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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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이 나오는 이야기는 대부분 감동적이다. 개가 주는 마음을 내가 잘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느낌을 꼽으라면 이 책을 꼽겠다.

 

이 책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반려견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단선적인 스토리가 아니어서 읽기 초반에 좀 집중을 요한다. 그런 책을 학급 전체에 읽히기는 좀 힘들다. 하지만 그러기에 함께 읽기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6학년 정도면 도전해볼 만하겠다. 중학교 1~2학년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두 화자가 한 장씩 번갈아 서술하는 방식은 가끔 본 적 있어서 익숙하다. 이 책에선 스벤이라는 남학생과 파커라는 여학생이다. 6학년 학급의 학기초. 둘 다 탐색과 적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둘은 개인적 상황도 평범하지 않다. 스벤은 심한 뇌전증을 앓고 있어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모른다. 정신을 잃을 때의 상황에 따라서 큰 부상의 위험도 있기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게다가 첫날부터 발작이 일어나 원하지 않는 모습을 학급 친구들이 다 보고 말았다. 파커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사진관에 복면강도가 들었다. 파커가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중 아빠는 총격을 당했고, 부상은 치료했지만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다. 파커에게 지워진 짐이 무겁다.

 

둘의 공통점은 인생의 무게가 버겁고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있으며 학교생활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다. 그 둘은 서로에게도 호감이 없다. 싫어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러던 중 파커를 더 화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안타깝게 놓아주어야 했던 반려견, 알래스카가 스벤의 개가 되어있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막내동생의 알러지 때문에 입양 보내게 되었는데, 알래스카는 그사이 훈련을 거쳐서 도우미견이 되어 있었다. 맹인안내견처럼 조끼를 입고, 스벤의 위급시에 비상벨을 누르고 그의 곁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파커는 알래스카를 되찾으려 한다. 한밤중에 복면을 쓰고 그집에 잠입한다. 들어간 곳은 뜻밖에도 바로 스벤의 방이었고 둘은 자신에 대한 많은 얘기를 털어놓는다. 파커는 복면을 쓴 채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같은 반의 파커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스벤은 화내지만, 파커는 쓸쓸한 아픔을 또 하나 겪는다. 알래스카를 가운데 두고 둘이 서로의 길을 말없이 걸어갔을 때, 알래스카는 스벤의 뒤를 따라갔다.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하는 알래스카.... 그 마음이 어찌나 공감되던지 파커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괜찮아. 알래스카는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간 거야....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파커는 나보다 더 잘 알았다. 더 이상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이어지는 스토리를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둘이 친구가 되어가는 장면들. 말없이 상대가 필요한 일을 해주는 모습,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상대방을 위해 포기하는 모습, 이런 장면들 속에 아이들의 아름답고 건강한 성장이 보인다. 좋아질 것이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학교도 그렇다. 이기적이며 서로의 약점을 잡고 놀리는 정글이라 생각했다. 학교에서 스벤의 발작이 또 일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파커가 도왔지만 대다수는 구경했고 누군가는 그걸 동영상으로 찍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 동영상은 학급 채팅방에 올라왔고 학교 전체에 퍼졌다. 최악의 상황이다. 충격과 상처 속에서 스벤은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봐도 답이 안보인다. 그저 상처와 분노와 처벌. 그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선 화해와 희망이 나온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고맙고 행복하다.

 

그 감사와 행복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알래스카다.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존재. 딱딱해져 부스러지는 스벤의 마음을 부드럽게 채운 존재. 건조한 딱 한 문장. 이 문장에서 스벤의 마음의 변화가 보인다.

 

알래스카는 날 선택했다.(150)

 

좀 더 읽어보면 마음이 찡하다.

나는 알래스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난밤을 떠올렸다.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알래스카는 언젠가 내가 발작을 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나 때문에 멍청한 덮개를 입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기분이 자주 나쁘다는 것도, 언제든 잘못될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도 알래스카는 내 옆에 있고 싶어했다.

 

마음을 치료하는 건 마음이다. 조건 없는 마음. 그 마음은 개한테도, 사람한테도 있다. 개한테는 원래 있고, 사람은 좀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감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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