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로 가는 아이들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18
박현숙 지음, 김병하 그림 / 살림어린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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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님의 첫 책 <크게 외쳐!>가 나왔을 때 그해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고, 역사동화 <아미동 아이들>도 아이들에게 많이 추천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분 작품에 손을 안 대게 되었다. 다작도 다작도 이런 다작이 있을까 싶게 작품이 아주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난 사람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이정도 다작이면 작품의 질이 높을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실 곳곳에 눈에 띄는 이분의 작품들을 그냥 패스했는데.... 이번에 사서샘이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받은 책들을 한쪽에 진열하셨다. 그중에 이 책이 있었다. 그래도 한번 읽어볼까 싶어서 가져왔는데....

결론은 '세상 참 불공평하다' 인가?ㅎㅎ 생각만큼 작품이 허술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박현숙 님 작품의 특징은 긴 분량의 고학년용 동화도 단숨에 읽게 되는 속도감과 몰입감에 있었는데 이 책도 200쪽 분량을 한자리에서 다 읽는데 1시간도 안걸린 것 같다. (내가 원래는 빠르지 않고 앉아서 읽다 누워서 읽다 자다가 깨서 읽다 하는 스타일인데)

'작가의 말'이 앞에 나왔다. 작가는 마트에서 시식코너 사이를 전전하는 아이들을 보고 그들의 사연을 알게 된 뒤 작품을 쓰게 됐다고 한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이 책에 나온다.

풍호. 아빠가 사고쳐서 낳은 아들. 할머니가 마트 청소를 하며 먹여살린다. 엄마는 누군지도 모르고 아빠 얼굴도 보기 어렵다.
도식. 별명이 조선간장인 이유는 시식 음식을 챙겨갈 정도로 짠돌이라서다. 하지만 엄마가 일하는 가게 주인의 장애가 있는 딸아이를 돌봐줄 정도로 착하고 또 정직하다. 이 아이가 겪는 억울하고 슬픈 사연이 스토리의 중심이다.
준호. 별명이 북어인 이 녀석은 학교에서도 조폭 대장 노릇을 하는데 마트 아이들 사이에서도 대표가 되고 싶어한다. 어렵게 살아도 옳고 그른 건 분별하려고 하는 두 주인공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점례. 요즘 아이들 중 이런 이름이 있다니. 어릴 적에 많이 아프고 나서 지적 장애를 갖게 됐는데 이 아이의 저지레 때문에 두 주인공은 여러번 곤경에 처한다. 근데 이 아이에 대한 묘사가 이정도면 괜찮은걸까? 라는 의문이 살짝.... 물론 실제로 더 심하게 사고를 치는 장애아동들도 많기 때문에 비현실적 캐릭터가 전혀 아니지만.... 작가가 설정한 이름도 외모도 비호감을 유도하지 않겠나 좀 우려스럽다. 이런 부분은 작가도 조심스럽겠지만 독자도 어찌 생각해야 할지 조심스럽다.
그 외 풍호 할머니, 도식 아버지, 점례 어머니, 마트 직원 등등의 어른들이 주변인물이다.

내가 이 마트 배회 아이들을 실제로 만난다고 생각해봤다. 시식코너 알바 아주머니라면 몹시 짜증이 날 것이다. 얄밉고 성가실 것이다. 마트 보안직원이라면 내 책임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눈의 가시 같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은 나오지 않지만(돌봄 선생님이 잠깐 나옴) 우리반 학생이라면 어떨까?도 생각해 봤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구에선 저녁을 해결하기 어려워 시식으로 배를 채우고 더불어 시간까지 때우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하지만 있다고 할 때 이들의 안정되지 못한 환경과 결핍은 학교에서 어떤 문제로 발현이 될지, 그럼 나는 그들을 어떻게 돕는 것이 맞는지 참 어렵고 마음이 무겁다.

결핍이 있어도 주변 인물들을 지키려 애를 쓰는 도식이나, 틍퉁거리면서도 인정이 있고 선을 지킬 줄 아는 풍호 정도면 학교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북어 같은 애들은 그러기 어렵다. 실제로는 북어 같은 아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무배려 몰염치는 가르쳐야 하는 것임에도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려운 현실에 처한 아이들을 그렸음에도 칙칙하거나 서늘하지 않고 희망이 느껴지는 것도 작품의 특징이다. 딱히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잡초처럼 일어서며 웃을 일을 찾는 풍호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안심을 한다. 그들을 응원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배가 고파 시식 음식을 탐하는 것보다도 할 일, 있을 공간이 없어 마트에서 시간을 때우는게 더 안타까웠다. '작가의 말'에 나온 작가의 어린시절처럼, 누구나 배고프고 방과후엔 아이들끼리 알아서 어울려 노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 결핍감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돌봄교실에서 간식을 먹는 저학년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픙호의 모습이 나온다.(돌봄교실은 3학년까지 해당) 마트를 배회할 시간에 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준다면 좋을텐데. 나는 가장 좋은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음악, 미술, 체육 중에서 아이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것을 수준있게 제대로 지도해주는 것이다. 인력과 돈과 장소가 있어야 되는 일이다.(돈을 투자해야 나머지 둘도 해결됨)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한다며 아이들을 일괄 3시까지 학교에서 붙들고 있으라는 헛발정책이나 만들지 말고 이런 고민을 실제적으로 하기를 바란다. 아들이 군대가기 전 구청의 복지 프로그램에서 새끼선생(?)으로 기타 지도를 도운 적이 있었는데, 일단 방향은 맞다고 생각되고 내실화가 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혜를 모으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으니 책의 깊이는 그닥 얕지 않다고 봐야겠다. 엄청난 다작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할까... 그래도 묵힌 장이 더 깊은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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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8-09-1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시죠? 오늘 출근하는 뒷모습 봤습니다.
 
꿈을 꿔요
키아라 로렌조니 지음, 소니아 마리아루체 포쎈티니 그림, 김현주 옮김 / 분홍고래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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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팔자는 정말 상팔자일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생각지 못하던 개엄마가 된지 1년여. 철없는 말썽견 우리 개를 붙들고 장난 반으로 구박한다. "네 이놈아, 니처럼 팔자좋은 동물이 또 있다더냐? 니가 썰매를 끄냐, 맹인 안내를 하냐? 신문 하나 주워다 줄 줄도 모르는 게. 먹고 자고 말썽부리는 거 말고 하는게 뭐야? 응?"
이녀석을 데려온 딸은 아주 질색을 하지만 난 이런 구박을 즐기며 데리고 논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거다. 얘네들은 정말 상팔자일까? 행복한 걸까?

사람도 행복하기 힘든 세상에 무슨 개 행복까지 따지냐고 핀잔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끔 하염없이 가족을 기다리는 모습이나, 옆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 개, 사람 딱 구분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냥 가족 중의 하나랄까. 그러면서 과연 견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사람 바라기 하는게 견생 맞나?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아닐까?

이 책에는 10마리 개의 견생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꿈이 나온다. 개들의 꿈을 우리가 무슨 수로 알 건가. 그래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한 번 짐작해 보는 그들의 마음이 애틋하고 짠하다.

첫번째 장면에서 난 딸을 불렀다. 얘네들 좀 봐라~ 세상에, 얼마나 이쁘니~ (딸은 우리 개 애기 때가 훨씬 이뻤다며 항변을ㅎ) 태어난지 며칠 된 강아지 세 마리가 서로 기대어 잠이 들었다. 한숨이 나오도록 곱디고운 장면이다. 본문의 이런 표현도 참 곱다.
"강아지들의 꿈은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달콤해요."

그러나 뒤에 나오는 개들은 이리 평화롭지만은 못하다. 사람 못지 않은 복장에 음식에 잠자리를 갖춘 '순돌이'는 진흙탕을 뒹구는 꿈을 꾸고, 길가에 버려진 '초코'는 누군가 다시 이름을 블러주는 꿈을 꾼다.
늙은 개 '두리'는 다시 힘차게 뛰는 꿈을, 짖고 또 짖는 험악하게 생긴 '라이카'는 겁쟁이가 아닌 꿈을 꾼다. (겁 많은 개가 짖는다더니... 우리 개도 짖어서 고민인데...ㅠ)

그다음 짠한 개는 자고 또 자는 상팔자견 '나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아무도 없어 잠만 자며 하루를 보낸다. 많은 개들이 이러지 않을까. 우리도 아버님 안계시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자고 있는 '나무' 모습이 참 쓸쓸해 보인다.

사각의 울타리 안에서 한발짝도 나가보지 못한 '순순이'의 꿈에는 벽만 나온다. 본 게 그거밖에 없기 때문에. 웬만한 어린아이보다 큰 '아리'는 꼬마아이의 잠자리 친구다. 함께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끌어안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

이처럼 다른 환경의 개들은 각각 꿈도 다르다. 그런데 마지막장에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개들은 마음 깊이 간직한 똑같은 꿈이 하나 있어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 좋은 꿈이죠.
그것은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야." 라는 말을 듣는 꿈이에요.]

글쎄. 정말 그런지 개들한테 물어는 봤나. 그러나 꿈이든 아니든 그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인간이 만든 일에 책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집 안에서 인간이 베풀어 주는대로만 살게끔 해놓았으면 끝까지 함께하는게 맞는 거지. 또 개란 동물은 그 이상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얽혀서 지지고볶으며 사는게 인생이며 또한 견생이겠지 뭐~ 우리집 누리(눌눌이)는 지금 고구마 굽는 냄새가 나는 주방을 맴을 돌면서 코를 킁킁대고 있는 중이시다. 이녀석의 지금 꿈은 그 좋아하는 고구마 배불리 먹어보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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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한 봉지 낮은산 너른들 8
강무지 지음, 이승민 그림 / 낮은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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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도 이현 작가님의 <동화 쓰는 법> 책의 뒷쪽 '추천동화 100권'에서 보고 구입했다. (잠시 그 책에 대해서 말한다면, 목록만 참고하고 반납하려다 그냥 읽어보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이렇게 느껴졌다. "그냥 하시던 일이나 하세요. 동화는 안써져요." 위기철 님의 <이야기가 노는 법>에서 느꼈던 느낌과 똑같았다. 특히 작가가 인물과 배경과 사건을 빈틈없이 설정하기 위해 실제 인물들 사이로 들어가고, 자료조사를 하고 취재를 하는 대목을 보니 절로 작가분들을 존경하게 되면서 절대 함부로 넘볼 영역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직업이자 삶이다.)

이 책도 그렇다.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온 책이다. 난 처음에 이현 작가님의 이 소개말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서울의 인구 밀집은 현실적 이유 탓이지만, 작품의 배경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것은 상상력의 빈곤일 따름. 서울 따위 훌쩍 벗어나 '양산' 이라는 지역적 특색에서 자라난 인물들, 말들, 이야기들."
다음 학기 사회 첫 단원이 '도시와 촌락의 생활모습'이어서 촌락의 모습을 거의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읽힐 작품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내용 자체는 매우 적당하나 4학년 우리 아가들 수준엔 어렵다.... "이게 뭔소리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단 말이에요?" 이런 질문을 할 녀석들의 표정이 떠오르는.... 그래서 통독을 시키긴 어렵겠다. 아쉽다. 작가님이 독자를 고학년으로 보고 쓰신 듯하니 어쩔 수 없지 뭐.... 분량도 200쪽 가까워 꽤 많다. 단편들이니 그 중 한두 편을 읽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부산이 고향인 작가는 그 옆 양산마을을 배경으로 이 작품들을 썼다. 경상도 사투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생생하다. 8편의 단편 안에 개발에 힘들어하는 시골의 모습도 담겨 있고('닭'과 '다슬기 한 봉지') 도시에서 온 손자의 큰 실수를 덮어주시는 동네 노인들의 따뜻함도 담겨있다.('소') 어른 못지 않은 고단한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도 있고('수정이')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도 있다.('도망자'와 '바쁘다 바빠, 테스 씨!')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엄마와 새아빠의 삶을 응원하는 속깊은 아이의 이야기와('콘서트')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의 형제가 겪는 좌절과 형제우애 이야기('돈 만원')도 찡하다.

작품은 작품으로 읽으면 되는데 (특히 이 책은 그러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책인데) 직업병인지라 굳이 수업주제와 줄긋기를 하자면, 촌락의 생활 단원에서는 '소'와 '다슬기 한 봉지'를, 다문화 관련해서는 '돈 만 원'과 '바쁘다 바빠, 테스 씨!'를 읽어줄 것 같다.

표제작인 '다슬기 한 봉지'가 가장 길면서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 같다. 8편을 대표할 만한 작품 맞다.
농사 짓고 다슬기 잡고, 부지런하게 욕심없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요즘 터널공사를 위한 다이너마이트 소리다. 그 와중에 다슬기 한 봉지가 돌고 도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드러난다. 정말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구성이다.
방앗간 할머니는 오늘 내려올 아들 가족에게 다슬기탕을 끓여주려고 아침부터 개울에서 다슬기를 한소쿠리 잡았다. 오다가 들른 친구 담뱃가게 할머니 집에서 힘든 일에 몸져 누운 친구를 보고 그만 잡은 다슬기를 봉지째 주고 온다. 그 다슬기 한 봉지는 담뱃가게에 잔심부름을 해주는 고마운 심성의 마을버스 최기사에게로 건네지고, 최기사는 그걸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생 진석이에게, 진석이는 이장님에게, 이장님은 술주정하며 억지부리는 구촌아재에게, 아재는 마침 마을에 들어오던 방앗간 할머니의 아들에게 건넨다. 결국 방앗간 할머니는 아들 가족과 다슬기를 끓여 먹었겠다. 그사이 터널 뚫는 폭발 소리는 계속되고, 그곳에서 사는 온갖 생명들의 삶도 이어진다.

아이들이 '다슬기 한 봉지'의 가치를 이해할까 모르겠다. 귀찮아서 폭탄돌리기 하는 걸로 이해하는 건 설마 아닐테지?ㅎㅎ 넉넉하지 않지만 소박한 것이라도 건네주려는 인심, 돈되는 일도 아니지만 성실히 땅을 일구는 농부들, 그곳에 밀어닥치는 개발의 바람들.... 도시 아이들은 알지 못했던 모습일거다.

책의 겉모습도 내용도 찬찬히 곱씹어야 비로소 맛을 느낄 것 같은 게, 딱 시골의 맛과 비슷한 것 같다. 추천책이 아니었으면 나도 흘려버렸을 책이다. 많이 팔린 책도 아니다. 흙 속에 묻힌 보석이랄까. 이런 책도, 이런 마을들도 그 모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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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으로부터 학교를 구하라 - Save the School
왕건환 외 지음 / 에듀니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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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26년을 겪은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아직 학급에서 학폭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경력과 무관하게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라고 할 수 있다. 학폭은.... 모든 걸 체험케 한다. 모든 쓴맛을. 자괴감을, 죄책감을, 모멸감을, 무능감을. 절망감을.

겪지도 않은 주제에 어찌 말하냐 묻는다면 살짝 맛을 봤다고 하겠다. 고학년을 맡았던 어느 해 1년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학폭이 될 수 있던 사건들도 많았고 그 중 두 건은 실제로 학폭 문전에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니 실제 절차의 경험은 없지만 느낌은 안다.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반가웠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학폭에 있어 학교의 무능력과 안일함과 형식주의가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나를 비롯한 교사들의 부족함이나 미숙함이 있었다는 걸 무조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학폭법이 있다.

이 책의 1,2장은 이런 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읽어보시면 학교 밖의 분들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겐 너무나 절절히 다가왔다. 나의 경험과 함께 몸서리치게 공감한 부분을 몇 군데 적어보겠다.

- 미성년인 학생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이란, 응당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심리적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 안에서 타인에게 입힌 피해에 대한 반성과 책임있는 행동을 이끌어가야 한다. [46~47쪽]
: 정말 드물게 공감능력과 도덕성이 전무한 아이를 만나기도 한다. 지능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못된 녀석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잘못을 깨우치는 방법은 "아, 잘못하면 나한테 손해구나."를 느끼게 하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건 드문 경우다. 그보다 많은 경우 아이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의 결과를 후회한다. 이런 경우 응보적 처벌이 바탕인 학폭절차는 맞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 교육하고 바른 사회적 기술을 가르치는데 걸림돌이 된다.

- 화가 나고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선택한 것과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한 상태에서 선택한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오늘날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진 결정적인 원인도 우리 사회가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대책을 결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57~58쪽]
: 집단이(사회가) 흥분하는 경우가 종종(아니 자주)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한 것들에 대해 지적하거나 난색을 표하면 집중포화를 맞게 되어 있다. 교사들이 그런 꼴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있을 수가 없다. 그 빗나감과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유라고 하겠다.

학교폭력을 처벌 위주로 대처한 결과는,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유도한다. 또한 걸리더라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막무가내식 대응을 낳기도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가해학생을 지목해 처벌하는 방식이 가해학생 학부모의 자식 보호 본능을 무한 자극한다는 점이다. [62~63쪽]
: 물고 늘어지는 가해학생 측의 태도에 분노가 일 때도 있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한 대응을 조장하는 면이 학폭절차에 분명히 있다. 그러니 학부모들은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교사를 갈아마실 기세로 이빨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니면 법조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거나.ㅠ 이쯤되면 교육은 포기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다른 아이들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으로 힘을 내려 하지만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 학폭 사안을 매뉴얼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행정사무관, 교사, 판사, 상담사, 민원 접수 역할 등 수없이 많은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실제 재판에서 판사는 판결만 하면 된다. 그는 원고, 피고와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는 재판을 하면서도, 판결이 내려진 후에도 이들과 함께 계속 생활해야 한다. 그것도 교육을 하면서 말이다. [77~78쪽]
: 이 대목이 왜 이리 공감이 될까? 학급에 피해자 가해자란 단어들이 떠다니기 시작하면 교실은 금세 흉흉해진다. 분노와 두려움, 견제와 눈치보기로 팽팽한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괴로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3장은 <학교폭력, 예방이 최선이다>라는 주제로 예방책들을 다루고 있다. 모든 교육적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아이들 간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인간이란 것이 원래 그런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스템과 분위기를 잘 만들어 놓으면 위험성이 훨씬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장에서는 그런 프로그램을 학급단위와 학교단위로 나누어 간단히 소개한다. 자세히 소개하자면 이 부분만 가지고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상세한 내용은 책을 소개하는데 그친 부분도 있다. 학급긍정훈육법이나 학급운영시스템 같은 책들이다. 그리고 좀 더 강조된 내용은 '평소 신뢰구축을 위한 교사의 수고'가 아닐까 싶다. 신뢰와 호의가 구축되어 있으면 두려움에 따른 본능적인 감정보다 훨씬 성숙한 감정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대개는 그렇다. 백약이 무효한 경우도 물론 있지만.

4장에서는 학폭 문제해결을 위한 절차들을 제안하고 있다. 학폭법의 최대 문제는 사안별로 적당한 단계의 문제해결 방법을 찾지 않고 일괄 학폭위가 담당하게 한 데에 있다. 학폭위는 분명 필요하긴 하다. 학폭위가 다뤄주어야 할 문제를 학생 개인에게 맡기고 방치했을 때 자살 같은 문제가 일어날 위험성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도 학생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단계의 문제조차 학폭위에서 다루어 교육은 실종되고 사법적 처리와 감정의 앙금만 남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학교문제 전담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구는 문제를 접수하고 문제의 종류와 정도를 확인하여 문제해결 방법을 결정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즉, 학급/학년에서 해결할 문제인지, 학폭위에서 다룰 문제인지, 그이상의 문제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되어도 해당 사안도 되지 않는 일에 아이들이 서로 상처받고 화해의 가능성이 차단되며 학부모들은 원한을 품고 교사는 피를 짜내는 지금과 같은 경우는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이부분 심도있게 논의되고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그 외 학급/학교의 문제해결 방법을 세밀한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제 교사는 수업을 잘하는 것 외에 공동체를 평화롭게 세우는 기술을 필수로 가져야 할 것 같다. 나름 노력하고는 있지만 정말 부담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이건 어느 해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건강에 문제를 겪을 정도로 애간장을 끓여도 잘 안된다. 그래도 일차적 노력과 변화의 주체는 학교이며 교사라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마지막 5장에는 다양한 제언들이 나온다. 학폭의 현장은 학교인 경우가 물론 많지만 그렇다고 학폭의 책임이 학교에만 있다고 몰아붙이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원인을 함께 찾아야 한다. 또한 교사로서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과중한 학폭업무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우리 학교만 해도 생활부장을 2년 연속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올해는 젊은 여부장님이 맡아 꼬챙이처럼 말라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닌 것을....ㅠ
교장의 역할에 대한 제언도 나온다. 외국의 경우는 수업하는 교사와 이런 문제는 보통 분리되며, 생활지도와 학부모상담을 교장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교장만 다른 세상에 있다.(보통 교감까지는 사안처리로 고생하기도 한다) 이런 역할 재분배도 합의를 통해 바꾸어가야 할 부분이다.

쓰다보니 다른 때보다 긴 서평이 되어버렸는데,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한 느낌이다. 학폭법은 정말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때맞추어 이런 고민이 담긴 책이 나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력으로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교사들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의 기술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내는데 최선을 다하되, 제발 잘잘못을 캐고 증거를 잡고 증언들을 대조하고 속임수를 까발리고 정죄하는 일이 업무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걸 하던 그 해 교직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학폭의 문제 안에 교육 문제 전반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문제의 표출이 학폭이라 본다면 과한 생각일까. 이 책으로 깨어난 문제의식이 집단지성의 힘으로 결실을 보길. 그걸 보고 퇴직할 수 있다면 아쉬움이 훨씬 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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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손수건, 포포피포 철학하는 아이 8
디디에 레비 지음, 장 바티스트 부르주아 그림, 김주경 옮김, 이보연 해설 / 이마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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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아이'라는 이 시리즈를 두 권째 읽는다. 첫번째 읽은 것은 <오, 멋진데!> 였다. 둘 다 짧은 글 안에 강한 상징과 비유가 들어 있어 그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풀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첫번째 읽었던 <오, 멋진데!>에 나타난 비유는 아이들이 스스로 풀기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고,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비해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명확해서 가려는 방향은 한 곳으로 정해진 느낌이다. 그것은 "거짓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떳떳한 사람이 되라." 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거짓말 손수건이라는 소재가 거짓말의 속성을 매우 실감나게 상징하고 있어서 이 부분에 공감하다 보면 나눌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클로비는 거실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다가 엄마가 아끼는 하마 도자기를 깨뜨려 버렸다.
클로비는 그 조각들을 얼른 쓸어모아 손수건으로 쌌다. 나중에 손수건을 꺼내보고 깜짝 놀랐다. 깨진 조각들은 손수건에 무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잘못을 은폐한 클로에는 같은 목적으로 손수건을 계속 써먹는다. 먹기 싫은 껍질콩을 몰래 감추기, 망친 시험지 점수 지우기 등... 거짓말들은 손수건에 무늬로 흔적을 남기고, 회를 거듭할수록 손수건은 점점 커져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된다. 마침내는 클로비를 휘감고, 어딜 가나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참다 못한 클로비는 소리친다. "너 때문에 숨 막혀. 가 버려! 사라지라고! 내가 거짓말한 거 다 털어놓고 썩 꺼지란 말이야!"

이후 손수건이 제 모습을 찾는 결말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하고 선명하다. 하지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고, 올무가 되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이토록 실감나게 표현한 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면에 '거짓말'에 대한 문제나 고민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터, 거짓말의 속성에 대해서 함께 느끼고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도 여러가지다. 클로비처럼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인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고, 하기 싫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금지된 것을 하기 위해서, 혹은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거짓말도 있다. 이 모든 이유의 뿌리에 '두려움'이 있다. 각자가 가진 두려움이 무엇인가? 이것을 안다면 스스로 극복할 때도, 주변에서 도와줄 때도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성찰에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거짓으로 숨지 말고 용기있게 현실을 직면하기, 그리하여 떳떳한 자기 삶을 살기! 나를 비롯한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아이들이 각자의 두려움을 떨치고 이런 용기를 가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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