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보 까보슈
다니엘 페나크 지음, 그레고리 파나치오네 그림, 윤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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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의 이 책 원작이 나왔던 1999년에는 나도 교직 초반부였다. 그때 한창 어도연 등 각종 권장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당연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그래픽노블을 보니 완전 새로운 거야!^^ 오래됐기도 하고, 강정연 작가님의 <건방진 도도군>이랑 내용이 뒤섞여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에 내용을 많이 잊은 탓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최초로 발표된 해는 1982년이라고 한다. 40년이 넘었다는 건데, 시대를 앞서가신 건가, 지금 읽어도 문제의식이 전혀 낡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말이었겠지만 지금 사람들은 더더욱 들어야 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걱정한 방향대로 세상은 흘러온 것 같다.

이 책의 화자는 ‘개’다. (종 이름이기도 하고 개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위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과’라는 소녀가 지어준 이름이 그렇다. (사과, 얘도 참 특이해 보인다ㅎㅎ) 사과에게 오기까지 ‘개’의 삶은 참 파란만장했다. 어떤 종이 섞인 건지 가늠도 못하겠는 잡종으로 태어나, 그중에서도 가장 못생겨서 팔리지도 않겠다는 이유로 낳자마자 물에 빠뜨려졌다. 쓰레기장에 버려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시컴댕이’라는 큰 개의 도움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며 살아간다. 늘상 위험이 도사린 그곳에서 결국 시컴댕이는 사고로 죽었고, ‘개’는 시컴댕이가 해준 말들을 기억하며 쓰레기장을 떠난다. 포획되어 유기견 수용소로 가게 됐고, 거기서 운좋게 바캉스 왔던 ‘사과’의 품에 안겼다. 사과의 특이한 취향 때문이다. “난 사나운 개가 좋아!”

그러나 어린이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사과도 관심사가 급변했고, 원래부터 달갑지 않아했던 엄마 아빠와, 마음이 변해버린 사과가 있는 집에서 ‘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시컴댕이가 “도시에 가서 여주인을 찾아내서 잘 길들이라”고 했건만.... 실패한 것을 깨달은 ‘개’는 집을 탈출해 다시 거리의 개가 된다.

그러다 만난 ‘하이에누’와 ‘멧돼지’의 모습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우정을 잘 보여준다. 하이에누는 개고, 멧돼지는 사람이다. 거기에 끼어든 ‘개’까지도 멧돼지는 무심하게 반겨주었다. 가끔 꾸던 악몽까지도 가라앉게 되는 행복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개’는 그곳도 떠났다. 다시 사과를 만나러. 개와 마주친 사과는 반색을 했지만 개는 호락호락 다가가지 않았다. 결국, 개는 ‘여주인을 길들였다’? 그렇게 말하는게 맞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후 부모의 작당에 의해 또 버려지고, 돌아오는 과정은 아주 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통쾌하고 감동적이다. 책 읽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결말이다. 이래서 몇십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작품, 현대의 고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에도 개가 한 마리 있다. 딸이 난데없이 데려온 개인데, 독립하면서 데리고 나갔지만 근처에 살아서 자주 온다. 딸한테는 귀찮은 일이지만 혼자 계신 아버님이 그녀석만 기다리고 계시니 주 2일 정도는 집에 데려다 놓는다. 난 그녀석한테 만날 “너 같은 팔자가 세상에 어디 있다더냐” 하면서 부러워하지만 그녀석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사실인데, 태생부터 철저히 인위적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훨씬 더 많이 팔린다던가.... 앞으로 돈을 벌려면 반려 사업을 해야된다고들 말하는 것처럼 반려동물한테 돈을 아끼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면에는 여전히 버려지는 동물, 학대받는 동물, 공장식 축산, 터전을 위협받는 동물들이 있다. 인간의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해진 것처럼 동물들도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쪽 동물이나 저쪽 동물이나 다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배부르고 등따신 동물들이야 고통당하는 동물들보단 훨 낫겠지만, 본성을 침해당하고 자신의 영역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면에서 그들이 과연 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인간의 생활 방식 자체가 동물과 친구가 되긴 어려운 형태가 되어버렸다. 현실 안에서 최선을 찾는 수밖에 없을 테지만 이 ‘개’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우리 마음가짐을 한번 점검해보는 기회는 될 것이다. 시종일관 ‘친구’의 관계를 추구하며 보여주는 이 책을 인간관계에도 대입할 수 있겠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나 우정의 기본이기도 하니까. 누굴 길들이겠다는 의도 자체가 우정이 아니니까.

원작을 다시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이 그래픽노블은 원작을 축약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줄거리에 충실하고 느낌 또한 풍성하고 강렬하며 흥미롭다. 각색과 그림 표현을 정말 잘하신 것 같다. 원작자도 만족할 만큼이 아니었으려나? 원작과 병행하면 가장 좋겠지만 어린이들이 이 책으로 작품을 먼저 접해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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