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도서관에서 읽은 그림,동화책들 - 특히 어른들이 봐야되는- 소개>

동화나 그림책 중엔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를 꼬집는 책들이 있다. 그 책을 아이들이 읽어도 물론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읽는다면.... 재미 외에 뭔가 깊은 생각거리가 있으리라.

평화도서관에서 2시간을 일행과만 머물면서 이런저런 책들을 펼쳐보았다. 2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기에 얇은 책, 주로 그림책 위주로 보았다. 아주 재미있게 본 그림책이 있었으니 <너무너무 공주>라는 책이었다. 엇, 작년에 나온 책인데, 왜 여태 몰랐지? 허은미/서현이라는 놀라운 작가진인데 말이다.


서현 님의 그림은 역시 편안하고 친근하고 귀엽다. <진정한 일곱살>을 지으신 허은미 님의 글도 쉬우면서 재밌다. 그러니까 글도 그림도 쉽고 재미있다는 건데.... 읽기에 따라선 뭔가 묵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임금님은 늘그막에 얻은 공주를 너무나 사랑했다. 서현 작가가 그린 공주는 너무나 밝고 해맑다. 책에선 공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놀고 싶을 땐 놀고, 자고 싶을 땐 자고
웃고 싶을 땐 웃고, 울고 싶을 땐 울었어.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했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임금님은 걱정했다. 까막까치들의 노래에 그 이유가 있다.

"평범해, 평범해. 공주가 평범해.
얼굴도 평범해. 성격도 평범해.
머리도 평범해. 너무너무 평범해.”

딸바보 임금님은 공주란 모름지기 비범해야 한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저렇게 아이다운 공주에게 뭔가 비범함은 없었다. 너무나 걱정된 임금님은 잉어의 세가지 소원 수염을 샀다. 쭈글쭈글 늙음을 담보로 걸고.... 소원 한가지를 사용할 때마다 임금님은 기운없고 주름패인 노인이 되어갔다. 그 댓가로 공주는 비범해졌을까?

첫 번째 소원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가 되게 하라." 공주님은 예쁜 대신 날카로워졌다.
두 번째 소원 "가장 착한 공주가 되게 하라." 공주는 착한 대신 빛을 잃고 시들시들해져갔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임금님은 마지막 소원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책에 직접 나오진 않는다. 그 소원을 아이들과 짐작해보는 대화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여간 마지막 소원을 쓰고 공주는 행복해졌다. 그 모습은 첫 장면의 딱 그 모습이다. 평범하고 해맑은....

"내가 너를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드라마에서 자주 들어본 절규의 대사다. 쭈글쭈글 늙어버린 임금님처럼 부모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녀의 성공(남보다 앞선 성취)에 걸지만 결국 모두 불행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지 못하는 억울한 부모는 저런 절규를 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크게 혹은 작게 우리 사회에 아주 흔한 풍경이다.

비범함의 욕구와 평범함의 만족은 아주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할 문제다. 자식이 아니라 본인의 문제일 때도 그렇다. 타고난 성향도 작용하기 때문에 뭐라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범함이 사랑의, 자존감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 그림책 마지막 장의 문장 "너에 대해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처럼 "너이기 때문에, 너 자체로 소중해."라는 메세지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두번째로 읽은책은 <스티커 토끼> 이 책은 아이들을 '규정'하는 어른들을 꼬집는다. 이 아이는 까탈쟁이, 얘는 순둥이, 얘는 싸움닭, 독불장군, 까불이, 투덜이....

20마리 아기토끼의 엄마아빠가 며칠 집을 비우며 할머니에게 아기들을 맡겼다. 할머니는 부모의 설명을 참고해 아이들 등에 스티커를 붙였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스티커가 날아가버려 그건 헛일이 되어버렸는데, 지내며 보니 스티커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딱지붙이기(규정짓기)의 무의미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경험은 이 주제에 대하여 살짝 이의를 제기한다. '규정짓기'의 위험성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아이들의 성향에 대한 이름짓기가 전혀 무의미하거나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누가봐도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 그걸 가지고 맞네 틀렸네 옳으네 그르네 착하네 못됐네 하는게 문제지 아이들이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게 상당히 고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 그 가능성 안에서 아이들을 봐야 한다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 외 조용한 밤, 무슨 벽일까?, 두둑의 노래 등도 인상적인 책이었다. 먹고 산책하고 수다떠느라 북스테이지만 북에는 많이 집중하지 못했다. 뭐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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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지도 샘터역사동화 5
조경숙 지음, 안재선 그림, 이지수 감수 / 샘터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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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역사동화를 부지런히 찾아읽고 시대배경별로 정리도 해두었는데 한참동안 뜸했다가 오랜만에 신간을 한권 읽게 됐다.

제목이 비밀지도. 첫장에 대동여지도가 나온다. 김정호의 지도 작업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 그보다 약간 후대의 이야기였다. 19세기 후반. 이 시대, 특히 이 사건을 주제로한 역사동화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 사건이 드러나기 전 책의 초반에는 계속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이 역사동화는 어떤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을까?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지려고 분주히 심부름을 하며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는 재동이라는 소년이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실존 인물은 '이소바야시'라는 일본인이다. 일본에서 사업차 왔다는 이 인물은 재동이의 눈썰미와 영리함을 알아보고 길안내를 요청한다. 어머니의 약값이 필요했던 재동이는 짭짤한 품삯에 감사하며 함께 길을 나선다.

그는 약을 팔러 다닌다고 했다. 초반부에 그는 꽤나 인간적인 신사의 모습으로 보인다. 재동이도 힘을 다해 뭐라도 그를 도우려 애쓰고, 힘든 일도 함께 겪으며 그들에겐 얼핏 동지애가 싹트는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일본인의 행태는 볼수록 수상쩍다. 영리한 재동이는 이것을 놓치지 않는데.... 마침내 눈치챈 그의 비밀은....

제목이 '비밀지도'인데다 첫장에 대동여지도가 나오니 그 일본인의 수상쩍은 비밀행위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의 신분은 원래 군인이었고 조선의 주요 지역을 다니며 비밀리에 지도를 제작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을 위한 사전 준비였음은 물론이다. 재동이는 그 놀라운 사실에 남몰래 몸을 떨며 어떻게 이것을 저지할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틈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재동의 작전은 멋지게 성공.... 이소바야시는 넋이 나간 채 입만 벌리고 있어야 했다.

책은 그렇게 끝났고, 어린이 독자들은 재동이와 같이 환호할 수 있겠지만 실상을 보면 일본이 계획한 지도제작은 실패하지 않았다. 실패는 커녕 놀라울만큼 치밀하게 제작되고 활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실존인물 이소바야시는 갑신정변 때 흥분한 군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한 번도 쓰여진 적 없는 이런 소재의 역사동화가 새롭게 나온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일제의 만행, 독립운동 등을 다룬 역사동화도 의미있지만 일본의 치밀한 사전작업, 그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조선의 속수무책도 다시 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현재의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역사는 지금의 순간을 어떻게 평가할까? 자신이 선 곳을 바르게 보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작가분이 새로운 소재의 역사동화를 쓰신 김에 갑신정변 등의 한마디로 평가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들도 다루어 주시면 흥미있게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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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편지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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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웹툰을 웹상에서 본 적이 거의 없는 웹알못?이다. 책으로 나온 것은 몇 권 읽어봤지만 강풀의 만화들이나 윤태호의 미생 같이 매우 알려진 작품 정도. 우연히 아주 젊은 작가의 첫 단행본을 보게 됐다. 깜짝 놀랐다. 그림을 빼고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느낄 정도였다. 거기다 빼어난 그림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매력적인지. 딸 뻘인 듯한(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20대 초중반?) 젊은 작가의 능력에 감탄과 부러움을 토해내는 내 모습이 웃기다. 그래도 우와~ 앞이 창창한 나이에 벌써 이런 재능을 가졌으니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걸 어쩌랴? 이건 지극히 아줌마스러운 부러움이다.ㅎㅎ

솔직히 말하겠다. 내가 이 젊은 작가를 부러워하는 건 이 만화에 거슬리는 점이 하나도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무척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고 금기가 많은 나의 취향을 이렇게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건 한옥타브의 음역대 안에서 대곡을 완성시킨 것에 견줄 수가 있다.ㅋ 정말 감탄했다. 이렇게 옳으며, 이렇게 반듯하며, 이렇게 선하며, 이렇게 조심스러우면서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중학생 이소리는 어느날 참지 못하고 나온 한마디 때문에 모두의 표적이 되어버린다. "그만해!"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다못해서 외친 한마디. 그 한마디만 아니었으면 그럭저럭 지낼 만했을텐데. 표적이 된 이상 제정신으로 견뎌내긴 힘들었다. 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다니던 소리는 다시 아빠한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어릴 때 살던 곳이다.

전학간 첫날. 깊은 트라우마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는 소리. 아이들의 눈빛도 웅성대는 소리도 다 두렵다. 배정된 책상 위에 "죽어라, 나대지 말고" 같은 글자가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책상은 깨끗했다. 서먹함과 두려움에 눈물이 그렁하던 소리는 책상 밑에 붙은 편지를 발견한다. 첫 번째 편지.

첫 번째 편지부터 마지막(열 번째) 편지까지가 이 책의 목차다. 이야기는 편지를 따라가며 전개된다. 누가 편지를 보냈을까? 왜 보냈을까? 다음 편지는 어디에서 발견될까? 왜 거기에 놓여져 있을까? 다음 편지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그러다가 이 친구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을까?에 이르면 독자도 소리, 동순이와 함께 애타는 마음으로 함께 찾게 된다. 어디에 있을까 이 친구는? 지금 어떻게 된 걸까?

정글이 된 학교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 양심을 잃지 않고 꼿꼿이 버티는 작고 어린 영혼들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작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 아이들이 끝내 짓밟히지 않고 손잡으며 우정을 나누고, 그 우정의 한쪽 끝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요즘 유명 연예인들의 과거 학폭 전력이 밝혀지며 시끄럽다. 현실은 아닌 것 같아도 인과응보는 엄연히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렇다고 하기엔 여전히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작품이 고맙다. 착한 것은 바보같은 것이 아니다. 도덕을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누굴 생각해 주고 그를 위해 시간을 내 주는 것은 한심한 것이 아니다. 올바름의 멋있음, 착함의 가치가 널리 퍼져 상식이 된다면 교실의 약육강식은 사라질까?

잔인하지도, 기괴하지도, 엽기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비꼬지도, 배꼽잡게 웃기지도, 판타지가 멋진 것도 아닌 이런 작품이 선풍적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건 단 하나 튼튼한 스토리의 힘이다. 다음 편지를 애타게 따라가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

이 만화는 네이버 웹툰 연재시 9.98이라는 기록적인 평점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나같은 꼰대와 취향이 같은 웹툰 매니아들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ㅋㅋㅋ 단행본으로 나오자마자 판매지수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학교도서관 수서목록에도 슬쩍 넣었다. 교사용으로 넣었다가 학생용으로 돌렸다. 아이들아 많이 읽어라. 너희들 눈에는 누가 멋지니? 너희들도 멋져. 절대 멋짐을 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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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석 2019-06-1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연의 편지>를 출간한 손봄북스의 김효석이라고 합니다. <연의 편지>를 따뜻한 마음과 관심으로 전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연의 편지>의 마음을 좋을 글로 풀어주셔서 너무나 감동이였습니다. 혹 실례가 안된다면 올려주신 글을 <연의 편지> 단행본 홍보에 사용해도 될지 의견 여쭙고자 문의드립니다. 바로 답변이 어려우시면 books@sonbom.co.kr 로 연락주시면 확인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진맥진 2019-06-14 13: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이 너무 좋아서 리뷰를 쓴 것 뿐인데 감사의 마음을 전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셔도 됩니다. 정선된 글이 아니고 후다닥 쓴 거라 좀 부끄럽긴 하네요.^^;;; (그리고 게시된 내용을 저도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효석 2019-06-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네, 게시되는 곳은 books@sonbom.co.kr 으로 메일주소 보내주시면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고양이 3초 그래 책이야 23
양지안 지음, 최담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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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이 이야기는 내가 평상시에 우리집 애들이나 학급의 아이들한테 하던 얘기랑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사실 그건 나 자신한테 하는 이야기도 되는데, 아이들한테 기염을 토하며 말하지만 실은 나도 잘 못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눈꺼풀 올리는데 3초가 걸린다는 게으른 비만고양이 삼초의 이야기와, 또나마을의 재능또나들이 겪는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다. 처음엔 두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 어리둥절했는데 점차 알게 된다. 재능또나들의 이야기는 삼초의 내면(발현되지 않은 정체성)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작년 그 아이에게 읽히고 싶다. 수학과 체육에는 몹시 약했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문학 감상력도 좋은 편이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아이. 그 아이는 굴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그 굴 안에는 엄마가 있었다. 애착이 남다른 두 모녀는 굴 안에서 서로만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설득해도 네네 대답만 할뿐 놓지를 못했다. 아이는 게을렀고 무기력했고 비만이어서 외모에 대한 자기비하도 심했다. 저학년도 아닌데 날마다 학교 앞으로 엄마가 마중나와 있었으며 현장학습을 다녀온 날 엄마와 시간이 안맞으면 아이는 울었다. 교문에서 보이는 곳에 자기 집이 있는데도 말이다....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운 활동(특히 체육)이 있는 날은 여지없이 아침에 배가 아프다고 했고, 엄마는 결석 문자를 내게 보냈다.ㅠ 친구들에게서 "어휴...'라는 느낌을 살짝 느끼기만 해도 집에 가서 울고불고 해서 엄마가 여러번 전화했다. 본의아니게 그런 느낌을 풍긴 아이에게는 꼭 사과하게 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아이는 일으켜 세워야 했기에, 학교 상담사님과 시간도 잡아주고 외부기관과도 연결해 주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부터 특기를 키워주도록 집밖 활동을 권장해 봤지만 결국 기어들어가는 곳은 굴속이었다. 안타깝지만 더이상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엄마한테 정신 좀 차리라고 화를 냈으면 좀 달라졌으려나.... 그렇게 하진 않았다. 듣자하니 올해는 결석이 더 잦다고 한다.ㅠㅠ

동물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에서 엄청난 비만 고양이를 보여준 적 있었다. 이 녀석은 움직이기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늘 늘어지게 드러누워만 있었으며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 했다. 이 책의 삼초는 TV속 그 고양이보다 더하다. 스스로가 움직임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잊은 듯하다.

한편 또나마을의 재능또나들(정의에 불타는 무술맨 바로착, 논리 수학에 강한 미리알, 걱정이 많지만 언어재능이 뛰어난 또마레, 정신 사납지만 음악연주를 잘하는 릴리아)은 지진을 감지하고 그 근원을 찾아 숲으로 들어간다. 놀랍게도 숲은 좀좀넝쿨이 온통 휘감고 있었으며 휘감는 힘과 속도는 갈수록 강해졌다. 그 가운데에 넝쿨에 휘감긴 한 덩어리가 바로 근원이었다. 또나들이 목숨을 걸고 넝쿨을 제거해주자 그 안에서 나온 또나의 이름은 '천성이'ㅎㅎ(이와 같이 이 책은 작명에서 작가의 의도를 다 볼 수 있다. '또나'도 그렇고.)

다시 삼초에게로. 이 집에 새로 들어온 강아지 팔랑이는 특유의 친화력과 오지랖으로 삼초를 어떻게든 움직이게 해보려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게 해버렸다. 이제 진짜로 못 움직이는 건가? 오히려 이 일로 삼초의 움직임 본능이 살아난다. 삼초는 비로소 캣타워에 올라가 좌중을 굽어본다.^^

결국 무엇인가? 한심한 인종에게도 잠재력은 있다. 그러나 그걸 혼자 끄집어내기는 너무 어렵다. 천성이를 억지로 강가로 끌고간 또나들, 사고이긴 했지만 삼초를 계단에서 떨어뜨려준 팔랑이. 사람에게도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사랑의 채찍질(아니다, 폭력적 느낌이라 말을 바꾸겠다. 자극제!)가 되어줄 존재.

난 작년에 그 엄마나 아이한테 좋은 말로 권유만 하지 말고 뭔가 쎄게 충격을 주어야 했던 것일까...ㅠㅠ 자식들도 언젠간 깨닫겠지 하지 말고 얼굴에 얼음수건이라도 문질러 주었어야 되는 거였나....^^;;;;

정답은 없으니 적절한 지점과 상황에 맞는 방법이 있을 뿐. 뭐라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건 내가 넝쿨에 얽혀있을 때 그걸 끊어준 존재라면 난 고마워 할 거라는 거. 함께하는 이들은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늪에 빠져 침잠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들이 힘을 내어 걸어나오기를 빈다. 아이들 중에 그런 아이가 있어 이 책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의미있는 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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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선생님과 오싹오싹 귀신 학교 달고나 만화방
남동윤 지음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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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윤 작가의 귀신선생님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첫작품 <귀신 선생님과 진짜 아이들>을 읽고 드디어 아이들과 함께 읽을만한 만화를 만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보는 눈은 누구나 비슷한 것인가, 작년에 개정된 3학년 국어 교과서에 들어갔다고 한다. (3학년을 안 맡아서 그 사실을 이번에 알았음^^) 와~~~ 그럼 가을에 있는 우리학교 독서축제 때 강사로 모셔도 되겠다. 우리학교는 해마다 3학년을 대상으로 작가와의 만남을 하기 때문이다. 이 실무를 함에 있어 학교는 때로 참 갑갑한 곳이다. 구차한 이야기는 생략. 하여간에 성사될지 안될지도 모르면서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지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ㅎㅎ

두번째 <귀신 선생님과 고민해결>에 이어 세번째 나온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이전작들의 인기를 뛰어넘을 듯하다. 하지만 내게는 큰 장벽이 있는 책이었다. 그건 내게 시각정보 인식장애가 있다는 점이다.^^;;; 난 미로책이나 윌리를 찾아라 류의 숨은그림찾기 책이나 매직아이 같은 책들에 매우매우 취약하다. 과학책이나 지도책 같은 정보책들도 적당한 판형에 글과 그림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어야지 큰 화면에 여기저기 구석구석 정보가 흩어져 있으면 그걸 인식하는게 매우 힘들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이들은 나랑 달랐다. 그냥 사진을 찍듯이? 쫙 흡수하듯이? 정보를 읽어냈다. 빠르게 파악하진 못하는 아이들도 여기저기 들여다보며 좋아하긴 했다. 이 책도 판형이 좀 큰 편이다. 만화 특유의 칸 분할도 있긴 하지만 펼친화면 가득 들어간 한 컷짜리 장면이 상당히 많다. 거기에 구석구석 들어찬 각종 귀신들, 거기에다 작가가 제시하는 퀴즈 문제들까지.... 아, 시각정보 인식장애 아주머니 눈이 해롱거린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바로 이런 점이 매력이지!!^^ 책정보를 읽어보니 작가는 수많은 놀이책들을 구해서 읽어보고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귀신 학교를 탐험하는 놀이책' 쯤 된다고 할까? 놀이를 표방하니 스토리는 학급의 모든 아이들의 사연이 담긴 전편들에 비해서 살짝 약해진 감이 있지만, 유머는 그대로, 상상력은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4학년 1반의 아이들 중 오싹오싹 귀신학교를 탐험하게 된 아이는 동식이와 소민이 둘이다. 지각해서 뛰어가던 지각대장 귀신과 부딪힌 아이들은 지각대장과 함께 귀신학교로 가는 길에 발을 디딘다. 지각대장의 반은 15학년 2반. 귀신학교답게 길이 너무 험난하고 멀어 찾아가기도 힘들다. 택시를 부르자 등장한 건 저승사자가 모는 배.(배와 저승사자 모두 '사자'의 형상ㅎ) 이 '택시'는 좁고 험난한 물길을 헤치며 귀신과 아이들을 싣고 교실을 찾아간다.

배 안에서 소개한 오싹오싹 귀신학교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분노 귀신을 포함한 모든 귀신을 차별없이 받고 있어. 그것이야말로 학교의 진정한 역할이라 생각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뜻 때문이야. 분노귀신들을 통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444반을 만들긴 했지만..... 모범 귀신만 받는 다른 귀신학교와 비교하면 우리 학교는 분노귀신이 무서워서 입학을 꺼리는 귀신들이 많아. 그래서 나도 손님이 계속 줄어들고 있지..."

말하자면 귀신학교의 대안학교 쯤 되는 셈인가... 그래서인지 곳곳에 복병들이 숨어있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일행은 그 무서운 444반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심술을 부리는 그들과 맞서 싸울수록 그들은 더욱 커지고 강해질 뿐이었다. 그때 지각대장이 그들을 안아주었다. 너희를 미워하지 않는다며, 너희를 이해한다며.... 그러자 그들의 기세와 표정이 달라졌다. 교장샘은 떨어져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리고 444반의 폐지를 선포하셨다.

이 장면을 읽는 내 마음은 좀 복잡했다. 이상적으로는 작가의 시각이 백번 옳다. 그러나 그 해결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물론 한권의 만화에서 그 과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으리라.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 시리즈 10권까지 내는게 목표라고 하셨는데, 그 중의 한 권에서는 그 지난한 과정을 그려 주시려나? 창가에 붙어 울먹거리며 "그냥 도... 도망가요" 하시던 담임선생님은 아무 것도 안하셨을까? 제 분에 못이겨 주먹으로 창문을 깨고 피를 흘리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복도에 흩어진 유리조각을 쓸고 또 쓸다 어두워져 퇴근하던 내 마음을 읽어준 사람은 있었을까? 어두운 퇴근길에서 약 잘 챙겨 먹으라며 전화하던 내가 그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을까? 잠시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하지만 원론은 동의한다. 격리와 처벌은 절대 능사는 아니다.
(또한 귀신학교가 학교라고 현실의 학교에 바로 줄긋기는 오버일 수도 있겠다. 사회의 문제로 크게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스포1-어차피 리뷰 전체가 스포지만 공개하면 안될 거 같은 스포) 귀신 선생님은 언제 나오시는 건가? 했는데 마지막 이야기에서 드디어 나온다. 그것도 귀신들의 우상으로.... 하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아이들! 그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스포2) 선생님 손에 이끌려 간신히 이승으로 돌아온 동식이가 집에 도착한 밤, 마침 동식이네 집의 제삿날이었다는......^^;;;;

독서 시간에 떠들고 집중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세운 원칙은 '1인 1책'인데, 이 책을 읽을 때는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퀴즈든 놀이든 혼자 하면 뭔 재민겨. 도서실에 이 책이 좀 여러 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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