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이 모든 조각을 모아서 완벽하게 맞추는 손길도 있어야 합니다. 목표로 인도하고 전쟁의 불가피한 요소 앞에서 움츠리지 않는 지성 말이지요." "그리고 그게 너의 역할이었고." 내가 말했다. "그래서 결국 네가다이달로스와 비슷한 거다. 너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것만다를 뿐." 그때 나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란.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수한포도주 같았다. "아킬레우스가 죽자 아가멤논이 저를 아카이오이 최고의 전사로 임명했습니다. 다른 전사들도 용감하게 싸웠지만 전쟁의 본질 앞에서는 움찔했거든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있을 만큼 배짱 좋은 사람이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맨 가슴에서는 흉터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뭐가 들었는지 들어보려는 듯 흉터를 살짝 두드렸다. "예를 들면 어떤 것 말이냐?" "첩자가 잡히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비밀을 캐낸 뒤에 처형해야 합니다. 폭도는 두들겨패야 하고요. 삐친 영웅이 있으면 달래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기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고요. 필록테테스라는 위대한 영웅이 상처가 곪아서 불구가 됐을 때 병사들은 그 일로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어느 섬에 버려두고 그가 자청해서 남은 거라고 말했죠. 아이아스와 아가멤논은 죽을때까지 트로이아의 잠긴 성문을 두드릴 기세였지만 목마라는 묘책 - P275
을 생각하고 트로이아 병사들이 그걸 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낸 건 저였습니다. 정예부대와 함께 목마의 뱃속에 웅크리고 숨어서 공포와 중압감으로 떠는 병사가 있으면 그의 목에 칼을 갖다댔고요. 트로이아 병사들이 마침내 잠이 들자 우리는 보드라운 깃털의 병아리떼 속에 섞인 여우처럼 목마를 가르고 나왔습니다." 재판정에서 부를 노래도, 위대한 황금시대를 기리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입을 거치면 졸렬하지 않고, 타당하고 감동적이며 현명하도록 실용적으로 들렸다. "애초에 참전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 다른 왕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알았으면서." 그는 뺨을 문질렀다. "아, 제가 한 어리석은 맹세 때문이었죠. 발을빼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아들이 한 살이었고 아직 신혼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이름을 떨칠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아가멤논이 보낸 남자들이 저를 데리러 왔을 때 미친 척을 했습니다. 알몸으로 나가서 겨울 들판을 쟁기질하면서요. 그런데 그중 하나가 쟁기날이 지나가는 길에 제 갓난 아들을 두었지 뭡니까. 당연히 쟁기질을멈추었고 나머지와 함께 불려갔죠." - P276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걸알았다. 그가 전장에서 보낸 모든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성정이 얇은 유리와도 같은 왕들과 골이 난 왕자들을 다독이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전사들 간의 균형을 도모해갔던 세월들. 불을 뿜는 아이에테스의 황소를 오로지 술책의 도움으로 길들인 것에 비견할 만한 위업이었다. 하지만 이타케로 돌아가면 그렇게 성미가 까다로운 영웅도, 각료회의도, 한밤중의 습격도 없었고, 그가 필사적으로 전략을 강구하지 않으면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일도 없었다. 그런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면, 벽난로와 올리브 숲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가 나와 부부처럼 오순도순 지낸 것은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벽난로 옆에 앉았을 때, 내 꽃밭에서 일을 했을 때 그는 그 요령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도끼로 살이 아니라 나무를 쪼개면 어떤 느낌인지. 어떻게 하면 다이달로스가 만든 이음새처럼 부드럽게 다시 페넬로페에게 맞출 수 있을지. 그는 내 옆에서 잠을 잤다. 가끔 숨이 그의 목젖에 걸릴 때가 있었다. 컥. 파시파에라면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 붙잡으라고 했을 것이다. 아이에테스라면 그에게서 기지를 없애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주입한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줄 모르는 그의 멍한 얼굴을 그려보았다. 그가 내 무릎 가에 앉아서 흠모하는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볼 것이다.
그는 내게 자기 흉터를 보여주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아무 흉터도 없는 척하는 나를 모르는 척 해주었다. 그가 배에 올라탔고 나를 찾으러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가고 없었다.
노래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 장면을 묘사할까? 외로운 곳 위에 서있는 여신,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연인. 촉촉하지만 뜻을 헤아릴 수없고, 자기 안을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두 눈, 동물들이그녀의 치맛자락으로 모인다. 참피나무가 꽃을 피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에 그녀가 한손을 들어 자기배를 만진다. - P306
MENU"그림자는 필요 없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그리고너 같은 것은 내 의도를 물을 자격이 없고." 우뚝하고 꼿꼿한 그녀가 번쩍하고 하얗게 등장하자 번개의 발톱이 밤하늘을 갈랐다. 말갈기가 달린 투구가 천장에 닿았다. 거울 갑옷이 번뜩거렸다. 손에 쥔 창은 길고 가늘었고, 예리한 날이 장작불빛을 받고 어른거렸다. 그녀는 확신으로 이글거렸고 혼잡스럽고 얼룩진 이 세상의 모든 부스러기들이 그 앞에서 오그라들었다. 제우스의 총애를 받는 눈부신 딸, 아테나였다. "내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다시 그 금속을 베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전에도 높은 신 앞에 선 적이 있었다. 내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헤르메스, 아폴론.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들과 다르게 나를 관통했다. 오디세우스가 예전에 얘기하길그녀는 머리카락 두께로 벼려진 칼날과 같다고, 워낙 정교하기 때문에 맥박이 뛸 때마다 내 몸속의 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그 칼에 베인 줄도 모를거라고 했다. 그녀가 티끌 하나 없는 손을 내밀었다. "아이를 내놓아라." 방안에서 모든 온기가 사라졌다. 심지어 내 옆에서 탁탁거리는 장작불마저 벽에 걸린 그림처럼 느껴졌다. "싫습니다." 그녀의 눈은 은색과 바위 같은 회색이 서로 엮여 있었다. "나한테맞서겠다는 거냐?" 공기가 답답해졌다.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그 유명한 아이기스가 반짝였다. 금실로 테두리를 꿰맨 가죽 - P318
갑옷이었다. 그녀가 직접 벗겨서 무두질한 티탄 신족의 거죽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녀의 번뜩이는 눈빛은 이렇게 단언하고 있었다. 항복하고 자비를 빌지 않으면 네 거죽을 입고 다녀주마. 혀가 말랐고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온 세상을 통틀어 아는 게 한가지 있다면 신들에게 자비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살갗을 잡고 비틀었다. 날카로운 통증에 마음이 진정됐다. - P319
트리곤의 꼬리. 내가 아이의 손에 쥐어준 죽음의 도구"그분의 얼굴이 그냥...... 멈추었어요. 그대로 쓰러졌어요. 독을닦아내려고 했지만 상처조차 남아 있지 않았어요. 제 어머니에게로모시고 갈게요, 제가 말했어요. 어머니가 도와주실 거라고요. 그분의입술이 하얘졌어요. 저는 그분을 안았어요. 저는 키르케 여신에게서태어난 당신의 아들 텔레고노스입니다. 그분은 제 얘기를 들었어요.제가 생각하기에는 들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 다음 저를 쳐다보고....... 숨을 거두셨어요." 내 입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게 분명해졌다. 꽁꽁 감추고 있었던 아테나의 절박함, 텔레고노스를 살려두면 우리 둘다 후회하게 될 거라며 지었던 굳은 표정. 그녀는 이 아이가 자신이사랑하는 사람을 해칠까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아테나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나는 손으로 입을 눌렀다. "오디세우스" 아이는 그 단어가 무슨 저주라도 되는 양 몸을 움츠렸다. "저는 경고하려고 했어요. 저는......" 아이는 목이 메어서 더이상 말을 잇지못했다. 나와 그렇게 많은 밤을 함께한 남자가 내가 들려 보낸 무기에 찔려 내 아들의 품에서 죽다니. 운명의 여신들이 나와 아테나와 우리모두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예언에 반항하면 할수록 그 예언은 더욱 단단히 숨통을조인다는 것.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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