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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연극 수업 어떻게 할까? - 초등 교사들의 '3인 3색 연극 수업' 들여다보기 ㅣ 세상을 바꾸는 교육
남상오,오현아.이동석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월
평점 :
저자 중 한분과 4년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고 동학년을 두 번이나 해서 꽤 허물없이 지냈다. 그때부터 그의 연극사랑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교대 연극동아리 OB팀을 이끌던 그 샘이 출연, 연출한 연극을 관람하러 20년만에 모교의 학생회관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보통 그 공연을 2월에 하곤 했는데, 그 한 번의 무대를 위해 겨울방학을 하얗게 불태운다고 했었다. 그땐 참 궁금했다. 보람이 있을까. 끝나고 허무하지 않을까. 연극의 매력은 뭐길래 이렇게 시간과 열정을 들일 수 있을까.
이제는 교육과정에 들어온 연극을 가지고도 비슷한 질문이 가능하다. 학교 연극은 완성도 높은 무대를 요구하는게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연극수업은 품과 시간이 많이 든다. 더구나 나같은 일반 교사는 연기지도를 해줄 실력도 안되고 여러가지로 벽이 느껴진다. 연극을 사랑하신 세 분 샘들의 수업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1장에는 교실연극을 위해 교사들이 체크해야 하는 내용들이 대략적으로 담겨있고, 2,3,4장은 세 분 저자들이 각자 시도한 연극수업의 과정 이야기다. 아이들의 속성을 잘 아는 우리로서는 준비와 공연까지의 과정이 순탄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저자들은 따로 연극반을 꾸려서 하는 특기자 연극보다도 수업의 과정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연극을 추구하였기에 때로는 한숨을 쉬고 꾸중도 하고 목적 잃고 헤매는 양들을 끌어다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들을 피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지지고 볶다보면 뭔가는 되더라는 것이다.(아 사실은.... 뭔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연극판에서 뛰어온 이들의 내공이 반영된 것일수도) 과정은 때로 한심했으나 결과는 보람있더라?^^ 저자들의 진솔하고 현장감 가득한 수업이야기는 날 것 그대로이던 아이들이 다가온 무대 앞에서 떨림과 책임감을 느끼며 공연 후엔 아쉬움과 보람을 느끼게 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과정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장은 남상오 선생님의 '온작품 읽고 연극 만들기'의 사례다. 이제 모든 학급에서 보편적인 활동이 되어버린 온작품 읽기는 그 마무리를 연극으로 결실 맺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도 꼭 그렇게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대본은? 캐스팅은? 연습은? 공연은? 이런 막막함이 저자의 사례에서 하나씩 해소된다. 이 학급에서 읽은 책은 <만국기 소년>이었고, 수록 단편들 중 '선아의 쟁반'을 연극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각색과 공연의 편의성은 꼭 고려해야 할 점인데, 아이들은 이런 부분에 감이 부족하므로 작품을 고르는 데는 교사의 안목이 중요하겠다. 대본작업을 하기 전 사전활동으로 마음에 드는 문구 적기, 인물 분석 등을 한 것은 연출 경험이 있는 교사의 전문성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모둠수만큼 장을 나누고 맡은 장을 일단 즉흥극으로 표현하게 해본 것도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그 후에 대본작업이 시작됐다. 여기서부터가 난관.... 아이들한테 맡기고 확인하다보면 앓느니 죽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했지만 내가 혼자 작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44쪽) 부분을 읽고는 저자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여 푸하하 웃고 말았다. 이렇게 완성한 극본이 장의 끝에 첨부되어 있는데, 고생한 보람인가. 생각보다 너무 훌륭했다.
다음은 연습. 이게 또 사람 피말리는 일이다. 교사만 조급하고 애들은 태평일 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밥을 빨리 먹고 연습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리허설을 못해 불안할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점심시간에 연습을 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놀고 있었다."(55쪽) 여기서 두번째 뿜었다.ㅋㅋㅋ
결국 아이들은 리허설도 못한 채 무대에 섰다. 하지만 무대를 맞닥뜨린 아이들은 달라졌다. 옆반을 교실로 불러 공연한 소박한 첫 무대는 그렇게 끝났다. 여기서 끝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난 생각한다. 한 고비를 넘으면 좀 더 큰 무대로 이끌어주는 것도 좋다. 이 반은 독서캠프에서 시청각실의 무대에 도전했다. 무려 유은실 작가를 모시고 말이다! 유은실 작가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을 것 같다. 난 간이 작아서 요기까지는 못 갈 것 같지만 교실무대 정도는 언젠가 도전해 보고 싶다.
3장 이동석 선생님의 사례는 창작극이었다. 생활중의 인상적인 경험을 추출하여 아주 짧은 극본으로 만들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짧은 공연하기. 이름하여 '점심시간 연극제'! 이 장에도 역시 아이들이 만든 극본이 뒤에 수록되어 있는데 읽어보고는 '읭?' 했다.ㅎㅎ 뭔가 기승전결과 주제가 담긴 문학작품에 익숙해져 있는 탓일 것이다. 경험을 공유하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공감가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 길이가 짧다는 점에서 극본도 공연도 접근성이 높다. 초반의 시도로 좋을 것 같다. 버스킹 같은 느낌을 주는 틈새공연 아이디어도 재밌다.
마지막 오현아 선생님의 사례도 참고할 점이 많았다.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만들고 싶은 연극에 대한 글쓰기를 시키고 내용을 분석하는 등 아이들의 욕구를 반영하려는 선생님의 노력이 돋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아이디어는 '미완성 극본'이었다. 교사가 제시한 미완성 극본을 아이들이 채워 완성하는 방식이다. 극본이든 동화든 아이들에게 창작을 맡겨 놓으면 소위 말하는 막장으로 치닫기 일쑤다. 아님 찌르고 쑤시고 쏘고 피흘리고 다 죽고 부활하고 이루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엽기 허무맹랑 스토리가 교사의 의욕을 초장부터 꺾는다. 이를 적절히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상상력과 창의력도 맥락과 인과관계에 맞게 발휘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완성 극본' 발상은 훌륭하다. 극본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창작해본 적은 많은데, 이걸 극본으로 연결시킬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잘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한편으로 극본에 들이는 교사의 심적부담과 시간투자를 생각해보면 골라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극본들이 나와줬으면 한다. 도서실 수서할 때 아동극 극본집을 찾아 구입했는데 그 수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되었다. 얼마전 문학동네 원작동화들을 각색한 어린이 희곡 3권이 나온 것은 앞으로 쏟아져 나올 신호탄인 걸까? 잘 모르겠다.^^ 욕심 같아선 5분용, 10분용, 20분용, 교실용, 시청각실용 등등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었지만 저자들과는 달리 무대경험도 연출경험도 전무하며 애들보다도 연기력이 더 없는 나에게 연극이란 여전히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들의 사례와 나의 경험이 함께 말해주는 사실은, 아이들은 돌파력이 있고, 걱정한 것 보다는 잘 해낸다는 것이다. 갈수록 개별화되어가는 시대에 공동체의식을 일깨울 활동으로 연극만한 것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의 처음에서 했던 질문, 왜 길이 남지도 않을 한번의 무대를 위해 열정을 쏟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례중심의 교육도서들 중엔 1회용으로 읽고 바로 기억에서 지워진 책들이 많았다. 이 책의 사례들은 너무 생생해서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초등 선생님들께는 자신있게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