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여왕
윤여림 지음, 이소영 그림 / 사과잼롱롱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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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인 줄 알고 펼쳤는데 80여 쪽으로 글밥이 좀 있는 그림동화책이었다. 그래도 그림을 단순 삽화라고만 부르기엔 아까울 만큼 비중이 높고 매력적이다. 투명수채화의 번짐 효과가 바다라는 배경과 근사하게 어울릴 뿐 아니라 인물들의 개성을 살려주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제목인 ‘바다의 여왕’은 등장인물의 이름이었다. 이야기에서 ‘인물’이란 꼭 사람만이 아닌 것은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 여기서 그 인물은 ‘배’였다. 씨 아저씨의 배였을 시절, 씨 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제 곰의 배가 된 후에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짓는다. 이 책에서 ‘작명’은 상당히 중요하다.

‘바다의 여왕’과 ‘곰’은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 씨 보이였던 시절 주인에게 괄시받고 지저분하며 애물단지 같았던 배는 곰을 만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다. 깨끗하게 단장하고 꼭 필요한 만큼씩만 고기를 잡으며 둘은 유유자적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요렇게 끝나도 좋겠지만 이야기의 스케일이 커지려고 평지풍파가 몰려온다. 말그대로 풍파. 거대한 파도가 몰려와 그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떠밀려 깨어보니 무인도.... 하지만 괜찮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위기는 ‘바다의 여왕’의 엔진 고장이었다. 곰은 노를 저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다 육지에 다다랐는데 거기는 곰의 마을이었다. 그들은 환대받았고 고장도 고쳤다. 하지만 거기서 놀림과 구박 속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존재를 보았으니 바로 ‘사람’ 여자아이였다. 도입부에서 곰이 사람 마을에서 당했던 차별과 판박이 구도로, 이 대목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제 셋이 뭉쳤으니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해져야지. 여자아이가 들려준 ‘바다 고양이’ 이야기도 신기하다. 그리고 작명의 시간이 왔다. ‘바다의 여왕’ 빼고 나머지 둘은 아직도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얘”라고 불렀다고 한다. (곰은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엄마가 없는 것보다도 자기를 “얘”라고 부르는 엄마가 있는 게 어쩐지 더 서글픈 것 같다고 한다.) 이것도 아련하고 짠하게 마음에 남는 대목이었다.

둘은 드디어 서로에게 딱 어울리는 좋은 이름을 생각해 내는데,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그들이 지은 이름 (실제로는 작가의 작명)은 참 예쁘고 감각적이다. 작가의 역량은 이런데서도 발휘되어야 하네.^^

그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곰 마을에서 계속 머무를 수 없었다. 그들은 미련없이 바다로 떠난다. ‘바다의 여왕’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그들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된다. 그들은 바다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바다에서 또다른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될까? 어린이 독자라면 더욱 다채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배제되고 차별받던 존재들이 모여 의기투합하고 그곳을 미련없이 떠나 그들 나름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게 현실에서는 쉽지 않겠지.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그게 가능해야 우리는 꿈을 꾸고 위로를 받겠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학창 시절 감성을 담아 주고받던 싯귀가 오랜만에 생각나는 그림동화책이었다. 동시에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꼭 깎아쳐서 차별을 두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의 모습, 존재들의 깊은 외로움과 그들이 만났을 때의 연대감 등 많은 것을 하나 둘 주워모으며 읽게되는 책이었다. 알라딘 순위에 보니 오늘 기준 ‘100세 그림책 주간 23위’에 올라있던데, ‘100세 그림책’ 분류에도 찬성한다. 어린이들에게도 재미있지만 어른들이 책모임에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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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호텔 ㅣ 노는날 그림책 46
다비드 칼리 지음, 안나 아파리시오 카탈라 그림, 박재연 옮김 / 노는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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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맞는 요즘 날씨에 딱 어울리는 제목과 색감의 그림책을 만났다. 나무의 짙은 고동색과 감과 낙엽의 주황색이 어우러진, 깊은 가을의 색이다. 가을, 그중에서도 11월을 가장 좋아하는 내가 가장 먼저 골라들 것 같은 색감이다. 작가 이름을 보니 다비드 칼리!

읽어보니 이 책은 정보, 생태 그림책의 범주에도 넣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주제는 '겨울잠'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과 그들이 필요로하는 먹이 등. 하지만 재미있는 내용과 따뜻한 분위기가 이 책을 '이야기' 쪽에 더욱 가깝게 했다.

호텔은 보통 여행기간 동안 잠시 숙박을 하는 곳이지만 이 '가을호텔'은 말하자면 장기투숙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잠이니까 말이다. 겨울잠 동물들이 한 가족씩 입장하고 가을호텔은 그들에게 가장 적당한 방을 제공한다. 마멋, 곰, 햄스터, 고슴도치, 거북이, 박쥐, 무당벌레 등... 중간에 배고파 깨어날지 모를 동물들을 위해 먹을거리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이제 가을의 막바지, 즉 겨울의 초입이다. 마지막으로 '기로'가 안보여 모두가 찾는다. 추위에 어떻게 지낼까 걱정하던 그들은 꼭대기층 침대에서 벌써 잠든 기로를 발견했다. '기로'가 어떤 동물인지 궁금한 것도 이 책의 재미라서 밝히지 않겠다. 나는 맞추지 못했는데, 무척 귀여운 동물이었음.^^

각 투숙객들이 잠든 모습을 하나씩 비춰주는데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좋지? 이 책의 부제는 '단잠을 대접합니다' 이다. 먹는 것도 아닌데 대접이라니? 근데 난 이 표현에 찬성이다. 나는 밥보다 잠이 더 맛있는 사람이라서....ㅋㅋㅋㅋ 포근한 잠.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 맞다.

이 호텔에서 손님을 맞는 동물로 까치를 배치한 것도 적절해 보인다. 까치는 겨울나기와는 상관 없는 텃새니까... 그런데 프런트를 보는 오소리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로 알고 있는데....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런 디테일까지 딱 맞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날이 추워지면 우리 사람들도 "이불 밖은 위험해" 라고 농담을 하며 따뜻한 이불 속을 그리워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다가오는 겨울,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 세상이 편안하게 펼쳐지길 바라겠다. '단잠을 대접하는' 곳이 어딘가에 실제로 있다면 찾아갈 사람들이 많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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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까진 필요 없어 ㅣ 바일라 25
김윤진 지음 / 서유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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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이 주인공인 청소년소설이고 초등 고학년이 읽어도 좋을만한 내용과 난이도라고 생각되었다. 다루는 문제는 합성영상유포(딥페이크)이다. 요즘 현실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으며 이 문제에 휘말리는 청소년들의 상황과 내면의 문제도 접할 수 있어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내가 어른이라서 '이해'라면 청소년들에겐 '공감'일 가능성이 크겠다.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 인물들도 있지만 거기에 맞서고 건강하게 해결하는 주인공들이 다수라서 작품은 어둡기보다는 밝은 톤이다. 요즘 중학생 세계를 직접 접해볼 일이 없는 입장에서 함부로 속단하면 안되겠지만 전해들으며 걱정한 바에 의하면 현실이 이보다 어둡다. 무기력하고, 자기파괴적이며 무례하고 기본이 없는 아이들이 상당한 비율로 있으며 갈수록 늘어난다. 이 책의 주인공들, 진로 과제 '1조'의 아이들은 각자 내면의 문제가 없진 않지만 그것을 성숙하게 다룬다. 상식과 예의가 있으며 남의 입장을 고려할 줄도 알고 회복 불가능하게 상황을 망쳐버리지도 않는다. 이 책의 문제상황(딥페이크)이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색조가 어둡지 않게 느껴진 것은 이들의 건강함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문제를 일으킨 빌런이 존재했다. 그 존재를 찾아 범위를 좁혀가는 '1조' 아이들의 추격이 이 책의 가독성을 높여준다. 결국 밝혀진 빌런은.... 앞에서 말한 '대책없음'을 품은 아이였다. 대체로 그렇듯이 부모의 태도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개과천선하며 작품이 끝나진 않았다. 그건 몹시 지난한 일이기 때문에.... 현실성을 반영한 설정이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런 일도 일어나길 바란다.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님은 주인공을 바꾸어서 작품을 다시 쓰셨다고 했다. 한번에 쭉 빠지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의 이면에는 이런 수고와 고민이 있는 것이다. "욕심내서 꿰맨 글에 기운 조각이 보일까 걱정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AI의 능력을 빌려 무엇인가를 제작하기는 너무나 손쉬운 세상이 되었다. 그 손쉬운 것에 독을 타기도 칼을 달기도 너무 쉽다는 것이 치명적인 함정이다. 이 책은 그 함정을 잘 보여주었다.

이 책의 '1조' 아이들처럼 자신을 성찰해가며 한걸음씩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청소년 독자들이 호의적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문제 자체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방패도 있었으면 좋겠고. 발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지 않기를. 특히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기를. 작가님의 마음도 같은 것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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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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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비교적 젊으시고 주목받는 남성 작가이신 듯하다. 생각해보니 올해 읽은 한국문학 대부분이 여성 작가의 책이었다. 교직이 그렇듯이 문학계도 성비가 치우쳐 있을까? 음 그건 내가 확인할수 없고 굳이 중요하지도 않지. 제목이 들어본 듯하고 검색을 해보니 더욱 구미가 당겨서 대출해왔다. 읽어보니 이분도 독자적인 작품 스타일이 있으시네. 저절로 책장이 막 넘어가는 몰입감 쪽은 아니고, 재밌다고 말하기에도 쫌 그런데, 그래도 읽기를 중단하고 싶진 않았다. 이런 느낌도 나의 감상 경험 안에 넣어두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썩 재밌다고 말할 수 없는 건 이 책의 수록작들이 대부분 일반적인 기승전결을 초월한 작품들 같기 때문이다. 뭔 일이 일어날거 같은데 결국 별일은 안 일어난다. 내가 올해 읽었던 소설집들 (권여선, 손원평, 김애란, 백온유, 조경란 등)에서 자주 느꼈던 결말의 참담함과 깊은 슬픔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들에 익숙해져서인지 '이번엔 뭐가 올까.... 큰 게 오나....'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나를 무시하듯 쓱 지나간다. 나는 엥... 이렇게 끝나나 하면서 그 안에 박혀있는 미세한 감정들을 다시 거슬러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가장 황당했던 작품은 [전조등]이었는데, 여기서 독자는 시종일관 느껴지는 불길함에 마음을 조인다. 어릴 적 아스팔트 위에서 본 어떤 생물의 사체로부터 시작하여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라는 연극, 인적 없는 밤길 운전, 전조등의 파열, 털고무신 한짝의 발견... 등등 온갖 불길한 복선으로 독자들을 잔뜩 옥죄어놓고는 그냥 평범한 일상으로 툭 끝난다. 이게 뭐지? 난 아직도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했다. 작가는 나를 이렇게 농락해 놓고, 내 안의 불안의 실체를 보라고 말해주는 것인가? 당신 안의 불안의 크기만큼이나 현실에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뭐 이런? 그렇다면 난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불안을 무럭무럭 키우는 습성은 이 책을 읽는 과정과 매우 흡사했는데,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은 큰 위안이기 때문이다. 작품 의도가 뭐건 간에 난 그냥 그렇게 해석할테다.ㅎㅎ

위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 또한 소설적 기승전결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는 볼 수 없었다. 현실로 말한다면 BTS급인 '세상의 모든 바다'의 공연 주변에 사고가 일어나 사람들이 죽고 다쳤기 때문이다. 공연 전 화자가 굿즈샵에서 만났던 고등학생도 사망자 명단에 있었다. 화자는 그 사건을 털어버리기 힘들어 그가 대화에서 말했던 그의 고향마을에도 가보지만 바다 앞에 잠시 서있다 그대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일 없는 일상으로 끝이 난다. 별 재미 없고 쓸쓸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실에 닿아있는 것일까. 거대한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룹과 그 팬덤이 추구했던 선한 영향력은 결국 환상이고 착각이었으며 개인의 삶은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사회와 삶을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는 화를 내며 단정지어야 할까.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작가는 뭘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것 뿐인가. 그 시선에는 흥분이나 열정은 없고 약간의 다정한 시선이 쓸쓸함과 나란히 있다.

[롤링 선더 러브]의 주인공 조맹희 씨는 그나마 좀 입체적인 인물이다. 37세 미혼인 그녀는 나를 걱정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TV 짝짓기 프로그램인 '솔로농장'에 신청서를 넣어 출연하게 되고, 거기서 여성적으로는 어필하지 못한채 엉뚱한 캐릭터로만 부각되고 방영분량도 얼마 잡히지 못했어도 그랬다. 내가 지인이라면 반대했겠지만 나쁜 짓만 아니면 뭐든 경험해보는 거 괜찮지 뭐. 본인이 흑역사라고 후회할 것만 아니면 말이다. 그녀에겐 금기도 비관도 없다. 방송 중엔 출연자가 아닌 PD에게 꽂히고, 방송 후엔 뒤늦게 누군가랑 사귀지만 몇달 후엔 또 쿨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주워 얻은 애착인형 호랑이에게 말한다.
"사랑하고 왔다."
이 사람의 '걱정되지 않음'의 원천은 무엇일까 걱정이 많은 나는 생각해보게 된다. 걱정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달라질 건 없다는 명확한 인식? 타고난 성격? 어쨌든 기분이 괜찮은 이야기였다. 대중음악의 제목이나 가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작가와 소통이 되는 작품이었다.

[보편 교양]은 주인공이 교사라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무난하게 잘 끝났는데도 왠지 느껴지는 쓸쓸함이 다른 작품들과 연결되었다. 곽선생은 선택과목으로 '고전읽기'를 맡아 겨울방학을 온전히 들이고 사비까지 들여 정성다해 준비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잠자러 온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최상위권 학생이 와서 서울대를 합격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 수업의 목록에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있어서 민원이 들어오길래 이걸로 뭔일 나나 했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근데 왜 착잡하지...

이건 작품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의문인데, 고교에서 학생들 독서수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가르쳤던 고학년 아이들은 5,6년 안에 '자본론'의 수준에 절대 이르지 못한다. 중학교에 가서도 초등고학년 동화 정도 겨우 읽을 아이들이 태반이다. 좀더 평이한 책으로 깊이있게 감상하고 자본론 정도는 대학 가서 읽는게 어떨까? 이 책이 현실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내가 확실히 모르니 기우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독서수준이란 게 워낙 개인차가 심한 것이니 수준 되는 학생들이야 뭐 말릴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곽선생의 수업준비와 열정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열정이 최상위권 아이의 스펙 한 줄이 되고 마는 과정이 나에게 쓸쓸함을 안겨준 것인가.... 입시제도 가지고 온국민이 말을 보태지만 나는 세상이 학교에게 네모난 동그라미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 거점의 국립대까지 무력화시킨 사회가 인서울의 상위권 대학 몇개에 한줄 경쟁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는 어떤 제도도 어그러진 형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곽선생 수업의 의미가 그 스펙 한줄에서만 반짝 빛났듯이... 그는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다음 학기 수업도 그런 열정으로 준비할 수 있으려나.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과연 표제작다운 작품이라 생각했다. 진주는 저소득층 가정의 한국인 아이. 니콜라이는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한 고려인 후손. 그 둘의 국적이 달라서 저 제목인가보다 했는데 그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었다. 과거 민중들의 집단적 연대의 구호였던 용어는 지금 두 사람만을 엮어주는 용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둘은 고교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갖다드리라며 주는 서류봉투를 같이 받으며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 우리는 같은 류의 사람들이구나.

사회에 나와 고생하고 애쓰지만 별 진전은 없는 생활을 하며 둘은 만나 밥을 먹고 가끔 술도 마시고 톡을 주고받고 형편이 뻔한 서로의 거처에도 가고 그러다 결국 동거를 시작한다. 인터넷 최저가의 식탁을 주문했으나 볼트가 안맞아 결국 첫 식사는 바닥에서.... 이런 자신들의 관계를 "우리는 친한 사이야." 라고 규정했다. 사랑도 아니고 통속적 파트너도 아닌 '친한 사이' 그 온도감이 참 좋다. 그 연대로 그들은 살아갈 수 있겠지.

다 언급하기엔 너무 길어지기에 이정도에서 마무리하겠다. 새로운 작가님에 대한 독서 경험이 꽤 의미있었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커다란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시원한 해답은 없지만 세상의 평범한듯 다양한 여러 장면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밋밋한 듯 서늘한 듯 따뜻한 듯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장편도 쓰시면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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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를 담은 집 - 소박하고 위엄 있는 일상의 풍경들
박경이 지음 / 플로베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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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이나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알아가는 사실들은 이러했다.

1. 퇴직하신 분인가보다. (아마도 교직. 나랑 같네.)
2. 귀농(?)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퇴직 후 시골집을 짓고 남편과 둘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3. 남편은 너그럽고 교양있고 부지런한 분인 것 같다.
4. 아내(저자)는 감정이 풍부하고 소녀스러운 면도 있다. 부지런한 분인 것은 같다. 매사 귀찮고 시큰둥한 나랑은 종류가 다른 분이다.
5. 4번과 연결되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시적인 문장을 주로 사용하신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나랑 반대의 성향이시다. 나는 시랑은 거리가 멀어 처음엔 조금 몰입이 안되었지만 읽다보니 괜찮아졌다.
6. 시골집에 살면서 일상적으로 돌봐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당연한 일이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아파트에 평생 살기로 다짐한 나는, 내가 지은 집을 내가 관리하며 살아야하는 번거로움을 상상하지 못하겠다. 난 지금 베란다에 있는 화분도 싫어서 아버님 안계시게 되면 다 치워버릴 거라고, 내 집에 살아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안키우고 '어지르지 않아 치울 필요 없는' 집으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인데..... 사실 편안한게 곧 행복이 아닌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분들의 삶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 '빛과 소리를 담은 집' 주인장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고 방문을 환대하는 분이다. 부부간에 형제자매도 많고 조카들까지 많은 친지들이 방문하고 그때마다 북적이는데 그걸 즐기시는 듯하다. 참 좋은 품성이다. 친지들 뿐만이 아니다. 제자들에게도 전심을 다하셨던 분인듯 아직도 이어지는 인연들이 있고, 그외 친구와 지인들도 이 집을 찾아 부침개며 찌개며 맛있는 음식에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수다보따리를 풀며 쉬었다 간다. 그 수다 내용을 자세히 쓰시진 않았지만 몇가지 인상적인 내용은 있었다. 가부장제 속에서 평생 살았지만 이제라도 속박을 풀려는 시도. 또 자식을 날려보내줘야 할 때 붙들어매지 않고 건강히 날려보낼 다짐 등등.

본문이 다 끝나고, 작가의말도 끝나고, 추가 속지가 세 쪽 이어지는데 나는 그만 먹먹해지고 말았다. 함께 했던 반려견 두 마리를 나무 아래 묻었다는 말, 이듬해엔 남편도 떠나셨다는 말이 아주 간결한 문장으로 남아 있었다. 본문에 아무 예고도 없었기에 얼얼했다. 그럼 저 시골집에 이제 혼자 남으신 것인가?ㅠ

하지만 그곳을 찾아 마음을 털고 서로 위로하던 이들은 남아있으니, '빛과 소리를 담은 집'의 역사는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작가님께 웃음과 활력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는 시골집의 생활이 나에겐 어림없는 일이라도 이렇게 책으로나마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여러 시선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읽다보니 퇴직자의 삶/시골생활 이라는 시선에서 보게 되었다. 자연의 변화에 온 감각을 열고, 느린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 생활이 좋아 보였다. 도시지향에서 벗어나는 건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 또 한가지, 매일 읽고 쓰는 생활이 이렇게 책으로 이어진 과정도 인상적이다. 작가님이 다양한 장르의 글을 꾸준히 쓰시길 응원하며 소중한 집에서 소중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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