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귀신과 함께 마루비 어린이 문학 2
한영미 지음, 임미란 그림 / 마루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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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소재들로 채워진 동화다. 그중에 '귀신'이 두드러지기에 솔직히 썩 끌리진 않았다. 괴기류를 싫어해서.... 하지만 읽다보니 무섭다기보단 애잔하달까.... 귀신을 믿지는 않지만 상상력의 영역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흔하지 않은 새로운 소재를 다루셨다는 생각도 든다.

경재네는 3남매, 부모님까지 다섯 식구인데 방 두개짜리 작은 연립에 산다. 게다가 엄마 뱃속엔 넷째가... 곧 여섯 식구가 될 예정이다. 경재의 소원은 자기 방을 가져보는 것이다. 난 무척 공감이 간다.

그런 경재가 하교길에 발견한 광고지는 전원주택 광고였다. 방이 다섯 개! 초등학생이 관심가질 내용은 아니지만 경재의 소원에 비추어보면 솔깃할 수밖에. 파격 할인이라는 '2억 5천만원'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광고지를 잘 챙겨 엄마한테 갖다드린다.

요즘 집값이 미친 가격이라... 2억 5천이면 웬만한 곳 전세값도 안될 가격이니 독자인 나도 솔깃했다. 방이 다섯 개면 2층집. 정원도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아빠는 의심했지만 엄마는 전화를 해보고는 집을 보러가기로 한다. 집은 도시에서 좀 떨어졌다는 것 외엔 손색이 없었고 엄마는 홀린 듯 계약했고, 드디어 이사를 하게 됐다.

경재는 2층의 방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이 집이 왜 헐값에 나왔는지 알게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아있는 2층의 한 방에 누가 살고 있었다. 밤이면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 '누구'는 할머니와 고양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 귀신과 고양이 귀신이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들은 왜 이 집에 있는걸까? 왜 이 집에 이사오는 사람들마다 견디지 못하고 집을 팔고 나가게 만드는 걸까? 그 사연 안에 애틋한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고통 받기에는경재네 가족은 죄가 없지 않나? 다행히 밤에 게임하길 좋아하는 경재를 빼고는 식구들이 잠을 잘 자서 무서운 일은 생기지 않는다. 아빠는 돈버느라, 엄마는 임신한 몸으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밤이 되면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두 귀신이 아무리 식구들을 놀래키려 해도 잠에서 깨지 않으니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점,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숙면하는 미덕을 일깨워 주는 것인가?^^

식구들을 괴롭혀 내쫒으려는 할머니와 맞서다보니 경재는 할머니의 사연도 마음도 알게된다. 할머니는 아들 가족이, 손자가 그리웠던 거다. 죽어서도 기다릴 만큼. 하지만 그들에게 할머니는 잊혀졌다. 그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거의 와보지도 않은 이 집을 팔고 떠났다. 다시 돌아올 일은 절대 없을거다. 할머니가 그렇게 피눈물 흘리며 기다려도....

함께 귀신이 된 할머니 '점순 씨'와 고양이 '반짝이' 사이의 애정도 눈물겨웠다. 결국 할머니는 아파하는 반짝이를 보다못해 자기 뜻을 포기한거니까.... 그래서 '경재만 아는' 귀신들은 '경재만 알게' 이 집에서 공존하기로 한다. 경재도 두 귀신을 소중히 지켜주려 한다. 뒷이야기가 있다면 아마도 경재네 가족은 그 집에서 막내동생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 것이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미소띠며 지켜보실 지도 모르겠다.

죽은 사람이 떠나지 못한다거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도 이 책의 점순 씨와 고양이에게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을 가정하고 점순씨에게 한마디 한다면 "기다리지 마세요."라고 하고 싶다. 기다리는 건 슬프니까. 내가 개를 보면서 가끔 울컥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언제 올 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한 곳을 바라보는 그 뒷모습을 볼 때다. 개는 말 못하는 짐승이라 그렇다 치고, 할머니, 뭘 그리 기다리시나요. 부질없게. 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는 거, 살아서도 못할 짓인데 죽어서는 더더욱 하지 마세요. 요즘 그런거 높이 사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시대에 맞춰서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네?

그렇긴 하지만, 우리들도 주변을 좀 돌아보며 살 필요는 있다. 누구를, 특히 부모님을 너무 기다리게 하진 말자. 피차 살면 얼마나 산다고. 매일 수록 귀찮고 편한 만큼 외로운 법이니, 너무 매이지도 너무 편하지도 않게, 적당히 귀찮고 적당히 외롭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글쎄 저도 잘 모르겠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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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달리는 아이들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6
신지영 지음, 최현묵 그림 / 서유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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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컨셉의 역사동화를 읽었다. 앞뒤로 뒤집어 읽는 책. <너는 나의 특별한 □□>, <장꼴찌와 서반장> 같은 동화가 이런 구성이었는데 흔치는 않은 구성이다. 정보를 모르고 무심코 집어 조금 읽다가 나중에 다시 잡고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분명히 몇 장 읽었었는데 왜 처음보는 것 같지?ㅎㅎㅎ 다시 보니 거꾸로 잡은 것이었다. 위에 말한 <너는 나의...>같은 책들처럼 이 책도 두 아이 각각의 시점에서 서술되다가 중간에서 딱 만난다.

두 아이는 많이 다르다. 복남이는 시골 동네 천민의 아들이다.
윤이는 한양에서 알아주는 양반가문의 딸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둘다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때는 개화기이자 일제가 마수를 뻗치던 시기, 을미사변(1895년), 아관파천(1896년) 등의 사건이 책 속에 나온다. 신식 학교가 생겨나고 세상은 변화에 눈떠가지만 뿌리깊은 신분제도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그런 시대에 두 아이는 세상에 맞서며 달린다. 실제로도 '달린다'. 복남이는 동네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달리기의 재능을 발견했다. 수방도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물지게 나르기 연습을 하던 중 이용익 어른을 만났다. (이분은 실존했던 인물) 다리를 다친 어른을 대신해 연락책 심부름을 하고 신임을 얻는다. 언제나 당당하지만 대책없이 큰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려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이며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참을 줄 아는 복남이의 모습이 믿음직하다. 윤이와의 만남은 한양의 수방도가 대회장에서.

윤이는 여느 양반댁 규수와는 다른 활기와 호기심으로 행랑어멈의 골칫거리. 양장을 하고 신식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을 부러워하며 간혹 부모님 몰래 동생의 옷으로 남장을 하고 세상 구경을 나온다. 사당패 구경을 나온 길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마당극을 보고 아수라장 속에 위기를 겪기도 한다. 윤이는 중요한 두번의 순간에 복남이를 만났다. 첫번째는 수방도가 대회를 구경갔다가. (이때 윤이는 바람같이 뛰어다니다가 복남이랑 부딪쳤지.) 두번째는 남장을 하고 나갔을 때, 얼떨결에 쫓기는 사당패의 중요한 편지 심부름을 맡았다가.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윤이가 복남이를 찾아 달린다. 그리고 악수를 청한다. 많은 관습과 금기를 한꺼번에 깨는 순간이다.

역사동화는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독서 수준은 되어야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고학년용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4학년 정도에게 권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일단 양쪽에서 시작되니 각 편의 호흡은 짧은 편인데다가 주인공들이 아이들 눈으로 봐도 매력적이고 친근할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친해지고 싶은 책 속 인물'.

일제가 침략하는 시기이니 시대 배경은 답답하고 고난으로 가득차 있지만, 비참함 보다도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바람을 달리는' 두 아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시대를 극복하는 에너지를 느낀다. 훨씬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세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책 중 두 아이의 대화에서 나온 말과 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게 중요해요. 설령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열정에 가장 큰 울림을 느꼈다. 노비출신 복남이든, 양반집 딸 윤이든 새로운 배움 앞에서 설레고 감동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 앞에 이런 설레는 배움이 있을까. 다양화된 사회니 개인에 따라 내용도 층위도 갖가지겠지. 저런 배움의 설렘이 있다면 행복한 인생 아닐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설렘을 갖고,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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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아름다움 소원함께그림책 2
알프레도 코렐라 지음, 호르헤 곤살레스 그림, 이현경 옮김 / 소원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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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이고 이탈리아 작가인데 이력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다. '이론철학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 현재는 디지털 신기술 및 소셜 네트워크 사용과 관련된 홍보 일을 주로 합니다.' 아니 이런 분이 그림책을? 읽어보니 내겐 그 바닥이 바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오한 책이었다. 철학을 전공하셨기 때문일까? 철학적 뿌리가 깊고 굵게 박혀있는 작품.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시리즈로 출간했는지도.

주인공은 늙고 이름없는 거북이다. 작가는 편의상 '니나'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다. 니나는 100년을 살았다. 그리고 '끝'이 다가옴을 예감한 것 같다. 그는 "끝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라며 끝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느릿느릿.

만나는 동물들에게 "끝이 무엇인지 아니?"라고 묻는데 그 갖가지 대답들에서 '끝'의 여러 면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만난 개미는 나쁜 거라고 했지만 애벌레는 '평생 기다려 온 순간' 이라고 했다.
"끝은 아마 방향을 바꿔야 할 순간일지도 몰라." 하는 제비의 말이 멋지게 들린다.
뱀이 그린 원에서는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었다.
꾀꼬리와의 긴 대화도 인상적이다. 끝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노래가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
강물은 끝나는 방법이 여러가지라고 말해주었다. 가령 강물은 바다에서 끝난다.

세계관에 따라 '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위 동물들 중에서도 세계를 둥글게, 혹은 직선으로 파악하는 동물들이 있는 것처럼.

나도 '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끝' 자체는 그리 싫지도 두렵지도 않은데 오직 두려운 건 육신이다. 육신의 고통과 추함만이 두렵다. 이 책의 니나의 끝에서 고통은 찾아볼 수 없었잖아! 그렇게 '끝' 할수만 있다면 끝이 왜 두려우랴. 그렇다고 '그럼 내일 당장 끝할래?' 라면 "아니 그건 좀...."이라고 하겠지만, 끝 자체를 비관하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말로 뱉어버리니까 의미의 심오함을 다 나타낼 수가 없는 느낌이네. '끝'은 인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세상 만물에 생명있거나 없거나, 어떤 존재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끝은 다가온다. 그 끝은 다행스러울 수도, 안타까울 수도, 새로운 기회일수도, 반드시 해야 하는 마무리일수도 있다. 문득 내가 질렀던 환호성이 생각났다.
"끝났다~~~~!!^^"
다시 반복될지언정, 일단의 마무리는 몹시 행복했던 기억.
그건 단순한 차원이고, 여러 층위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제목에 동의는 해야 할 것 같다. "끝의 아름다움"

채도가 낮으면서 바탕과의 대비가 분명한 그림도 매우 새로운 느낌이고 '끝'의 의미를 탐색한 내용 또한 새롭다. 이 책을 읽고 어른들이 모여 자신이 느껴봤던 '끝'에 대한 사색을 나누어도 날새는 줄 모를 것 같고 학생들과 나눌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끝'인 날에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달만 일찍 나오지!"라며 아쉬워했다. 얼마전 아이들을 졸업시켰거든. 그 특별한 날에 읽어줄 그림책을 찾다가 다른 활동으로 대체했는데 이 책이 있었다면 읽어줬을 것 같다. 그날 불렀던 노래에 이런 가사도 있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이 책은 여러번 다시 읽어도 새로 곱씹을 의미가 떠오를 것 같지만, 일단은 '끝의 날'에 읽어줄 책으로 찜한다. 내 책꽂이에 꽂아두어야겠다. 일년을 잠자다가 그날 깨어나겠지. 인생은 그렇기도 한 것.

또 한 가지, "끝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한걸음 나가면 "어떤 끝을 만들 것인가"일 것 같다. 그게 내맘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가 끝맺는 방식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사실 내 자신이 더 성찰할 부분이기도 하고. '끝의 아름다움'은 많은 부분 내 책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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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핑크 블루 우리학교 어린이 교양
윤정미 사진, 소이언 글 / 우리학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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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책의 리뷰는 처음 써본다. 사진은 별로 관심분야가 아니어서 이 책의 사진작가가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잘 몰랐다. 소개를 보니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전시회를 열고 호평받은 분이었네. 그 주제가 핑크 & 블루 프로젝트.

이 책을 보니 딱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재작년에 2학년 담임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이런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핑크 알레르기>
그 글을 퍼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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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도화지에는 노랑, 하늘, 연두, 분홍이 있다.
맘대로 골라가게 하면 하늘 50%, 연두 30%, 노랑 20% 정도 골라간다. 분홍은 드물게 한 명 정도 고르거나 아예 아무도 고르지 않는다. 올해 2학년을 맡고 보니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남자아이들은 내가 남자인데 분홍을? 이런 분위기고 여자아이들은 내가 여자기로소니 분홍을 고를소냐? 이런 느낌의 반응을 한다. 고개를 갸웃할 반응이다.

색도화지가 아닌 좀 더 좋은 색감의 색상지도 마찬가지다. 촌스럽지 않은 벚꽃색이나 살구색 오렌지색 종류도 잘 고르지 않는다. 난 뒷판에 색이 골고루 있는게 좋아서 이번엔 맘대로 가져가게 안하고 아이들 인원수에 맞춰서 색을 고루 분배한 뒤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부터 골라가게 했다. "져도 괜찮아요. 다 예쁜 색이에요. 순서를 정하는 것 뿐이에요." 라고 말했지만.... 마지막 아이가 분홍을 갖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분홍이라며 놀렸다. "너희들 이상하네? 왜 색을 차별하지? 분홍이 얼마나 멋진 색인데?"
그러자 아이들이 비웃었다.

왜 아이들은 분홍과 원수가 졌을까?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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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했던 생각은, 고정된 색깔 관념에 대한 반발? 그것에 따르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 심리인가?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왜 핑크만인가? 블루에는 예민하지 않은데 왜 유독 핑크에만? 남자들은 자신들에게 고정된 것을 거부하지 않는데 왜 여자들은? 색깔 고정관념 뿐 아니라 여러가지가 복합적이구나 생각했었다.

그때 제기된 의문이 작은 것은 아니었나보다. 십수년간 큰 전시회가 열리고 이렇게 책까지 나온 걸 보면. 분홍으로 가득찬 방과 파랑으로 가득찬 방의 대비가 단숨에 주목을 끈다. 그 방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변화를 사진으로 따라가 보는 것도 재밌다. 사진작가님은 같은 아이의 5년 후, 10년 후를 추적해서 사진을 찍기도 하셨다니, 사진이란게 그저 찰칵인 줄 알았던 내가 얼마나 무식했던가.^^;;; 약간의 설정이 없을수는 없었겠지만 진정성과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다. 메시지가 담긴 것은 물론이고.

글작가인 소이언 님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써놓으셨다.
"전시회장에서 핑크로 둘러싸인 여자아이의 사진을 보는 여자도 어릴 때는 핑크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핑크를 기피했겠지요. 보라와 파랑을 거치고, 세상이 정해 준 색의 안일함과 무신경함에 맞서 검정과 무채색으로 자신을 감추었다가, 다시 핑크를 사랑하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을 그는 사진으로 만났을 것입니다."

세상이 정해준 색에 질질 끌려가지도, 억지로 버티지도 말자.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하면 그만이다. 색은 그 모든 것들의 상징이자 대표일 뿐이다. (색만큼 상징으로 좋은 것은 없을테니^^) 분홍을 좋다고 하는 남자아이를 칭찬하지도 말자. 누가 뭘 좋아하든 그냥 그사람 맘일 뿐이야!

색이 상징하고 대표하는 모든 것. 그것을 색으로 보여주어 더없이 인상적인 그림책. 너만의 '색'을 찾아! 너의 '색'을 잃지 마! 등의 메시지도 연달아서 떠오르는 책. 본문 마지막장의 문장을 쓰면서 마치려 한다.

"좋아하는 색에 마음놓고 이름을 붙여주세요.
나만의 이름을요.
그리고 가만히 불러보세요.
안녕? 나의 핑크!
안녕? 나의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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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 2020년 제26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비룡소 창작그림책 68
루리 지음 / 비룡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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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음악대'를 패러디했을 거라고 쉽게 짐작을 할 수 있다.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기대가 된다. 맛집에서 포장해온 따끈한 음식을 열 때의 기대감?ㅎㅎ 더구나 이 작가의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 <긴긴밤>을 읽고 깜짝 놀라서 주문한 책이니 말해 뭐 해. 근데 이책은 황금도깨비 수상작이라고? 세상에나!

브레멘 음악대 원작 내용이 뭐였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주인들한테 버려진 떨거지 신세 동물들이 길을 가다 하나둘씩 모이게 됐다. 그들은 브레멘으로 가자고 의기투합했지만 결국... 갔었던가...? 도중에 도둑들의 오두막에서 그들을 놀래켜 쫓아내고 거기서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 아니었던가? 그렇지. 그들도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구나. 알고 있었지만 생각은 못했던 새로운 발견.ㅎㅎ

이 책의 동물들은 그대로 사람으로 보인다. 당나귀는 나이가 많아져 운전기사직에서 밀려나고, 개는 일하던 식당이 이사가며 혼자 남겨지고, 고양이는 인상이 험상궂다며 편의점 알바에서 짤리고, 닭은 노점에서 두부를 팔다 쫒겨난다.

밤의 지하철은 고단함을 상징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저씨와 지안이 서로의 고단함을 바라본 곳도 밤의 지하철이었듯이. 그들은 밤의 지하철에서 함께 내린다. 그리고 지안이 지친 몸으로 걷던 길 같은 가파른 밤의 골목길을 오른다. 그길에 브레멘 음악대처럼 도둑들의 집이 있었고 창문으로 환히 안이 들여다보였다. 도둑들도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이제 뭐 하고 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살 걸 그랬네."
동물들은 그집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대면하게 됐고 뭐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끝에 도둑들이 한 말,
"그러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네."

여기서부터는 원작과 완전히 다르다. 도둑들은 쫓겨나지 않았고 두 팀은 함께 "이제 우린 뭐하지?"란 고민에 빠졌다.
"일단 밥이나 먹을까요?"
그집에 음식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가진 것들을 내어놓았더니 찌개를 끓일 수 있었다. 닭은 팔던 두부를, 고양이는 삼각김밥을, 개는 마지막 김치 한통을, 당나귀는 퇴직하며 받은 참치캔을, 등등.... 찌개를 끓이며 누군가는 꿈꾼다. 만약에 말이야....

그러나 현실은 휑한 방 구석에서 찌개 한 냄비 앞에 놓고 둘러앉아 퍼먹고 있는 그들일 뿐이다. 그런데 그 다닥다닥 둘러앉은 모습에서 벌써 진한 연대의 느낌이 난다.

본문은 이것으로 끝이다. 아주 시크한 느낌이고 현실비판, 현실 한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더니 진짜 이 책은 어른그림책이구나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뒷면지의 그림엔 에필로그가 담겼고, 그건 엄청 희망적이었다. 그들은 '만약에 말이야...'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우리중에 브레멘에 갈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나의 꿈이 뭔지 잊었고 나에겐 이렇다할 재능이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고 입이 딱 벌어지는 재능을 가진 사람조차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거나 놓치거나 꼬여서 갈팡질팡하는 게 인생이다. 어쩌다 몇몇은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간 곳은 브레멘인가?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브레멘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서 있는게 인생인가. 제목이 처음엔 매우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다 읽고 나니 다르게 보인다. "괜찮아"라고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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