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노란 벤치 - 2021년 제27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34
은영 지음, 메 그림 / 비룡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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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이 평범하면서도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고 느낀다.

그 온기 속에서 아이들이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아이들에게 온기를 주는 세상일까.

교실을 가지고 얘기해본다면, 나 어릴적 아침부터 나무와 조개탄을 배급받아 난로를 피우던 교실은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추웠다. 지금은 온풍기 버튼 하나면 금방 훈훈해진다.

그때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선생님 명령이 법이었다. 지금 선생님들은 대체로 부드럽고 명령보다는 권유형 문장을 사용한다. 하지만 왠지, (과거가 아름다운 원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온기는 그때가 더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세상은 서늘하다. 냉기가 지배하는 세상이랄까. 아마 갈수록 더 그럴 것 같다.

 

그 이유를 연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하는 이야기도 그것이다. 각각이던 존재들이 이어지면서, 크리스마스 트리의 작은 전구들처럼 하나하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깜빡 깜빡. 그 깜빡임이 아름다운 책이다. 전류는 강하지 않고 빛의 세기도 별것 아니다. 하지만 불꺼진 트리와 반짝이는 트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 전선이 연결되는 공간을 작가는 아주 감각적이고 예쁘게 설정해 놓았고, 그걸 제목으로 삼았다. <일곱 번째 노란 벤치>

 

이 책 1부의 제목은 평범한 수식이다. 4-2-1=1. 이 수식은 지금 지후의 상황을 알려준다. 지후네 4식구 중 엄마 아빠는 바쁜 사정으로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 그래서 남은 두 식구, 즉 할머니와 지후는 이 노란 벤치에 곧잘 오곤 했다. 지금은 지후 혼자 앉아있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셨기 때문.

 

하지만 지후는 이 노란 벤치에서 여러 존재들과 연결된다. 가장 먼저 봉수. 한쪽 눈 주변만 까매서 해적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마치 웃는 것 같은 표정으로 사람을 반기는 개다.

다음은 해나. 겁없고 당당한 태도로 지후를 여러번 위기에서 구해준다. 이렇게 멋진데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다고....

그리고 할아버지. 길잃은 봉수의 임시 보호자. 사연을 들어보니 봉수는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 동생의 이름.

유모차 할머니. 유모차에 아기는 없다. 혼자 걷기 힘드셔서 유모차에 의지해 공원을 산책하신다.

검은 모자 아저씨. 말없이 공원을 돌기만 해서 좀 무섭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알고보니 아저씨라기보단 형이었고, 좀처럼 말을 하지 않게 된 사연은 참 슬프다. 가정에서 홀로 상처받으며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지후네 아랫집 18층 아주머니. 지후가 사촌동생에게 마귀할멈이라 말할 정도로 못된 인상이다. 하지만 가장 큰 반전을 가진 인물.

 

그리고 악역도 한 명 있다. 그게 현실적이다. 세상엔 확률적으로 악인도 꽤 있으니까. 동물을 학대하는 아저씨. 그가 개들을 함부로 다루는 장면에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 마수가 봉수에게도 뻗치는데, 그때가 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라 하겠다.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는 <일곱 번째 노란 벤치>는 흐뭇하고 따스하며 안정감 있다. 4-2-1=1의 수식은 이제 바꾸어야 할 같다. 이 책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으셨지만 이 따스함의 근원은 마지막 1, 즉 할머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할머니의 보살핌, 그리고 지후를 재우며 조용히 말씀하셨던 할머니의 확신에 찬 말씀이 지후를 지탱하고 서게 했다.

작고 여려 보이지만 속이 깊고 강한 아이야.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동안 바빴던 엄마는 돌아가신 할머니께 고마워하겠지만 이런 것까지는 모를 것이다. 이런 사랑을 주실 할머니들도 점점 줄어들어가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그 연결도 다 끊어져가는 사회니까 말이다.

 

귀찮음이냐 외로움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워낙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 탓에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하지 뭐.’ 라는 생각이 강했다. 요즘 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아이들을 ‘1’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연결을 끊어버리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잔인한 짓. 코로나로 이 단절은 더욱 심해지고만 있으니 어쩌면 좋을까.

 

이 책은 글작과와 그림작가가 힘을 합쳐 독자들에게 온기를 보내주려고 애를 쓰는 느낌이다. 만화를 그리신다는 그림작가는 세상의 따스한 색을 모아 일곱 번째 노란 벤치와 그 주변의 정경을 그렸다. 가끔씩 들어있는 만화 페이지도 정겹고 재밌다.

 

이 책에는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들어있진 않지만 소소한 인물들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모여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담아냈다. 아이들과 함께 읽다보면 각기 어떤 부분에선가는 크게 공감할 것이다. 주인공 지후의 학년인 4학년, 그리고 에필로그에 나오는 1년후 5학년 아이들 수준에 가장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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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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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보면 그 책의 구입자 분포가 성별, 연령별로 나오는데, 내가 보는 책들(주로 어린이책, 교육서적)의 분포는 대부분 4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책의 분포는 20대 남자가 가장 많았다. ? 20대 남자가 많은 책도 있구나.ㅎㅎㅎ 신기해서 검색해보니 이 작가의 책 대부분이 그렇다. , 젊은 취향이구나.

 

집에 책이 있는데도 왠지 안읽고 싶어서 한참을 묵혔던 책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은 후 이 작가의 책을 두 권 더 읽었다.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와 이 책이다. 둘다 괜찮았다. 작가의 섬세한 필체 때문인지, 이름의 느낌 때문인지 여성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남자라고 한다. 오잉, 그렇군.

 

20대 남자가 주 독자층인 이유로 짐작되는 것 중 하나. 주인공의 연령대가 그렇다. 췌장..에선 그보다 더 어렸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대학생, 마지막엔 사회 초년생이다. 이런 책이 나에게 무슨 시사점을 주려나? 하지만 내 아들이 대학생이니 아들 또래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느낌으로 읽어볼까?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젊은이들아~ 세상이 이렇단다 하고 가르쳐줄 만한 것이 나에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메시지를 나는 언제쯤 이해하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 최근이 아닐까? 아니, 과연 이해는 한 걸까?

 

조금의 거리를 두고 민폐나 끼치지 말자 주의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주인공 다바타 가에데는 나와 약간 비슷한 성향이다. 공교롭게 그의 첫 대학 친구가 되는 사람은 정반대 성향의 여학생 아키요시. 이 여학생은 초딩수준의 당위를 가지고 대학수업에서 시간마다 손들고 질문하여 다른 학생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소위 관종이다. 좋게 말하면 순수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 아키요시는 학생식당에서 스스럼없이 가에데에게 말을 걸었고 딱히 친구가 없던 그들은 주로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아키요시의 제안으로 모아이라는 동아리를 만든다. 두사람이 설립자이고 어쩌다보니 한 사람을 더 영입하게 되었고 그 다음은....

 

중간 과정이 생략된 채 지금 시점은 대학 4학년.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다. 가에데도 대량 도전 끝에 겨우 한 회사에 취업이 확정됐다. 이제 남은 대학생활을 좀 여유있게 마무리하려 하는데....

눈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자 가에데의 눈에 그 풋내기 시절, 아키요시와 만들었던 동아리 모아이가 의식되기 시작했다. 꿈같은 이상을 표방하며 만들었던 동아리는 하나 둘 멤버가 영입되기 시작하며 예상과는 다르게 번창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 가에데는 이미 탈퇴한 지 한참 되었다. 설립자이지만 일찌감치 손을 턴 셈이다. 이제 모아이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장 크고 유명한 조직이 되어버렸고, 그 옛날의 이상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남아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정보와 사교 모임. 현실적 필요를 채워주는 거대 조직이다.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소문도 들린다. 가에데는 새삼스러운 사명감(?)에 불탄다. 그 조직을 단죄(?)하겠다는....

 

이 작가는 추리작가는 아니지만 요령껏 복선을 살짝씩만 보여주며 독자들을 궁금하게 한다. 지금의 시점에서 아키요시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고 가에데는 말했다. 아 죽었나보구나 왜 죽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결말에 다다르자 아 이렇게 상처받았구나 그래서 자살했나...? 까지 이르는데.... 내가 예상한 건 너무 흔한 결말이었고 절대로 그렇게 끝나지는 않았다. 극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훨씬 더 좋은 결말이었다.

 

가에데가 본 모아이의 변질, 그래 변질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단죄하겠다고 덤비는 가에데의 가소로움은 또 어떠한가?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모아이는 도처에 있다. 일본의 대학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나의 세대 중년들에게도 있다. 그 모아이를 어쩌면 좋은가? 자신의 밑바닥을 나중에서야 깨달은 가에데는 결국 참으로 가당치 않은 짓을 한 셈이지만, 그렇다고 에이 내 주제에 뭘, 세상이 다 그런거지." 라는 태도는 옳을까? 아들뻘들이 즐겨 읽는다는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우리 중년들의 모습을 생각한다.

 

분노가 격해지다보면 오로지 상대방을 상처입히겠다는 목적으로만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그래 좋아. 너의 목적은 이루었어. 상대방은 상처받았어. 그런데 너는? 너는 얻은 것이 무엇이지?“ 읽던 중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고.... 순수한 이상과 현실의 괜찮은 타협은 어떤 걸까 이런 생각도 좀 하게 되고.... 복잡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꽤 이런저런 생각은 하게 되었다. 좀 늦은 감이 있어도 자신의 꼬라지를 발견하는 가에데는 그래도 꽤 준수한 사람이다.

 

이 작가의 최신작이 알라딘 대문에서 자주 보인다. 노란색 표지의 단편이고 꽤 경쾌한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인 것 같다. 이 책은 안 읽을래. 배아플 것 같아..... 이제 나는 늙은이들이 나오는 책을 읽으러 가보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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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화난 거야!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4
톤 텔레헨 지음, 마르크 부타방 그림, 성미경 옮김 / 분홍고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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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동화라서 저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저학년도 읽을 수 있고 재미있다고 여길 수도 있고 나름대로 해석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렵다는 것이야... 난 어른인데도 말이지....ㅎㅎ 전편인 『너도 화가 났어?』도 어떤 장은 읭? 뭐지? 하면서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는데 이 책도 비슷하다. 그건 작가의 경향인 것 같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는데, 그래서인지 인간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작품 안에 상징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녹여내는 것 같다. 그러니까 당연히 딱 떨어지진 않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란게 원래 그런 거니까!

요즘 감정에 대한 책들이 많고 이름붙이고 규정하는 내용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다른 느낌이다. 이런 감정 어떻게 생각해? 경험해 봤어? 공감이 가? 그럼 니가 한번 이름 붙여 봐. 이런 느낌이다.^^

제목을 보고, 모든 상황이 다 ‘화’로 귀결되는가보다 생각했다. 화의 다양한 양상을 다룬다고. 그리고 “그래, 그 모든 게 ‘화’야.” 이렇게 설명해주는 책일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때론 설명하기 어렵고 규정하기는 더 어려운 감정들도 있다. 물론 그것들을 모아 화라고 퉁칠 수도 있지만 의미는 없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이 책엔 10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겼고, 각 동물들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두꺼비에게 괴롭힘을 당한 동물들은 화를 내지만 두꺼비는 그게 화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동물들도 우왕좌왕한다. 그들의 분위기가 침울하고 심각하다. 자신의 감정이 규정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인가....

다람쥐는 전작에서도 이 책에서도 착하게 나온다. 다람쥐는 떠난 개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애써 개미를 변호한다. 하지만 울고 화내는 벽.... 이건 다람쥐의 또 다른 마음이라고 해석해도 좋을까? 안될 건 없겠지. 내 마음이니까.

뱀은 이래도 화내고 저래도 화낸다. 주변 동물들은 이제 화내는 뱀에게 익숙하여 그러려니 하면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 니말이 맞어~ 해준다. 그러면 뱀은 더더욱 화를 낸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아이를...) 가끔 보았다.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코끼리는 다람쥐에게 춤을 청했다. 하지만 걱정이 있다. 발을 밟거나 돌리다가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람쥐는 화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 코끼리는 점점 위험한 동작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늘 이렇게 춤을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람쥐의 인내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 이게 가능한 경우는 얼마나 될까. 내가 다람쥐가 되어주긴 쉽지 않으니.

사마귀는 파티에 입고 갈 단벌 외투가 찢어져서 화가 난다. 수습하려다 문제만 커져서 더 화가 난다. 자신을 흉보는 동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냥 다 포기하고 모자만 쓴 채 파티에 간다. 그런데 동물들은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자신들이 더 초라하다고 느껴 외투를 벗기까지한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개미 편도 있다. 다람쥐가 찾아오기 전까지 개미 주변에서는 ‘화 덩어리’가 점점 커지며 개미를 무력하게 하고 두통에 시달리게 했다. 다람쥐가 들어와 “나랑 놀래?”라고 하자 화 덩어리는 쪼그라들더니 집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이 장면은 상당히 감각적이다. 이해도 쉽다. 물론 실제가 이렇게 쉽진 않지만, 그 원리에는 공감한다. 혼자서 고통에 침잠해가는 이들은 이렇게 꺼내주어야 한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니 서로서로.

메뚜기는 외투 가게를 한다. 지금은 여름이라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 어째야 할까? 겨울까지 기다리든가, 여름에 맞는 종목을 시작하든가 해야겠지? 하지만 메뚜기는 “오늘 엄청 추워요”라는 표지판을 거는 것처럼 현실을 부정하기만 한다. 스스로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까지 강요하는 셈이다. 여름의 막바지에 메뚜기는 힘겨움을 참지 못하고 가게문을 닫는다. 그리고 외투 더미 밑에 깔려 모든 걸 포기한다. 이 장의 상황은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매우 다양하게 발생되는 흔한 상황이다. 말이 쉽지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백조 편의 주인공은 백조가 아니었다. 백조의 생일파티를 망친 개구리는 백조의 원망을 받았다. 그러면 개구리가 주인공인가? 아니 고슴도치였다. 고슴도치는 백조의 원망을 받는 개구리, 또 백조의 용서를 받는 개구리를 보면서 나는 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던 것 같다. 이 대목도 뭔가 이해가 갈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주목받는 사람 앞에서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초라함? 하지만 고슴도치는 곧 “세상에 그냥 고슴도치는 나밖에 없을거야.” 라며 자존감을 회복한다. 갑자기 그러니 좀 뜬금없긴 하지만 아주 짧은 이야기니까.

마지막 풍뎅이 편에선 풍뎅이와 쇠똥구리 사이에 편지가 오고가는데.... 편지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분노 게이지가 높아지는 걸 보니 편지로 싸우고 있는 듯하다. 누가 더 상처주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다 결국 풍뎅이가 먼저 그만두었다. 답장을 읽지도 않고 밟고 지나가며 무시했다. 마지막 장면. 큰 화면 속 작은 쇠똥구리의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슬프다.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싸우는 편지라도 무시보다는 나은 것이겠지. 이렇게 쓸쓸한 장면을 끝으로 이 책은 막을 내린다.

한편씩 언급하다보니 리뷰가 길어졌다. 그냥 첫인상을 쓴 것 뿐이라 1차적 해석이라고 할까? 생각나는 걸 바로 쓴 것 뿐이다. 해석의 여지는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책은 혼자 읽고 덮어두기보다는 독서모임으로 읽으면 아주 좋겠다. 한편씩 이야기 나누다보면 내가 못본 것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고 그러면 해석이 넓어질 것 같다. 감정에 대해서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전작에 이어 이 책까지 읽으니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은 알 것 같고, 그게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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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젤리와 호리호리 드링크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랑 놀래 1
신양진 지음, 정용환 그림 / 마루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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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비에서 저학년동화 시리즈도 나오나보다. 이게 첫 권이다.

아주 단순하고 기시감 있으면서도 실제 작품에선 그리 흔치 않은 상상이 펼쳐진다. 주인공이 거인이 되는 것. 거의 걸리버 수준으로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이 책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난쟁이 똥자루때문이다.

난쟁이도 싫고 똥자루는 더 싫은데 무려 난쟁이 똥자루라고 놀림받는 아이가 있다. 키가 작은 아람이는 건우 패거리들한테 날마다 괴롭힘을 당한다. 편들어주는 아이는 절친 태우 뿐. 그런데 태우도 못지않게 놀림당하는 아이다. 뚱뚱해서. 둘의 소원은 거인처럼 키가 아주아주 컸으면 좋겠어’ ‘나뭇가지처럼 비쪅 말라 봤으면 좋겠어.’

 

어른들은 말한다. “진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다.”라고. 아이들도 알고 있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거죠? 다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키 큰 사람을 부러워하잖아요. 착하지 않다고 놀림을 받는 사람은 없잖아요? 라고 생각한다.

 

아람이는 어느날 그 듣기 싫던 난쟁이 똥자루를 실제로 보게 된다. 주인공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판타지 속 존재는 다양한데 여기서는 난쟁이다. 자루를 메고 다니는. 그리고 그걸 똥자루라고 부른다. 원래 진짜 귀한 거는 그렇게 부른다나? 사실 그 안에는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웃음사탕이 들어있다.

 

간절하기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람이인데 당연히 사탕을 받았겠지? 거기까지는 좋은데 마치 소인국에 간 걸리버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결말은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아람이는 그동안 머리로만 알던 것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야.”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참 그렇다. 아이든 어른이든, 꼭 찍어먹어 보아야 맛을 알게 된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과, 또 깨달은 후 사후 처신이 중요할 뿐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 과정이 재미나게 잘 그려졌다는 점과 아람이가 그걸 깨닫는 과정 또한 설득력있게 표현되었다는 점.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해소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현실은 잘 바뀌지 않는다. 마음이 바뀌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런데 빠를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기도 하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리하여 아람이는 이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려 하고, 마지막에 태우가 바라던 나뭇가지처럼 비쩍 마른 사람이 되어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책은 끝난다. 아람이가 겪은 과정을 이제 태우가 겪을 차례. 그리고 난쟁이 똥자루는 독자 어린이들 상상에 나타날 차례.

 

다만 한 가지, 내가 독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쑥쑥 젤리호리호리 드링크는 작품에서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작품에 재미를 더하는 장치인 것 같기는 한데 나한테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고 약간 걸리적거렸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빼면 허전했을 것 같고.... 작가님의 고심 끝에 등장한 소재였을 테니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가길 바란다. 좋은 주제, 신선한 상상의 저학년 동화였다. 특히 난쟁이 똥자루의 발상이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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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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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이 나오는 이야기는 대부분 감동적이다. 개가 주는 마음을 내가 잘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느낌을 꼽으라면 이 책을 꼽겠다.

 

이 책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반려견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단선적인 스토리가 아니어서 읽기 초반에 좀 집중을 요한다. 그런 책을 학급 전체에 읽히기는 좀 힘들다. 하지만 그러기에 함께 읽기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6학년 정도면 도전해볼 만하겠다. 중학교 1~2학년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두 화자가 한 장씩 번갈아 서술하는 방식은 가끔 본 적 있어서 익숙하다. 이 책에선 스벤이라는 남학생과 파커라는 여학생이다. 6학년 학급의 학기초. 둘 다 탐색과 적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둘은 개인적 상황도 평범하지 않다. 스벤은 심한 뇌전증을 앓고 있어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모른다. 정신을 잃을 때의 상황에 따라서 큰 부상의 위험도 있기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게다가 첫날부터 발작이 일어나 원하지 않는 모습을 학급 친구들이 다 보고 말았다. 파커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사진관에 복면강도가 들었다. 파커가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중 아빠는 총격을 당했고, 부상은 치료했지만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다. 파커에게 지워진 짐이 무겁다.

 

둘의 공통점은 인생의 무게가 버겁고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있으며 학교생활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다. 그 둘은 서로에게도 호감이 없다. 싫어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러던 중 파커를 더 화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안타깝게 놓아주어야 했던 반려견, 알래스카가 스벤의 개가 되어있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막내동생의 알러지 때문에 입양 보내게 되었는데, 알래스카는 그사이 훈련을 거쳐서 도우미견이 되어 있었다. 맹인안내견처럼 조끼를 입고, 스벤의 위급시에 비상벨을 누르고 그의 곁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파커는 알래스카를 되찾으려 한다. 한밤중에 복면을 쓰고 그집에 잠입한다. 들어간 곳은 뜻밖에도 바로 스벤의 방이었고 둘은 자신에 대한 많은 얘기를 털어놓는다. 파커는 복면을 쓴 채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같은 반의 파커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스벤은 화내지만, 파커는 쓸쓸한 아픔을 또 하나 겪는다. 알래스카를 가운데 두고 둘이 서로의 길을 말없이 걸어갔을 때, 알래스카는 스벤의 뒤를 따라갔다.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하는 알래스카.... 그 마음이 어찌나 공감되던지 파커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괜찮아. 알래스카는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간 거야....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파커는 나보다 더 잘 알았다. 더 이상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이어지는 스토리를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둘이 친구가 되어가는 장면들. 말없이 상대가 필요한 일을 해주는 모습,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상대방을 위해 포기하는 모습, 이런 장면들 속에 아이들의 아름답고 건강한 성장이 보인다. 좋아질 것이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학교도 그렇다. 이기적이며 서로의 약점을 잡고 놀리는 정글이라 생각했다. 학교에서 스벤의 발작이 또 일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파커가 도왔지만 대다수는 구경했고 누군가는 그걸 동영상으로 찍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 동영상은 학급 채팅방에 올라왔고 학교 전체에 퍼졌다. 최악의 상황이다. 충격과 상처 속에서 스벤은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봐도 답이 안보인다. 그저 상처와 분노와 처벌. 그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선 화해와 희망이 나온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고맙고 행복하다.

 

그 감사와 행복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알래스카다.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존재. 딱딱해져 부스러지는 스벤의 마음을 부드럽게 채운 존재. 건조한 딱 한 문장. 이 문장에서 스벤의 마음의 변화가 보인다.

 

알래스카는 날 선택했다.(150)

 

좀 더 읽어보면 마음이 찡하다.

나는 알래스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난밤을 떠올렸다.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알래스카는 언젠가 내가 발작을 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나 때문에 멍청한 덮개를 입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기분이 자주 나쁘다는 것도, 언제든 잘못될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도 알래스카는 내 옆에 있고 싶어했다.

 

마음을 치료하는 건 마음이다. 조건 없는 마음. 그 마음은 개한테도, 사람한테도 있다. 개한테는 원래 있고, 사람은 좀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감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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