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가는 계단 - 제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화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303
전수경 지음, 소윤경 그림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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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복면가왕에 10cm의 권정열 씨가 나와서 불렀다는 'Who are you'를 들었다. "너무 잘 부른다"고 딸이 감탄해서 들어봤는데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ost라고 한다. 난 그 드라마를 못 봤다. 그런 내용과는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 근데 왠지 가사에 찡했다.
"내가 꼭 찾아볼게.
내가 널 알아볼게.
니가 있는 곳 어디든
모습이 어떻든
꼭 알아볼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그냥 소멸이 아닌 재회의 약속이길 원하는 것은 어떤 세계관을 가졌든 동일한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물리학을 들고 나왔다. 이른바 '평행우주이론'

학교 다닐 때도 이과 쪽 과목에 약했고 졸업 후에도 물리학 쪽으론 담쌓고 살아왔기에 내게는 생소한 분야였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부러웠다. 동화를 쓰는 일이 생활 중의 감성으로도, 때로는 치열한 취재로도 이루어지지만 이처럼 작가의 관심사와 지식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은 또 새롭게 느껴졌다.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롭고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아픔과 외로움, 이별과 만남, 슬픔과 희망을 다루었다는 점이 참 놀라웠다.

작가가 의도한 바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과학이 우주의 현상을 밝히는 학문임과 동시에 불확실성과 불가사의함을 알려주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도저히 알 수 없음. 포기. 인간의 한계. 이것을 과학이 인정한다는 생각도.

이 책의 무대는 월드아파트 101동이다. 여기엔 어릴적부터 함께 자라온 13살 친구 3명이 있다. 그중 지수. 3년 전 여행지에서 부모님과 동생을 한꺼번에 잃고 삼촌과 둘이서 산다. 중간에 몇년 외국살이를 하다 와서 학급에서 관계맺기 어려워하는 민아, 그리고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절대음감 가수지망생 희찬이가 있다. 이들은 공통 관심사도 없고 취미도 특기도 다 다른데 늘 함께다. 그런게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냥 인정해주고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함께가는 것.

지수의 고통을 어찌 짐작하랴. 삼촌의 눈물어린 사랑도 친구들의 우정도 있지만 때로 몸에까지 침투하는 마음의 아픔을 어쩌지는 못한다. 그럴수록 지수는 물리학이라는 관심사에 더욱 집착한다. 폐소공포증으로 엘리베이터를 못타는 지수는 20층까지 매일 걸어다니다 7층 할머니의 집에 즉석 초대를 받고 단번에 친구가 된다. 할머니 집엔 물리학 책이 가득했고 말과 눈빛이 통했다. 그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서로의 아픔과 그리움을 그저 같이 느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세 친구들은 서로 다른 목적과 전제로 사건을 추리한다. 이 책은 추리과정도 꽤 긴박하다. 그러나 범인이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일반적인 추리물과는 다르다. 할머니는 자취를 감추었다. 수사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디선가 지수와 통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지수가 믿는대로일 것이다. 독자가 믿는대로이기도 할 것이다.

할머니가 남긴 단서를 푸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모스부호까지 등장. 작가의 박식함과 그걸 치밀하게 연결해가는 방식에 감탄했다. 중간에 계단 비상등을 통한 연결자 할아버지가 등장한 장면에서 살짝 깨는 느낌이 있었지만 만유인력, 양자역학, 카오스, 파동의 효과 등 여러 물리학 이론들을 각 장의 제목으로 내용과 긴밀하게 엮어낸 구성은 대단하다 여겨졌다.

나도 과학에 관심을 좀 가졌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과학자는 겸손해진다고 했다. 광대한 우주와 그 운영, 그 너머를 누가 알 수 있을까? 나는 그 질서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평행우주이론도 밝힐 수는 없지만 가능성의 하나일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짐작하는 차원에는 한계가 있다. C.S.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의 '마지막 전투'의 마지막 장에서 말했듯이 "나로서는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새로운 장이 이전 장보다 위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이런 주제를 말하려 한 것 같지는 않지만 독자는 각자 자신의 생각을 다른 각도로 펼쳐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좋은 책일수록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수가 우주 너머 그리운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며 잘 자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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