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지루한 지룽이 북멘토 그림책 34
베티나 오브레히트 지음, 율리 푈크 그림, 김서정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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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의 이름은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말로는 '지룽이'라고 번역했다. 적당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너무 지루해서 지룽이다. 얘는 말하자면 '지루함'을 형상화한 존재다.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함께 이 형상화를 아주 잘해내신 것 같다. 아주 느낌이 쏙쏙 온다. 길쭉하고 회색인 이 존재는 팔도 없고 표정도 없다. (아 지루한 표정이 있는건가)

에밀이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던 순간 이 지룽이가 찾아왔다. 에밀은 지룽이에게 말을 걸며 이것저것 제안하기 시작했다. 지룽이는 다 싫다고 한다. 하지만 에밀의 상상력은 계속 뻗쳐나간다. 악어장난감은 프린츠가 되고 여자아이인형은 펠린느가 되었다. 지룽이는 말도 안된다며 툴툴댄다. 인형이랑 장난감은 말을 못한다며. 음 그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에밀도 가만있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 프리츠랑 펠린느한테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보물을 찾아낼 수도 있어."

이렇게 말하는 에밀의 주변이 침대에서 뻗어나가 점점 확대된다. 언덕이 생기고, 하늘에 여러가지가 날고, 강아지와 호랑이 인형은 보물상자를 지키는 용이 된다. 성이 지어지고 멋진 정원도 펼쳐진다. 에밀의 세상이 펼쳐질수록, 지룽이는 작아진다. 어느 순간, 들어왔던 창문으로 스륵 빠져나가 버렸다. 그걸 붙잡을 겨를이 없다. 지금 에밀은 신나는 모험에 푹 빠졌으니까!

아이들에게 텅 빈 시간, 심심한 시간은 결코 해롭지 않은 시간이며 오히려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이 책은 그 메시지에 대한 최고의 형상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글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지루함이 다가온 순간과 물러난 순간, 그 사이에 구축된 아이의 상상의 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들 본인이 어린 시절을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틀림없이 그럴 것 같다.

나도 어린 시절 텅빈 시간들을 많이 보냈다. 부모님들은 그걸 내버려 두셨고.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 어떤 조바심도 없었다. 지금은 크게 다르다. 부모들은 텅빈 시간에 아이들이 머무르는 걸 아까워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물론 바쁘거나 무관심해서 방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지룽이가 찾아오진 않는다.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줬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한 조금의 틈이라도 불안하다는 듯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뭐라도 들여다본다. 이러면 어떤 순간에도 지룽이는 올 수가 없다.

사실 이 모습이 내 모습이기도 해서 할 말이 없다. 지금 이 글도 폰으로 쓰고 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내가 폰을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은 건 늘 지니고 다니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이들에게 평생 지룽이를 한번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이것을 위해 사회와 부모가 고민하고 뭔가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그 내용과 관련지어 생각할 부분도 있어 보인다. 완벽한 보호를 받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그건 약간의 위험성, 시련이 있는 상황에 아이들을 놓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겠다. 그러나 요즘의 인식은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만드는 것 자체가 책임의 소재를 따질 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시도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한가지 기억을 말해본다. 어느 반이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하다가 한 아이가 혼자 넘어지며 무릎을 찧었다. 세게 찧었는지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담임은 즉시 보건실로 업어서 옮겼고 보건실도 응급처치 및 보호자 연락 등 해야 할 일들을 했다. 근데 그 보호자들은 "어떻게 학교에서! 아이가 다칠 수 있냐!'고 분노하면서 관련자들을 오랫동안 괴롭게 했다.

결국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 지위, 즉 부모의 지위 아니고는 모험이나 '도전 상황'은 해줄 수가 없는 일이 되었다. 부모들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부모님이 읽어주시면 가장 좋을 것 같다.

무겁고 심각하게 리뷰를 썼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밝고 예쁘고 미소가 지어지는 느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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