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2025년 아침독서 추천도서, 2025 경남독서한마당 초등저학년 선정도서, 2025년 한학사 추천도서 미소 그림책 9
현단 지음 / 이루리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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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길~쭉한 판형의 그림책이다. 첫 번째 읽을 때 나는 아주 눈치없이 읽고 말았다. 희나의 특별함도, 놀이의 변형도 의식하지 못하고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장에 거의 가서야 아,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아이와 친구들의 이야기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눈치가 없는 면도 있지만 이건 작가님이 잘 표현하신 탓도 있다. 희나가 튀지 않게. 친구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그리고 놀이. 나는 어렸을 때도 뛰어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안해본 건 아니거든. 그런데 워낙 놀이 경험에 자신감이 없다보니 아 뭐지...? 무궁화꽃 놀이가 이런 거 아니지 않나...? 하고 갸우뚱하고만 있었던 거다. 그래, 원래 무궁화꽃 놀이는 내가 알던 게 맞다. 이 아이들이 변형해서 한 거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맞나....?? 할 정도로 절묘하게.

희나는 시작장애인이지만 놀이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첫 화면의 “시작한다!”도 희나가 외치는 소리다. 원래 무궁화꽃 놀이는 움직임을 들키면 걸리는 건데, 희나에게 맞추어 소리를 들키면 걸리는 것으로 변형했다. 와, 아이들은 이런 데 천재지. 실컷 놀아본 경험만 있다면 말이야. 요즘은 예전같지 않아서 가르쳐줘도 못노는 아이들이 많아졌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므로 패스.... 하여간 아이들은 내가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변형된 놀이를 재미있고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마치 희나 때문에 더 재미있어진 놀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줄무늬셔츠 남자아이(‘나’)가 가장 재미있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콧구멍까지 휴지로 막고, 위기시에 고양이 소리내기 연습까지 하는 ‘나’는 우리가 아는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 딱 그모습이다. 놀이가 재미있어질 정도의 적당한 승부욕을 가진.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참지 못한 재채기. 거기에다 독가스 살포까지. 재채기에는 슬쩍 넘어가 주었던 희나가 독가스는 정확히 잡아내는 장면에 친구들이나 독자들이나 깔깔 웃게 된다.
마지막 장면,
“재채기는 봐줬다.”
“나도 방귀 뀌어 준 거거든.”
이런 현실대화. 슬픔이나 서러움은 없는.

장애어린이가 나오는 이야기가 점점 진화하는 느낌이다. 이야기만큼 현실도 진화하면 좋겠다. 이렇게 유쾌하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려라고 굳이 이름 붙이지 않는 배려가 가득하게. 그런데 그 배려가 모두를 행복하게.

이런 재미난 책들이 현실을 견인할 수 있기를 빌면서, 아이들과 함께 꼭 읽어보겠다. 아이들도 참 좋아할 것 같고 나눌 이야기도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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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 까보슈
다니엘 페나크 지음, 그레고리 파나치오네 그림, 윤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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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의 이 책 원작이 나왔던 1999년에는 나도 교직 초반부였다. 그때 한창 어도연 등 각종 권장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당연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그래픽노블을 보니 완전 새로운 거야!^^ 오래됐기도 하고, 강정연 작가님의 <건방진 도도군>이랑 내용이 뒤섞여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에 내용을 많이 잊은 탓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최초로 발표된 해는 1982년이라고 한다. 40년이 넘었다는 건데, 시대를 앞서가신 건가, 지금 읽어도 문제의식이 전혀 낡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말이었겠지만 지금 사람들은 더더욱 들어야 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걱정한 방향대로 세상은 흘러온 것 같다.

이 책의 화자는 ‘개’다. (종 이름이기도 하고 개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위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과’라는 소녀가 지어준 이름이 그렇다. (사과, 얘도 참 특이해 보인다ㅎㅎ) 사과에게 오기까지 ‘개’의 삶은 참 파란만장했다. 어떤 종이 섞인 건지 가늠도 못하겠는 잡종으로 태어나, 그중에서도 가장 못생겨서 팔리지도 않겠다는 이유로 낳자마자 물에 빠뜨려졌다. 쓰레기장에 버려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시컴댕이’라는 큰 개의 도움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며 살아간다. 늘상 위험이 도사린 그곳에서 결국 시컴댕이는 사고로 죽었고, ‘개’는 시컴댕이가 해준 말들을 기억하며 쓰레기장을 떠난다. 포획되어 유기견 수용소로 가게 됐고, 거기서 운좋게 바캉스 왔던 ‘사과’의 품에 안겼다. 사과의 특이한 취향 때문이다. “난 사나운 개가 좋아!”

그러나 어린이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사과도 관심사가 급변했고, 원래부터 달갑지 않아했던 엄마 아빠와, 마음이 변해버린 사과가 있는 집에서 ‘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시컴댕이가 “도시에 가서 여주인을 찾아내서 잘 길들이라”고 했건만.... 실패한 것을 깨달은 ‘개’는 집을 탈출해 다시 거리의 개가 된다.

그러다 만난 ‘하이에누’와 ‘멧돼지’의 모습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우정을 잘 보여준다. 하이에누는 개고, 멧돼지는 사람이다. 거기에 끼어든 ‘개’까지도 멧돼지는 무심하게 반겨주었다. 가끔 꾸던 악몽까지도 가라앉게 되는 행복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개’는 그곳도 떠났다. 다시 사과를 만나러. 개와 마주친 사과는 반색을 했지만 개는 호락호락 다가가지 않았다. 결국, 개는 ‘여주인을 길들였다’? 그렇게 말하는게 맞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후 부모의 작당에 의해 또 버려지고, 돌아오는 과정은 아주 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통쾌하고 감동적이다. 책 읽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결말이다. 이래서 몇십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작품, 현대의 고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에도 개가 한 마리 있다. 딸이 난데없이 데려온 개인데, 독립하면서 데리고 나갔지만 근처에 살아서 자주 온다. 딸한테는 귀찮은 일이지만 혼자 계신 아버님이 그녀석만 기다리고 계시니 주 2일 정도는 집에 데려다 놓는다. 난 그녀석한테 만날 “너 같은 팔자가 세상에 어디 있다더냐” 하면서 부러워하지만 그녀석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사실인데, 태생부터 철저히 인위적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훨씬 더 많이 팔린다던가.... 앞으로 돈을 벌려면 반려 사업을 해야된다고들 말하는 것처럼 반려동물한테 돈을 아끼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면에는 여전히 버려지는 동물, 학대받는 동물, 공장식 축산, 터전을 위협받는 동물들이 있다. 인간의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해진 것처럼 동물들도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쪽 동물이나 저쪽 동물이나 다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배부르고 등따신 동물들이야 고통당하는 동물들보단 훨 낫겠지만, 본성을 침해당하고 자신의 영역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면에서 그들이 과연 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인간의 생활 방식 자체가 동물과 친구가 되긴 어려운 형태가 되어버렸다. 현실 안에서 최선을 찾는 수밖에 없을 테지만 이 ‘개’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우리 마음가짐을 한번 점검해보는 기회는 될 것이다. 시종일관 ‘친구’의 관계를 추구하며 보여주는 이 책을 인간관계에도 대입할 수 있겠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나 우정의 기본이기도 하니까. 누굴 길들이겠다는 의도 자체가 우정이 아니니까.

원작을 다시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이 그래픽노블은 원작을 축약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줄거리에 충실하고 느낌 또한 풍성하고 강렬하며 흥미롭다. 각색과 그림 표현을 정말 잘하신 것 같다. 원작자도 만족할 만큼이 아니었으려나? 원작과 병행하면 가장 좋겠지만 어린이들이 이 책으로 작품을 먼저 접해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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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력 - 인류 진보의 핵심적인 역할 비판적 사고력 시리즈
마르크 가스콘 지음, 에두아르드 알타리바 그림, 손성화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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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쪽 정도의 그림책 타입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얇은 분량과 화면을 꽉 채운 그림에도 불구하고 저학년용은 아니다. 비판적 사고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고학년은 되어야 다룰 용어이기도 하니까. 여러 분야와 사례를 통하여 비판적 사고력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책인데, 설명이 최대한 짧게 되어 있어서 쉽게 전반적 내용을 개관하기는 좋지만 뭔가 좀 자세히 알고 싶은데 라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한 책에 여러가지 컨셉이 공존할 수는 없으니, 이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나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겼다면 그또한 이 책의 역할인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의 필요성이 대두된지는 꽤 되었다. 하지만 욕먹을 각오를 하고 내 느낌을 써본다면 지금 어떤 사람, 혹은 학생이 행사하고 있는 태도는 비판적 사고력이 아니라 '비난적 사고력'인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건 여러가지 다른 말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자기중심적 사고력, 내로남불 사고력, 프로불편러 사고력, 내놔 사고력.... 등등이다. 자신은 하지 않을 것을 남한테만 요구하는 이런 태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고력을 비판적 사고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판적 사고력은 자기 자신이 축적해온 것까지도 부정할 수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유연하게 인정한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이 책의 마지막장 제목을 먼저 언급하자면 [천재의 조건:태도가 차이를 만든다] 이다. 요즘 아이들 지도하면서 '태도'에 주목하게 된 나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결론이었다. 비판은 무례와 억지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이 바탕일 것이며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항상 자신을 점검할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객관화?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비판이다.

이 책은 역사, 환경, 사업(경영), 인권, 디지털, 과학 등의 분야에서 비판적 사고력의 역할, 혹은 부재시의 문제점을 알려준다. 서론 장에서 다룬 큰 비극, 스웨덴 전함, 타이타닉호, 챌린지호 등의 비극이 새삼 끔찍했다. 제너럴 모터스나 리먼 브라더스 등 잘나가던 대기업들의 몰락 원인도 결국 거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차별과 불평등의 극복에 비판적 사고력이 필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온라인 정보와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지대한 지금이야말로 비판적 사고력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대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피부에 닿도록 느끼고 있는 문제다. 어어 하는 사이에 휩쓸려갈 수 있는 홍수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책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훈련이 무엇인지까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바로 이런 책을 비롯한 독서가 그 첫째 아닐지 모르겠다. 심심풀이 책도 나름의 유용성이 있지만 도약을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한 독서에도 도전할 필요가 있다. 이걸 학급에서 해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손쉽게 되지는 않는다. 두번째는 스스로의 탐구, 세번째는 소통과 공유,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 또한 '내가 틀릴 수 있다'를 늘 유념하려고 한다.

이 책에 환경 관련 장이 따로 있는데 (3.인간은 자연의 일부) 결국 궁극적으로 생존을 위해서는 이 분야의 비판적 사고력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건 세상 전체의 시스템을 뒤흔드는 비판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후손들의 터전을 지킬 수 있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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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는 아이 장애공감 어린이
뱅상 자뷔스 지음, 이폴리트 그림,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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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도 꽤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인데, 학급의 어린이들은 도서실에 데려가면 만화, 만화, 만화에만 눈을 번뜩이면서도 그래픽노블에는 눈길을 잘 주지 않아 안타깝다. 지난 학기말에 국어 마지막 단원 제재가 만화여서 만화와 그래픽노블들을 단체 대출하여 교실에 일정기간 두고 읽었는데 이렇게 손쉽게 넘어가지 않는 그래픽노블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아이고 어찌나 아깝던지. 그래도 눈이 밝고 깊은 아이들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라 (많을 때는 서너 명도?) 그 아이들과는 감상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책은 사실 어른도 읽는 책이니까, 읽을 때가 되면 읽겠지 라는 기대를 해보면서. 이 책은 브뤼셀 국제만화축제 최고작품상 등 그래픽노블 부문 여러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의 원제(Incroyable!)는 결말을 가지고 지은 것 같고, 번역 제목은 결말 이전의 어려움을 가지고 지은 것 같다. 내 생각은 원제가 훨씬 나은 것 같아서 번역 제목도 그에 준해서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이 제목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지으신 것 같다. ‘숨을 참는’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 그러고 있는 걸까.

아이의 이름은 루이다. 11살 남자아이다. 아이의 행동은 독자를 조금 긴장시킨다.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인 걸까? 과격하게 문제가 되는 행동은 없지만, 사람들과의 대면을 피하고 혼자 있고 싶어하며 혼자만의 생각과 혼잣말의 내용과 행동에서 강박 증세가 짐작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다소 특이하다 할 수 있는 루이의 곁에 보호자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은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할 텐데.... 엄마는 없는 것 같고, 아빠도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만날 똑같다. “잠깐만 기다려, 곧 갈게....”

루이의 옆을 지키는 것은 말을 탄 벨기에 국왕(?)이다. 필리프라는 이 존재는 물론 실존인물이 아니고 상상 속의 존재다. 국왕이라면서 혀짧은 소리를 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어른은 루이의 친구이며 조언자이고 루이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며 때로는 루이의 분풀이에 쪼그라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루이가 몰두하는 일은 정보카드를 작성해서 주제별로 분류하여 모아두는 일이다. 1500장이나 작성했다고 한다. 우와, 이런 취미는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지적인 호기심과 정보 수집과 정리의 능력. 완전 학자의 자질 아닌가. 지금의 현실에도 가끔 이런 아이들이 보인다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참 다행이게 루이는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유지한다.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는다. 돌아가며 발표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루이는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아주 흔한 주제를 골랐지만, 발표 당일 아주 운 나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런데 그걸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루이는 기껏 준비한 자료 대신 즉흥 발표를 하기 시작하는데, 오히려 성공이었다. 루이의 머릿속엔 1500장의 정보카드가 있잖아. 그중 최근 것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완전 실감나는 발표였다. 아이들은 환호를 보냈고, 선생님도 놀랐다며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갈 것을 제안하신다.

루이가 ‘숨을 참는’ 아이였어도 이렇게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것은 그 증세가 무기력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 보면 루이는 뭔가를 하고 싶어 했고 성취에 뿌듯해하는 아이였다. 실수도 있었지만 여차저차하여 전국대회까지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궁리와 시도를 하는 루이를 보면 엉뚱할지는 몰라도 훌륭하고 대견하다. 지금의 학생들 중에 이럴 수 있는 아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누구의 조력도 받지 못하고 나아갈 수 있는 아이는 없을 터, 부모가 나오지 않는 이 아이에게 삼촌과 선생님의 도움은 생수와 같았다.

아이가 아빠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속이 상했다.
“아빠는 한 번도 제시간에 온 적이 없어.
아빠는 별이야.
끊임없이 움직이는 별.
눈 앞에 있는 것 같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진짜 아빠가 아니야.
아빠랑 나는 수만 광년쯤 떨어져 있어.”

한편, 아이가 소중히 여기는, 겉에 하트가 그려진 그 통의 정체가 엄마의 유골함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나중의 더한 반전에 더욱 놀랐다. (심한 스포지만 그냥 씀)
“안 만날래.
난 엄마 안 보고 싶어.
엄마는 미쳤어.
살아있는 엄마보다 죽은 엄마가 더 좋아.
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엄마는 심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해 병원에 몇 달째 입원해 있다. 엄마도 안쓰럽지만, 그걸 외면하면서 강박적으로 하루하루의 일과를 소화해내는 루이는 더 안쓰럽다. 루이는 금기처럼 들어가지 못하던 엄마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그 옛날 엄마 아빠의 사랑의 증거인 편지를 보게 됐고, 삼촌의 다정한 설득도 들었고, 그 말탄 친구 필리프와도 이별했다. 이 모든 과정이 루이의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병원에 들어선다.

첫 장에 버려진 바나나껍질이 왜 나오나 했다. 그리고 체홉의 말도. “무대 위에 권총이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총을 쏜다.” 그 말 그대로, 바나나껍질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고 주제를 이끌어갔다.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놀라워요!”를 (아마도 원제인 Incroyable!) 외치게 된 결말로 향해갔다.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이었다. 현실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려운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구석구석 잘 짜여진 그래픽노블이었다. 아마도 다시 읽는다면 보이는 것이 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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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학습자와 함께하는 국어 수업 - 말하기에서 쓰기로 넘어가는 교실 함께 걷는 교육 17
한희정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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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선생님은 만날 기회는 거의 없어도 내 마음에 늘 의지가 되는 동료다. '이런 동료가 있어서 감사한' 교사이기도 하다. 힘든 길을 마다않고 가면서 꿋꿋이 헤쳐나가는 걸 보면 나랑은 종류가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그는 공부로 무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탄탄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비고츠키 번역 작업에 참여하였고, 비고츠키 아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업은 학위만 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장적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서 동료교사들에게 널리 소개하고 알릴 만하다. 그 학업을 풀어쓴 이런 책이 나온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고 문장도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어버릴 책도 못된다. 가볍지만 묵직하다. 내 독서력 탓도 있겠지만 보기보다 시간이 꽤 많이 걸렸고,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4년쯤 전에 나온 저서 <초등학교 1학년 열 두달 이야기>도 한 톨 버릴 부분 없는 명저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국어수업 부분을 좀더 상술하였고, 특히 다양한 발달단계의 학생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하는 교실 상황에 대한 고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나왔을 것이다. <느린 학습자와 함께하는 국어수업>

 

느린 학습자가 없는 교실은 없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여기에서 자유로운 교사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1학년 수업을 논하는 책이지만 2학년 담임들도 취할 내용이 많이 있고, 전학년에 걸친 통찰을 준다고 생각한다. 초등교사라면 한번 정독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저자가 제시한 발달단계에 대한 표를 살펴보면, 1학년은 대부분 7세의 위기에서 초기학령기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전 학령기'(개똥이)의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지역마다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 현장의 체감인 것 같다. 올해 우리학교 1학년의 상황이 1학년 선생님들 뿐 아니라 관리자님들과 타학년 선생님들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심각했다. 교육과정의 평균적 내용으로 지도하면 되겠지 라고 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가는 맨붕을 면치못할 이런 교실상황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반면 초기학령기(소똥이)를 넘어서 중기학령기(말똥이)에 도달해 있는 빠른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다. 한 교실에 이렇게 세 가지 발달단계가 공존하는 가운데 학급살이가 이루어져야 한다. 크게 잡아서 세 단계이지, 세분한다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똥이가 좌절하거나 소외되지 않고, 소똥이가 발전하면서, 말똥이도 시시해하지 않는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읽은 교사들이 또다른 사례들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모으고 공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이 그 문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저자는 "생각과 말, 행동에 지성(인식)의 층을 끼워넣는 과정" 이라는 표현을 여러번 사용하셨는데,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그 의미를 곰곰히 씹어봤다. 어떤 생각에서 쓰신 표현인지 다는 아니지만 조금 알 것 같았다. 처음 나온 문장을 조금 줄여서 옮겨보면 이렇다.

 

"너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지 차근차근 알려줘야 합니다. 나의 맥락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타자의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해요. 이것이 일곱 살의 위기를 건너가도록 도와주는 핵심이며, 생각과 말, 행동에 지성(인식)의 층을 끼워넣는 과정이에요." (20)

 

이것을 '체험의 공동일반화'(21)라는 용어로 설명하셨다. 외적인 시선(타자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이처럼 생활지도에서도 유용하지만 국어수업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많은 아이들이 이게 안되는 교실은 초기에 난장판으로 보이겠지만 저자처럼 차근차근 알려줄 때 알아듣고 배워가는 아이들이 생기면 조금씩 안정된 교실이 되어간다. 이후에도 비슷한 설명이 또 나온다.

"이것이 체험의 공동일반화입니다. 내 맥락에서의 체험을 너의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전체적인 맥락을 조망해서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57)

 

쓰기의 선 역사는 읽기가 아니라 몸짓과 그리기(50) 라는 설명에서 나의 오개념을 바로잡기도 했고, "초기문해력 단계의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자모음자를 반복하여 쓰게하는 연습은 학습활동의 층위를 하강시킬 수 있습니다." (93) 라는 설명에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난 30년이 넘어가는 경력에 1학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만약에 했다면 이런 활동을 무심코 시켰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글을 익히는 것도 다양한 발표와 활동을 통해서 해야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1학년 교실에서 쓰기 학습의 의미는 단순히 쓰기 기능을 숙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에 인지적 층을 삽입하는 것, 내적 자아와 외적 인격 간의 분화를 촉진하는 것... 등의 정신기능을 숙달해 가는 과정" 이라는 설명 (61)이 매우 의미있고 무겁게 다가온다. 사실 나는 오래 전 취학 전에 아무 교육기관도 다니지 않은 상태에서 저절로 글을 다 익혀서 혼자서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는데,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됐던건가? 신기하기도 하고, 교실에도 다행히 그렇게 마치 자연발생처럼 깨우쳐가는 학생들도 있으니 교사가 너무 심하게 부담되지는 않는 마음으로 적절한 활동을 구성하고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잘 안되는 학생들을 도우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전에 저자샘의 교실에서 열린 번개연수에 가본 적이 있는데, 기본적인 책상배치를 ㄷ자로 하셨다. 나도 저학년일때는 이 배치를 선호하는데, 16명 넘으면 여유가 없고, 20명 넘으면 너무 좁다. 16명 선에서 학급당 인원수가 형성되면 좋겠고 20명은 절대 넘지 않으면 좋겠다. 이 배치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자샘이 발표를 시키는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대답을 독식하지 않도록, 손을 들어 지명하는 방식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게 좋겠다(94)고 나와있다. , 모두가 돌아가며 대답하는 것이다. (생각 안나거나 모를 때 '통과' 가능) 저학년 교실 하면 '저요! 저요!' 하고 조르는 광경이 먼저 연상되는데, 그럴 때 적극적인 아이들만 참여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일상적인 발표를 모두 돌아가며 하게 하는 저자의 방식이 옳다고 여겨진다. 이 방식에 가장 적절한 배치가 ㄷ자이며, 적정수준의 학급당 인원수가 필수적이다.

 

[주말 지낸 이야기] 활동은 아이들의 입말이 쓰기로 나아가는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 난 주말이야기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유치원때 실컷 했던것?) 별로 선호하지 않았는데 저자의 방식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돌아가며 말하고 끝인 단순한 층위가 아니고 아주 세심한 여러 층위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일단 아이들의 일상 경험을 수업의 소재로 가져온다. 그것을 함께 공부하는 텍스트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체험을 언어화하는 연습을 하고, 그것이 교사의 손끝에서 글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관찰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스스로 서사를 구성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게 된다.

"말하기에서 쓰기로 넘어가는 교실에서 활용하는 여러 활동은 함께하는 것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서로를 모델링하며 함께 의미를 구성해가고 그 활동을 바탕으로 개별활동을 하는 거예요." (107)

즉석에서 구성된 텍스트는 바로 출력하여 학생들의 활동교재가 되고, 뿌듯한 결과물이 되며, 교사에게는 발전 과정이 담긴 기록물이 된다. 주말 보내기에 대한 보호자의 부담이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조언 코너도 있어서 매우 공감하고 납득했다.

 

주말 이야기 뿐 아니라 학교 내의 경험, 즉 수업 이야기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활동으로는 [소감 나누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수업 활동 후에 돌아가며 자신의 소감을 이야기하고 교사는 아이들이 보는 화면에 이것을 받아 적는다. 의미 구성과 문자 구성에 교사가 조력하고 시범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의 조력에서 점차 학생들의 주도적 활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렇게 입력한 텍스트를 날짜별로 저장하면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교사의 기록이 되겠다. 나도 기록을 남기는 편이지만 산발적인 경우가 많아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운데, 수업이 바로 기록으로 이어지는 이 방식을 꼭 적용해 보겠다고 결심한다.

 

[낱말 불리기 수첩]도 각 개인의 쓰기 능력 발달에 함께하는 친구 같은 도구다. 2학년 담임을 했을 때 돌멩이는 어떻게 써요?” 이런 식으로 물어보러 나오는 아이들이 꼭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칠판에 써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날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라서, 각자의 수첩을 가지고 1년간 낱말을 불려가는 방법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된다. 그건 또 그 아이의 발전의 기록물이 되는 것이며 복습의 자료도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 수첩을 소중히 여긴다면 참 보기 좋을 것 같다.

 

[사진 보고 글쓰기] 아이들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서사로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와같이 저자가 고안하고 실천한 방법들에는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지만 든든한 이론적 바탕이 들어있어 교사가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실천한다면 학생들의 발달을 이끌어내고 더하여 관찰과 진단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검증된 방법이니 일단 따라해보고 좋은 방법과 사례들이 더 모이면 막막함이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이후 [함께 쓰는 그림 글쓰기], [주제가 있는 글쓰기]로 진행하게 되는데, 이 어디쯤에서 쓰기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여기까지는 지난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발전된 학생들을 보면 교사는 그동안의 어려움을 다 잊게 될 것이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니 모두를 기대하면 안되겠지만 처음의 단계에서 조금씩이라도 진보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대견해하고 기뻐할 심리적 여유가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신뢰와 지지에서 나오지만 그얘길 여기서 풀면 끝이 안 나겠지.^^;;;;

 

3월 초 진단활동부터 시작하여 학습이 무르익은 후반부의 주제글쓰기까지, 모든 활동을 이행적 쓰기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하였다. (저자의 논문 제목이기도 함) 마지막장에는 지금까지 상술한 각 프로그램들을 다양한 도표로 정리하여 이해를 돕는다. 각각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비고츠키 아동학의 이론적 기반 위에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된다. 저자는 이행적 쓰기 프로그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182) 라고 하셨다. 동학년이 이 책을 토대로 수업을 함께 나누며 시기에 맞는 적용을 함께 논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성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의 연구와 실행이 이 척박해진 교육의 현장에서도 그렇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가는 말에는 보편적 학습 설계에 대한 언급도 살짝 나온다. ‘변주라고 하신 표현에 무척이나 공감한다. 말처럼 쉽지 않고, 매시간 혹은 완벽히 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일상에 젖어들 수 있도록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 이 책이 그 출발이다. 수업이라는 예술적 행위의 출발. 어렵쥬? 너무 쉬우면 재미없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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