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3초 그래 책이야 23
양지안 지음, 최담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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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이 이야기는 내가 평상시에 우리집 애들이나 학급의 아이들한테 하던 얘기랑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사실 그건 나 자신한테 하는 이야기도 되는데, 아이들한테 기염을 토하며 말하지만 실은 나도 잘 못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눈꺼풀 올리는데 3초가 걸린다는 게으른 비만고양이 삼초의 이야기와, 또나마을의 재능또나들이 겪는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다. 처음엔 두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 어리둥절했는데 점차 알게 된다. 재능또나들의 이야기는 삼초의 내면(발현되지 않은 정체성)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작년 그 아이에게 읽히고 싶다. 수학과 체육에는 몹시 약했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문학 감상력도 좋은 편이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아이. 그 아이는 굴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그 굴 안에는 엄마가 있었다. 애착이 남다른 두 모녀는 굴 안에서 서로만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설득해도 네네 대답만 할뿐 놓지를 못했다. 아이는 게을렀고 무기력했고 비만이어서 외모에 대한 자기비하도 심했다. 저학년도 아닌데 날마다 학교 앞으로 엄마가 마중나와 있었으며 현장학습을 다녀온 날 엄마와 시간이 안맞으면 아이는 울었다. 교문에서 보이는 곳에 자기 집이 있는데도 말이다....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운 활동(특히 체육)이 있는 날은 여지없이 아침에 배가 아프다고 했고, 엄마는 결석 문자를 내게 보냈다.ㅠ 친구들에게서 "어휴...'라는 느낌을 살짝 느끼기만 해도 집에 가서 울고불고 해서 엄마가 여러번 전화했다. 본의아니게 그런 느낌을 풍긴 아이에게는 꼭 사과하게 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아이는 일으켜 세워야 했기에, 학교 상담사님과 시간도 잡아주고 외부기관과도 연결해 주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부터 특기를 키워주도록 집밖 활동을 권장해 봤지만 결국 기어들어가는 곳은 굴속이었다. 안타깝지만 더이상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엄마한테 정신 좀 차리라고 화를 냈으면 좀 달라졌으려나.... 그렇게 하진 않았다. 듣자하니 올해는 결석이 더 잦다고 한다.ㅠㅠ

동물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에서 엄청난 비만 고양이를 보여준 적 있었다. 이 녀석은 움직이기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늘 늘어지게 드러누워만 있었으며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 했다. 이 책의 삼초는 TV속 그 고양이보다 더하다. 스스로가 움직임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잊은 듯하다.

한편 또나마을의 재능또나들(정의에 불타는 무술맨 바로착, 논리 수학에 강한 미리알, 걱정이 많지만 언어재능이 뛰어난 또마레, 정신 사납지만 음악연주를 잘하는 릴리아)은 지진을 감지하고 그 근원을 찾아 숲으로 들어간다. 놀랍게도 숲은 좀좀넝쿨이 온통 휘감고 있었으며 휘감는 힘과 속도는 갈수록 강해졌다. 그 가운데에 넝쿨에 휘감긴 한 덩어리가 바로 근원이었다. 또나들이 목숨을 걸고 넝쿨을 제거해주자 그 안에서 나온 또나의 이름은 '천성이'ㅎㅎ(이와 같이 이 책은 작명에서 작가의 의도를 다 볼 수 있다. '또나'도 그렇고.)

다시 삼초에게로. 이 집에 새로 들어온 강아지 팔랑이는 특유의 친화력과 오지랖으로 삼초를 어떻게든 움직이게 해보려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게 해버렸다. 이제 진짜로 못 움직이는 건가? 오히려 이 일로 삼초의 움직임 본능이 살아난다. 삼초는 비로소 캣타워에 올라가 좌중을 굽어본다.^^

결국 무엇인가? 한심한 인종에게도 잠재력은 있다. 그러나 그걸 혼자 끄집어내기는 너무 어렵다. 천성이를 억지로 강가로 끌고간 또나들, 사고이긴 했지만 삼초를 계단에서 떨어뜨려준 팔랑이. 사람에게도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사랑의 채찍질(아니다, 폭력적 느낌이라 말을 바꾸겠다. 자극제!)가 되어줄 존재.

난 작년에 그 엄마나 아이한테 좋은 말로 권유만 하지 말고 뭔가 쎄게 충격을 주어야 했던 것일까...ㅠㅠ 자식들도 언젠간 깨닫겠지 하지 말고 얼굴에 얼음수건이라도 문질러 주었어야 되는 거였나....^^;;;;

정답은 없으니 적절한 지점과 상황에 맞는 방법이 있을 뿐. 뭐라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건 내가 넝쿨에 얽혀있을 때 그걸 끊어준 존재라면 난 고마워 할 거라는 거. 함께하는 이들은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늪에 빠져 침잠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들이 힘을 내어 걸어나오기를 빈다. 아이들 중에 그런 아이가 있어 이 책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의미있는 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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