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1월 로지 법안에 대한 논의가 마침내 상원 회의에서 시작되었을 때, 소수당인 민주당은 의사 진행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상원 필리버스터에 주목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연설을 하고, 불가능한 수정안을 제시하고, 논의를 미루고, 정족수를 막기 위해서 주 회의장 외부를 돌아다니면서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갔다. 이에 공화당 지도부는 로지 법안을 통과시키기위한 마지막 필사적인 시도로서 다수의 찬성만으로 필리버스터를 끝내고 상원 다수가 로지 법안에 찬성하는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상원 규칙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제안은 민주당과 함께 화폐 개혁에 찬성했던 서부 지역 "은" 공화당 의원들 연합에 가로막혔다. 153 결국 미국 전역에 공정한 선거를 보장해줄수 있었던 로지 법안은 필리버스터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 P133

(민주당 하원 의원 61퍼센트의 찬성과 함께)‘ 필리버스터 때문에 시민권법 입법의 무덤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상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수당 대표인 일리노이주 공화당 의원 에버릿 덕슨Everett Dirksen이 나서서 시민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화당 의원들의 뜻을 모았다. 결국 공화당 상원 의원 80퍼센트 이상이 이들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민주당도 69퍼센트가 찬성했다. 전기 작가에 따르면, 덕슨은 스스로 이를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생각했다. 또한1965년 투표권법 역시 양당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공화당 상원 의원들은 30대 1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처럼 공화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20세기 중반에 시민권법과 투표권법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미국이 더욱 민주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0년 후, 공화당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1965년 투표권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바로 그 정당이 2021년에는 그 법을 복구하기 위한 연방 차원의 입법 시도를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냉철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그들은 "민주주의를 저버렸다"
도널드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엎으려는 시도를 감행하기 한 달 전, 공화당 핵심 상원 의원인 마이크 리 Mike Lee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이렇게 의문을 던졌다. "자유와 평화, 번영과는 달리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트위터에다가는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인류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번영하길 기원한다. 그러나 계급 민주주의가 이를 가로막을것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수십 년간 영국의 보수당이나 캐나다의 보수당, 혹은 독일의 기독민주당처럼 주류 중도 우파 정당이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지 않았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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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느끼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충동은 마음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또는 동굴 입구에서 부는 바람과 같다. 프로이트나 융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동굴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잠수함을 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보자. 횃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자. 심리 상담이나 분석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자문자답이 우리의 잠수함이고 횃불이다. - P116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뭘까. 나는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그 대상을 유심히 헤아리게 된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좋은 에세이에는 그렇게 삶에 대한 남다른 관찰과 애정이 담긴다.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에세이를 읽는 이유이고, 좋은 에세이를 읽고 나면 저자에게 호감을 품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소설과 다르다. 틀림없이 좋은 소설인데 읽고 나서 저자에 대해 무섭다거나 불쾌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으니까. 훌륭하지만 섬뜩한 소설도 많다. 하지만 그런 에세이는 읽은 기억이 없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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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가의 꿈을 버렸다. 그러나 그 꿈은 버려지지않았다. 그도, 나도 안다. 앞으로도 그에게 작가의 꿈은 버린 것과 버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상태로 살 것이다.
이런 림보에 사는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다. 그런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화가 난다. 어쩌자고 이따위 종이 쓰레기 같은 책을 낸단 말이야? 겨우 이런 글을 인쇄하자고 나무를 베어냈어? 모든 재화가 과잉생산되고 시시한 물건들이 넘쳐나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그는 유독책, 그것도 신간에 대해 분노한다. 이런 형편없는 책은 펴내면 안 된다고! 이따위 일기장 같은 책은•••••• 이런책은•••••• 나도 쓰겠다!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그랬다. 서점 신간 코너에 가면분노에 휩싸였다. 지인이 책을 냈다고 하면 관심 없는척하면서 내용을 몰래 살폈다. 그 책에 신통한 데가 없으면 그때서야 겨우 안심했다. 결국 나무의 소중함 운운은 그냥 핑곗거리였다.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같아 포기한 작가라는 거룩한 영예를, 다른 녀석이 제값을 치르지 않고 길에서 주웠다고 여겨서 부린 트집잡기였다. 정의감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질투심이다. 그흉한 감정은 내 책이 나온 뒤에야 겨우 사라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비슷한 시기심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책을 쓰는 편이 낫다. 최악의 경우에도 전과 다른 차원의 독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 한권의 책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힘든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의 방법론과 기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피아노를 칠 줄 알면 라흐마니노프가 다르게 들린다. - P54

20대 초중반에 신춘문예 여러 곳에서 낙방했다. 출판사로 응답 없는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한동안은 책쓰기를 포기하고 지냈다. 초짜 신문기자로 일할 때에는
"많이 보고 들어서, 퇴직하고 나면 그때까지 모은 소재로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6년 8월21일에 (날짜도 기억하고 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는데 그냥은 못 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틀에 박힌 기사만 쓰다 보니 너무 공허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펴고 젊은 신문기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환상적인 기분으로 눈을 떴다. 몇 년묵은 변비가 사라진 개운함. 나는 그런 글을, 소설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재능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그날부터 밤에 한두 시간씩 신문사나 세상을 위한 글이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썼다. 수면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졌다. 장편소설 원고를 마치는 데 꼭 3년이 걸렸다. - P56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의미의 우주‘에 한 발을들였고, 그 우주에 자신의 의미를 보태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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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거울
크리스마스 주일(週日)의 이야기

나와 아내는 응접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이끼와 습기 냄새가 났다. 백 년은 켜지 않은 벽 쪽의 등에 불을 붙이자, 크고 작은 수많은 쥐들이 구석으로 잽싸게 도망쳤다. 문을 닫자 바람이 일어 몇 발짝 떨어진 구석에 놓여 있던 종이가 살짝 움직였다. 불빛에 비친 종이에서 우리는 옛 문자와 중세의 그림을 보았다. 세월에 바랜 벽에는 선조들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선조들이 준엄하게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 이놈. 맞아 볼 테냐!>
우리의 발소리가 온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나의 기침 소리는 예전에 나의 선조들 때도 그랬을 그대로의 울림으로 울렸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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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정치인들이 폭력적이거나 반민주적인 행동을 거부할 때, 극단주의자들은 고립되고, 힘을 잃고, 포기한다. 1950년대 미국의 경우, 반공주의 극단주의자인 조지프 매카시 Joseph McCarthy는 1954년 초당적인 투표에서 상원으로부터 지탄을 받은 이후로 불가촉천민 신세로 전락했다. 그가 일어나서 발언하면, 상원 의원들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매카시가 기자회견을 요청했을 때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류 정당이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를 용인하고 암묵적으로 지지할 때, 이는 반민주적인 행동에 따른 처벌 수위가 낮아졌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에 대한 억제는 사라진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반민주 세력을 정당화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그들을 격려하고 심지어 더 급진적으로 만들기도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평범성 banality of authoritarianism이 의미하는 바다. 민주주의 붕괴를 주도하는 많은 정치인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려는 야심 찬 경력지상주의자다. 그들은 심오한 원칙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단지 민주주의에 무관심할 뿐이다. 그들이 반민주적 극단주의를 묵인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 정치인은 단지 앞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붕괴에 반드시 필요한 조력자 역할을 맡게 된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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