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는 아이 장애공감 어린이
뱅상 자뷔스 지음, 이폴리트 그림,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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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도 꽤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인데, 학급의 어린이들은 도서실에 데려가면 만화, 만화, 만화에만 눈을 번뜩이면서도 그래픽노블에는 눈길을 잘 주지 않아 안타깝다. 지난 학기말에 국어 마지막 단원 제재가 만화여서 만화와 그래픽노블들을 단체 대출하여 교실에 일정기간 두고 읽었는데 이렇게 손쉽게 넘어가지 않는 그래픽노블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아이고 어찌나 아깝던지. 그래도 눈이 밝고 깊은 아이들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라 (많을 때는 서너 명도?) 그 아이들과는 감상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책은 사실 어른도 읽는 책이니까, 읽을 때가 되면 읽겠지 라는 기대를 해보면서. 이 책은 브뤼셀 국제만화축제 최고작품상 등 그래픽노블 부문 여러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의 원제(Incroyable!)는 결말을 가지고 지은 것 같고, 번역 제목은 결말 이전의 어려움을 가지고 지은 것 같다. 내 생각은 원제가 훨씬 나은 것 같아서 번역 제목도 그에 준해서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이 제목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지으신 것 같다. ‘숨을 참는’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 그러고 있는 걸까.

아이의 이름은 루이다. 11살 남자아이다. 아이의 행동은 독자를 조금 긴장시킨다.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인 걸까? 과격하게 문제가 되는 행동은 없지만, 사람들과의 대면을 피하고 혼자 있고 싶어하며 혼자만의 생각과 혼잣말의 내용과 행동에서 강박 증세가 짐작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다소 특이하다 할 수 있는 루이의 곁에 보호자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은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할 텐데.... 엄마는 없는 것 같고, 아빠도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만날 똑같다. “잠깐만 기다려, 곧 갈게....”

루이의 옆을 지키는 것은 말을 탄 벨기에 국왕(?)이다. 필리프라는 이 존재는 물론 실존인물이 아니고 상상 속의 존재다. 국왕이라면서 혀짧은 소리를 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어른은 루이의 친구이며 조언자이고 루이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며 때로는 루이의 분풀이에 쪼그라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루이가 몰두하는 일은 정보카드를 작성해서 주제별로 분류하여 모아두는 일이다. 1500장이나 작성했다고 한다. 우와, 이런 취미는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지적인 호기심과 정보 수집과 정리의 능력. 완전 학자의 자질 아닌가. 지금의 현실에도 가끔 이런 아이들이 보인다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참 다행이게 루이는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유지한다.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는다. 돌아가며 발표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루이는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아주 흔한 주제를 골랐지만, 발표 당일 아주 운 나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런데 그걸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루이는 기껏 준비한 자료 대신 즉흥 발표를 하기 시작하는데, 오히려 성공이었다. 루이의 머릿속엔 1500장의 정보카드가 있잖아. 그중 최근 것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완전 실감나는 발표였다. 아이들은 환호를 보냈고, 선생님도 놀랐다며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갈 것을 제안하신다.

루이가 ‘숨을 참는’ 아이였어도 이렇게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것은 그 증세가 무기력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 보면 루이는 뭔가를 하고 싶어 했고 성취에 뿌듯해하는 아이였다. 실수도 있었지만 여차저차하여 전국대회까지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궁리와 시도를 하는 루이를 보면 엉뚱할지는 몰라도 훌륭하고 대견하다. 지금의 학생들 중에 이럴 수 있는 아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누구의 조력도 받지 못하고 나아갈 수 있는 아이는 없을 터, 부모가 나오지 않는 이 아이에게 삼촌과 선생님의 도움은 생수와 같았다.

아이가 아빠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속이 상했다.
“아빠는 한 번도 제시간에 온 적이 없어.
아빠는 별이야.
끊임없이 움직이는 별.
눈 앞에 있는 것 같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진짜 아빠가 아니야.
아빠랑 나는 수만 광년쯤 떨어져 있어.”

한편, 아이가 소중히 여기는, 겉에 하트가 그려진 그 통의 정체가 엄마의 유골함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나중의 더한 반전에 더욱 놀랐다. (심한 스포지만 그냥 씀)
“안 만날래.
난 엄마 안 보고 싶어.
엄마는 미쳤어.
살아있는 엄마보다 죽은 엄마가 더 좋아.
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엄마는 심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해 병원에 몇 달째 입원해 있다. 엄마도 안쓰럽지만, 그걸 외면하면서 강박적으로 하루하루의 일과를 소화해내는 루이는 더 안쓰럽다. 루이는 금기처럼 들어가지 못하던 엄마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그 옛날 엄마 아빠의 사랑의 증거인 편지를 보게 됐고, 삼촌의 다정한 설득도 들었고, 그 말탄 친구 필리프와도 이별했다. 이 모든 과정이 루이의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병원에 들어선다.

첫 장에 버려진 바나나껍질이 왜 나오나 했다. 그리고 체홉의 말도. “무대 위에 권총이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총을 쏜다.” 그 말 그대로, 바나나껍질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고 주제를 이끌어갔다.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놀라워요!”를 (아마도 원제인 Incroyable!) 외치게 된 결말로 향해갔다.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이었다. 현실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려운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구석구석 잘 짜여진 그래픽노블이었다. 아마도 다시 읽는다면 보이는 것이 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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