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가 되고 싶어 학교종이 땡땡땡 13
요시노 마리코 지음, 타카하시 카즈에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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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을 못한다고, 나도 친구관계에 집착하던 한때가 분명히 있었다. 단둘이, 아니면 서넛이, 특별히 친하고 함께 다니던 친구가 있었고 그 구도가 달라지는 건 큰 지각변동처럼 느껴졌다. 그런 걸 보면 이건 통과의례처럼 겪고 지나가는 일인 것 같다. 근데 나이들어 여기에 목을 매는 학생들을 보면 왜그리 답답해 보이는 걸까? 왜 쿨한 것만 멋져보이고 질척이거나 집착하는 모습이 그리도 보기 싫을까?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나도 돌아봐야 하지만 이런 경향이 과도하면 문제는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은 쉽고 귀여운 동화가 있다. 천개의바람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나온 줄은 모르고 있다가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하고 대출해왔다. 이 책은 극단적인 캐릭터를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적인 문제를 한번 성찰하게 해준다. 저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고학년과 읽어보고 얘기 나누기에도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른들이 읽어도 깨달음이 있을만한 책이다. 어른들이라고 관계 문제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니까. 아이들보다 더한 경우도 많다는....

 

최근의 유행대로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들이 주인공이어서 더욱 접근성이 높다. 여름이는 고양이 학교에 다닌다. 흑백 얼룩이인 자신을 매우 평범하다 생각한다. 같이 잘 노는 친구로는 예쁘고 똑똑한 삼색이 태비, 호랑이 줄무늬 랑이, 겁쟁이 잠꾸러기 회색줄무늬 시온이가 있다. 여기에 프리실라라는 이름도 개성있는 오렌지색 멋진 털의 고양이가 전학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름이는 프리실라가 맘에 들어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태비에게 베스트 프렌드가 되자고 제안했다. 베프란 걸 생각도 못하고 지내온 친구들은 프리실라에게 맞추기가 어렵다. 태비랑 깨지고 나서 프리실라는 이번엔 랑이에게 베프 제안을 했는데, 얼떨결에 승낙한 랑이도 얼마 안가 깨지고 말았다. 다음 순서로 프리실라는 여름이에게 제안을 하는데.... 여름이는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프리실라의 베프 제안을 받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시간 동안, 여름이는 깨달은 게 있었다. 함께 있는 시간도 좋지만 홀로인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교장선쟁님의 비밀 공간에 우연히 들어갔던 여름이는 벽에 걸린 이런 시를 읽게 된다.

 

나뭇잎을 흔들며 흐르는 바람은

전부 고양이 거

(중략)

세상의 주인공은 너니까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외톨이로 살아라.“

 

당당하게 외톨이로 살라니. 멋진 말이다. 위험한 말일 수도 있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절대 혼자서는 설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발판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 인간 사회다. 이걸 무시하고 연대의 끈을 다 끊어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랬다간 진짜로 큰일난다. (현대사회가 점점 그래지는 것 같아 슬프고 걱정될 때가 있다) 여기에서 외톨이란 독립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과 연대의 양면을 다 가지고 있어야 건강하게 유지되는 집단이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뜻인 것 같다.

고양이도 친구가 있어도 되고, 여럿이 모여도 돼. 어른 고양이도 가끔 고양이 모임을 하고 말이야. 하지만 혼자 있는 즐거움도 알았으면 좋겠구나.“

 

작년과 올해 운이 좋아서인지 아이들의 관계 문제로 고생한 적이 없어서 감을 좀 잃어버린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독립을 두려워하는 아이들, 끈이 떨어질까봐 집착하는 아이들, 그 끈의 주도권을 잡고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이 뒤엉키면 그 안에서 많은 상처와 문제들이 발생하곤 했었다. 지금 혼자라고 영원히 혼자가 아니야! 두려워하지 말고 그 끈을 놓아도 된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 책은 아주 귀엽고 부드럽게 그 용기를 줄 것 같다.

 

그렇다고 프리실라가 관계를 망치는 나쁜 캐릭터인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성향 속에서 지냈고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프리실라는 친구들 돕는 연대의 마음도 갖고 있었다. 다섯이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으로 이 책은 끝난다. 혼자와 함께.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이 어린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난 너무 혼자 있으려고 해서 탈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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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어요, 고양이 노래 그림책 1
송인섭.홍이삭.이나래 지음, 민정원 그림 / 야옹서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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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에 의한 책 구매가 또 발생했다. 나는 뭔가에 깊이 치열하게 빠지는 성격은 아니라서 홍이삭 가수의 팬이라곤 하지만 덕질까지는 하지 못한다. 음원을 빠짐없이 다운받는 것과 그가 관련된 영화와 책이 있으면 꼭 사는 것? 이 책도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집에, 한 권은 직장에 두었다. 직장에선 좀더 쓰임새가 많을 것이고, 집에선 아마 나 혼자 보겠지만.^^

홍이삭 가수의 유튜브는 파도 파도 나와서 유튜브의 바다에서 헤엄친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인데, 음악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영상이 많다. 그냥 일상처럼 조용히 무심하게. 저게 작업 맞나 싶은 시간들마저 버리지 않고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런 팀이 하나가 아니어서, 이분은 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보다 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무던해서일 수도 있겠다.

이 작업을 함께 한 사람들은 ‘차곡차곡’이라는 채널의 친구들이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채널이다. 이 책의 내용이 된 노래의 작업 영상은 5년 전에 올라왔다. 초반부는 아 뭐하지 뭐하지 하면서 흘려보내고....ㅎㅎ 동물 이야기로 만들어보자, 그럼 고양이? 하다가 송인섭 씨가 첫 소절을 뱉어보았고, 폭소와 박수가 터지다가 다음 소절, 다음 소절 이야기하며 만들어갔다. 완성하고 나서도 그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근데 이거 어디다 써먹어?” 이랬는데, 5년이 지나 이렇게 귀여운 그림책으로 탄생하였다.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었는데, 조회수 몇백에서 그친 아쉬운 작업일 수도 있었는데 참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수많은 무명 예술가들의 결과물에서 그렇게 묻혀버린 빛나는 조각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5년전에 작업 영상과 함께 노래 영상도 올렸는데 그때의 목소리는 남자어른(아마도 송인섭 씨)이고, 최근 그림책을 출시하며 귀여운 여자어린이 목소리로 다시 녹음을 했다. 동료들에게 이 영상을 공유했더니 힐링이 되는 목소리라며 좋아들 했다. 나 또한 이 어린이의 목소리가 아주 맘에 들지만 최초의 녹음, 그냥 툭툭 부르는 남자어른의 노래도 좋다. (그사이 가사는 조금 바뀐 곳이 있다.)

“여기 있어요, 고양이.
없는 줄 알았겠지만
밤새 따뜻해서 밑에 있어요.
보닛을 퉁퉁치고 출발하세요.”

날이 많이 추워졌다. 이 추위에 길고양이들은.... 나름의 방법대로 생존을 위해 애쓸 것이다. 그걸 배려해주는 센스.

“나는 보기보다 안보입니다.
라이트를 켜도 보이지 않아요.
속도를 줄여주세요, 나는 잘 안보이니까
천천히 달려주세요.”

나는 아기고양이의 사고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걸 글로 쓰기가 어렵다.ㅠㅠ 대로변이라면 모르지만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모두들 천천히 가면 좋겠다.

“나도 외로울 줄 알아요.
강아지랑 비교하지 마세요.
집사가 나가면 나도 문을 쳐다봐요.
그러니 나도 신경 써 줘요.”

난 이 대목이 웃기면서도 찡했다. 보통 고양이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한다. 도도하고. 하지만 ‘집사가 나가면 나도 문을 쳐다본다’니.... 왠지 찡해. 집사님들은 더하겠지?

“나도 내가 귀여운 거 알아요.
날 품에 안고 데려가고 싶겠지만
밤늦게 집에 안 가면 엄마가 걱정해요.
나를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첫줄에선 빵터졌다. 그렇지 너도 니가 귀여운 거 알지.ㅋㅋㅋ 하지만 길고양이라도 함부로 만지거나 데려가는 건 반대.

“턱 밑에 만지다보면
그대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계속 만지면 내가 좋을 줄 알지만
지겨워서 잠드는 거랍니다.”

여긴 완전 빵터졌다. 솔직히 난 고양이를 안 키워봐서 잘은 모른다. 집사님들 동의하십니까?ㅎㅎ

이하 가사는 생략하고 여기까지. 마지막에 야옹! 하고 끝나는 마무리도 귀엽고 깔끔하고 웃음이 난다. 평이한 듯한 민정원 님의 그림체도 볼수록 마음에 든다. 이 책을 화면 가득 볼 수 있는 형태로 가공했다. 반 아이들이랑 보려고. (저작권을 지켜야 하니 개인적으로만 사용) 아이들의 반응이 기대된다. 노래도 좋아할 것 같다.

네 분의 작가후기가 다 좋았지만 나름 팬이니만큼 홍이삭 님의 후기에 더 눈이 머물렀다. 글도 참 잘 쓰시네 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차곡차곡을 할 때면 별일과 별일 아닌 것 사이의 경계선을 오가는 행위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떨 때는 무가치해 보이지만 또 지나 보면 그런 맹탕 같은 시간들이 졸여져 간간한 국물 한 그릇 얻어먹는 느낌이랄까.”
“그리울 것이다. 창작 행위라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핑계로 보냈던 월요일 밤의 잉여시간이 그리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눴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했던 대화들이 그리울 것이다.”


이때의 시간들이 의미를 갖는 것도 저자들이 나름 성공(홍이삭 씨는 특히 경연대회에서의 우승)을 했기 때문인걸까. 대답 안하고 싶다. 아니었으면 좋겠어서. 유명해지지 않아도, 뜨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있었으면 좋겠다. 차곡차곡이라는 채널 이름이 다시금 마음속에 들어온다. 인생을 차곡차곡 채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가르쳐야 할까. 이 귀여운 그림책을 보면서 참 생각 한번 복잡하네. 세상의 어떤 구석을 보더라도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본다면 세상이 지금보단 아름답겠지. 공격에 대한 방어, 방어를 위한 선제 공격... 이런 궁리를 해야되는 세상이 너무 힘들어. 고양이 옆에서 포근하게 잠들고 싶다. 나는 고양이를 안 키우니 고양이 대신 우리 강아지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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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기분 다산어린이문학
재럿 러너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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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어려운 일인 것은 알지만 해보지 않았으니 구체적으론 모르고, 그 어려움을 실감할 때는 제목을 살펴볼 때다. 원제는 ‘A work in progress’ 인데 번역 제목이 뚱뚱한 기분’? 나는 여기에 기분이라는 말이 들어간 게 참 특이하다고 느끼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뚱뚱한기분을 붙여놓는 게 적당한가? 읽어보니 제목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고심 끝에 결정한 제목이라고 짐작한다.

 

꽤 두툼하고 무거운 양장본의 책이었다. 고학년용이라고 생각하며 대출해왔다. 펼쳐 읽어보니 줄노트에 쓴 운문 형식의 손글씨다. 처음만 그런가 하고 쭉 넘겨보니 끝까지 그랬다. 말하자면 이건 주인공 윌 챔버스의 일기장 같은 거다. 그의 감정이 여과없이 담긴, 그러니까 그의 기분으로 가득한 책이다. 그 모든 기분은 그가 뚱뚱하다는 것과 관련있다.

 

외모가 절대적 기준이 된 현대사회에서 뚱뚱하다는 것은 아주 불리한 조건이다. 미의 기준이 너무 획일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키 크고, 날씬하고, 얼굴 작고, 눈 크고, 피부 좋고, 동안이고? 나는 여기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데 용케 외모 관련 열등감은 그닥 갖지 않고 살아왔다. 평균이라고 우기면서.... 그러면서 나 또한 유독 갖게 되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뚱뚱한 외모였다. 자기관리의 지표라고 생각하면서 좋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살이 안 찌던 시절에는 말이다. 하지만 갱년기를 지나면서 나는 젊은날과는 비교할 수 없이 푸근한 몸체를 가지게 되었고, 보기좋은 내가 되기 위해 식생활을 바꿔보려 해도 사소한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나는 하루종일 거의 안 먹다가 퇴근 후에 몰아먹는 식습관이 있는데, 퇴근 후에야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편해야 식욕이 생기기 때문에 이 패턴을 고칠 수가 없다. 지금은 안 먹어야 되는 시간이야, 라고 마음 한쪽이 말하는데 한쪽은 지금 아니면 언제 먹어, 이런 행복도 없이 어떻게 살아, 라고 말한다. 체중은 급격하게는 아니어도 시나브로 계속 늘어난다.

 

윌은 선천적으로 체구가 큰 아이다. 큰 체구에 뚱뚱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거구다. 그래도 같이 노는 친구들도 있고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그 일이란 닉이라는 녀석이 모두가 있는 복도에서 난데없이 심술궂은 말을 뱉어낸 일이었다.

너 뚱뚱해.

다들 그렇게 생각해.“

그 말에 달라질 상황은 없었지만, 윌의 마음을 꺾어 버렸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기 혐오에 빠진 윌의 생활은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함께 놀던 친구들도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달라져 보려고 한 결심은 번번이 무너지고, 그럴 때마다 자기혐오는 더더욱 심해진다. 예를 들면 식욕을 참지 못해 하교길 가게에서 엄청난 양의 과자를 집어들었다가 옛 친구를 마주친 장면, 엄마가 사온 피자를 사양했다가 새벽에 깨어 참지 못하고 폭풍 흡입하던 장면 등. 예전 같았으면 눈살을 찌푸렸을 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조절력이 부족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라 이해가 가는 장면들이었다.

 

이렇게 자기혐오를 무럭무럭 키워가며 고립된 윌은 어느날 여자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소근대는 소리를 듣고 만다. 밸런스 게임 같은 것? 이를테면 너 윌이랑 뽀뽀할래? 토한 거 한 사발 마실래?“ 이런 식이다. 여자아이들은 킥킥대며 토 한 사발을 먹겠다고 한다....ㅠㅠ 이제 윌에게는 폭식증만큼이나 무서운 거식증이 찾아왔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구체적인 조력이 없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점이다.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있다면 그게 비록 본인의 잘못은 아니라 해도 극복할 수 있게 건강한 도전을 함께 해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외모 기준으로의 차별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과도한 경우엔 건강과도 관련이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기쁘게 볼 수 있으려면 도전과 그에 따른 성취가 어느정도 꼭 필요한 것 같다. 남의 시선도 완전히 무시할 건 못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시선이다. 나를 보는 나의 시선. 이 일기장엔 그게 가득 들어있었고, 한동안은 그게 너무 처참하고 무서워서 보는 마음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조금씩의 변화가 보인다. 부모님도 함께.

 

전학을 밥먹듯 다니는 마커스라는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다가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스케이트보드, 그림, 동아리. 이런 것들이 윌의 전환을 돕는 키워드가 된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다.

내가 그렇다는 걸

난 안다.

그래서 난

최선을 다해서

좋은 날과

괜찮은 날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럴 수 없는 날엔

나를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름의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마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처럼.

가끔은 넘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난 언제나

다시 일어난다.

바닥에

발을 단단히 대고

밀어보는 거다.“

 

윌의 몸이 좀더 건강해졌을 것 같다. 그보다 더 기쁜 것은 마음의 힘이 차올랐다는 점이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다. 이 자기고백적인 일기장이 (실제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마음의 힘을 잃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많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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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떠돌 떠돌 씨
신은숙 지음 / 미세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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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이 참 중요하긴 하다. 특별히 작정한 책을 보러 간 게 아니라면 일단 큐레이션 해놓은 책에 눈길이 먼저 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치우치지 않게 좋은 책들을 골라내 진열하는 일은 어찌보면 무거운 일이기도 하겠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저마다 "나도 한번 저 자리에 앉아보고 싶다." 하지 않을까? 제대로 눈에 띄지도 못하고 수명을 다하는 책들은 얼마나 많을까.

이 책 또한 그렇게 놓여있었고 재밌어 보여서 대출해오게 됐다. 일단 제목부터가. '떠돌' 씨는 누구일까? 이름에 정체성이 다 들어있긴 한데.^^ 이 주인공은 돌멩이다. 오랜시간 강가의 흔한 돌멩이로 놓여있었다. 그러다 예기치못한 누군가의 발길질(헛발질?)로 그곳을 떠나게 됐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그렇게 뜻밖의 순간에 온다.

드디어 이름에 걸맞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떠돌 씨는 이리저리 굴러 세상의 반을 떠돌아다녔다.
"요래요래 댕기 싸면 세계 일주도 하겠구먼."
아마도 충청도인 것 같은 이런 말투를 가진 떠돌 씨.
그러다 뭔가에 부딪치는데, 이 순간이 또 그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다. 만남의 순간이기도 했다. 부딪친 상대는 작은 나무였다. 작은 나무는 엄살이 다소 있었고 떠벌떠벌 재잘재잘 말이 많았다. 둘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떠돌 씨는 떠돌기를 멈추고 '머물기'를 한동안 하게 됐다.

그러는동안 작은 나무에겐 변화가 있었다. 어린 나무였으니 당연히, 쑥쑥 자랐겠지? 그러는 동안 떠돌씨의 몸에는 이끼만 꼈다. 현타가 온 떠돌 씨는 잠 못 자고 고민한다. 그리고 결심했다.
"작은 나무야, 나가 지금 떠날 때여!"
아직도 요기랑 요기가 아프다며 눈물을 떨구는 작은 나무를 두고 떠나는 장면에서 난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왕자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떠날 때는 떠나야 한다. 아파도. 그때를 놓치면 어그러지는 게 많다.

떠돌 씨의 떠돌기는 재개되었다. 산과 들과 도시, 온세상을 다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계속 허전한 거야. 갈수록 더.

생각에 잠겼던 떠돌 씨는 어느순간 홱 돌아섰다. 어디를 향하는지는 어느 독자나 짐작할 것이다. 둘은 처음과 비슷하게 재회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은나무가 더이상 작은 나무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재잘재잘은 여전했다. 떠돌 씨가 떠도는 이야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고 여기서 끝이다. 떠돌 씨는 이제 '정착'을 하려는가?

mbti는 두가지 상반된 요소 4쌍을 두고 어느 쪽 경향에 치우치는지로 유형 판단을 한다. 그런 식으로 [여행-정착]을 넣는다면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나는 거의 98퍼 '정착'이다. 떠도는 삶은 나에겐 맞지 않아. 힘들어. 하지만, 그게 또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예기치 못한 순간이 내 등을 강하게 떠밀 때가 있으니까. 그런가 하면 내가 결단해야 할 순간도 있다. 그 두가지가 모여 인생이 되는 것 같다.

떠벌 씨와 작은 나무의 행복을 빈다. 이 책은 캐릭터도 귀엽고 문장도 유머가 있어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것 같지만 청년들이나 어른들이 읽고 인생을 이야기하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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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없는 편지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9
백혜진 지음, 정은선 그림 / 서유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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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역사동화를 한권 읽었다. 전에는 나오는 역사동화들을 거의 따라가며 읽었는데 요즘은 워낙 풍성하게 나오니 언제부턴가 놓쳐버린지 오래다. 그래도 가끔 한권씩 읽는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위인전에 수록된 분들부터 이름없이 조력하다 조용히 사라져간 사람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아마도 많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 수 없다. 작가는 그이들 중 일부를 역사적 상상력으로 되살려 놓았다. 표지처럼 밝고 희망차면서도 그당시엔 어둡고 참혹했을 그런 이야기다. 많은 것을, 특히 목숨을 잃었어야 했던 당시의 상황들.

작가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꽤 많이 배치했다. 일단 제목인 '글자 없는 편지'.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갔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빠는 딸 아란이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흰 종이였다. 아란이가 그 비밀을 깨우치고 결국 내용을 읽어내는 과정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궁내 과원이라는 배경도 새롭다. 단짝인 아란이와 명이는 아빠들이 다 궁내 과원에서 일한다. 덕분에 표지처럼 화사한 자연의 느낌을 자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한명은 대의를 쫓다가 모든 걸 잃었고, 한명은 실리를 쫓다가 떡고물을 꽤나 챙겼다. 그 대의는 '나라'이다. 이건 매우 오래전부터 다루던 가치이기도 하다.

"아란아, 나라가 제대로 살아있지 못하면 그 나라에 발 디디고 사는 우리도 설 자리가 없는 거야. 아란이와 아빠처럼 나라와 우리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거든.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해야 할까? 지금 당장 편하게 나 살길만 찾는 건 어리석은 거야.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는 거니까. 과원의 나무들도 봐봐. 기름진 땅이 있고 흙이 있어서 나무와 꽃이 거기에 뿌리 내리고 튼실히 자라잖아. 나라는 우리한테 이 땅과 같은 거야." (42쪽)

지금은 나라를 뺏긴 상황도 아니지만 아빠의 말씀은 여전히 통하는 면이 있다. 좋은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의 기반이 넓어지는 일이다. 그 '좋은' 이라는 기준이 매우 다양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게 참 어렵긴 하다. 지금처럼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뭘 해야될지 모르겠으니 말이다.ㅠ

단짝 두 친구 외에 장에서 댕기를 파는 수임이라는 아이도 이야기에 색을 더하는 인물이다. 특히 수임이가 직접 염색을 하는 (물들이는) 인물이고 이걸 아란이에게 전수해 준다는 것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장치인 걸로 보인다. 물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결국 두 아이는 아빠가 못하고 떠난 일에 용감히 나서게 된다.

너무나 위험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위기와 절정이 살짝 비현실적으로 해결된 것 같은 아쉬움이 내게는 있었다. 이건 보기 나름일 것 같다. 이 아이들이 한 일이 마지막에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과거사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찬성하진 않지만 기억과 성찰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이 주인공들을 응원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역사동화라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정의로움의 편에 서는 일의 가치, 나라라는 기반을 잘 지켜야 할 필요성 등을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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