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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으로부터 학교를 구하라 - Save the School
왕건환 외 지음 / 에듀니티 / 2018년 8월
평점 :
교직 26년을 겪은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아직 학급에서 학폭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경력과 무관하게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라고 할 수 있다. 학폭은.... 모든 걸 체험케 한다. 모든 쓴맛을. 자괴감을, 죄책감을, 모멸감을, 무능감을. 절망감을.
겪지도 않은 주제에 어찌 말하냐 묻는다면 살짝 맛을 봤다고 하겠다. 고학년을 맡았던 어느 해 1년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학폭이 될 수 있던 사건들도 많았고 그 중 두 건은 실제로 학폭 문전에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니 실제 절차의 경험은 없지만 느낌은 안다.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반가웠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학폭에 있어 학교의 무능력과 안일함과 형식주의가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나를 비롯한 교사들의 부족함이나 미숙함이 있었다는 걸 무조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학폭법이 있다.
이 책의 1,2장은 이런 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읽어보시면 학교 밖의 분들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겐 너무나 절절히 다가왔다. 나의 경험과 함께 몸서리치게 공감한 부분을 몇 군데 적어보겠다.
- 미성년인 학생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이란, 응당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심리적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 안에서 타인에게 입힌 피해에 대한 반성과 책임있는 행동을 이끌어가야 한다. [46~47쪽]
: 정말 드물게 공감능력과 도덕성이 전무한 아이를 만나기도 한다. 지능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못된 녀석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잘못을 깨우치는 방법은 "아, 잘못하면 나한테 손해구나."를 느끼게 하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건 드문 경우다. 그보다 많은 경우 아이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의 결과를 후회한다. 이런 경우 응보적 처벌이 바탕인 학폭절차는 맞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 교육하고 바른 사회적 기술을 가르치는데 걸림돌이 된다.
- 화가 나고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선택한 것과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한 상태에서 선택한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오늘날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진 결정적인 원인도 우리 사회가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대책을 결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57~58쪽]
: 집단이(사회가) 흥분하는 경우가 종종(아니 자주)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한 것들에 대해 지적하거나 난색을 표하면 집중포화를 맞게 되어 있다. 교사들이 그런 꼴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있을 수가 없다. 그 빗나감과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유라고 하겠다.
학교폭력을 처벌 위주로 대처한 결과는,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유도한다. 또한 걸리더라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막무가내식 대응을 낳기도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가해학생을 지목해 처벌하는 방식이 가해학생 학부모의 자식 보호 본능을 무한 자극한다는 점이다. [62~63쪽]
: 물고 늘어지는 가해학생 측의 태도에 분노가 일 때도 있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한 대응을 조장하는 면이 학폭절차에 분명히 있다. 그러니 학부모들은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교사를 갈아마실 기세로 이빨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니면 법조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거나.ㅠ 이쯤되면 교육은 포기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다른 아이들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으로 힘을 내려 하지만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 학폭 사안을 매뉴얼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행정사무관, 교사, 판사, 상담사, 민원 접수 역할 등 수없이 많은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실제 재판에서 판사는 판결만 하면 된다. 그는 원고, 피고와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는 재판을 하면서도, 판결이 내려진 후에도 이들과 함께 계속 생활해야 한다. 그것도 교육을 하면서 말이다. [77~78쪽]
: 이 대목이 왜 이리 공감이 될까? 학급에 피해자 가해자란 단어들이 떠다니기 시작하면 교실은 금세 흉흉해진다. 분노와 두려움, 견제와 눈치보기로 팽팽한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괴로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3장은 <학교폭력, 예방이 최선이다>라는 주제로 예방책들을 다루고 있다. 모든 교육적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아이들 간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인간이란 것이 원래 그런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스템과 분위기를 잘 만들어 놓으면 위험성이 훨씬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장에서는 그런 프로그램을 학급단위와 학교단위로 나누어 간단히 소개한다. 자세히 소개하자면 이 부분만 가지고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상세한 내용은 책을 소개하는데 그친 부분도 있다. 학급긍정훈육법이나 학급운영시스템 같은 책들이다. 그리고 좀 더 강조된 내용은 '평소 신뢰구축을 위한 교사의 수고'가 아닐까 싶다. 신뢰와 호의가 구축되어 있으면 두려움에 따른 본능적인 감정보다 훨씬 성숙한 감정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대개는 그렇다. 백약이 무효한 경우도 물론 있지만.
4장에서는 학폭 문제해결을 위한 절차들을 제안하고 있다. 학폭법의 최대 문제는 사안별로 적당한 단계의 문제해결 방법을 찾지 않고 일괄 학폭위가 담당하게 한 데에 있다. 학폭위는 분명 필요하긴 하다. 학폭위가 다뤄주어야 할 문제를 학생 개인에게 맡기고 방치했을 때 자살 같은 문제가 일어날 위험성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도 학생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단계의 문제조차 학폭위에서 다루어 교육은 실종되고 사법적 처리와 감정의 앙금만 남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학교문제 전담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구는 문제를 접수하고 문제의 종류와 정도를 확인하여 문제해결 방법을 결정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즉, 학급/학년에서 해결할 문제인지, 학폭위에서 다룰 문제인지, 그이상의 문제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되어도 해당 사안도 되지 않는 일에 아이들이 서로 상처받고 화해의 가능성이 차단되며 학부모들은 원한을 품고 교사는 피를 짜내는 지금과 같은 경우는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이부분 심도있게 논의되고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그 외 학급/학교의 문제해결 방법을 세밀한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제 교사는 수업을 잘하는 것 외에 공동체를 평화롭게 세우는 기술을 필수로 가져야 할 것 같다. 나름 노력하고는 있지만 정말 부담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이건 어느 해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건강에 문제를 겪을 정도로 애간장을 끓여도 잘 안된다. 그래도 일차적 노력과 변화의 주체는 학교이며 교사라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마지막 5장에는 다양한 제언들이 나온다. 학폭의 현장은 학교인 경우가 물론 많지만 그렇다고 학폭의 책임이 학교에만 있다고 몰아붙이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원인을 함께 찾아야 한다. 또한 교사로서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과중한 학폭업무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우리 학교만 해도 생활부장을 2년 연속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올해는 젊은 여부장님이 맡아 꼬챙이처럼 말라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닌 것을....ㅠ
교장의 역할에 대한 제언도 나온다. 외국의 경우는 수업하는 교사와 이런 문제는 보통 분리되며, 생활지도와 학부모상담을 교장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교장만 다른 세상에 있다.(보통 교감까지는 사안처리로 고생하기도 한다) 이런 역할 재분배도 합의를 통해 바꾸어가야 할 부분이다.
쓰다보니 다른 때보다 긴 서평이 되어버렸는데,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한 느낌이다. 학폭법은 정말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때맞추어 이런 고민이 담긴 책이 나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력으로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교사들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의 기술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내는데 최선을 다하되, 제발 잘잘못을 캐고 증거를 잡고 증언들을 대조하고 속임수를 까발리고 정죄하는 일이 업무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걸 하던 그 해 교직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학폭의 문제 안에 교육 문제 전반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문제의 표출이 학폭이라 본다면 과한 생각일까. 이 책으로 깨어난 문제의식이 집단지성의 힘으로 결실을 보길. 그걸 보고 퇴직할 수 있다면 아쉬움이 훨씬 덜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