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 뒤 그는 전화를 끊을 만큼 아내를 진정시켰다. 그녀는그를 방해한 것에 대해 다시 사과했고 그와 통화하니 기분이 좀풀렸다고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끊어, 메릴린."
그는 침묵과 함께 방안에 홀로 남아, 앞서 중단된 그것, 지금그에게 다시 돌아온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거대한 고요였다. 오래전 그는 그것에 자기만의 이름을 붙였다. 엄지 치기 이론. 어린 시절 어느 여름에, 할아버지 집 지붕 위에서 망치로 타일을 세게 내려치다 알아낸 사실이었다. 실수로 엄지를 내려쳤을 때, 이것 봐, 그렇게 세게 쳤는데도 많이 아프진 않은데……하고 생각되는 찰나의 순간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어 어리둥절한 채 다행이라고 느끼며 안도하는 착각의 순간이 지난 뒤─살을 짓이기는 진짜 아픔이 몰려왔다. 전쟁에서도 이런 일이 수시로, 여러 형태로 일어났기에 그는 이따금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그의 이론은 그만큼 잘 들어맞았다 생각하곤 했다. 전쟁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메릴린이 지금 그가 참석중이라고 알고 있는 모임 시간에 그런 것을 언급하는 심리학자는 이제껏 한 명도 없었다. - P137

싸구려 캔디와 땅콩과 온갖 잡다한 것으로 가득한 서커스 텐트 같은 냄새가 나는 가게에서, 아내가 정확히 어떤 운동복 상의를 사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아내와 함께 상의하면서 아주 품위 있게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은 다큰 남자 어른의 그것이었다. 아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펴졌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이제 갈까요?"
그 단어가 떠올랐다. 깨끗하다. 그의 아들은 깨끗했다.
"난 괜찮아." 찰리가 한 손을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다. "천천히 고르렴."
그는 오래전 자기 자신을 극심히 더럽힌 찰리였기에, 그는 찰리이고 다른 누군가가 아니었기에, 그는 아들에게 이 말을 할 수없었다. 너는 품위 있고 강하지만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단다. 네 어린 시절이 온통 장밋빛은 아니었는데도 너는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고 네가 놀라워. 찰리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건 그 감정을 희석시킨 말조차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어서 오라고 하면서, 혹은 잘 가라고 하면서 아들의 등을 툭툭 칠 수조차 없었다. - P140

그르렁거리는 소리. 메릴린, 백치 같은 그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소곤거렸다. "이 사람이전쟁에 나갔었거든요."
하지만 그 애송이는 메릴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가 복무한 전쟁의 이름을 몰랐다. 그것이전쟁이기보다는 갈등이기 때문이었을까? 국가가 이 전쟁을,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제멋대로 행동해서 자신을 난처하게 만드는아이처럼 여겨, 창피함 때문에 뒤로 감춰버렸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역사란 원래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그는 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다 그렇듯 완벽한 치아를 가진 그 젊은 남자는 "잠깐만요. 뭐라 그러셨죠? 죄송하지만……" 하고 말한 뒤 사과라고 보기에는 전적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얼굴을 자조적으로 찡그리며 찰리의 나이를 가늠하려고 했다. "죄송하지만 그게, 음, 첫번째 이라크전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순간 찰리는 울고 싶어졌고 소리지르고 싶어졌고 호통치고 싶어졌다. "우리가 그걸 했어. 하지만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무엇때문에?"
그는 아시아인 모두에게 변함없이 혐오감을 느꼈고, 그 감정을 한 번도 거둔 적이 없었다. - P150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그에게 이런 생각이떠올랐는데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이 이번이 정말 처음일까?-그것은 고통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더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는 다른 남자들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눈 뒤의 텅 빈 공백, 그리고 그런 이들을 정의하는 결핍.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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