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숲에는 누가 살까 웅진책마을 96
송언 지음, 허지영 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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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도서관행사를 앞두고 했던 설문에서 '아이들이 만나고 싶은 작가' 1위를 차지했던 송언 선생님. 털보 선생님과 꾸러기를 다룬 작품들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인기다. 그건 주로 실제 모델을 두고 쓴 이야기들이다. 털보 선생님은 당연히 작가 자신이고 선생님과 함께 했던 많은 제자들이 등장인물들로 살아났다. 하지만 선생님은 퇴직하셨고, 이젠 다른 유형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나는 예상했다. 왜냐하면 그런 작품들은 현장감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이 쓰시기도 했고. 내 예상이 적중한 건지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특히 이번 책은 완전히 새롭다. 반가웠다.

제목을 보고는 창작 옛이야기책인가 했는데 우화집이었다. 우화라니 재미있는 시도다. 작년에 4학년 아이들과 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하면서 처음 도전한 장르가 우화였다. 로이스 로리의 '구니 버드' 시리즈를 읽고 시도하게 되었던 것인데 우화는 아이들과 다루기에 적당한 장점이 있었다.
1)의인화한 동식물이나 사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 아이들은 주로 동물 주인공을 선호함
2)교훈을 주는 주제를 담기 때문에 인과관계와 내용의 건전성(?)이 보장된다 - 그러지 않으면 허무맹랑 엽기 퇴폐 등 온갖 눈살 찌푸려지는 내용들이 도배되어 애써 수업하고 기분 망치기 일쑤다.

이 책이 그때 나왔다면 읽어주고 수업했을 것 같다. 이솝우화 같이 오래 전승되어 온 우화와 현대의 작가가 쓴 우화를 비교하며 들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목차가 독자 대상별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친구가 필요한 아이에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를 먼저 정하게 하고 그에 맞추어 스토리를 짓게 했다. 독자 대상을 정하게 하고 스토리를 짓는 방법도 이 책을 읽어준다면 가능한 시도일 것 같다.

작가가 정한 독자 대상에 따라 제목을 '초대장'이라 지은 것도 뭔가 감동적이다. 각 초대장마다 두 편씩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1. 첫번째 초대장 :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노는 것, 특히 여럿이 어울려 노는 것의 가치를 귀하게 보는 내용들이다. 특히 두번째 이야기 [참새네 학교]에서는 참새 영감 선생님이 "짹짹"만 가르치고는 나가서 놀라고 한다. 사람들은 왜 날마다 공부, 공부 하는 걸까요? 라고 어린 참새가 묻자 참새 영감이 대답한다.
"어리석은 것들이라 그렇단다. 더 배울 필요가 없는데 더 배우려고 덤비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지. 자기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배워도 되건마는 도대체 왜들 그 난리법석을 떨어 대는지 당최 알 수가 없구나."
잘못 들으면 평생 배움의 필요성을, 공교육의 의미를 부정하는 말 같아서 헉! 스럽기는 한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학력 인플레에 빠진 한국 사회를 너무나 잘 꼬집은 말이다. 우화의 역할인 풍자를 가장 잘 살린 작품이라 하겠다. 이어진 참새영감의 말이 더욱 잘 보여준다.
"그놈의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구나. 남보다 으스대고 거들먹거리면서 살고 싶은 욕심 말이다. 한세상 살고 나서 저승으로 떠날때가 되면 그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란 걸 알게 될 터이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은 걸 어쩌겠느냐."
그렇다. 공부가 무슨 죄가 있으리. 욕심 때문에 하는 공부. 그게 세상을 더 망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지 않았는가. 심지어는 교실 안에서도 본다. 공부 잘하는 헛똑똑이를. 과거에 그랬던 아이들이 지금 어른이 되어 만들어가는 숨막히는 세상을 보며 절망한다. 아주 강력한 우화다. 선생의 한 사람으로 가슴이 철렁했다.ㅠ

2. 두번째 초대장 : 친구가 필요한 아이에게
이중 [원숭이의 세 친구]에는 약간 이의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 친구들의 우정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들이 실수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거짓말을 하고 파묻는 걸 도와달라고 하는데, 한 친구는 안된다며 가버렸고 두 친구는 걱정하면서도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두 친구의 우정을 칭송했다. 나의 기분이 쎄해지는 순간, 처음에 가버렸던 한 친구의 우정도 칭송하고 끝나서 그나마 좀 낫기는 했다. 이 이야기는 조금 위험한 교훈을 담았다고 본다. 악행에 가담하는 건 우정이 아니다. 이 이야기만은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이어진 [여우 씨와 튤립나무]는 참 따뜻한 우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3. 세번째 초대장 : 가족을 아끼는 아이에게
이 장은 눈물겹다. 가족의 달이나 가족 주제의 수업 때 읽어주어도 좋겠다. [북극곰과 늑대]에선 자식을 지키는 모정을, [마지막 소원]에선 부모가 버리고 간 아이를 대신 키운 할머니의 사랑을 그렸다. 찡하고 눈물이....ㅠ 부정, 모정은 본능인 줄 알았는데 요즘의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아닌 것 같다. 부모라고 자식 사랑을 기본적으로 갖춘 것이 아니다. 그런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는 정말 눈물겨웠다.

4. 네번째 초대장 :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에게
'이건 이래서 그렇단다' 류의 이야기로, 나팔꽃이 메꽃보다 나중에 피는 이유, 매미가 찢어지게 울어대는 이유를 담았다. 납득(?)과는 별개로 재미있었다.^^

5. 다섯번째 초대장 :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에게
아이들이 가장 선호할 장이라고 생각된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재화나 패러디 되는데, 이 책에선 [으뜸 거북이와 멍청한 토끼]라는 제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왜 토끼는 번번이 지는걸까? 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 재미나다.
[긴 꼬리 원숭이는 어디로 갔을까?] 이 이야기가 전체 작품 중 가장 난해해 보였다. 코끼리의 뱃속은 뭘 비유한 걸까? 혹시 나를 향한 화살이 아닌가 자꾸 돌아보는 걸 보니 뭔가 찔리는 게 있나보다.^^;;;;

6. 여섯 번째 초대장 : 새 세상으로 향하는 아이에게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아이들보다도 어른의 가슴을 두드릴 것 같은 이야기였다. 특히 [여우 씨와 모자]에서 굴속에만 처박혀 있다 간만에 세상에 나와보고 초라한 마음에 다시 굴 속에 처박힌 여우에게 나는 너무나 동질감을 느꼈다.
아우 씨, 왜 내 얘기를 하고 그래. 그렇지만 어떡해. 새 세상을 탐색하기에 난 너무 게으르고 용기가 없는걸.... 흑, 슬프다.ㅠ
[너구리와 까치]가 최종작품으로 들어간 것은 참 의미있다고 본다. 세상을 보는 눈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겨우 열흘 꽃피우고 꽃이 진 뒤에 개나리가 세상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너구리와, "이보시오, 너구리 양반.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 마시구려." 하면서 "내 눈에는 온갖 것들이 다 아름답게 보여서 좋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보아도 좋구나!" 하는 까치. 이들의 삶과 주변에 끼치는 영향은 어떻게 다를까? 나는 어떤 쪽에 속할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현장에서 물러나며 송언 선생님의 털보선생님 이야기는 이제 막을 내렸는지도 모르지만(아닐수도^^) 뒤이어 이런 작품들을 펴내시는 것에 "아직 죽지 않았어!" 같은 든든함을 느낀다. 이야기주머니와 필력을 가진 작가는 어디에 있어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시는구나! 덕분에 재밌는 이야기를 읽었고 여러가지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언제 써먹을지는 알 수 없지만.^^;;; 몇년 전 우리학교 작가와의 만남 때 먼발치서 잠깐 뵙긴 했지만 이 책을 쓰신 이야기를 작가와의 만남으로 들어보면 참 재미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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