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아이 - 2021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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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영화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읽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다만 책이 널리 읽히면 많은 이들이 결말을 알게 되니, 스포가 범람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겠다는 점이 좀 걱정된다. 하지만 어디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별 걱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정말 결말이 미치도록 궁금한 책이다. 하지만 결말까지 읽고 나면 알게 된다. 결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가 죽였느냐는 작가의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진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진실은 얼마나 쉽게 그 모습을 바꿔 둔갑하며, 얼마나 쉽게 그 크기가 팽창하며, 얼마나 쉽게 꼬리에 꼬리가 달라붙으며, 원래 단순했던 모습은 간 데가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기괴한 형체로 우리 앞에 서게 되는지. 진실 앞에 선 우리들을 비추는 거울 같은 이야기다. 그 거울 속 모습은 참혹하다.

비록 영화가 나오면 스포가 난무할지라도 이 리뷰에서 스포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작해 본다. 나는 스포를 개의치 않고 리뷰를 쓰는 스타일인데 왠지 이 책의 결말은 입밖에 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남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서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간 너무 피곤해 불도 못끄고 잠에 빠져들면 한밤중이나 새벽에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곤 했다. 그럴 때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폰이나 뒤적거리며 잠을 청하곤 했는데, 하필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알쓸범잡>을 불러왔다. 깜깜한 새벽, 프로파일러가 말해주는 강력범죄자들의 경악할 이야기들을 들으며 잠을 청하고 있다니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프로파일러는 내게 알려줬다. 악인은 있구나. 어쩔 수 없는 환경이 그를 죄악으로 몰아붙인 게 아니고 그냥 저 자는 악하구나. 저런 자들을 사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런가하면 악으로 몰아붙여진 이들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뭔가 실수한 점, 미숙한 점, 잘못 판단한 점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점이 발가벗겨지고, 확대되고, 억측이 끼어들고, 변형되어 재생산된다. 결국 엄청난 괴물의 모습으로 내몰려진다. 누구의 문제인가?

이 책에선 두 여고생이 나온다. 그 중의 한 명 서은이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 주연이는 지금 살인 용의자다. 이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면서 1인칭 시점이 섞여있다. 장마다 다른 이들이 인터뷰 형식의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그걸 읽고 있자면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 진실은 무엇인가? 진실은 단순한가? 그렇다고들 한다. 하지만 진실은 한 면에서만 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 자기 각도에서 본대로 말한 것이 오해였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본 사람을 꼭 비난할 수만도 없다. 다만 자기 시각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이 아쉬울 뿐.

진실을 알기는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무척이나 조심해야 한다. 그 조심의 틈을 타 자신의 악행을 가려버리는 악인이 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참 무섭고 어지럽다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든다.

나는 대의보다도 눈앞에 닥친 일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이라서, 작가의 주제도 주제지만, 이 인물들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서은이, 불쌍해서 어떡해. 서은이 엄마, 이제 어떻게 살어. 주연이, 얘를 어떡하면 좋아. 그리고....ㅠㅠ

가상인물일 뿐인데 이렇게 가슴을 흔드는 작가의 필력은 이제 놀라운 경지에 오르신 것 같다. 가장 처음 읽었던 동화 <악당이 사는 집>도 좋았고 이후 나온 청소년소설도 괜찮았지만 이 책이 가장 속도감있게 한달음에 읽혔다. 물론 힘들게 읽었지만.... 영화로도 잘 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겠다. 진실이란 인간에게 너무나 큰 주제지만 그래도 한번쯤 우리가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게....

충격적인 제목의 이 책은 엽기가 아닌 아픔이 그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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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2 - 조선의 왕을 만나다 쏭내관의 역사 인문학 2
송용진 지음 / 지식프레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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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궁궐에 대한 공부와 지식이 대단한 걸로 알고 있다. 연수도 많고 책도 꽤 있고.... 나는 어쩌다보니 처음 접해봤다. '궁궐'이라는 게 내게는 그리 관심있는 소재가 아니었기 때문인것 같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에 몇 번 가본 정도? 그것도 궁궐 자체에 관심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주요 건물 이름 정도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꼼꼼히 보지 않고 거닐다만 왔었다. 책을 읽어보니 궁궐 구석구석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구나 싶다. 


특히 이 책은 '궁궐'이라는 소재를 넣어서 쓴 '조선왕조사'라 하겠다. 전각별로 사건을 기술한 <궁궐1>도 흥미로울 것 같은데 나는 이 책이 더 끌렸다. 역사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조선왕조사는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궁궐과 어떻게 연결했는지 궁금했다. 


읽다보니 조선왕조사를 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임이 드러남...ㅎㅎ 만화로 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사 이야기>라는 어린이 역사책을 읽은 정도인데...^^;;;; 그래도 이 책 또한 한 권에 조선시대를 다 넣다보니 개괄적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왕조사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궁궐 부분은 생소한 내용이 많았다. 어느정도 알고 있는 내용에 잘 모르는 내용이 첨가된 이 정도의 책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지식 플러스 알파. 배움이 일어나기 좋은 조건이다.^^ 


모든 내용을 궁궐에 맞춰 기술한다는 게 너무 끼워맞추기 식인거 아닐까 했는데 그런 느낌 없이 자연스러웠다. 왕과 그 가족이 살았고 정사가 이루어진 곳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당시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건물들도 꽤 있다는 걸 알게됐다. 그러나 역시 궁궐은 직접 가봐야 맛이겠다. 이 책을 주교재로, 방문할 궁궐에 대한 내용을 잘 체크해 놓은 다음 책을 가지고 찾아가서 확인하며 답사하면 정말 산지식이 될 것 같다. 


왕조사를 기반으로 한 책답게, 각 페이지 옆에 단을 넣어 본문에 기술하는 내용의 해당 실록을 발췌해 넣었다.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전에 조선왕조사를 읽으면서는 대체 '권력'이란 무엇인가 생각했었던 것 같다. 권력을 위한 암투에는 부모자식도 없구나. 부모가 자식을 죽이거나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는 걸 보니. 권력자들과 그 주변인들의 삶이 몹시 불행해 보였다. 그리고 꽤 많은 죽음이 의문사(?독살)이 아님가 하는 암시도 많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내용이 강조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언급은 된다. 소현세자와 경종 등... 그 외에도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도로 언급되는 죽음들도 있다. 궁궐에서 제 명대로 살다 간 경우는 특별 케이스였고 대부분 죽고 죽이는 모략과 공포 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간은 참 무서운 존재고, 그렇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권력이다.(그리고 돈이겠지) 


읽다보면 특별히 드라마틱한 왕들이 더 돋보인다. '드라마틱' 하니까 드라마로 많이 제작되었을 것이다. 건국에 관련된 태조와 태종이 당연히 그렇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도 그렇다. 그 외에 특별히 마음이 더 가는 왕으로는 인종이 있다. (문정왕후를 다룬 '여인천하'라는 드라마에서 매우 착하게 잘생긴 배우가 연기했던 기억이 남) 다음으로는 정조다. 얼마나 파란만장했을까 연민이 느껴질 정도다. '이산'이란 드라마에서 세자를 낳았으나 세자도 죽고 자신도 죽어간 의빈 성씨 역할로 한지민 씨가 나왔던 것도 읽다보니 기억났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도 이정도니 아마 조선왕조사는 수많은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화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파란만장하다. 인간사가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궁궐을 보면서 그 역사의 현장과 인물을 떠올린다. 우리도 그 시각으로 역사를 보면 종이에 박혀있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러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기기 좀 더 쉬울 것이다. 저자도 그것을 바라고 이 책을 쓰시지 않았을까. 쓰기 쉽지 않은 책이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덕분에 궁궐에 가면 볼 것들, 느낄 것들이 더 늘어났다. 근데 언제 가보나.^^;;;; 


(읽다가 오타인 것 같은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세조편 82쪽에서 "세조는 숙부인 효령대군을 가까이했다. 효령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로 불교해 심취해...." 라고 되어있다. 세종이 아니라 '태종'의 둘째 아들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확인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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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두 체험 스콜라 어린이문고 35
정연철 지음, 조승연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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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학교가기 싫어."
"그래도 가야지 어떡하니.
니가 선생인데."
이런 유머가 한참 돌더니만, 딱 그 유머가 떠오르는 동화가 나왔다.^^

너무나도 흔한 '체인지' 화소를 사용했지만 느낌은 전혀 흔하지 않다. 색다른 인물설정 때문일까.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자주 웃기고 가끔 찡하기도 한다.

체인지된 인물을 볼작시면, 한명은 4학년 박찬두. 제목 속의 그 아이고 또 한명은 찬두의 담임 김웅(별명 웅달샘) 선생님이다. 제목을 해석하자면 웅달샘이 제자인 박찬두가 되어 그의 삶을 체험해보는 이야기다. 왜 제목이 선생님 체험이 아니고 박찬두 체험일까? 바뀐 건 둘다 마찬가진데. 내 생각은 이렇다. 인생의 쓴맛은 나이가 많다고 많이 본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도 온실 속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있고, 어려도 쓴맛 신맛 매운맛 떫은맛 다 본 아이도 있다. 찬두가 여기에 해당된다.

거기에 비해 웅달샘은 아직도 엄마 치마폭에 있다. 공부만 잘했지 자기주도성이라곤 없는 그는 부모님이 좋은 직업이라고 등떠밀어서 교사가 됐다. 하지만 적응이 안되고 힘들어 하루하루가 미칠 노릇이다. 딱 저 위의 유머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이 장면은 정말 웃겼다. 반 아이가 대변실수를 했는데 아이 엄마가 아닌 자기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엄마, 지금 학교 좀 와 줘. 빨리!"
"무슨 일인데?"
"애가 똥을 쌌어."
"아빠랑 시골에 와 있어. 지금 못 가."
"아 몰라 몰라.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고?"

이런 그는 학급의 지각생 찬두를 이해하지 못하고 꾸중하지만, 몰래 좋아하는 옆반 미미샘이 특별 부탁한 제자라 함부로 미워하지도 못하는데.... 그러던 중 바로 그 '체인지'가 일어난다. 처음 체인지가 일어나는 장면, 그리고 다시 되돌리는 장면은 아주 만화스럽다. 조승연 그림작가의 그림이 아주 잘 어울리는 장면.

바뀐 그들은 당연히 서로의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어른인 웅달샘이 체험 삶의 현장으로 가야 했고 찬두는 난생 처음 넓고 쾌적한 집, 온갖 투정 다 받아주고 오냐오냐 갖다바치는 부모님, 편안한 침대와 좋은 물건들을 접하게 된다. 웃기면서도 찡한 장면들은 여기서 나온다.

교사이신 작가가 같은 직업인의 캐릭터를 너무 허접하게 잡으신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이 부류에 속한다. 체인지는 쉽게 할 수 있는 상상이지만 난 제자들을 보며 쟤랑 팔자 바뀌었으면 하고 부러워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반대가 더 많았지.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기막히다고, 정말 깊은 수렁 속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몰랐던 상황도 많았을 것이다.

역지사지라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봐야 이해하는 게 인간의 어리석음인 바, 이제 제자를 이해하게 된 웅달샘은 교사로서 성큼 성장하게 됐을 것이다. 이렇게 깨달음의 무게가 교사 쪽에 있다니 이 동화는 어른용인가? 아 물론 어른이 봐도 좋지만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좋다. 올해 온작품읽기로 아이들과 교실에서, 줌에서 책을 함께 읽고 있는데 재밌는 대화 장면을 함께 읽을 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이 책을 읽는다고 상상해보면 아이들이 깔깔 웃을 것 같다. 왠지모를 으쓱함도?

나도 거의 평생이 걸려서야 중간은 가는 교사가 됐다. (되긴 했나....?) 마마보이 철없는 교사 웅달샘!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빨리 되실 겁니다. 애들은 정말 속터져요. 하지만 '어떤 사정'을 이해하고 나면 지도의 길이 더 잘 보이죠. 이해한다고 내 심간이 편해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힘들어지죠. 하지만 가야하는 그 길을 위해 오늘도 한걸음을 걸어요. 에이고오~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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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빌라 별별 스타 마루비 어린이 문학 4
김혜온 지음, 김도아 그림 / 마루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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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존재들이 서로 기대고 연대하는 세상을 꿈꾸며 소중함을 일깨우는 김혜온 작가가 같은 결의 새로운 작품을 펴냈다. 특수교사로서 장애 어린이들과 가족들의 삶을 대변하던 작가의 이번 작품에는 진주빌라에 사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인지능력이 좀 지체된 희나도 있고, 식당을 운영하며 밤낮으로 바쁜 부모님 때문에 늘 외토리로 지내는 은별이, 혼자 사는 아픈 할머니, 쫒겨서 반지하방에 이사온 리아 등이 있다.

세 편의 작품 중 앞의 두 편은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지막 세번째 편에선 이들의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나온 낱말을 빌자면 '인연'이라 할 수 있겠다. 진주빌라라는 공통된 공간에서 서로의 인연으로 서로의 삶에 가 닿게된 주인공들의 아프고 힘들며 또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다.

각 편의 제목이 모두 '별'로 되어있는 점이 상징적이고도 감각적이어서 좋았다. 떠돌이별, 춤추는 별, 모퉁이별. 떠돌이별은 쫓겨 이사온 리아. 리아와 친구가 된 은별이의 이야기다. 망해서 가난해진 아이의 이야기가 동화에서 어린이 독자들의 공감과 관심을 받을 소재가 될까 싶지만 이 책의 느낌은 서늘한 현실 외에 뭔가가 좀 더 있다. 개인적으로 서늘한 현실만으로 끝나는 동화들 앞에서 어질어질했던 경험이 많다. 이걸 동화라 불러도 될까? 반대로 너무 '착한' 이야기도 힘이 없다. 이 책은 그 중간에서 적절한 지점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춤추는 별'에서는 제목 그대로 춤추는 주인공이 나온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다. 예전에 무엇을 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는 할머니의 고운 춤선. 그러나 그걸 보는 사람은 지적능력이 지체되어 글자도 모르고 아무리 해도 학습이 안돼 외토리가 되어버린 희나 뿐이다. 할머니는 사진액자 속의 어린아이 그러니까 딸을 기다리고, 글을 모르는 희나가 읽어준 딸의 편지... 그 대목이 내겐 가장 감동적이었다. 내가 엄마이고 이제 늙어가기 때문일까. 독자들마다 감동포인트가 제각각 다 있을 것이다.

마지막 '모퉁이별'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 모퉁이별은 길냥이었다. 바흐, 까미, 나비, 마리. 이름도 여러 개인 길냥이. 그건 여러 사람들이 그 아이를 살펴줬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쩜, 이 고양이는 이 책의 모든 주인공들의 중심에 있었다. 인연의 중심이라고 할까.

바흐라고 불러준 사람은 떠돌이별 리아. 고양이는 그 이름을 뜨악하게 여겼던 것 같지만 독자들은 이유를 알 수 있다. 난 그 마음에 먹먹했다. 나비라는 흔한 이름으로 불렀던 사람은 춤추는 별 할머니고, 까미라는 이름을 붙여줬던 아이는 박철. 철이는 고양이를 너무 좋아했지만 바로 그점 때문에 고양이는 엄마한테 버림받았지.... 그래도 끝까지 철이는 고양이를 지켜주려 한다. '마리'라는 이름은 양말 신은 것 같다고 해서 은별이가 지어준 이름. 결국 모퉁이별 길냥이는 어디에 정착하게 될까?

진주빌라라는 허름한 공간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서로에게 기대어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작가는 감동적이게 그려냈다. 악연이라는 것도 있지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왜 더 일찍 끊어내지 못했을까 하는 인연도 있지만,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 없듯이 인연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다만 오늘도 내게 찾아온 인연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바라보면 내 삶도 그만큼 소중해질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삶에 지칠 때 내 삶에 이렇듯 새로운 시각을 한번씩 일깨워주는 작품은 참 좋은 작품이다. 아이들에게도 의미있게 가 닿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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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마이트 사계절 아동문고 101
김민령 외 지음, 이윤희 그림 / 사계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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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단편집을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아니 리뷰를 오랜만에 쓴다고 해야 하나. 고학년 단편집을 읽으면 대체로, 씁쓸하고 마음이 어지럽다. 작가들로서는 써야 할 내용을 썼을 뿐인데, 왜 마음이 좋지 않을까. 그건 이 세상이 그렇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나는 외면하고 싶은 거지. 속이 시끄러우니까.

 

좋은 책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사계절 아동문고100권째를 맞이했다. 그래서 특별히 기획한 단편집 두 권 중 한 권이 이 책이다. 훌륭한 전작들을 가진 쟁쟁한 작가진들로 구성되어 있어 관심을 끈다. 이 책에는 일곱 작가의 작품이 담겼다. 각각의 다양한 문제의식도 담겨있다. 그것들이 위에서 말한대로 참 씁쓸하지만 이 책은 따뜻함과 부드러움도 같이 담겨 있었다.

 

김민령 작가님의 고양이가 오지 않던 날은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을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재앙은 너무 큰데 희망도 그에 못지않게 커서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을 붙들고 싶다. 그 희망이 재앙을 줄어들게 한다면 좋겠다.

긴박한 순간에도 엄마의 눈을 피해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지키려던 자매. 진짜 죽을 고비를 넘긴 엄마는 새끼고양이를 받아들인다. 세상에 인간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 했다. 사람을 믿었다가 당한 끔찍한 일들도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무너지려는 다리 앞에서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차를 막아선 사람, 끼니를 못챙겼을 아이들을 보고 막 싸온 김밥을 나눠준 사람. 이런 사람들 또한 실제로 많다. 세상은 살벌하면서도 아름답다. 이 작품을 첫 번째로 배치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강력했다.

 

이금이 작가님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심리묘사는 짧은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제목인 구멍은 판타지로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 판타지란 것이....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던 것이 판타지가 된 세상이 온 것인가. 그냥 판타지는 그때그때, 대상에 따라 달라.” 라고 말하고 싶다. 아빠의 판타지, 엄마의 판타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구멍 앞에 엎드린 뒷모습만 살짝 보여주었을 뿐. 우리집에 저 구멍이 있다면 나는 어떤 세계로 가게 될까.

 

박효미 작가님의 나의 탄두리 치킨에서 탄두리 치킨은 화자인 이동완이 사모하는 정영주의 별명이다. 까무잡잡하고 운동을 잘하는 정영주는 남학생들로 구성된 축구팀에 낄 만큼 적극적이고 자신만만하다. 동완이 고백하고 1일째 시작하는 날, 정영주에게 불미스런 큰일이 터졌다. 힘든 내색 없이 또박또박 혼자 감당하는 영주에 비해 동완은 어떻게 도움을 줄지 몰라 어버버하고만 있다. ‘이쯤에서’ ‘대충’ ‘넘어가길바라는 마음은 당사자에게는 상처이고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다. 이렇게 동완이의 연애는 시작도 못해보고 끝났다.

 

상병차포마김선정 작가님의 이 제목을 지그시 보고야 장기말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역시 경험과 아는 것이 많아야 작품을 잘 쓸 수 있다. 장기로 이야기를 쓰시다니 작가는 장기도 좋아하시나보다. 나는 각 말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정도밖에 모르고 누구랑 두어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각 말의 이름과 맞춰 진행되는 이야기가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런게 이야기의 맛이지. 학교에 가기 싫다는 나에게 학교에 가기 싫었던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 이제 학교가는 게 꽤 괜찮아질 것 같다. 날마다 새로운 기대도 생기고 말이다.

 

김중미 작가님의 다이너마이트는 표제작이다. 표제작이 되기에 적절하게 간결하고도 인상적인 제목이라 생각한다. 노래 제목과 같네? 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거였다. BTS의 다이너마이트! 도훈이의 학교에는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이 많고 도훈이도 그중의 한 명이다.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고 아빠는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며 장애인이고 두분은 이혼했다. 사연은 기구하지만 모두 착한 사람들인 것 같다. 도훈이도 그렇다. 여리고 여성적인 면이 많아 따돌림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다이너마이트 춤을 추며 노래 가사처럼 내 주위 사람들을 환하게 비추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불꽃이 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어둠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담임인 김현아 선생님의 격려 때문이다. 교사가 긍정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야기도 많기 때문에 참 고맙게 느껴지는 반면에, 내 모습을 비춰보니 자신없었다. 나는 코로나 시대에 가정방문을 할 만큼 아이들을 깊이 찾아가는 교사가 아니어서. 세상의 김현아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면서 내게 주어진 격려의 역할을 한번이라도 더 수행해야겠다 마음먹어본다.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김태호 작가님의 멍든 하늘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존재하는, 그래서 가끔 참사로 언론에 보도되는 아동학대 이야기다. 그들이 자신이 갇힌 수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구덩이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 비좁은 지옥이 세상의 전부인 삶을 살다가 죽어간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아프다. 참담한 현실은 생각보다 참 많은 것 같다. 그 수렁에서 혼자는 벗어날 수 없으니 주변에서 도와줘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지막 작품은 박하익 작가님의 제목도 발랄한 5학년 1반 연애편지 사건이다. 난 솔직히 연애편지, 연애사건 별로다. 하는 건 다 좋은데 좀 요란떨지 말았으면 좋겠고, 세상사가 그것밖에 없는 듯이 호들갑 떨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은 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도 좀 조용히 고상하게 하란 말이야. 할거 하면서 사귀는 건 불가능한 거야? 왜 온동네 시끄럽게 하고 일상을 방해하면서 요란하게 연애를 해야되냐고.... 나의 성향 때문이지만 난 정말이지 너무나 질색이다. 이런 성향이 흘러 넘치는 아이들을 맡았을 때 평생 중에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것을 표출하는 게 건강한거다 라는 생각으로 참았는데, 겪어보니 지나친 표출은 건강한 게 아니었다. 너무 감추는 것도, 너무 표출하는 것도 건강한 게 아니다. 그저 무엇이든 적당해야 하느니라.... 적어도 연애는 당사자들끼리만.... 주변에 떠벌리지 좀 말고. 연애편지도 본인들끼리만 좀 주고받고. 남의 편지 다같이 모여 보면서 낄낄거리는 그런 몰상식한 짓들 좀 하지 말고.

그 해에 여자아이 하나가 자기 연애편지 내용을 다른 아이가 알고 있다면서 대성통곡을 해서 한참 수업이 지체된 적이 있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달래주고 싶지도 않았다. 상대 남자아이는 다른 반 아이였기에 굳이 불러다 혼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여자아이한테만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현실을 말해준다면, 연애편지를 너는 종이에 썼지만 실제로는 게시판에 쓴 것과 같은 거야. 그런 아이한테 니가 편지를 쓴 거지. 앞으로 또 편지를 쓰려면 그걸 각오하고 써. 그게 싫다면 다음부터는 편지 쓰지 말고 직접 만나서 말로 해.”

이 이야기의 주제가 그건 아닌데, 연애편지 돌려보는 장면이 나와서 옛날의 분노기억이 소환됨.^^;;; 아이들아 부디 건강한 연애를 해라. 너희들의 일상까지 망가뜨리진 말고서로를 세워주고 성장시켜 주는 존재가 진정 귀한 사람이다. 아이들도 서로에게 그런 존재이길.

 

사계절 아동문고 101번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저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는 건데, 그게 어려운 현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 시선들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돌아보는 시선들이 많을수록 희망도 그만큼 커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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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기진맥진 2021-06-07 15:38   좋아요 0 | URL
와 생각도 못했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