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역사동화를 한권 읽었다. 전에는 나오는 역사동화들을 거의 따라가며 읽었는데 요즘은 워낙 풍성하게 나오니 언제부턴가 놓쳐버린지 오래다. 그래도 가끔 한권씩 읽는다.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위인전에 수록된 분들부터 이름없이 조력하다 조용히 사라져간 사람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아마도 많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 수 없다. 작가는 그이들 중 일부를 역사적 상상력으로 되살려 놓았다. 표지처럼 밝고 희망차면서도 그당시엔 어둡고 참혹했을 그런 이야기다. 많은 것을, 특히 목숨을 잃었어야 했던 당시의 상황들.작가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꽤 많이 배치했다. 일단 제목인 '글자 없는 편지'.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갔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빠는 딸 아란이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흰 종이였다. 아란이가 그 비밀을 깨우치고 결국 내용을 읽어내는 과정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궁내 과원이라는 배경도 새롭다. 단짝인 아란이와 명이는 아빠들이 다 궁내 과원에서 일한다. 덕분에 표지처럼 화사한 자연의 느낌을 자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한명은 대의를 쫓다가 모든 걸 잃었고, 한명은 실리를 쫓다가 떡고물을 꽤나 챙겼다. 그 대의는 '나라'이다. 이건 매우 오래전부터 다루던 가치이기도 하다. "아란아, 나라가 제대로 살아있지 못하면 그 나라에 발 디디고 사는 우리도 설 자리가 없는 거야. 아란이와 아빠처럼 나라와 우리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거든.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해야 할까? 지금 당장 편하게 나 살길만 찾는 건 어리석은 거야.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는 거니까. 과원의 나무들도 봐봐. 기름진 땅이 있고 흙이 있어서 나무와 꽃이 거기에 뿌리 내리고 튼실히 자라잖아. 나라는 우리한테 이 땅과 같은 거야." (42쪽)지금은 나라를 뺏긴 상황도 아니지만 아빠의 말씀은 여전히 통하는 면이 있다. 좋은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의 기반이 넓어지는 일이다. 그 '좋은' 이라는 기준이 매우 다양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게 참 어렵긴 하다. 지금처럼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뭘 해야될지 모르겠으니 말이다.ㅠ단짝 두 친구 외에 장에서 댕기를 파는 수임이라는 아이도 이야기에 색을 더하는 인물이다. 특히 수임이가 직접 염색을 하는 (물들이는) 인물이고 이걸 아란이에게 전수해 준다는 것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장치인 걸로 보인다. 물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결국 두 아이는 아빠가 못하고 떠난 일에 용감히 나서게 된다.너무나 위험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위기와 절정이 살짝 비현실적으로 해결된 것 같은 아쉬움이 내게는 있었다. 이건 보기 나름일 것 같다. 이 아이들이 한 일이 마지막에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과거사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찬성하진 않지만 기억과 성찰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이 주인공들을 응원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역사동화라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정의로움의 편에 서는 일의 가치, 나라라는 기반을 잘 지켜야 할 필요성 등을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