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내리는 비, 잠비 - 2025년 제4회 비룡소 역사동화상 대상 수상작 일공일삼 116
김도영 지음, 해랑 그림 / 비룡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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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는 역사동화를 거의 다 챙겨보던 때가 있었는데 한동안 놓았다가 오랜만에 한 권 읽어보았다. 수상작이라 제목이 눈에 자주 띄었지만 잡지 않고 있다가 해를 넘기고 읽어본다. 한달음에 끝까지 읽었다. 상당히 매력있는 작품이었다.

역사동화 중에는 감정을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당시 역사 사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있고, 역사적 인물들에 이입될 수 있게 감정을 자극하는 작품들도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 작품은 후자라고 하겠다. 주인공은 훗날 정조가 되는 왕세손 이산, 그리고 양반 아버지와 천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 규안이다. 전자는 실존 인물이고 후자는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또 이산이야? 할 수 있다. 매우 드라마틱한 서사를 가진 인물이어선지 책으로,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도 다루었다. 주로 당대 인기있고 잘생긴 배우들이 역할을 맡았다. 내가 기억나는 배우만 해도 이서진, 현빈, 이준호 등... 조금씩 다른 관점의 서사였지만 이산이 강인하고 능력 있으며, 그러면서도 고뇌하고 사랑하는 멋진 청년으로 나온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 책은 독자가 어린이니만큼, 11살 이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만든 규안이라는 인물 역시 같은 나이로 나온다.

지금도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역사서를 읽어보면 그나마 지금 태어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첫 번째는 신분제도 때문이다. 내가 귀족이나 양반으로 태어났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럼 평생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죽도록 일만 하다 죽을 거 아니야? 두 번째는 비정한 권력투쟁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지금이 더 교묘하게 잔인할 수도 있지만.... 하여간에 권력이 무엇인지 부모자식 간에도 죽고 죽이니. 특히 그 권력의 집중처인 궁궐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 권력 기반이 약하거나 흔들리는 경우에는 내일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궁궐 아니던가. 이산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랬다.

가상 인물인 규안의 아픔은 신분제도 때문이다. 서얼인 규안은 홍길동전에서 보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의 딱 그 모습이다. 그뿐이 아니라 성품 고약한 부인과 친자들의 행패를 수시로 견뎌야 한다. 다 허물어가는 별채에서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충직한 하인 큰노미를 붙여주신 것이 그나마 양반 아비가 베푼 배려였다. 작가는 이 규안이의 캐릭터를 다채롭게 창조하며 흔한 소재를 흔하지 않게 만들었다. 천덕꾸러기로 자라난 탓에 몸집이 작고 상처투성이고, 그렇다고 어른스러운 성품은 아니어서 작중 소소한 웃음을 유발하고, 그렇지만 생각은 반듯해서 속깊은 마음과 행동을 엿볼 수 있는 캐릭터. 독자들의 애정과 응원을 받을 만한 캐릭터다.

서로 다른 어려움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이산의 할머니(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이 왕세손 옆에 둘 또래 아이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설마 규안이 뽑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세손 또한 규안을 소 닭보듯 했지만 둘은 어느새 가까워지게 된다.

11살 규안의 눈으로 본 모습에 궁궐의 암투가 다 담길 리는 없다. 하지만 하나만 봐도 열을 알 듯한 장면은 바로 세손의 ‘불면’이었다. 세손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일도 없고 달게 자는 일도 없었다. 그의 선택은 오로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의 몸에 밴 불안에 연민을 느낀다. 나는 가장 괴로운 감정이 불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객을 두려워하며 잠에 들어야 하는 삶은 어떠할까. 으으.... 모든 걸 포기하고 부도 권력도 없이 사는 게 낫지 그렇게는 한시도 못살 것 같다. 인간은 어쩌자고 그런 존재들일까.

규안의 다채로운 캐릭터 중에는 그의 재능이 있다. 귀가 특별히 예민하여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고 들은 것을 잘 기억하여 외국어에 소질이 있다는 점. 그래서 사역원에 들어가 역관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렇게 귀가 밝은 규안의 특기는 세손에게 잠시의 단잠을 선사했다. 밥보다 잠을 더 좋아하는 내가 이 대목에서 흐뭇함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세손의 고단한 처지와 애씀이 시대를 넘어 느껴졌다. 이것이 역사동화의 역할이라면 이 책은 그 역할을 너무 잘해냈다. 그래서 역사동화상 수상작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잠비’가 이 책의 제목이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저하, 백성들은 여름비에 달콤한 잠을 청하고 다시 기운을 얻지 않사옵니까? 그렇게 이어나가는 삶을 생각해 보소서.” (124쪽)
규안이 세손에게 잠시라도 선사한 잠비의 평화로움. 내가 잠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선지 그 평화로움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누구든 큰 욕심 내지 않고 이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세상. 바로 그들이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런 세상은 왔나.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온 것은 사실이다.

작가가 캐릭터를 창조할 때는 작명도 중요할 것 같은데, 이 작품에서는 특히 중요하고 어려웠을 것 같다. 해바라기 규에 편안할 안. 자식이 당하는 수모를 모른척 하는 아비가 지어준 그 이름에서 얼자인 그는 아비의 사랑을 믿었었지. 아비의 작명이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작명인 이름. 그 이름 하나에도 작가의 고심이 느껴지는, 많은 감정이 꽉 들어찬 역사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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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이나 되어 볼까? - 제6회 Be그림책 대상 수상작 꿈터 그림책 10
카미 치토세 지음, 김현정 옮김 / 꿈터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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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이 이렇게 작아? 동화책만한 판형을 가진 그림책이다. 캐릭터가 개성있고 귀엽고(내 기준) 코믹해서 그림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있다.

 

내용도 꽤 의미가 있는데, 한번 봤을 때는 좀 진부하게 느껴졌다. 이런 거 많잖아? 문제의식 좋은데 이미 많이 한 이야기잖아? 이런 느낌. 하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니 처음보다는 생각이 좀 많아졌다.

 

나는 강아지야.”로 시작한다. 강아지라는데 아주 크고 좀 험악하게 생겼다. 아 그 험악이란 것이 귀엽게 험악한? 전형적인 귀여움과는 좀 다르지만 색다른 매력이 있다. 얘가 심심하고 따분해서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되기 위한 특별한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자, ‘진짜 사람 되기라는 책과 학습 상자가 집으로 도착한다. “슬플 때는 멍멍하고 짖지 말고 눈물을 흘리세요.”라고 책에 쓰여 있고 학습 상자에 안약이 들어있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사람 옷을 입었다. 책의 다음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에 쫒기며 살아요. 그러니까 서둘러 주세요.”

 

옷을 입고 합류한 사람들의 대열에서 그는 빨리 걸어야 했고 방향을 틀 수도 없었다. 똑같지 않다고 엄청 혼이 났다. 겨우 대열에서 도망친 그가 사람이 되는 건 이렇게 힘들고 무서운 일이구나.”라고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한다. 일단 세상에 인간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는 점부터 인정한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걸어오거나 다른 길로 가는 사람에게 퍼붓는 그 무지막지한 비난도 바로 이 세계의 모습이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좋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자기 길이 맘에 들면 그냥 감사하면 되는데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바보 같다고 비웃고 손가락질한다. 아주 못된 의미의 오지랖이 폭발한다.

 

<나도 사람이나 되어볼까?>라는 제목에 대한 답은 아서라, 그냥 생긴 대로 살아.”가 되겠다. 하지만 이미 사람으로 태어난 입장에서, 그래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사람된 도리겠지? 이 책은 그 방법을 반어적인 방법으로 말해주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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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 - 제26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103
이윤정 지음, 박재인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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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도 담담하고 도입부의 이야기도 평범한 듯했는데 어느새 다 읽었다. 엄청 흥미롭거나 긴장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가는 서사의 힘이 있다. 수없이 나오는 이야기들 중 기억에 남기는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이유가 뭘까?

동화 제목을 영어로 뽑는 건 좀 별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는 어쩔 수 없이 동의가 됐다. 이중의 의미 때문이다. ①다시 재생(돌려보기), ②재경기 이 두가지 의미가 이야기 안에서 모두 중요했다.

경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스포츠 동화인가? 일종의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경기 장면이 두드러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손에 땀을 쥐는 경기의 묘사에서 현장감이 폭발하는 스포츠 동화들은 그것대로 매력이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쪽은 아니다. 그 이면의 이야기, 실패와 극복의 이야기라고 할까. 아니 아직 다 극복되지도 않은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굳이 극복되지 않아도 괜찮은 이야기라고 말하고도 싶다.

전학 온 권해람은 이전 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왔다고 한다. 그반의 황희영은 아빠랑 둘이 살며 시간관리가 잘 안되어 학교에 늘 지각한다. 두 아이가 번갈아 화자로 나오는 이야기다.

해람이의 문제는 제목인 리플레이(다시 재생)이다. 촉망받는 야구선수였던 해람이는 어느 경기에서 투수가 던진 공에 얼굴을 맞고 쓰러진 후 그 트라우마로 공에 대한 공포심이 생겨버렸다. 얼굴로 공이 날아오던 그 순간이 자꾸만 리플레이 되는 것이다. 야구선수가 공에 대한 공포심? 안될 말이다. 결국 해람이는 야구를 그만두고 여기로 전학왔다. 폭주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평범하게 적응하는 듯하지만 마음속에 좌절감과 야구에 대한 미련은 늘 해람이를 괴롭히고 있다.

희영이의 문제는 혼자 방치된 외로움...이라고 할까. 엄마가 떠나고 아빠는 시간이 안맞고 단짝이던 제나마저 아이돌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전학갔다. 하지만 지각 문제를 알고 손을 내민 상담 선생님 덕분에 힘을 내려 하고 있는 중이다. 상담 선생님은 소소한 상품을 걸면서 희영이의 성취감을 자극한다. 지각하지 않기에서 저녁운동하기까지 목표가 올라갔다. 그 저녁운동에서 이 두 주인공의 만남이 시작된다. 어떤 만남들은 참 중요하다. 서로를 일으켜주게 되는 만남.

둘은 캐치볼을 하게 된다. 해람이가 희영이의 첫 던지기를 ‘패대기쳤다’고 표현할 때 웃음이 났다. 내가 바로 그랬거든. 체력장 중에서 던지기를 제일 못했다. 나도 이렇게 매일 받아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좀 나아질 수 있었으려나....^^ 희영이는 많이 늘었다. 그리고 해람이에게도 좋은 점이 있었다. 희영이랑 주고 받는 공은 공포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

함께 야구장에도 놀러가면서 둘은 더 친해지지만, 캐치볼은 이쯤에서 그만둬야 했다. 해람이가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야구를 다시 해보기로. 좋은 일이지만 희영이는 다시 혼자가 됐다. 서울로 간 제나한테서도 성공의 좋은 소식이 왔다. 이때 못나게도 제나와 연락을 끊는 희영이. 그러지 말지... 싶으면서도 희영이를 욕할 수는 없었다. 내 안에도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만 빼고 주변은 모두 잘 되어 또다시 나만 남았을 때.... 나도 이를 악물고 잘되면 좋겠지만 그게 쉽던가?

리플레이의 두 번째 의미는 해람이의 재도전 시합이라 하겠다. 여기서 해람이가 역전 홈런....을 쳤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홈런은커녕 공에 배트도 대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때 야구 절친인 진우와의 대화.
“나.... 할만큼 한 것 같다. 진짜로.”
“해람이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그건 진짜일 거야. 할 만큼 해봤는데도 안되고 이제 그만두고 싶으면 시원하게 보내 줘 버려! 야구, 이까짓 거.”
“푸하핫”
말을 이렇게 했지만 해람이는 좀 더 해볼 작정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경기에 찾아왔던 희영이. 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결말에서 희영이의 모습은 어떻게 끝날까?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 독자의 마음이 애틋했다. 다들 힘들지만, 친구의 모습이 같이 늪에 빠지는 모습이어선 안된다. 이럴 땐 내가, 저럴 땐 네가 서로 잡아줘야 친구인 거다. 해람이와 희영이한테서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몸을 움직이면서 벗어나는 모습을 작가님이 보여주신 것도 좋았다.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머리도 상쾌해지는 법! 그리고 아이들의 도전에 무턱대고 하면 된다!!고 강요하는 느낌이 아닌 점도 좋았다. 해람이는 트라우마를 단번에 극복하진 못했지만 계속 도전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하다 안돼서 그만두면 또 뭐 어떤가? 다른 도전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는 거지. 그 사이에 또다른 방황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건강한 모습을 잃지 않으면 된다. 가족과 친구가 그 옆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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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지루한 지룽이 북멘토 그림책 34
베티나 오브레히트 지음, 율리 푈크 그림, 김서정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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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의 이름은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말로는 '지룽이'라고 번역했다. 적당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너무 지루해서 지룽이다. 얘는 말하자면 '지루함'을 형상화한 존재다.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함께 이 형상화를 아주 잘해내신 것 같다. 아주 느낌이 쏙쏙 온다. 길쭉하고 회색인 이 존재는 팔도 없고 표정도 없다. (아 지루한 표정이 있는건가)

에밀이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던 순간 이 지룽이가 찾아왔다. 에밀은 지룽이에게 말을 걸며 이것저것 제안하기 시작했다. 지룽이는 다 싫다고 한다. 하지만 에밀의 상상력은 계속 뻗쳐나간다. 악어장난감은 프린츠가 되고 여자아이인형은 펠린느가 되었다. 지룽이는 말도 안된다며 툴툴댄다. 인형이랑 장난감은 말을 못한다며. 음 그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에밀도 가만있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 프리츠랑 펠린느한테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보물을 찾아낼 수도 있어."

이렇게 말하는 에밀의 주변이 침대에서 뻗어나가 점점 확대된다. 언덕이 생기고, 하늘에 여러가지가 날고, 강아지와 호랑이 인형은 보물상자를 지키는 용이 된다. 성이 지어지고 멋진 정원도 펼쳐진다. 에밀의 세상이 펼쳐질수록, 지룽이는 작아진다. 어느 순간, 들어왔던 창문으로 스륵 빠져나가 버렸다. 그걸 붙잡을 겨를이 없다. 지금 에밀은 신나는 모험에 푹 빠졌으니까!

아이들에게 텅 빈 시간, 심심한 시간은 결코 해롭지 않은 시간이며 오히려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이 책은 그 메시지에 대한 최고의 형상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글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지루함이 다가온 순간과 물러난 순간, 그 사이에 구축된 아이의 상상의 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들 본인이 어린 시절을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틀림없이 그럴 것 같다.

나도 어린 시절 텅빈 시간들을 많이 보냈다. 부모님들은 그걸 내버려 두셨고.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 어떤 조바심도 없었다. 지금은 크게 다르다. 부모들은 텅빈 시간에 아이들이 머무르는 걸 아까워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물론 바쁘거나 무관심해서 방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지룽이가 찾아오진 않는다.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줬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한 조금의 틈이라도 불안하다는 듯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뭐라도 들여다본다. 이러면 어떤 순간에도 지룽이는 올 수가 없다.

사실 이 모습이 내 모습이기도 해서 할 말이 없다. 지금 이 글도 폰으로 쓰고 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내가 폰을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은 건 늘 지니고 다니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이들에게 평생 지룽이를 한번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이것을 위해 사회와 부모가 고민하고 뭔가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그 내용과 관련지어 생각할 부분도 있어 보인다. 완벽한 보호를 받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그건 약간의 위험성, 시련이 있는 상황에 아이들을 놓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겠다. 그러나 요즘의 인식은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만드는 것 자체가 책임의 소재를 따질 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시도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한가지 기억을 말해본다. 어느 반이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하다가 한 아이가 혼자 넘어지며 무릎을 찧었다. 세게 찧었는지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담임은 즉시 보건실로 업어서 옮겼고 보건실도 응급처치 및 보호자 연락 등 해야 할 일들을 했다. 근데 그 보호자들은 "어떻게 학교에서! 아이가 다칠 수 있냐!'고 분노하면서 관련자들을 오랫동안 괴롭게 했다.

결국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 지위, 즉 부모의 지위 아니고는 모험이나 '도전 상황'은 해줄 수가 없는 일이 되었다. 부모들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부모님이 읽어주시면 가장 좋을 것 같다.

무겁고 심각하게 리뷰를 썼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밝고 예쁘고 미소가 지어지는 느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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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 -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의 유쾌한 반전 라이프
김한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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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처음 본것은 '천재견 토리' 라는 쇼츠 영상에서다. 강아지가 우리집 개와 똑같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던 거다. ('말티푸'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우리집 개보다 훨씬 작고, 우리 개도 똑똑한 편인데 훨씬 더 똑똑했다. (그러니까 천재견이라는 영상을 찍었겠지?) 개의 재롱에 웃다가 그제서야 개아빠 한솔씨한테 눈길이 갔다. 그가 개와 대화중 지나가듯 자신의 눈이 안보인다고 말했을 때 깜짝 놀랐다. 아 시각장애인이구나. 근데 엄청 밝고 유쾌하시며 움직임도 자연스러우시네. 그런 생각을 했다. 이후로도 토리 쇼츠는 종종 떴고 재미있게 봤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서 이분의 책 소개를 보게 됐다. 아 책도 쓰신 분이구나!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최근작과 이 책까지 두 권의 저서가 있다. 먼저 나온 이 책부터 읽어보았다.

이 책에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각장애인이 된 과정, 극복하며 맹학교와 대학생활을 한 과정, 유튜버가 된 과정까지 담겨있다. 내가 처음 관심을 갖게된 계기인 토리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 권에 나오는 것 같다. 그 책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솔씨의 성장과정을 보면 흔한 말로 불우했다. 9살부터 13살까지 그는 3명의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는데 친어머니와 새어머니들 모두 어린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 과정만 가지고도 평생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세번째 어머니는 말도없이 떠나갔다. 한솔이 혼자만 남겨진 거다.

이때, 지금 돌아보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아찔해지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큰엄마 큰아빠가 맡아주신 것이다. 조카를 거두는 것, 옛날 시대엔 당연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다. 얘길 들어보니 방도 모자랐고 그래서 큰엄마, 큰아빠와 거실서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이건 아무리 칭송해도 모자랄 만큼 큰엄마가 대단하신 거다. 아마도 주변에서 반대도 많았을걸? 자신 하나만 봐서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선택이 가져온 선한 물결은 지금까지도 퍼져나가고 있다.

고마운 손길도 있었으니 어린 한솔의 고난이 거기까지였으면 얼마나 좋아. 고2때 눈에 이상이 감지되었는데 그건 실명에 이르는 불치병이었다. 한솔과 큰엄마 가족이 얼마나 슬퍼하고 염려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책의 한구절에서 한솔씨는 "복지카드를 받았을 때 잠깐이었지만 '이젠 끝이야' 라고 생각했다." 라고 썼다. 그 감정에 너무나 공감한다. 시각을 잃은 세상을 나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한솔 씨의 장점이 있었으니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 했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어내고 그걸 동력으로 또 나아갔다. 그 시작은 점자였다. 그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에게 학습능력과 집요한 성취욕이 있었던 것에 나는 감사한다.

맹학교 재학기간 중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그게 그에게 희망이 되었던 것도 참 다행이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라는 그의 장점은 볼수록 다행스러웠다.우울질이 약간 스며 있는 내 성격으로는 도저히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그 두 성격은 출발이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천지차이의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한솔 씨의 행보를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한솔씨에게 그 긍정에너지를 형성해 준 곳이 큰엄마네 가정이었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솔 씨는 그 전에 바닥을 헤매던 학업성적이 큰엄마네 가정에 편입되고부터 수직상승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하루를 얘기할 수 있는 일상이 신기할 정도로 행복하고 좋았다고 한다. 이건 모든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한솔 씨의 천성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따뜻함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천성도 발휘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한솔 씨의 도전은 계속된다. 시각장애인이 주로 가는 학과들을 마다하고 어렵다는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며, 장애 학생들과 동아리도 결성해서 활동했고 소수자들에 무심했던 학교의 여러 모습을 바꾸어 나갔다. 가장 큰 도전은 역시 유튜브라 하겠는데, 이 도전을 통해 그의 삶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한조각인 토리 쇼츠를 보고 그를 알게 되었으니. 이 책을 읽고 그의 정식 채널을 구독했다. 이 책의 제목에도 들어있는 '원샷한솔'이다. 이게 끝은 아닐 터이다. 그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그가 영상으로 공개되는 부분, 보여지지 않는 모습 모두에서 평안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그는 이제 시력을 잃었던 처음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한솔 씨도 나처럼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이런 말을 했던 걸 보면.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저랑 뭘 하든 제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 상대가 힘들지 않을까요?" (101쪽)
하지만 이걸 넘어서야 한다. 장애 당사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가 넘어서야 한다.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걸 보여주는 한솔 씨와 친구들이 정말 고맙다. 서로 고마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까지 제거할 필요는 없다. 내미는 손길은 흔쾌히 잡고, 고마워하고, 나도 내밀 수 있는 곳에 손을 내밀고, 또 고마워하고. 이렇게 고마운 마음이 퍼져나가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 아닐까. 한솔 씨는 처음의 미안함과 주춤거림을 극복했다. 너무 다행이다. 지금은 한솔 씨한테 용기를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 자식 또래의 한솔 씨한테 나는 또 이렇게 배운다.

어린시절의 상처에 대해서도 지금의 한솔씨는 파도타기의 경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파도타기에 익숙해지고 새로 오는 파도를 넘을 수 있는 힘이 생긴 과정. 또 이렇게도 말한다.
"같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두려움으로 맞이하는 것과 기대감으로 맞이하는 것은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240쪽)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난 앞이 보이지만 한솔 씨보다 두려움은 훨씬 크고 기대감은 훨씬 작다. 젊지만 나보다 훨씬 단기간에 큰 파도를 많이 넘은 한솔 씨는 이제 웃으며 여유있게 파도를 타고 있다. 닮고 싶은 모습이다. 그의 파도타기를 계속 응원하겠다. 그리고 천재견 토리의 이야기가 담긴 두번째 책도 꼭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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