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달리는 아이들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6
신지영 지음, 최현묵 그림 / 서유재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특별한 컨셉의 역사동화를 읽었다. 앞뒤로 뒤집어 읽는 책. <너는 나의 특별한 □□>, <장꼴찌와 서반장> 같은 동화가 이런 구성이었는데 흔치는 않은 구성이다. 정보를 모르고 무심코 집어 조금 읽다가 나중에 다시 잡고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분명히 몇 장 읽었었는데 왜 처음보는 것 같지?ㅎㅎㅎ 다시 보니 거꾸로 잡은 것이었다. 위에 말한 <너는 나의...>같은 책들처럼 이 책도 두 아이 각각의 시점에서 서술되다가 중간에서 딱 만난다.

두 아이는 많이 다르다. 복남이는 시골 동네 천민의 아들이다.
윤이는 한양에서 알아주는 양반가문의 딸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둘다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때는 개화기이자 일제가 마수를 뻗치던 시기, 을미사변(1895년), 아관파천(1896년) 등의 사건이 책 속에 나온다. 신식 학교가 생겨나고 세상은 변화에 눈떠가지만 뿌리깊은 신분제도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그런 시대에 두 아이는 세상에 맞서며 달린다. 실제로도 '달린다'. 복남이는 동네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달리기의 재능을 발견했다. 수방도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물지게 나르기 연습을 하던 중 이용익 어른을 만났다. (이분은 실존했던 인물) 다리를 다친 어른을 대신해 연락책 심부름을 하고 신임을 얻는다. 언제나 당당하지만 대책없이 큰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려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이며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참을 줄 아는 복남이의 모습이 믿음직하다. 윤이와의 만남은 한양의 수방도가 대회장에서.

윤이는 여느 양반댁 규수와는 다른 활기와 호기심으로 행랑어멈의 골칫거리. 양장을 하고 신식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을 부러워하며 간혹 부모님 몰래 동생의 옷으로 남장을 하고 세상 구경을 나온다. 사당패 구경을 나온 길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마당극을 보고 아수라장 속에 위기를 겪기도 한다. 윤이는 중요한 두번의 순간에 복남이를 만났다. 첫번째는 수방도가 대회를 구경갔다가. (이때 윤이는 바람같이 뛰어다니다가 복남이랑 부딪쳤지.) 두번째는 남장을 하고 나갔을 때, 얼떨결에 쫓기는 사당패의 중요한 편지 심부름을 맡았다가.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윤이가 복남이를 찾아 달린다. 그리고 악수를 청한다. 많은 관습과 금기를 한꺼번에 깨는 순간이다.

역사동화는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독서 수준은 되어야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고학년용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4학년 정도에게 권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일단 양쪽에서 시작되니 각 편의 호흡은 짧은 편인데다가 주인공들이 아이들 눈으로 봐도 매력적이고 친근할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친해지고 싶은 책 속 인물'.

일제가 침략하는 시기이니 시대 배경은 답답하고 고난으로 가득차 있지만, 비참함 보다도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바람을 달리는' 두 아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시대를 극복하는 에너지를 느낀다. 훨씬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세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책 중 두 아이의 대화에서 나온 말과 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게 중요해요. 설령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열정에 가장 큰 울림을 느꼈다. 노비출신 복남이든, 양반집 딸 윤이든 새로운 배움 앞에서 설레고 감동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 앞에 이런 설레는 배움이 있을까. 다양화된 사회니 개인에 따라 내용도 층위도 갖가지겠지. 저런 배움의 설렘이 있다면 행복한 인생 아닐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설렘을 갖고,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