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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화난 거야! ㅣ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4
톤 텔레헨 지음, 마르크 부타방 그림, 성미경 옮김 / 분홍고래 / 2021년 8월
평점 :
그림동화라서 저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저학년도 읽을 수 있고 재미있다고 여길 수도 있고 나름대로 해석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렵다는 것이야... 난 어른인데도 말이지....ㅎㅎ 전편인 『너도 화가 났어?』도 어떤 장은 읭? 뭐지? 하면서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는데 이 책도 비슷하다. 그건 작가의 경향인 것 같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는데, 그래서인지 인간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작품 안에 상징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녹여내는 것 같다. 그러니까 당연히 딱 떨어지진 않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란게 원래 그런 거니까!
요즘 감정에 대한 책들이 많고 이름붙이고 규정하는 내용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다른 느낌이다. 이런 감정 어떻게 생각해? 경험해 봤어? 공감이 가? 그럼 니가 한번 이름 붙여 봐. 이런 느낌이다.^^
제목을 보고, 모든 상황이 다 ‘화’로 귀결되는가보다 생각했다. 화의 다양한 양상을 다룬다고. 그리고 “그래, 그 모든 게 ‘화’야.” 이렇게 설명해주는 책일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때론 설명하기 어렵고 규정하기는 더 어려운 감정들도 있다. 물론 그것들을 모아 화라고 퉁칠 수도 있지만 의미는 없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이 책엔 10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겼고, 각 동물들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두꺼비에게 괴롭힘을 당한 동물들은 화를 내지만 두꺼비는 그게 화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동물들도 우왕좌왕한다. 그들의 분위기가 침울하고 심각하다. 자신의 감정이 규정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인가....
다람쥐는 전작에서도 이 책에서도 착하게 나온다. 다람쥐는 떠난 개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애써 개미를 변호한다. 하지만 울고 화내는 벽.... 이건 다람쥐의 또 다른 마음이라고 해석해도 좋을까? 안될 건 없겠지. 내 마음이니까.
뱀은 이래도 화내고 저래도 화낸다. 주변 동물들은 이제 화내는 뱀에게 익숙하여 그러려니 하면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 니말이 맞어~ 해준다. 그러면 뱀은 더더욱 화를 낸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아이를...) 가끔 보았다.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코끼리는 다람쥐에게 춤을 청했다. 하지만 걱정이 있다. 발을 밟거나 돌리다가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람쥐는 화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 코끼리는 점점 위험한 동작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늘 이렇게 춤을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람쥐의 인내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 이게 가능한 경우는 얼마나 될까. 내가 다람쥐가 되어주긴 쉽지 않으니.
사마귀는 파티에 입고 갈 단벌 외투가 찢어져서 화가 난다. 수습하려다 문제만 커져서 더 화가 난다. 자신을 흉보는 동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냥 다 포기하고 모자만 쓴 채 파티에 간다. 그런데 동물들은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자신들이 더 초라하다고 느껴 외투를 벗기까지한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개미 편도 있다. 다람쥐가 찾아오기 전까지 개미 주변에서는 ‘화 덩어리’가 점점 커지며 개미를 무력하게 하고 두통에 시달리게 했다. 다람쥐가 들어와 “나랑 놀래?”라고 하자 화 덩어리는 쪼그라들더니 집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이 장면은 상당히 감각적이다. 이해도 쉽다. 물론 실제가 이렇게 쉽진 않지만, 그 원리에는 공감한다. 혼자서 고통에 침잠해가는 이들은 이렇게 꺼내주어야 한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니 서로서로.
메뚜기는 외투 가게를 한다. 지금은 여름이라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 어째야 할까? 겨울까지 기다리든가, 여름에 맞는 종목을 시작하든가 해야겠지? 하지만 메뚜기는 “오늘 엄청 추워요”라는 표지판을 거는 것처럼 현실을 부정하기만 한다. 스스로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까지 강요하는 셈이다. 여름의 막바지에 메뚜기는 힘겨움을 참지 못하고 가게문을 닫는다. 그리고 외투 더미 밑에 깔려 모든 걸 포기한다. 이 장의 상황은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매우 다양하게 발생되는 흔한 상황이다. 말이 쉽지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백조 편의 주인공은 백조가 아니었다. 백조의 생일파티를 망친 개구리는 백조의 원망을 받았다. 그러면 개구리가 주인공인가? 아니 고슴도치였다. 고슴도치는 백조의 원망을 받는 개구리, 또 백조의 용서를 받는 개구리를 보면서 나는 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던 것 같다. 이 대목도 뭔가 이해가 갈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주목받는 사람 앞에서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초라함? 하지만 고슴도치는 곧 “세상에 그냥 고슴도치는 나밖에 없을거야.” 라며 자존감을 회복한다. 갑자기 그러니 좀 뜬금없긴 하지만 아주 짧은 이야기니까.
마지막 풍뎅이 편에선 풍뎅이와 쇠똥구리 사이에 편지가 오고가는데.... 편지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분노 게이지가 높아지는 걸 보니 편지로 싸우고 있는 듯하다. 누가 더 상처주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다 결국 풍뎅이가 먼저 그만두었다. 답장을 읽지도 않고 밟고 지나가며 무시했다. 마지막 장면. 큰 화면 속 작은 쇠똥구리의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슬프다.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싸우는 편지라도 무시보다는 나은 것이겠지. 이렇게 쓸쓸한 장면을 끝으로 이 책은 막을 내린다.
한편씩 언급하다보니 리뷰가 길어졌다. 그냥 첫인상을 쓴 것 뿐이라 1차적 해석이라고 할까? 생각나는 걸 바로 쓴 것 뿐이다. 해석의 여지는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책은 혼자 읽고 덮어두기보다는 독서모임으로 읽으면 아주 좋겠다. 한편씩 이야기 나누다보면 내가 못본 것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고 그러면 해석이 넓어질 것 같다. 감정에 대해서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전작에 이어 이 책까지 읽으니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은 알 것 같고, 그게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