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에 의해 성립된 근대 정치이론 및 실천은 공적 영역과사적 영역의 구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공적 영역에만헌법의 기본권 보호 원칙이 개입할 수 있었고 사적 영역은 계약자유의 원칙이 지배해 국가가 기본권 보호 문제를 들며 개입할 수 없었다. 노동현장에서의 불공정성이나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들에게휘두르는 가장의 폭력성 등은 모두 자유가 지배하는 사적 영역의일로 취급되어서 오랫동안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사적 영역도시민사회와 가정의 영역으로 나누어졌는데, 같은 자유의 영역이라할지라도 시민사회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자유방임주의였고 가정의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였다. - P109

고용주와 피고용자 사이의 문제는 피고용자의 노동권이 생존권적 기본권으로서 국가가 일정 정도 보장해야 하는 것으로 발전하면서 일반적인 계약자유의 문제와 조금 달라졌다. 그러나 개인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각종 계약에서는 여전히 계약자유의 원칙에따른 자기책임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즉 시장거래에서는 계층적 상하관계가 아닌 형식적 평등이라는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 형식적 평등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을 유리하게 보호하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근대의 정치이론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별한 것은 결과적으로 시민사회 영역이든 가정 영역이든 구분 없이 모든 사적 영역에 대한 공적 개입을 어렵게 했다. 그중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계층적 상하관계가 약화되고 계약자유, 자유방임, 자기책임 등의 원칙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는 결과가 되었고, 법은 계약자유의 원칙 뒤에서 이를 덮어주는 기능을 여전히 해오고 있다. - P111

쉬피오는 현대로 오면서 점차 계약에서 ‘특정 재화 간의 교환‘과 ‘대등한 쌍방간의 결연‘의 영역에 ‘충성allégeance‘의 영역이 더해졌다고 설명한다. "충성의 영역이 더해짐에 따라 한쪽은 다른 한쪽의 권력이 행사되는 반경 안에 자리하게 된다." 이는 구체적으로 의존식 계약이나 통제식 계약‘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중 의존식 계약은 자유와 평등의 원칙이 침해되지 않으면서도 구성원들을 다른법인격의 이해관계에 예속시키는 방식의 계약이다. 자유와 책임을빼앗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즉 충성이 작동하는 새로운 변종 계약인 것이다.‘ 강원랜드 사건이나 KIKO 사건이 이런 충성의 영역에 놓여 있는 사건은 아닐까. 개인들은 자기책임하에 계약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거대구조 속에서 주어진 선택지만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문자 그대로의 자기책임의 원칙을 관철하는 것으로 법률은 과연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일까. 생각해볼 문제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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