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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편지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19년 5월
평점 :
난 웹툰을 웹상에서 본 적이 거의 없는 웹알못?이다. 책으로 나온 것은 몇 권 읽어봤지만 강풀의 만화들이나 윤태호의 미생 같이 매우 알려진 작품 정도. 우연히 아주 젊은 작가의 첫 단행본을 보게 됐다. 깜짝 놀랐다. 그림을 빼고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느낄 정도였다. 거기다 빼어난 그림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매력적인지. 딸 뻘인 듯한(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20대 초중반?) 젊은 작가의 능력에 감탄과 부러움을 토해내는 내 모습이 웃기다. 그래도 우와~ 앞이 창창한 나이에 벌써 이런 재능을 가졌으니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걸 어쩌랴? 이건 지극히 아줌마스러운 부러움이다.ㅎㅎ
솔직히 말하겠다. 내가 이 젊은 작가를 부러워하는 건 이 만화에 거슬리는 점이 하나도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무척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고 금기가 많은 나의 취향을 이렇게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건 한옥타브의 음역대 안에서 대곡을 완성시킨 것에 견줄 수가 있다.ㅋ 정말 감탄했다. 이렇게 옳으며, 이렇게 반듯하며, 이렇게 선하며, 이렇게 조심스러우면서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중학생 이소리는 어느날 참지 못하고 나온 한마디 때문에 모두의 표적이 되어버린다. "그만해!"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다못해서 외친 한마디. 그 한마디만 아니었으면 그럭저럭 지낼 만했을텐데. 표적이 된 이상 제정신으로 견뎌내긴 힘들었다. 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다니던 소리는 다시 아빠한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어릴 때 살던 곳이다.
전학간 첫날. 깊은 트라우마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는 소리. 아이들의 눈빛도 웅성대는 소리도 다 두렵다. 배정된 책상 위에 "죽어라, 나대지 말고" 같은 글자가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책상은 깨끗했다. 서먹함과 두려움에 눈물이 그렁하던 소리는 책상 밑에 붙은 편지를 발견한다. 첫 번째 편지.
첫 번째 편지부터 마지막(열 번째) 편지까지가 이 책의 목차다. 이야기는 편지를 따라가며 전개된다. 누가 편지를 보냈을까? 왜 보냈을까? 다음 편지는 어디에서 발견될까? 왜 거기에 놓여져 있을까? 다음 편지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그러다가 이 친구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을까?에 이르면 독자도 소리, 동순이와 함께 애타는 마음으로 함께 찾게 된다. 어디에 있을까 이 친구는? 지금 어떻게 된 걸까?
정글이 된 학교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 양심을 잃지 않고 꼿꼿이 버티는 작고 어린 영혼들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작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 아이들이 끝내 짓밟히지 않고 손잡으며 우정을 나누고, 그 우정의 한쪽 끝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요즘 유명 연예인들의 과거 학폭 전력이 밝혀지며 시끄럽다. 현실은 아닌 것 같아도 인과응보는 엄연히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렇다고 하기엔 여전히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작품이 고맙다. 착한 것은 바보같은 것이 아니다. 도덕을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누굴 생각해 주고 그를 위해 시간을 내 주는 것은 한심한 것이 아니다. 올바름의 멋있음, 착함의 가치가 널리 퍼져 상식이 된다면 교실의 약육강식은 사라질까?
잔인하지도, 기괴하지도, 엽기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비꼬지도, 배꼽잡게 웃기지도, 판타지가 멋진 것도 아닌 이런 작품이 선풍적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건 단 하나 튼튼한 스토리의 힘이다. 다음 편지를 애타게 따라가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
이 만화는 네이버 웹툰 연재시 9.98이라는 기록적인 평점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나같은 꼰대와 취향이 같은 웹툰 매니아들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ㅋㅋㅋ 단행본으로 나오자마자 판매지수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학교도서관 수서목록에도 슬쩍 넣었다. 교사용으로 넣었다가 학생용으로 돌렸다. 아이들아 많이 읽어라. 너희들 눈에는 누가 멋지니? 너희들도 멋져. 절대 멋짐을 포기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