있었다. 예전에 아이에테스를 품에 안은 적도 있었고 내 침대에는 불사의 손들이 엮은 두툼한 모직 담요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순간까지 온기를 느낀 적이라고는 없었다.
"그래." 나는 그에게 말했다. "여기서 다시 만나자."
그의 이름은 글라우코스였고 날마다 찾아왔다.  - P52

다시 한 움큼을 준비하고 허리를 숙였다. 그래야 한다면 꽃밭 전체를 짜서 먹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의 살갖 위로 그림자가 움직였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살갗이 점점 까매졌다. 갈색을 지나고 자주색을 지나 그의 온몸이 가장 짙은 바다색이될 때까지 멍처럼 번졌다. 그의 손과 다리와 어깨가 부풀었다. 동록색의 긴 수염이 턱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튜닉이 벌어진 틈새로 그의 가슴에서 돋아나는 수포가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따개비였다.
다글라우코스, 나는 속삭였다. 내 손가락에 닿은 그의 팔의 느낌이이상했다. 단단하고 두툼하고 살짝 서늘했다. 나는 그 팔을 흔들었다.
일어나.
그가 눈을 떴다. 숨을 한 번 쉬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폭풍 해일처럼, 본연의 바다의 신답게 우뚝 섰다. 키르케, 그가 외쳤다. 내가 달라졌어요! - P66

물속에 그의 신전을 건설할 수 있게 거들었다.
나는 그곳을 매일 찾아갔다. 소금물 때문에 살갗이 따끔거렸고,
그는 손님들을 보며 감탄하느라 바빠서 나에게는 아주 잠깐 미소를지어 보이는 게 고작일 때가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우리에게는시간이 많았다. 시간이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은 식탁에 앉아서 그의관심을 끌려고 난리법석을 떠는 님프와 신들을 구경하면 재미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생선장수라고 비웃었을 그들이 이제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경험담을 들려달라고 애원했다. 이야기는 할 때마다 점점부풀려졌다. 그의 어머니는 꼬부랑할망구처럼 허리가 굽었고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손찌검을 했다. 그들은 헉 소리를 내며 가슴에손을 얹었다.
"이제는 괜찮다." 그가 말했다. "파도를 보내서 배를 박살냈더니아버지가 충격으로 죽었거든. 어머니에게는 내가 축복을 내렸지. 덕분에 새 남편과 설거지를 돕는 노예가 생겼다. 어머니가 나를 모시는제단을 만들었고 거기서 이미 연기가 나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내가좋은 물때를 선물해주길 바라지."
"선물해줄 거예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님프가 물었다. 내 여동생과 페르세스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하나로 원래는 동그란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는데, 이제는 잘 익은배처럼 변하여 글라우코스에게 말을 걸었다.
"글쎄다." 그가 말했다. "그들이 뭘 바치는지 보고." 기분이 아주좋으면 발이 팔딱이는 꼬리로 변했는데 지금이 그랬다. 나는 첩첩이겹쳐진 비늘이 무지갯빛으로 어렴풋하게 일렁이는 그 꼬리가 아주연한 회색으로 반짝이며 대리석 바닥을 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 P69

"싫어!" 그는 손으로 허공을 갈랐다. "그 시절은 생각하지 않을 거야! 매시간 새로 멍이 생기고 새로 아픈 데가 생기고, 항상 피곤하고,
항상 어깨가 무겁고 기운이 없었어. 나는 이제 너의 아버지와 회의에참석하는 사이야. 뭐든 일일이 구걸할 필요가 없어. 님프들이 아우성을 쳐대니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님프를 고를 수도 있는데 그게 바로 스킬라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돌덩이처럼 나를 때렸지만 그렇게 쉽게 그를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어." 내가 말했다. "나는 네 기분을 맞춰줄 수 있어, 진짜야. 나보다 더 충성스러운 배필은 없을 거야.
내가 뭐든 할게.‘
그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슴속에담긴 천 가지의 굴욕적인 발언과, 지금까지 비축한 열정의 모든 증거와, 앞으로의 비굴한 다짐을 쏟아내기 전에 그의 능력이 나를 감싸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쿠션을 정리했을 때처럼 손을 퉁겨 나를 내방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땅바닥에 쓰러져 흐느꼈다. 그 꽃의 즙을 먹고 드러난 그의진면모는 파랗고 지느러미가 달렸고, 내 것이 아니었다. 너무 아파서죽을 것만 같았다. 아이에테스가 떠났을 때처럼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느낌이 아니라 칼날이 내 가슴을 관통하는 듯 날카롭고 격렬했다.
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는 몸이었다. 데일 듯한 순간을 견뎌가며 계속 살아가야 했다. 우리 신족이 육신을 버리고 돌이나 나무로 지내는쪽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상심이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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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항만 및 산업 클러스터와 관련해서도 주목해 볼 만하다. 부산항은 이미 환적 화물 처리 세계 2위, 컨테이너 처리 세계 7위이다. 세계 280개항만과 연결되어 국내 컨테이너 물량 70% 이상을 처리하는 아시아 물류 허브다. 북극항로가 개통되면 부산항은 자연스레 동쪽 관문이 될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이에 더해 해수부는 2만 4,000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20피트(약 6.1m) 길이 컨테이너 1개 크기 단위)를 넘어 3만 TEU 컨테이너선까지 접안할 수 있는 부산항 진해신항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26년 예산에4,622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또한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은 조선, 철강, 기계, 자동차, 석유 화학 등 주요 제조업이 집적된 해양산업 벨트를 형성하고있어, 국내 산업 연관성과 기여도가 매우 높다는 것은 자명하다. - P117

기후변화는 항로를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낳고 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온난화가 북극항로의 안정성을 해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극 중앙부에 갇혀 있던, 수십 년된 두껍고 단단한 다년생 얼음(multi-year ice)이 녹으면서 거대한 빙산처럼 남하해 오히려 캐나다 북서항로(NWP)의 일부 주요 해협을 막아 버리는 일이발생하고 있다. 1년생 얼음과 달리 선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다년생 얼음 때문에 특정 구간의 운항 가능 기간이 오히려 단축된다는 뜻이다.
또한 《네이처》의 자매 저널인 <npj 오션 서스테이너빌리티(OceanSustainabilit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극지 코드가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또다른 위험을 지적한다. 바로 ‘해수 비말 결빙 (sea-spray icing)‘ 현상이다. 차가운바닷물이 강풍에 의해 배 위로 튀어 오르면서 순식간에 얼어붙어 선박의 무게중심을 높이고 전복 위험을 키우는 현상이다. 북극해의 혹독한 자연환경이 제기하는 또 다른 심각한 위협이 될 만하다.
지정학적 위험도 쉽게 넘길 수 없는 과제다. 북극항로의 안정성은 국제 정세에 크게 좌우한다. KIMS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발발 이후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가 통제하는 북동항로 국제 통항량은 급감했다. 이는 북극항로가 언제든 지정학적 갈등의 지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명백한 사례다. 북극과맞닿아 있지 않은 한국, 중국, 일본 등도 북극항로에 관심을 가지면서 향후북극해를 둘러싼 시장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고, 이 과정에서 이미 선점한 국가들이 다양한 장벽을 쳐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강화하는 환경 규제 역시 운항의 복잡성과 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해양과학 분야의 국제 저널 <프론티어 인 마린 사이언스(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IMO는 극지 코드 외에도 선박 연료로 중유(HFO) 사용을 금지하고 블랙카본(black carbon) 배출을 규제하는 등 환경 보호 기준을 계속 높여 가고 있다. 이러한 규제들은 북극의민감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더 비싼 연료를 사용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것은 선박 회사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 P121

컴퓨터의 눈으로 본 대기는 가상공간 안에 흩어져 있는 계산점의 값,
즉 수치의 집합이다. 기상 커뮤니티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해 가상공간에서대기의 모습을 재현하거나 예측하는 방법을 ‘수치예보‘라고 하고, 이 과정에 쓰이는 계산 소프트웨어를 ‘수치예보모델‘이라고 부른다.
대기라는 유체가 흐르고 변해 가는 원리는 미분방정식으로 쓰여 있다.
방정식이 복잡해서 이상적인 조건에서만 해를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컴퓨터를 쓰면 어떤 조건에서도 정답에 근접한 해를 구할 수 있다. 대신 비용을 치러야 한다. 정확한 해를 구하려면 3차원 대기 공간 안에 계산점을 촘촘하게배치해야 하는데, 계산량이 많아지는 만큼 문제 푸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부담이다. 정확성과 시의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게 수치예보의 딜레마다. 그래서 나라마다 계산점을 늘리면서 동시에 계산 속도가빠른 슈퍼컴퓨터를 증설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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