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학습자와 함께하는 국어 수업 - 말하기에서 쓰기로 넘어가는 교실 함께 걷는 교육 17
한희정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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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선생님은 만날 기회는 거의 없어도 내 마음에 늘 의지가 되는 동료다. '이런 동료가 있어서 감사한' 교사이기도 하다. 힘든 길을 마다않고 가면서 꿋꿋이 헤쳐나가는 걸 보면 나랑은 종류가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그는 공부로 무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탄탄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비고츠키 번역 작업에 참여하였고, 비고츠키 아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업은 학위만 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장적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서 동료교사들에게 널리 소개하고 알릴 만하다. 그 학업을 풀어쓴 이런 책이 나온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고 문장도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어버릴 책도 못된다. 가볍지만 묵직하다. 내 독서력 탓도 있겠지만 보기보다 시간이 꽤 많이 걸렸고,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4년쯤 전에 나온 저서 <초등학교 1학년 열 두달 이야기>도 한 톨 버릴 부분 없는 명저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국어수업 부분을 좀더 상술하였고, 특히 다양한 발달단계의 학생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하는 교실 상황에 대한 고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나왔을 것이다. <느린 학습자와 함께하는 국어수업>

 

느린 학습자가 없는 교실은 없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여기에서 자유로운 교사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1학년 수업을 논하는 책이지만 2학년 담임들도 취할 내용이 많이 있고, 전학년에 걸친 통찰을 준다고 생각한다. 초등교사라면 한번 정독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저자가 제시한 발달단계에 대한 표를 살펴보면, 1학년은 대부분 7세의 위기에서 초기학령기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전 학령기'(개똥이)의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지역마다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 현장의 체감인 것 같다. 올해 우리학교 1학년의 상황이 1학년 선생님들 뿐 아니라 관리자님들과 타학년 선생님들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심각했다. 교육과정의 평균적 내용으로 지도하면 되겠지 라고 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가는 맨붕을 면치못할 이런 교실상황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반면 초기학령기(소똥이)를 넘어서 중기학령기(말똥이)에 도달해 있는 빠른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다. 한 교실에 이렇게 세 가지 발달단계가 공존하는 가운데 학급살이가 이루어져야 한다. 크게 잡아서 세 단계이지, 세분한다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똥이가 좌절하거나 소외되지 않고, 소똥이가 발전하면서, 말똥이도 시시해하지 않는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읽은 교사들이 또다른 사례들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모으고 공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이 그 문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저자는 "생각과 말, 행동에 지성(인식)의 층을 끼워넣는 과정" 이라는 표현을 여러번 사용하셨는데,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그 의미를 곰곰히 씹어봤다. 어떤 생각에서 쓰신 표현인지 다는 아니지만 조금 알 것 같았다. 처음 나온 문장을 조금 줄여서 옮겨보면 이렇다.

 

"너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지 차근차근 알려줘야 합니다. 나의 맥락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타자의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해요. 이것이 일곱 살의 위기를 건너가도록 도와주는 핵심이며, 생각과 말, 행동에 지성(인식)의 층을 끼워넣는 과정이에요." (20)

 

이것을 '체험의 공동일반화'(21)라는 용어로 설명하셨다. 외적인 시선(타자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이처럼 생활지도에서도 유용하지만 국어수업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많은 아이들이 이게 안되는 교실은 초기에 난장판으로 보이겠지만 저자처럼 차근차근 알려줄 때 알아듣고 배워가는 아이들이 생기면 조금씩 안정된 교실이 되어간다. 이후에도 비슷한 설명이 또 나온다.

"이것이 체험의 공동일반화입니다. 내 맥락에서의 체험을 너의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전체적인 맥락을 조망해서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57)

 

쓰기의 선 역사는 읽기가 아니라 몸짓과 그리기(50) 라는 설명에서 나의 오개념을 바로잡기도 했고, "초기문해력 단계의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자모음자를 반복하여 쓰게하는 연습은 학습활동의 층위를 하강시킬 수 있습니다." (93) 라는 설명에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난 30년이 넘어가는 경력에 1학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만약에 했다면 이런 활동을 무심코 시켰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글을 익히는 것도 다양한 발표와 활동을 통해서 해야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1학년 교실에서 쓰기 학습의 의미는 단순히 쓰기 기능을 숙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에 인지적 층을 삽입하는 것, 내적 자아와 외적 인격 간의 분화를 촉진하는 것... 등의 정신기능을 숙달해 가는 과정" 이라는 설명 (61)이 매우 의미있고 무겁게 다가온다. 사실 나는 오래 전 취학 전에 아무 교육기관도 다니지 않은 상태에서 저절로 글을 다 익혀서 혼자서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는데,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됐던건가? 신기하기도 하고, 교실에도 다행히 그렇게 마치 자연발생처럼 깨우쳐가는 학생들도 있으니 교사가 너무 심하게 부담되지는 않는 마음으로 적절한 활동을 구성하고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잘 안되는 학생들을 도우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전에 저자샘의 교실에서 열린 번개연수에 가본 적이 있는데, 기본적인 책상배치를 ㄷ자로 하셨다. 나도 저학년일때는 이 배치를 선호하는데, 16명 넘으면 여유가 없고, 20명 넘으면 너무 좁다. 16명 선에서 학급당 인원수가 형성되면 좋겠고 20명은 절대 넘지 않으면 좋겠다. 이 배치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자샘이 발표를 시키는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대답을 독식하지 않도록, 손을 들어 지명하는 방식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게 좋겠다(94)고 나와있다. , 모두가 돌아가며 대답하는 것이다. (생각 안나거나 모를 때 '통과' 가능) 저학년 교실 하면 '저요! 저요!' 하고 조르는 광경이 먼저 연상되는데, 그럴 때 적극적인 아이들만 참여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일상적인 발표를 모두 돌아가며 하게 하는 저자의 방식이 옳다고 여겨진다. 이 방식에 가장 적절한 배치가 ㄷ자이며, 적정수준의 학급당 인원수가 필수적이다.

 

[주말 지낸 이야기] 활동은 아이들의 입말이 쓰기로 나아가는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 난 주말이야기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유치원때 실컷 했던것?) 별로 선호하지 않았는데 저자의 방식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돌아가며 말하고 끝인 단순한 층위가 아니고 아주 세심한 여러 층위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일단 아이들의 일상 경험을 수업의 소재로 가져온다. 그것을 함께 공부하는 텍스트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체험을 언어화하는 연습을 하고, 그것이 교사의 손끝에서 글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관찰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스스로 서사를 구성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게 된다.

"말하기에서 쓰기로 넘어가는 교실에서 활용하는 여러 활동은 함께하는 것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서로를 모델링하며 함께 의미를 구성해가고 그 활동을 바탕으로 개별활동을 하는 거예요." (107)

즉석에서 구성된 텍스트는 바로 출력하여 학생들의 활동교재가 되고, 뿌듯한 결과물이 되며, 교사에게는 발전 과정이 담긴 기록물이 된다. 주말 보내기에 대한 보호자의 부담이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조언 코너도 있어서 매우 공감하고 납득했다.

 

주말 이야기 뿐 아니라 학교 내의 경험, 즉 수업 이야기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활동으로는 [소감 나누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수업 활동 후에 돌아가며 자신의 소감을 이야기하고 교사는 아이들이 보는 화면에 이것을 받아 적는다. 의미 구성과 문자 구성에 교사가 조력하고 시범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의 조력에서 점차 학생들의 주도적 활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렇게 입력한 텍스트를 날짜별로 저장하면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교사의 기록이 되겠다. 나도 기록을 남기는 편이지만 산발적인 경우가 많아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운데, 수업이 바로 기록으로 이어지는 이 방식을 꼭 적용해 보겠다고 결심한다.

 

[낱말 불리기 수첩]도 각 개인의 쓰기 능력 발달에 함께하는 친구 같은 도구다. 2학년 담임을 했을 때 돌멩이는 어떻게 써요?” 이런 식으로 물어보러 나오는 아이들이 꼭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칠판에 써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날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라서, 각자의 수첩을 가지고 1년간 낱말을 불려가는 방법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된다. 그건 또 그 아이의 발전의 기록물이 되는 것이며 복습의 자료도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 수첩을 소중히 여긴다면 참 보기 좋을 것 같다.

 

[사진 보고 글쓰기] 아이들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서사로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와같이 저자가 고안하고 실천한 방법들에는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지만 든든한 이론적 바탕이 들어있어 교사가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실천한다면 학생들의 발달을 이끌어내고 더하여 관찰과 진단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검증된 방법이니 일단 따라해보고 좋은 방법과 사례들이 더 모이면 막막함이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이후 [함께 쓰는 그림 글쓰기], [주제가 있는 글쓰기]로 진행하게 되는데, 이 어디쯤에서 쓰기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여기까지는 지난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발전된 학생들을 보면 교사는 그동안의 어려움을 다 잊게 될 것이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니 모두를 기대하면 안되겠지만 처음의 단계에서 조금씩이라도 진보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대견해하고 기뻐할 심리적 여유가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신뢰와 지지에서 나오지만 그얘길 여기서 풀면 끝이 안 나겠지.^^;;;;

 

3월 초 진단활동부터 시작하여 학습이 무르익은 후반부의 주제글쓰기까지, 모든 활동을 이행적 쓰기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하였다. (저자의 논문 제목이기도 함) 마지막장에는 지금까지 상술한 각 프로그램들을 다양한 도표로 정리하여 이해를 돕는다. 각각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비고츠키 아동학의 이론적 기반 위에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된다. 저자는 이행적 쓰기 프로그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182) 라고 하셨다. 동학년이 이 책을 토대로 수업을 함께 나누며 시기에 맞는 적용을 함께 논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성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의 연구와 실행이 이 척박해진 교육의 현장에서도 그렇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가는 말에는 보편적 학습 설계에 대한 언급도 살짝 나온다. ‘변주라고 하신 표현에 무척이나 공감한다. 말처럼 쉽지 않고, 매시간 혹은 완벽히 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일상에 젖어들 수 있도록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 이 책이 그 출발이다. 수업이라는 예술적 행위의 출발. 어렵쥬? 너무 쉬우면 재미없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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