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떠돌 떠돌 씨
신은숙 지음 / 미세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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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이 참 중요하긴 하다. 특별히 작정한 책을 보러 간 게 아니라면 일단 큐레이션 해놓은 책에 눈길이 먼저 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치우치지 않게 좋은 책들을 골라내 진열하는 일은 어찌보면 무거운 일이기도 하겠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저마다 "나도 한번 저 자리에 앉아보고 싶다." 하지 않을까? 제대로 눈에 띄지도 못하고 수명을 다하는 책들은 얼마나 많을까.

이 책 또한 그렇게 놓여있었고 재밌어 보여서 대출해오게 됐다. 일단 제목부터가. '떠돌' 씨는 누구일까? 이름에 정체성이 다 들어있긴 한데.^^ 이 주인공은 돌멩이다. 오랜시간 강가의 흔한 돌멩이로 놓여있었다. 그러다 예기치못한 누군가의 발길질(헛발질?)로 그곳을 떠나게 됐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그렇게 뜻밖의 순간에 온다.

드디어 이름에 걸맞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떠돌 씨는 이리저리 굴러 세상의 반을 떠돌아다녔다.
"요래요래 댕기 싸면 세계 일주도 하겠구먼."
아마도 충청도인 것 같은 이런 말투를 가진 떠돌 씨.
그러다 뭔가에 부딪치는데, 이 순간이 또 그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다. 만남의 순간이기도 했다. 부딪친 상대는 작은 나무였다. 작은 나무는 엄살이 다소 있었고 떠벌떠벌 재잘재잘 말이 많았다. 둘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떠돌 씨는 떠돌기를 멈추고 '머물기'를 한동안 하게 됐다.

그러는동안 작은 나무에겐 변화가 있었다. 어린 나무였으니 당연히, 쑥쑥 자랐겠지? 그러는 동안 떠돌씨의 몸에는 이끼만 꼈다. 현타가 온 떠돌 씨는 잠 못 자고 고민한다. 그리고 결심했다.
"작은 나무야, 나가 지금 떠날 때여!"
아직도 요기랑 요기가 아프다며 눈물을 떨구는 작은 나무를 두고 떠나는 장면에서 난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왕자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떠날 때는 떠나야 한다. 아파도. 그때를 놓치면 어그러지는 게 많다.

떠돌 씨의 떠돌기는 재개되었다. 산과 들과 도시, 온세상을 다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계속 허전한 거야. 갈수록 더.

생각에 잠겼던 떠돌 씨는 어느순간 홱 돌아섰다. 어디를 향하는지는 어느 독자나 짐작할 것이다. 둘은 처음과 비슷하게 재회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은나무가 더이상 작은 나무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재잘재잘은 여전했다. 떠돌 씨가 떠도는 이야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고 여기서 끝이다. 떠돌 씨는 이제 '정착'을 하려는가?

mbti는 두가지 상반된 요소 4쌍을 두고 어느 쪽 경향에 치우치는지로 유형 판단을 한다. 그런 식으로 [여행-정착]을 넣는다면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나는 거의 98퍼 '정착'이다. 떠도는 삶은 나에겐 맞지 않아. 힘들어. 하지만, 그게 또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예기치 못한 순간이 내 등을 강하게 떠밀 때가 있으니까. 그런가 하면 내가 결단해야 할 순간도 있다. 그 두가지가 모여 인생이 되는 것 같다.

떠벌 씨와 작은 나무의 행복을 빈다. 이 책은 캐릭터도 귀엽고 문장도 유머가 있어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것 같지만 청년들이나 어른들이 읽고 인생을 이야기하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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