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 제26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비룡소 창작그림책 68
루리 지음 / 비룡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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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음악대'를 패러디했을 거라고 쉽게 짐작을 할 수 있다.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기대가 된다. 맛집에서 포장해온 따끈한 음식을 열 때의 기대감?ㅎㅎ 더구나 이 작가의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 <긴긴밤>을 읽고 깜짝 놀라서 주문한 책이니 말해 뭐 해. 근데 이책은 황금도깨비 수상작이라고? 세상에나!

브레멘 음악대 원작 내용이 뭐였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주인들한테 버려진 떨거지 신세 동물들이 길을 가다 하나둘씩 모이게 됐다. 그들은 브레멘으로 가자고 의기투합했지만 결국... 갔었던가...? 도중에 도둑들의 오두막에서 그들을 놀래켜 쫓아내고 거기서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 아니었던가? 그렇지. 그들도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구나. 알고 있었지만 생각은 못했던 새로운 발견.ㅎㅎ

이 책의 동물들은 그대로 사람으로 보인다. 당나귀는 나이가 많아져 운전기사직에서 밀려나고, 개는 일하던 식당이 이사가며 혼자 남겨지고, 고양이는 인상이 험상궂다며 편의점 알바에서 짤리고, 닭은 노점에서 두부를 팔다 쫒겨난다.

밤의 지하철은 고단함을 상징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저씨와 지안이 서로의 고단함을 바라본 곳도 밤의 지하철이었듯이. 그들은 밤의 지하철에서 함께 내린다. 그리고 지안이 지친 몸으로 걷던 길 같은 가파른 밤의 골목길을 오른다. 그길에 브레멘 음악대처럼 도둑들의 집이 있었고 창문으로 환히 안이 들여다보였다. 도둑들도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이제 뭐 하고 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살 걸 그랬네."
동물들은 그집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대면하게 됐고 뭐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끝에 도둑들이 한 말,
"그러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네."

여기서부터는 원작과 완전히 다르다. 도둑들은 쫓겨나지 않았고 두 팀은 함께 "이제 우린 뭐하지?"란 고민에 빠졌다.
"일단 밥이나 먹을까요?"
그집에 음식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가진 것들을 내어놓았더니 찌개를 끓일 수 있었다. 닭은 팔던 두부를, 고양이는 삼각김밥을, 개는 마지막 김치 한통을, 당나귀는 퇴직하며 받은 참치캔을, 등등.... 찌개를 끓이며 누군가는 꿈꾼다. 만약에 말이야....

그러나 현실은 휑한 방 구석에서 찌개 한 냄비 앞에 놓고 둘러앉아 퍼먹고 있는 그들일 뿐이다. 그런데 그 다닥다닥 둘러앉은 모습에서 벌써 진한 연대의 느낌이 난다.

본문은 이것으로 끝이다. 아주 시크한 느낌이고 현실비판, 현실 한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더니 진짜 이 책은 어른그림책이구나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뒷면지의 그림엔 에필로그가 담겼고, 그건 엄청 희망적이었다. 그들은 '만약에 말이야...'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우리중에 브레멘에 갈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나의 꿈이 뭔지 잊었고 나에겐 이렇다할 재능이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고 입이 딱 벌어지는 재능을 가진 사람조차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거나 놓치거나 꼬여서 갈팡질팡하는 게 인생이다. 어쩌다 몇몇은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간 곳은 브레멘인가?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브레멘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서 있는게 인생인가. 제목이 처음엔 매우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다 읽고 나니 다르게 보인다. "괜찮아"라고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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