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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 이민, 장애, 나이듦, 그리고 돌봄의 세계에서 내가 배운 것
루아나 지음 / 메멘토 / 2025년 9월
평점 :
오늘 반납해야 하는 도서관책을 챙기다보니 3권 모두 노인, 퇴직, 돌봄에 관한 책이다. 아 이젠 정말 내가 현장을 떠나 뒷방의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읽는 책이 바로 내가 선 땅을 알려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장을 떠난다기보다는 제2의 현장을 만나는 이야기다. 이전보다 더욱 치열한. 그 현장이 바로 돌봄의 세계라서 다른 책들과 함께 늙음과 죽음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게된 것 뿐이다. 저자는 이민 전 중등교사였고 호주로 이민을 간 후에 그 사회에 익숙해지며 돌봄의 현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자격증을 따고 지금은 활발히 활동중이다.
이 책을 오늘 반납해야 하지만 한번 더 읽거나 모임에서 함께 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책이 어려워서는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잘 읽히는 책에 속한다. 하지만 생각할 영역이 여러가지다. 누군가는 저자의 개인적 삶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의 삶이 매우 고달팠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몹시 소모적이고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으며(자세한 이야기는 없지만 같은 교사로서 다 알 것 같은ㅠ) 그 와중에 표준의 경우와 너무 다른 육아는 개인을 한계로 몰고 갔다. 결국 아들은 자폐와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 후 호주 이민, 적응 과정, 새로운 일에의 도전, 싱글맘으로 홀로서기 등의 과정이 이 책을 개인사로만 읽어도 충분히 의미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줄기에 덧붙여진 것들이 매우 많아 그것도 놓칠 수가 없다.
그중 하나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다. 저자가 호주의 현장에서 뛰며 알려주는 현실은 자연스럽게 두 나라를 비교하게 만든다.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어느정도 흉내는 내고 있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아직 멀었구나.
올해 장애 학생이 많은 학년을 맡게 되었다. 반평균 2명씩 있다. 교사를 오래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학교의 모든 지원인력(특수교육 실무사 두명과 공익근무요원)을 총동원해도 턱도 없기 때문에 시간제 봉사자를 채용해서 지원에 보탠다. 우리 지원 선생님들은 정규 비정규 공익 할 것 없이 모두 마인드가 훌륭하셔서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초반에는 그분들이 고마운건 고마운거고 교실에 나말고 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제 거기에 적응되자 이런 생각이 든다. 호주에선 장애인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한다. 반별 2명씩 있다고 놀라는 우리 학년 비율도 10%에 불과하다. 나의 체감으로는 장애학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특히 신경다양성 측면에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는 진단되지 않은 장애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 되겠다. 지원이 필요한 학생의 영역을 좀 넓히고 지원도 확대되면 좋겠다. 일반교사+특수교사의 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특수학급의 정원을 줄이고, 모든 학교에 특수학급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일부 학교에만 특수학급이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도 있다. 특수교육이나 지원인력은 진단받은 특수교육대상자에게만 해당되고, 그 진단이란 부모의 동의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니 대상자가 없는 학교도 존재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전체적으로 인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작년에 모 지역 특수학급에 살인적인 인원과 업무를 몰아놓고 인력충원의 호소를 무시하고 방치한 결과 슬픈 일이 일어났다. 이게 우리나라 현실의 한 단면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잠시 귀국할 때마다 신문물의 작동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난 생각했다. 아 호주가 우리보다 훨씬 아날로그로 사는구나...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조급증에 쏟아붓는 그 예산들을 훨씬 사람에 투자해도 되는 것 아닌가.... 결국 그 아까운 젊은 특수교사의 죽음은 그 알량한 예산 안 쓰려고 버티다가 그렇게 만든거 아니야? 말만 꺼내도 화가 난다.ㅠㅠ
호주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장애 자체의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장애=불행의 공식은 절대 없었다. 신경다양성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다양함의 일부일 뿐이다. 어떤 곳이든 보편적 설계가 당연하게 적용되어 있었고, 번거로움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는 태도가 상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수영장 장면에서 입이 딱 벌어졌다. 배울 건 빨리 배웠으면 좋겠다.
다음으로는 직업에 대한 것이다. 직업의 안정성과 유연함이 공존하는 방식이 무척 좋아보였다. 우리나라처럼 '하려면 밤낮없이 죽어라고 하고 못하면 말고' 이런 식이 아니라 자신의 체력과 나이, 생활방식에 따라 다양한 시간선택이 가능한 일자리들이 많으면 좋겠다. 모두들 대학도 모자라 대학원까지 나와야 하는 학력 낭비의 한국은 곧 젊음과 세월 낭비이기도 한 것 같다. 직장의 유연함은 근무환경의 향상으로도 이어지고 그건 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마인드로 이어진다.
다음은 노년에 대한 생각이다. 저자의 돌봄 일은 크게 두가지 분야이다. 장애인과 노인. 노인을 돌보면서 저자는 한국의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짓기도 했다. 돌봄은 정말 정신 육체 양면으로 고된 일이었다. 저자도 나처럼 작은 키에 저질체력이신 것 같은데도 이 일을 열심히 배워 해나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호주의 노인 돌봄 환경은 우리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돌봄인들이 육체적으로 무리하지 않으면서 노인들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해줄 수 있는 여러가지 기계들(기중기, 기립기 등)의 사용은 꼭 필요할 것 같다. 저런 걸 쓰기 전에 죽고 싶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겠지.ㅠ 이런 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상황을 다양성의 범주에 넣는 인식이 인상적이었다. "저러느니 죽는게 낫겠다", "저러고 왜 살아" 따위의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되었다. 다른 편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고통스러운 한계까지 몰아가지 않는 치료, 그러니까 연명치료가 아닌 통증치료(최소한의 존엄사)에 집중하는 의료체계로의 전환을 간절히 원한다. 내가 죽을 때 되기 전에 부디.
기록 좀 남기고 반납하자 하고 생각한 리뷰가 중언부언 길어졌네.... 이 책은 그대로 덮고 잊어버리긴 아까워서 이어지는 대화나 독서가 더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