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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아름다움 ㅣ 소원함께그림책 2
알프레도 코렐라 지음, 호르헤 곤살레스 그림, 이현경 옮김 / 소원나무 / 2021년 2월
평점 :
처음 보는 작가이고 이탈리아 작가인데 이력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다. '이론철학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 현재는 디지털 신기술 및 소셜 네트워크 사용과 관련된 홍보 일을 주로 합니다.' 아니 이런 분이 그림책을? 읽어보니 내겐 그 바닥이 바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오한 책이었다. 철학을 전공하셨기 때문일까? 철학적 뿌리가 깊고 굵게 박혀있는 작품.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시리즈로 출간했는지도.
주인공은 늙고 이름없는 거북이다. 작가는 편의상 '니나'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다. 니나는 100년을 살았다. 그리고 '끝'이 다가옴을 예감한 것 같다. 그는 "끝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라며 끝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느릿느릿.
만나는 동물들에게 "끝이 무엇인지 아니?"라고 묻는데 그 갖가지 대답들에서 '끝'의 여러 면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만난 개미는 나쁜 거라고 했지만 애벌레는 '평생 기다려 온 순간' 이라고 했다.
"끝은 아마 방향을 바꿔야 할 순간일지도 몰라." 하는 제비의 말이 멋지게 들린다.
뱀이 그린 원에서는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었다.
꾀꼬리와의 긴 대화도 인상적이다. 끝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노래가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
강물은 끝나는 방법이 여러가지라고 말해주었다. 가령 강물은 바다에서 끝난다.
세계관에 따라 '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위 동물들 중에서도 세계를 둥글게, 혹은 직선으로 파악하는 동물들이 있는 것처럼.
나도 '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끝' 자체는 그리 싫지도 두렵지도 않은데 오직 두려운 건 육신이다. 육신의 고통과 추함만이 두렵다. 이 책의 니나의 끝에서 고통은 찾아볼 수 없었잖아! 그렇게 '끝' 할수만 있다면 끝이 왜 두려우랴. 그렇다고 '그럼 내일 당장 끝할래?' 라면 "아니 그건 좀...."이라고 하겠지만, 끝 자체를 비관하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말로 뱉어버리니까 의미의 심오함을 다 나타낼 수가 없는 느낌이네. '끝'은 인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세상 만물에 생명있거나 없거나, 어떤 존재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끝은 다가온다. 그 끝은 다행스러울 수도, 안타까울 수도, 새로운 기회일수도, 반드시 해야 하는 마무리일수도 있다. 문득 내가 질렀던 환호성이 생각났다.
"끝났다~~~~!!^^"
다시 반복될지언정, 일단의 마무리는 몹시 행복했던 기억.
그건 단순한 차원이고, 여러 층위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제목에 동의는 해야 할 것 같다. "끝의 아름다움"
채도가 낮으면서 바탕과의 대비가 분명한 그림도 매우 새로운 느낌이고 '끝'의 의미를 탐색한 내용 또한 새롭다. 이 책을 읽고 어른들이 모여 자신이 느껴봤던 '끝'에 대한 사색을 나누어도 날새는 줄 모를 것 같고 학생들과 나눌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끝'인 날에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달만 일찍 나오지!"라며 아쉬워했다. 얼마전 아이들을 졸업시켰거든. 그 특별한 날에 읽어줄 그림책을 찾다가 다른 활동으로 대체했는데 이 책이 있었다면 읽어줬을 것 같다. 그날 불렀던 노래에 이런 가사도 있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이 책은 여러번 다시 읽어도 새로 곱씹을 의미가 떠오를 것 같지만, 일단은 '끝의 날'에 읽어줄 책으로 찜한다. 내 책꽂이에 꽂아두어야겠다. 일년을 잠자다가 그날 깨어나겠지. 인생은 그렇기도 한 것.
또 한 가지, "끝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한걸음 나가면 "어떤 끝을 만들 것인가"일 것 같다. 그게 내맘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가 끝맺는 방식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사실 내 자신이 더 성찰할 부분이기도 하고. '끝의 아름다움'은 많은 부분 내 책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