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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기분 ㅣ 다산어린이문학
재럿 러너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4월
평점 :
번역이 어려운 일인 것은 알지만 해보지 않았으니 구체적으론 모르고, 그 어려움을 실감할 때는 제목을 살펴볼 때다. 원제는 ‘A work in progress’ 인데 번역 제목이 ‘뚱뚱한 기분’? 나는 여기에 ‘기분’이라는 말이 들어간 게 참 특이하다고 느끼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뚱뚱한’과 ‘기분’을 붙여놓는 게 적당한가? 읽어보니 제목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고심 끝에 결정한 제목이라고 짐작한다.
꽤 두툼하고 무거운 양장본의 책이었다. 고학년용이라고 생각하며 대출해왔다. 펼쳐 읽어보니 줄노트에 쓴 운문 형식의 손글씨다. 처음만 그런가 하고 쭉 넘겨보니 끝까지 그랬다. 말하자면 이건 주인공 윌 챔버스의 일기장 같은 거다. 그의 감정이 여과없이 담긴, 그러니까 그의 ‘기분’으로 가득한 책이다. 그 모든 기분은 그가 ‘뚱뚱하다’는 것과 관련있다.
외모가 절대적 기준이 된 현대사회에서 뚱뚱하다는 것은 아주 불리한 조건이다. 미의 기준이 너무 획일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키 크고, 날씬하고, 얼굴 작고, 눈 크고, 피부 좋고, 동안이고? 나는 여기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데 용케 외모 관련 열등감은 그닥 갖지 않고 살아왔다. 평균이라고 우기면서.... 그러면서 나 또한 유독 갖게 되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뚱뚱한 외모였다. 자기관리의 지표라고 생각하면서 좋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살이 안 찌던 시절에는 말이다. 하지만 갱년기를 지나면서 나는 젊은날과는 비교할 수 없이 푸근한 몸체를 가지게 되었고, 보기좋은 내가 되기 위해 식생활을 바꿔보려 해도 사소한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나는 하루종일 거의 안 먹다가 퇴근 후에 몰아먹는 식습관이 있는데, 퇴근 후에야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편해야 식욕이 생기기 때문에 이 패턴을 고칠 수가 없다. 지금은 안 먹어야 되는 시간이야, 라고 마음 한쪽이 말하는데 한쪽은 지금 아니면 언제 먹어, 이런 행복도 없이 어떻게 살아, 라고 말한다. 체중은 급격하게는 아니어도 시나브로 계속 늘어난다.
윌은 선천적으로 체구가 큰 아이다. 큰 체구에 뚱뚱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거구다. 그래도 같이 노는 친구들도 있고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그 일이란 닉이라는 녀석이 모두가 있는 복도에서 난데없이 심술궂은 말을 뱉어낸 일이었다.
”너 뚱뚱해.
다들 그렇게 생각해.“
그 말에 달라질 상황은 없었지만, 윌의 마음을 꺾어 버렸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기 혐오에 빠진 윌의 생활은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함께 놀던 친구들도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달라져 보려고 한 결심은 번번이 무너지고, 그럴 때마다 자기혐오는 더더욱 심해진다. 예를 들면 식욕을 참지 못해 하교길 가게에서 엄청난 양의 과자를 집어들었다가 옛 친구를 마주친 장면, 엄마가 사온 피자를 사양했다가 새벽에 깨어 참지 못하고 폭풍 흡입하던 장면 등. 예전 같았으면 눈살을 찌푸렸을 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조절력이 부족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라 이해가 가는 장면들이었다.
이렇게 자기혐오를 무럭무럭 키워가며 고립된 윌은 어느날 여자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소근대는 소리를 듣고 만다. 밸런스 게임 같은 것? 이를테면 ”너 윌이랑 뽀뽀할래? 토한 거 한 사발 마실래?“ 이런 식이다. 여자아이들은 킥킥대며 토 한 사발을 먹겠다고 한다....ㅠㅠ 이제 윌에게는 폭식증만큼이나 무서운 거식증이 찾아왔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구체적인 조력이 없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점이다.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있다면 그게 비록 본인의 잘못은 아니라 해도 극복할 수 있게 건강한 도전을 함께 해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외모 기준으로의 차별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과도한 경우엔 건강과도 관련이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기쁘게 볼 수 있으려면 도전과 그에 따른 성취가 어느정도 꼭 필요한 것 같다. 남의 시선도 완전히 무시할 건 못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시선이다. 나를 보는 나의 시선. 이 일기장엔 그게 가득 들어있었고, 한동안은 그게 너무 처참하고 무서워서 보는 마음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조금씩의 변화가 보인다. 부모님도 함께.
전학을 밥먹듯 다니는 마커스라는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다가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스케이트보드, 그림, 동아리. 이런 것들이 윌의 전환을 돕는 키워드가 된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다.
내가 그렇다는 걸
난 안다.
그래서 난
최선을 다해서
좋은 날과
괜찮은 날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럴 수 없는 날엔
나를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난
나름의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마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처럼.
가끔은 넘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난 언제나
다시 일어난다.
바닥에
발을 단단히 대고
밀어보는 거다.“
윌의 몸이 좀더 건강해졌을 것 같다. 그보다 더 기쁜 것은 마음의 힘이 차올랐다는 점이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다. 이 자기고백적인 일기장이 (실제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마음의 힘을 잃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많이 되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