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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이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비교적 젊으시고 주목받는 남성 작가이신 듯하다. 생각해보니 올해 읽은 한국문학 대부분이 여성 작가의 책이었다. 교직이 그렇듯이 문학계도 성비가 치우쳐 있을까? 음 그건 내가 확인할수 없고 굳이 중요하지도 않지. 제목이 들어본 듯하고 검색을 해보니 더욱 구미가 당겨서 대출해왔다. 읽어보니 이분도 독자적인 작품 스타일이 있으시네. 저절로 책장이 막 넘어가는 몰입감 쪽은 아니고, 재밌다고 말하기에도 쫌 그런데, 그래도 읽기를 중단하고 싶진 않았다. 이런 느낌도 나의 감상 경험 안에 넣어두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썩 재밌다고 말할 수 없는 건 이 책의 수록작들이 대부분 일반적인 기승전결을 초월한 작품들 같기 때문이다. 뭔 일이 일어날거 같은데 결국 별일은 안 일어난다. 내가 올해 읽었던 소설집들 (권여선, 손원평, 김애란, 백온유, 조경란 등)에서 자주 느꼈던 결말의 참담함과 깊은 슬픔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들에 익숙해져서인지 '이번엔 뭐가 올까.... 큰 게 오나....'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나를 무시하듯 쓱 지나간다. 나는 엥... 이렇게 끝나나 하면서 그 안에 박혀있는 미세한 감정들을 다시 거슬러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가장 황당했던 작품은 [전조등]이었는데, 여기서 독자는 시종일관 느껴지는 불길함에 마음을 조인다. 어릴 적 아스팔트 위에서 본 어떤 생물의 사체로부터 시작하여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라는 연극, 인적 없는 밤길 운전, 전조등의 파열, 털고무신 한짝의 발견... 등등 온갖 불길한 복선으로 독자들을 잔뜩 옥죄어놓고는 그냥 평범한 일상으로 툭 끝난다. 이게 뭐지? 난 아직도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했다. 작가는 나를 이렇게 농락해 놓고, 내 안의 불안의 실체를 보라고 말해주는 것인가? 당신 안의 불안의 크기만큼이나 현실에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뭐 이런? 그렇다면 난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불안을 무럭무럭 키우는 습성은 이 책을 읽는 과정과 매우 흡사했는데,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은 큰 위안이기 때문이다. 작품 의도가 뭐건 간에 난 그냥 그렇게 해석할테다.ㅎㅎ
위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 또한 소설적 기승전결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는 볼 수 없었다. 현실로 말한다면 BTS급인 '세상의 모든 바다'의 공연 주변에 사고가 일어나 사람들이 죽고 다쳤기 때문이다. 공연 전 화자가 굿즈샵에서 만났던 고등학생도 사망자 명단에 있었다. 화자는 그 사건을 털어버리기 힘들어 그가 대화에서 말했던 그의 고향마을에도 가보지만 바다 앞에 잠시 서있다 그대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일 없는 일상으로 끝이 난다. 별 재미 없고 쓸쓸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실에 닿아있는 것일까. 거대한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룹과 그 팬덤이 추구했던 선한 영향력은 결국 환상이고 착각이었으며 개인의 삶은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사회와 삶을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는 화를 내며 단정지어야 할까.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작가는 뭘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것 뿐인가. 그 시선에는 흥분이나 열정은 없고 약간의 다정한 시선이 쓸쓸함과 나란히 있다.
[롤링 선더 러브]의 주인공 조맹희 씨는 그나마 좀 입체적인 인물이다. 37세 미혼인 그녀는 나를 걱정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TV 짝짓기 프로그램인 '솔로농장'에 신청서를 넣어 출연하게 되고, 거기서 여성적으로는 어필하지 못한채 엉뚱한 캐릭터로만 부각되고 방영분량도 얼마 잡히지 못했어도 그랬다. 내가 지인이라면 반대했겠지만 나쁜 짓만 아니면 뭐든 경험해보는 거 괜찮지 뭐. 본인이 흑역사라고 후회할 것만 아니면 말이다. 그녀에겐 금기도 비관도 없다. 방송 중엔 출연자가 아닌 PD에게 꽂히고, 방송 후엔 뒤늦게 누군가랑 사귀지만 몇달 후엔 또 쿨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주워 얻은 애착인형 호랑이에게 말한다.
"사랑하고 왔다."
이 사람의 '걱정되지 않음'의 원천은 무엇일까 걱정이 많은 나는 생각해보게 된다. 걱정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달라질 건 없다는 명확한 인식? 타고난 성격? 어쨌든 기분이 괜찮은 이야기였다. 대중음악의 제목이나 가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작가와 소통이 되는 작품이었다.
[보편 교양]은 주인공이 교사라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무난하게 잘 끝났는데도 왠지 느껴지는 쓸쓸함이 다른 작품들과 연결되었다. 곽선생은 선택과목으로 '고전읽기'를 맡아 겨울방학을 온전히 들이고 사비까지 들여 정성다해 준비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잠자러 온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최상위권 학생이 와서 서울대를 합격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 수업의 목록에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있어서 민원이 들어오길래 이걸로 뭔일 나나 했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근데 왜 착잡하지...
이건 작품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의문인데, 고교에서 학생들 독서수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가르쳤던 고학년 아이들은 5,6년 안에 '자본론'의 수준에 절대 이르지 못한다. 중학교에 가서도 초등고학년 동화 정도 겨우 읽을 아이들이 태반이다. 좀더 평이한 책으로 깊이있게 감상하고 자본론 정도는 대학 가서 읽는게 어떨까? 이 책이 현실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내가 확실히 모르니 기우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독서수준이란 게 워낙 개인차가 심한 것이니 수준 되는 학생들이야 뭐 말릴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곽선생의 수업준비와 열정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열정이 최상위권 아이의 스펙 한 줄이 되고 마는 과정이 나에게 쓸쓸함을 안겨준 것인가.... 입시제도 가지고 온국민이 말을 보태지만 나는 세상이 학교에게 네모난 동그라미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 거점의 국립대까지 무력화시킨 사회가 인서울의 상위권 대학 몇개에 한줄 경쟁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는 어떤 제도도 어그러진 형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곽선생 수업의 의미가 그 스펙 한줄에서만 반짝 빛났듯이... 그는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다음 학기 수업도 그런 열정으로 준비할 수 있으려나.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과연 표제작다운 작품이라 생각했다. 진주는 저소득층 가정의 한국인 아이. 니콜라이는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한 고려인 후손. 그 둘의 국적이 달라서 저 제목인가보다 했는데 그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었다. 과거 민중들의 집단적 연대의 구호였던 용어는 지금 두 사람만을 엮어주는 용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둘은 고교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갖다드리라며 주는 서류봉투를 같이 받으며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 우리는 같은 류의 사람들이구나.
사회에 나와 고생하고 애쓰지만 별 진전은 없는 생활을 하며 둘은 만나 밥을 먹고 가끔 술도 마시고 톡을 주고받고 형편이 뻔한 서로의 거처에도 가고 그러다 결국 동거를 시작한다. 인터넷 최저가의 식탁을 주문했으나 볼트가 안맞아 결국 첫 식사는 바닥에서.... 이런 자신들의 관계를 "우리는 친한 사이야." 라고 규정했다. 사랑도 아니고 통속적 파트너도 아닌 '친한 사이' 그 온도감이 참 좋다. 그 연대로 그들은 살아갈 수 있겠지.
다 언급하기엔 너무 길어지기에 이정도에서 마무리하겠다. 새로운 작가님에 대한 독서 경험이 꽤 의미있었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커다란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시원한 해답은 없지만 세상의 평범한듯 다양한 여러 장면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밋밋한 듯 서늘한 듯 따뜻한 듯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장편도 쓰시면 또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