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희곡 : 돌 씹어 먹는 아이 - 2019 화이트 레이븐즈 선정도서 어린이 희곡 1
송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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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출판 시장도 학교 교육과정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한다는 느낌이 든다.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그렇고 올해부터 적용되는 연극수업이 그렇다. 문학동네에서 일단 어린이 희곡 3권이 나왔다. 좋아하는 작품들을 각색한 것이라 반가웠다. 가장 좋아하는 <돌 씹어먹는 아이>를 먼저 읽어보았다.

원작자 따로 각색자 따로가 아니라 원작자가 각색도 했다. 동화와 희곡은 장르가 다르지만 그래도 원작자가 각색하면 본인의 의도와 주제를 더 잘 살릴 수 있겠지? 희곡을 읽고 원작을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 그런 것 같다.

희곡집에는 원작에 있는 7편 중 3편이 실렸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작품들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시원이가 '무엇이든 시장'에서 혀를 산 후 참았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날린 하루를 담은 [혀를 사 왔지], 우리 아들과 나를 떠올리며 읽었던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 화제작이며 엽기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가장 강력한 작품 [돌 씹어 먹는 아이] 이렇게 세 편이 각색되어 담겼다.

내용에 대해서는 원작의 서평에 썼기 때문에 희곡에 대해서만 말을 하자면, 희곡은 희곡 나름대로의 읽는 맛이 있는 것 같다. 내용을 알고 있어도 읽는 맛이 또 다르다. 그리고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표현해내야 하는 제약을 각색자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보며 읽으면 더 재미있다. 이 희곡집에서는 많은 생략 없이 원작의 대화문을 대사로 잘 살렸다. 특별조연들을 넣어 주인공의 내면이나 상황 이해를 돕게 했는데 [혀를 사왔지]에서는 생쥐 1,2가, [고양이 부부]와 [돌 씹어 먹는 아이]에서는고양이 1,2,3이 그 역할을 맡는다. 그 역할이 가장 큰 작품이 [돌 씹어 먹는 아이]다. 원작의 대화만으로 살릴 수 없는 부분이 가장 많아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작에서는 [돌 씹어 먹는 아이]를 가장 좋아하지만 희곡 작품으로는 [혀를 사 왔지]가 가장 매력있었다.

사실 나는 희곡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시중에 나온 어린이 희곡 책이 별로 없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희곡이 좋은 희곡인지 그런 건 잘 모른다. 아마도 연극으로 표현해 내기에 어렵지 않고, 대사가 잘 살아있고, 연극으로 한번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작품이면 좋은 희곡 아닐까. 그런 조건이라면 이 책은 여러 선생님들께 추천해도 좋을 것 같다. 5,6학년 교실에서 온작품읽기로 원작을 읽은 후 공연을 만들면 훌륭한 마무리 독후활동이자 좋은 연극수업이 될 것 같다. 나도 3년전 5학년 아이들과 원작을 읽었는데, 정말 망설이고 고심하다 고른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기뻐했었다. 그 때 이 희곡집이 있었다면 한 번 도전해 보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내가 연극에는 영 소질이 없긴 하지만 한번 해보고 싶다. 중학생까지도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주제들 정도면 사실 중학생 정도에 더 맞다고 생각한다.

내친 김에 출판사에서, 또 작가분들이 희곡작업에 더 의욕을 내주시고 후속 작품들이 계속 나오면 참 신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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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구는 600살 - 어쩌다 보니 2학년 3반 책이 좋아 2단계 28
이승민 지음, 최미란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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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학년 아이들과 이 작가의 <나만 잘하는 게 없어>를 읽고 나니 숭민이의 일기 시리즈를 찾아 읽는 아이들이 생겨났었다. (최근에 숭민이의 일기 3권도 나왔네!) 아이들이 찾아 읽고 아이들 사이에 입소문 나는 책들은 재미 면에서 별 다섯 개짜리라 해도 될 것이다. 정신건강에 해롭지만 않다면 모름지기 이야기는 재미있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는 훌륭한 이야기꾼인 것 같다. 저학년 대상의 이 책도 아주 재미있다.

내가 작가의 경향을 간파할 만큼의 안목은 없지만 이 작가의 이야기에선 낙천적인 느낌이 난다. 나쁜놈도 나오긴 하는데 그렇게까지 밉지는 않고 상황이 안좋아도 뭐 어떻게 되겠지 식의 느낌이 든다. 숭민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그랬는데 600살 마법사 병구가 아홉 살이 되어버린 이 책에서도 그렇다.(어려진 건 좋은거 아니냐고? 그래도 아홉 살은 좀....^^;;;) 독자대상을 딱 9살에 겨냥한 듯한 설정. 아래로 1학년, 위로 3학년까지도 좋을듯.

600살 병구 마법사는 앙숙인 최상이 마법사에게 속아넘어가 마법주스를 마시고 9살이 되어버렸고, 근처 초등학교 2학년 3반 선생님이 입학 신고서를 가지고 가정방문을 오셨다.(정확히 말하면 절차가 이렇지는 않지만 어치피 마법사가 나오는 판에 이런 디테일은 크게 문제 안됨^^) 600살인데 무슨 얼어죽을 초등학교에 가냐고 펄쩍 뛰던 병구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게 된다.

학교는 의외로 너무 좋았다. 학교생활은 즐겁고 재밌었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았다. 난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병구가 우리반에 와도 그럴 거라고 나는 감히 장담한다.ㅋㅋ 내가 뭐 특별히 잘하고 있어선 아니고 2학년이 그럴 때다. 어제도 우린 야외수업을 하며 봄날을 만끽했고 시도 썼고, 책도 읽어주었고 쉬는 시간마다 이것저것 하며 치열하게 놀다 급식시간엔 1식 4찬의 맛있는 급식을 먹었다. 한마디로 아이들은 학교에서 소통하며 배우며 자란다. 그러니 교실을 좀 낙천적으로 그려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처럼.^^
아, 그렇다해도 악역은 필수인가? 여기선 교장선생님이 악역을 맡았는데, 너무 나빴다. 자신이 곧 법이라며 말도 안되는 억지로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을 억누른다. 결국 병구는 마법의 약을 다시 만들게 되고.... 교장선생님의 최후(?)는?^^

병구는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고, 대한민국 초딩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알게 된다. '보통의' 아홉살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려고 했던 병구는 너무나 바쁘고 피곤했다. 그리하여 병구는 분신마술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선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적당히'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모든 에피소드들이 끝났다. 나머지는 에필로그다. 병구는 탐색마법을 부려 최상이를 찾는다. 그런데 최상이는 우리나라에 없다. 지구에도 없다. 토성의 위성에서 겨우 찾았다. 병구의 마법으론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병구의 표정. 그 속마음은?ㅎㅎ

혹시 숭민이처럼 병구도 속편이 나오는 건 아닐까? 숭민이가 중,고학년의 친구라면 병구는 저학년의 친구가 될 것 같은데. 실제 나이 600살, 하는 짓은 우리와 비슷한 친구. 실제든 상상이든 친구는 많을수록 좋잖아? 병구야! 최상이가 돌아오기 전에 우리 아이들과 많이 좀 놀아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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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사는 나라 스콜라 창작 그림책 11
윤여림 지음, 최미란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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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기발한 책 한 권을 또 만나게 되었다. '말'들이 사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말들의 이름은 감사말, 친절말, 사과말, 용서말... 등이었다. 동음이의어의 효과를 멋지게 살린 아이디어다. 일단 동음이의어를 배울 때 도입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책의 진수는 '말'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다. "그리하여 나쁜 말들은 모두 떠나가고 말들의 나라에는 착한 말만 남게 되었습니다. 말나라는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이런 결말이 아니다. 헉, 착한 말을 씁시다. 끝. 이러고 싶은데 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야 하냐고.....^^;;; 하지만 이걸 교육용(?)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속이 시원할 뿐만이 아니라 위안이 되기까지 한다. 나도 한편으로는 입이 엄청 거칠기 때문이다.(말보다는 글이 거칠다. 얼굴 보고는 싫은 소리를 잘 못해서.ㅎㅎ)
착한 말이 대다수인 말나라에 투덜말, 심술말, 화난말 이라는 나쁜 말 세 마리가 살았다. 그들의 부정적 에너지는 모두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나중엔 다들 슬슬 피하게 되었다. 화가 난 세 마리는 마을을 떠나버렸다. 평화가 찾아왔다. 여기서 끝나는 결말도 가능하다. 흔한 결말이라면. 하지만 이 책은 이제부터가 제대로 시작이다.

작은 구름요정이 말나라를 찾아왔다. 비를 내려 시원하게도 해주고 따뜻한 햇살로 말려주기도 하며 온갖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말들은 고맙고 미안해서 "우리도 뭔가 해 드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뭐라도 보답할 수 있게되어 기뻤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변질되어갔다. 구름요정은 점점 포악한 모습으로 변해가며 구름대왕이 되어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했다. 나쁜 말을 할 줄 모르는 착한 말들은 괴로움을 견디며 꾸역꾸역 그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른바 ''진상과 호구', '악한 권력과 착한 굴종'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그들이 돌아왔다!! 심술나서 떠나버렸던 나쁜 말 세 마리. 그들은 여전히 투덜대며 입성했고, 구름대왕의 지시에 콧방귀로 일관했으며 화를 내고 악담을 퍼부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구름대왕은 점점 작아져 버렸다. 이제 나쁜 말들과 착한 말들은 힘을 합쳐 구름요정을 몰아냈다.

"여기는 말들이 사는 나라예요.
나쁜 말을 쓰는 법을 배운 착한말들이랑
착한 말을 쓰는 법을 배운 나쁜말들은
재미나게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싸우다가 화해하고 재미나게 놀아요.
따그닥따그닥 말들은
오늘도 즐거워요."


아이들에게는 고운 말만 쓰라 가르치지만 실제로 나는 가끔 거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든 고운 말로 일관하는 사람과는 별로 친해지지 않는다. 자, 그러니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내 생각에 착한말들의 말에서 끝까지 취해야 할 것은 정중함이다. 그리고 나쁜말들의 말에서 가져와야 할 것은 솔직한 자신의 감정 표현과 정확한 요구이다. 여기엔 거절, 분노, 항의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것이 말꼬리잡기와 진흙탕싸움이 되지 않으려면 정중함은 갖추는것이 좋다. 그래도 결말이 안좋을때가 많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사실 아이들에게 예의바른 말, 고운 말의 지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해온 경험이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나쁜 말'을 어디를 향해서 휘두를지 구분을 못하고 주로 만만한 약자를 향해서 퍼부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나쁜 건 안 가르쳐 주어도 삽시간에 배우지만 좋은 걸 배운다는 것은 거의 시치프스의 바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에 대한 섬세한 접근은 필요하겠다. 그와는 별도로, 착함과 나쁨의 단순한 흑백논리에서 벗어난 이 '말' 이야기가 무척이나 반갑고 퍽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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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아나 할아버지 사계절 저학년문고 66
박효미 지음, 강은옥 그림 / 사계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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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력
1. 외할아버지의 전라도 사투리. 완전 같은 동네는 아닌 것 같지만 돌아가신 우리 아부지랑 싱크로율 90%
2. 색다른 애완동물 이야기. 이구아나. 나는 안 키워봤지만 키워 본 작가의 이야기라 실감 만점.
3. 외할아버지의 꺾을 수 없는 성미. 울 아버지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 가족들을 이기지 못하는 속정있는 외할아버지. 진짜로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ㅠㅠ 다른 게 있다면 몸쓰는 일은 1도 못하시던 울 아부지랑 달리 부지런한 농사꾼이시라는 것과 유려한 문장가이시던 아부지랑 달리 맞춤법이 많이 틀리신다는 것 정도? 삽화까지도 우리 아부지랑 좀 닮은데가 있었다.(아부지 미안^^;;;)

엄마 아빠 둘이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느라 바쁜 통에 희경이는 혼자 지낼 때가 많다. 그때 희경이의 옆을 지켜주고 이야기를 들어 준 동무 이구아나. 이들에게 위기가 닥쳤으니 외할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시골에서 올라오시게 된 것이다. 이구아나를 본 할아버지는 어찌 집에 배암이 있냐며 기절초풍 노발대발하시고 뱀 때문에 재수없었던 과거 일을 들먹이며 당장 내보내라 난리를 치신다. 언제나 희경이 편에서 희경이 마음을 다 알아주시던 외할아버지는 어디 가신 걸까? 이 난리통에 이구아나를 방에 몰래 숨겼지만 어느새 탈출해 자취를 감추고.... 찾아헤매던 희경이의 설움이 드디어 폭발한다.
"내 이구아나예요. 나랑 지내는 내 이구아나라고요. 나랑 정든 애라고요."

별 것 아닌 이 대사에서 울컥해진다. 훌륭한 작가분들에게는 역시 뭔가가 있다. "나랑 정든 애라고요....." 정이 뭔지.... 사랑보다 더 슬픈게 정이라는 뽕짝 가사가 있던가.... 어쨌든 정이 별게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는 쓰여지지도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사랑보다 더 깊은 정은 남녀간에만 있는게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더구나 외로운 아이들에게는 더 절절하다. 그건 어른의 저울로 달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닌 것 같았지만 이때 할아버지는 마음을 고쳐먹으셨나보다. 할아버지는 시골집에 송아지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치료도 마치지 않고 기어이 내려가 버리셨지만 다시 찾은 이구아나에게선 할아버지의 손길이.......^^;;;;

"소 밥은 줬는가....? 아이, 긍게 고놈은 쇠죽을 좀 끓여 주제 그랬는가. 잘 보소, 어디 가지 말고!"
"오메, 배암 새끼 때문에 집안 꼴이 뭐다냐. 아야, 희경아, 어쨌든 간에 할애비는 아니다이."
"낳았단가? 오메 오메 잘했네이. 어? 뿌락데기? 알았네이."
이런 할아버지의 친근한 대사를 읽으며, 또 이미 정든지 오래인 우리집 곱슬이 녀석을 생각하며 읽으니 이 책은 내게 특별한 감회로 다가온다. 짧은 저학년문고인데 울림은 깊다. <노란 상자>, <블랙아웃> 등으로 깊은 인상을 준 박효미 님의 필력은 저학년 동화에서도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내 동생네 집에도 파충류(도마뱀)를 키운다. 사진을 보며 나랑 딸은 인상을 쓴다. 아마 평생 그런 걸 키울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 드는 순간 게임 끝이라는 건 안다. 작가님도 그러셨던 것 같다. 경험이 동화가 된 작품 중에서도 참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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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꿈도서관 2019-05-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구아나 할아버지 출간기념강연회가 아름꿈도서관에서 진행됩니다^^ 5월 11일 토요일 2시 선착순으로 접수받고 있으니 전화 주세요~!! 아름꿈도서관 02-2237-6644 (https://blog.naver.com/jn_jfac/221530701578)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김기정 지음, 신민재 그림 / 한권의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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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을 보고 긴가민가 했다. 동화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애쓰시는 동화작가 김기정 님의 책 맞나? 혹시 동명이인인가?

동화작가 김기정 님의 책 맞았다. 음악에 대한 책이지만 비문학이 아니었다. 김기정 님의 강점인 재미있는 스토리와 대화가 잘 살아있으면서 음악의 매력과 설렘을 잘 표현한 동화였다. 이 책을 어린시절의 내 아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이제는 다 컸지만....

애가 애를 낳아 키우며 숱한 시행착오와, 뭘 잘 몰라서 혹은 바쁘고 힘들어서 못해준 것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음악을 가르친 것 한가지가 그 많은 실수의 절반은 덮는다고 생각한다. 둘다 전공은 안했지만 딸은 교회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고 아들은 지금 군악대에서 클라리넷을 불고 있다. 교회에서 또래들이 모이면 플룻, 첼로가 더해 앙상블을 한다. 웬만한 성가곡 정도는 금방 맞춘다. 그걸 들을 때가 내 생활의 행복한 순간 중 하나다. 돈 많은 동네인가보다고? 전혀 아니다. 여긴 서울 변두리 집값 제일 싼 동네고 다들 학교 방과후나 동네 학원에서 배운 실력들이다.(아들만 개인레슨을 1년쯤 받음) 교회라는 무대가 있으니 의미를 계속 유지하며 악기를 놓지 않았을 뿐이다. 중요한 건 이제 다들 성인이 된 이 또래들이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면서도.

나도 나이 50 다되어 동네 도서관 동아리 합창단에 들어갔는데 여기 평균연령이 나보다 조금 높다. 준실버 합창단이라 할까. 솔직히 때로는 듣기 민망한 음악을 만들어낸다.ㅎㅎ 그래도 모두들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나도 여기에 오래 있고 싶다. 그러면 된거 아닐까. 이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음악은 천재들만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느끼고 즐기라는 뜻이지. 그걸로도 충분!"
내 생각엔, 음악을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기는 것이긴 하지만 직접 만들어내는 음악은 그 이상의 느낌이 있다. 그러니 작은 악기 하나라도 연주 가능하도록 익혀보는 게 좋다. 그게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내 몸이라는 악기가 있지 않은가! (나처럼ㅎㅎ) 쌩목소리로 핏대를 세울지언정 음악의 한구석을 떠받치는 그 느낌은 참 좋다.

이 책은 바이올린을 겨우 소리만 내는 미솔이라는 아이가 학교 오케스트라반에 들어가 토벤 선생님을 만나고, 도전을 받으며 무대를 완성하기까지의 이야기다. 과정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의 아들 어린시절을 모델로 한 것 같다. 열정적이면서도 뭔가 허당이며 웃기기도 한 지휘자 토벤 선생님, 토벤 선생님의 어머니로 오케스트라에 측면 지원을 하신 뽕짝 부인(알고보니 그녀는 30년 경력의 퇴임 음악교사), 실력 빵빵한 일부 선배들, 미솔이처럼 실력은 없으나 함께하는 과정에서 투지가 생긴 대부분의 단원들이 함께 만들어간 과정이었다. 어릴 때 악기라고는 리듬악기와 리코더밖에 만져보지 못했던 나는 이런 요즘의 아이들이 부럽다. 하지만 요즘이라고 이 책의 상황이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우리 학교에도 누구의 입김인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긴 했다. 예산을 따올 수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악기와 레슨이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다. 쉽게 들어간 아이들은 쉽게 빠졌고, 적은 연습시간에 성실치 않은 단원들로 지휘자는 고충을 토로했고, 연주회에선 객원들(악기별 선생님들)이 주로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음악은 아름답고 그 매력은 빠져들수록 대단하다. 하지만 그걸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기본 진리가 여기에도 통한다. 시간투자, 꾸준한 노력, 밀도높은 집중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일반적으로 가능하진 않고 모든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악기를 다룰 수도 없다. 꼭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여기서 학교 음악교육의 기능을 더 생각해보게 된다. 출발점도 재능도 모두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해야 하는 음악수업. (여기서 출발점이 다른 것을 사교육 운운하며 문제삼는 것은 생트집. 이에 대한 논의는 넘어감) 음악의 매력을 알게, 연습은 밀도 있게, 다양한 수준이 어울리게, 작은 무대에 자주 설 수 있게(교실 앞에 나오면 그게 무대다) 해주는 것 정도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것도 잘 되진 않아서 늘 반성한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이면서 끝에서 두번째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연습때 자꾸 틀리는 부진 녀석들 때문에 분위기가 날카로워진 날, 토벤 선생님이 해 준 얘기는 '크리스마스 휴전' 이야기였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전장에서 울려퍼진 캐롤 연주와 그에 화답하던 노랫소리. 그 음악은 총을 내려놓고 서로를 원수가 아닌 친구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장 <뽕짝 오케스트라>에선 긴장 속에 연주를 마친 단원들이 앵콜곡으로 "꽃 피는 동백섬에~"를 연주하며 모두 흥겹게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곡은 뽕짝 부인의 애창곡이다. 지휘자 어머니를 '뽕짝 부인'으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음악의 장르에는 귀천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조용필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뽕짝 부인'이라고 부르길래 난 순간 "아니 조용필이 왜 뽕짝이야?" 하며 발끈했는데, 뭐 그럴 일은 아니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미워 미워 미워' 같은 그의 곡들이 뽕짝인 건 사실이니. 우리 합창단에서도 가끔 편곡된 장윤정의 뽕짝들을 부른다.^^

음악 동화이기에 음악에 치우친 이야기를 했지만 미술, 무용 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즉 음악을 '예술'로 바꾸어도 된다는 뜻이다. 왜 인간에게는 예술이 있겠는가? 그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소통하게 하며 행복과 위안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존재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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