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상하다.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혼자였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럽북쪽의 숲들을 갈아엎고, 그곳에 금속이 박힌 살덩어리들과몇 년 뒤에 무고한 산책객들 코앞에서 폭발하게 될 포탄들을살포했고, 자신이 만들어 낸 그 볼품없는 지진계에 고작 12등급만을 주었던 메르칼리조차 창백하게 질릴 만한 황폐함을만들어 냈다하지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살아오는 내내 바뀌었으며나중에는 오페라 가수들과 축구 선수들까지도 포함하게 될나만의 우상들을 모신 만신전에 기도를 올리면서 저녁마다그 사실을 확인했다. 어쩌면 내가 젊었고, 나의 하루하루가아름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낮의 아름다움이 밤의 예지에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헤아린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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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케팅 수단이 필요했고, 그쪽은 공정무역을 대표할 만한 상품이 필요했죠. ‘여기 확실한 공정 무역 제품이 있습니다. 사세요! 라고말이죠.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설교 시간에 우리 회사 초콜릿을 이야기해 주는 목사님도 많았습니다. 오전 예배가 끝나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우리 회사 초콜릿을 돌렸습니다. 재단 덕분에 돈을 많이번 건 사실입니다. 그들도 우리 덕을 본 건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크레이그는 이별의 원인이 몇 가지 있었다고 했다.
"재단에서 터무니없는 규정을 내세우며 로고 사용료를 너무 많이 요구했습니다. 처음엔 2퍼센트라고 했다가, 좀 있다가 3퍼센트, 또 금방 4퍼센트를 달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어떻게 그리 확 변하는지."
사실 도매상이 지급하는 비용은 공정 무역 재단의 수익에서 가장 큰비중을 차지한다. 도매상이 공정 무역 재단의 브랜드 사용료로 지급하는 돈은 영국 공정 무역 재단 총수입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중 절반이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감독하는 행정비로 지출된다.
그렇다면 수입의 나머지 반은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천만의말씀. 남은 돈은 공정 무역 브랜드의 캠페인과 홍보비로 나간다. 공정무역 재단은 브랜드 홍보 및 광고비로 수입의 절반가량을 쓴다. 이런 지출이 목표 달성에 상당히 성공적이었음을 수치가 말해 준다. - P72

P4공정무역 재단은 개발도상국의 농장을 인증하고 감사하는 세계 공정무역 상표 협회(FLO)와 별개로 운영된다. 영국 공정 무역 재단은 자신의로고를 사용하는 영국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로고를 사용하는 영국 기업을 최대한 늘리는 활동을 벌인다. 당연히 많은 기업과계약할수록 사업은 성공적이다. 따라서 공정 무역 로고에 새로운 고객을끌어들이는 것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제휴를 맺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공정 무역 로고를 알리는 것도 그들의 전략이다.
크레이그는 공정무역 재단의 접근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 즈음에 마야 골드바에서 공정 무역 마크를 떼어 냈는데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선구자적인 제품인데 마크를 떼라고 하니 억울하기도 했지요.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었는데 우리 손으로 딴죽을 건 셈이니까요. 그건 교황이 가톨릭교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크레이그의 가장 큰 고민은 공정 무역 재단이 브랜드 인지도가 확대되면서 제휴 업체로 영세 기업보다는 대기업을 선호하게 되고, 그리하여 영리를 우선으로 하는 농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점점 더 많이 보증하는 지금의 상황이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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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른둘이다. 1986년의 이 가을날, 여전히 수도원에기거하는 서른두 명. 수도원은 낯빛이 허옇게 질릴 정도로 아찔한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했다. 천 년이 흐르도록 아무것도변하지 않았다. 길의 깎아지름도, 그 아찔함도. 서른두 개의굳건한 마음과 허공을 굽어보는 곳에서 살려면 그래야만-한다 젊어서는 마찬가지로 굳건했던 서른두 개의 육신 몇시간 뒤면 그 수가 하나 줄 터이다. - P7

 그녀를 지키려고 여기에 있다는 설, 협소한 그 독실로부터 몇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리석의 어둠에 갇혀 기다리고 있는 그녀, 40년 전부터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그녀를. 사크라 수도원의 수도사들 모두는 그녀를 본 적이 한 번씩은 있었다.
모두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수도원장인 빈첸초 신부에게 허락을 구하기만 하면 될 테지만, 감히그러는 수도사는 거의 없다. 사람들 말로는 그녀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간 자들에게 찾아든다는, 그런 불경한 생각들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어둠에 휩싸인 채 천사의 얼굴을 한 꿈에쫓기다 보면, 수도사들은 진력이, 그런 불경한 생각에 진력이난다.
죽어 가는 이가 버둥거리다가 눈을 떴고, 그러고는 다시 감는다. 수도사 중 한 명은 그 눈에서 기쁨을 읽었노라고 맹세한다 - 그가 틀렸다. 누군가가 그의 이마와 입술에 차가운물수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환자가 다시 버둥거리고, 이번에야말로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네요.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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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별자리가 어둑어둑해지고 자리를 바꾼다. 바닷속으로추락하기 직전의 마지막 햇살처럼 신의 광휘가 내 안에서 빛을 발한다.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뀌지도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 P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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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떠나고 한참 뒤, 미국 대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가 이곳에 진출했다. 그리고 바나나와 목재를 수출해 수억 달러의 이윤을 남겼다. 하지만 풍토병이 퍼지면서 바나나로 돈을 버는 시대도 끝났다. 그 후 이 지역 사람들은 열대 우림 벌목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지난 50년 동안155만헥타르(서울 면적의 약 26배)에 달하는 산림이 벌목과 농업으로 손실되었다. 미스키토 지역의 산림 파괴에 대한 니카라과 환경 단체의 반발이 심해지자 니카라과 정부는 2006년 5월, 마호가니와 삼나무, 포초테,소나무, 맹그로브, 케이폭 나무에 대해 10년간 벌채 및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바닷가재잡이는 마지막 남은 돈벌이 수단이었다. - P29

다이버들에게 수심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나 깊이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일부 미국의 바닷가재잡이와 관련된 기업들은 그물로잡은 바닷가재만 구매할 수는 없다고 시인하면서도 ‘오직 얕은 바다에뛰어내려 손으로 잡은 바닷가재만 사들인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기서 1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데 다이버들이 얼마나 깊이 잠수하는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다이버 스스로도 자신이 어디까지 잠수하고 있는지 모른다.
모든 다이버가 해협의 바닥 근처까지 가 보았다고 말했다. 배의 GPS를 보면 적어도 수심 30~40미터까지 내려간 것이 틀림없었다. 오전 작업이 끝나면 작업할 때마다 그 정도 깊이를 네댓 번씩 오르내렸다. 오전작업이 끝나면 생선과 밥으로 점심을 먹고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오후 작업을 시작했다. 다이버 한 사람이 하루에 30미터 깊이를 총 열 번씩 왕복한다. 배에 탄 다이버 중에 가장 어린 사람은 열다섯 살이었다.
젊은이들은 회사가 식사에다 공기통 비용까지 대주고 있으므로 자신들이 제도 다이버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에수에라에서 온 열일곱살짜리 소년 에두아르도는 ‘최소한 굶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그러다가 망가지는 몸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 P37

샌디 베이는 코카인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개발 프로젝트를진행했다. 그 덕분에 새집과 학교, 교회가 들어섰다. 이것은 마약 거래가 야기한 여러 가지 모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코카인은 심각한 사회적문제를 일으켰지만, 동시에 부 역시 가져다주었다. 다른 경제적 기회가전혀 없는 상황에서 코카인 무역이 경제 발전의 원천이 되었다.
빌위에서 온 전도사, 카를로스 코핀은 샌디 베이의 미스키토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 코카인이 정부보다 지역 사회 발전에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건 물어보나 마나죠. 당연히 코카인이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도움이 됐습니다. 안타깝지만 마약이 큰 공을 세운 것이 사실이에요. 저아름다운 집들을 보세요. 다 마약으로 지은 겁니다. 이건 세금과 같습니다. 학교나 교회는 정부가 세워 주지 않았어요. 다 어부들이 주운 물건에서 난 돈으로 지은 거죠. 마약에서 번 돈으로 학교도 세우고 교회 지붕도 바꿨습니다. 여기 목사들은 마약을 판 돈에서 자기 몫을 못 받으면성을 냅니다. 신자 한 사람이 15킬로그램짜리를 발견한다고 칩시다. 1킬로그램에 3500달러(388만 원)쯤 하니까 15를 곱하면 5만 2500달러5820만원)잖아요. 목사들은 여기에 십일조(10퍼센트)를 요구합니다. ‘신께서 주신 5250달러(582만원)는 어디에 있는가? 이러면서요." - P45

노먼은 니카라과 정부에 손을 벌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공급망에서 가장 강력한 축은 니카라과 정부가 아니라, 미국 레스토랑과 해산물 기업이다. 그들이야말로 다이버들의 작업 환경에 가장 큰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존재다. 많은 기업이 공정한 거래와 사회적 책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선의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업적인 이유도 깔려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윤리적‘인 것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드랍스터 컴퍼니의 메뉴판에는 자사가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해양 보존에 힘쓰고 있으니 고객님 앞에 놓인 음식은 맛도 훌륭할 뿐 아니라 기분까지 좋게 해 준다는 자랑스러운 문구가 실려 있다. 그러나 메뉴판 어디에도 니카라과 다이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공급망의 이런 어두운면에 대해 묻자 다든(레드 랍스터 컴퍼니의 모회사)의 구매 및 조달 부서 상무, 빌 허지그가 이렇게 응수했다.
"저희 상품 설명서에는 다이빙을 해서 포획한 바닷가재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수확한 바닷가재만 취급합니다. - P48

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윤리적 무역은 분명큰 사업이 되고 있다. 대기업이 이런 새로운 윤리적 이상을 옹호하는 이유가 얼마나 진실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윤리 인증이 경쟁 우위를 점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미국의 레드 랍스터 컴퍼니는레스토랑의 모든 메뉴판에 윤리적인 자격 요건을 갖췄다며 자랑스레 홍보한다. 이를 통해 고객 충성도가 한층 더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 맥도날드는 열대 우림 동맹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커피 판매량이 크게 상승했다. 윤리적인 행위로 인해 실적이 좋아졌다는 것으로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스키토 해안의 상황을 직접 보고 온 나로서는 전체 그림이 언제나 장밋빛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고무적인 일들이 과연 타당한지 의심해 봐야 한다. 더불어 윤리적 무역 자체가거대한 사업이 된 뒤에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따져 봐야 한다. - P57

댄은 소비자가 게으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강한 소비자는 어지간해서는 브랜드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댄이 말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브랜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내 차가 제일 좋아. 내 커피가 제일 좋아. 그리고 사람들은캐드버리나 네슬레 같은 유명한 대형 브랜드의 제품이 공정 무역을 위해)품질을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가난한 농부들을 지원하면서 더 윤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느끼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품질이 낮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대기업의 해법은 명백하다. 팔고 있는 제품을 그대로 생산하되,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윤리적 로고를 붙이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는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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