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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ㅣ 창비아동문고 292
박하익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적당히, 적절히, 분별있게, 선을 지켜서, 중독에 빠지지 않게 처신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어른들도 못 그러는 사람이 쌔고 쌨다. 게임에 빠진 부부가 자기 자식 죽어나가는 줄도 모르고 밤새 게임을 했다는 뉴스도 종종 보지 않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난 세상 재밌는 게 없는 사람이라서 뭐에 잘 빠지지 못하지만 (하다못해 드라마에라도...) 잠의 유혹과 밤에 동화책 읽으며 먹는 커피와 간식의 유혹...?에선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잠은 내 몸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라 생각해서 그냥 두고, 밤의 군것질은 끊어보려고 한다. 이거 못끊으면 이 책의 도깨비굴을 떠올려 봐야지!!ㅎㅎ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동화는 중독의 속성을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요즘 어린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치명적인 스마트폰 중독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참 매력적인 것은, 주제와 내용을 대충 짐작하겠음에도 불구하고 빠져드는 판타지의 힘이다. 훈화 교과서 같은 동화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수준이 전혀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첨단 매체와 도깨비라는 전통적 요소를 전혀 이질감 없이 결합시킨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지우는 이땅의 전형적 학생이라 볼 수 있다. 보통의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지워진 부모의 기대, 자유시간 없이 뺑뺑이 돌려지는 일과.... 그러던 중 지우는 도서실에서 새 스마트폰을 발견하게 되고, 얼떨결에 손에 넣게 되고 개통까지 하게 된다. 제목과 같이 말이다.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이 폰으로 지우는 도깨비 세상을 넘나들며 도깨비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다양한 앱을 내려받아 여러가지 문제들도 해결한다. 한동안 신이 났다. 하지만 계속 그렇기만 하다면 얘기가 안되겠지... 지우는 자신에게서 뭔가 위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도깨비폰은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사용한 만큼 지우의 '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킬 순 없었고, 앞뒤 살피지 않고 이 상황까지 온 자신을 원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서 마무리되며 스마폰의 중독성과 중독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것으로 끝냈다면 스토리는 단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주제는 경고에만 있진 않았다. 결국 지우는 '기'를 회복할 방법을 찾는데 그게 어찌보면 참 철학적이다.
"그래, 사람의 영혼은 본디 고요하다. 그 고요함 속에 깊이 잠기면 마음이 회복되고 새로워진단다."
음냐.... 근데 말이 쉽지, 이 고요함을 어찌 지키냔 말이다. 이 책은 해답을 제시함과 동시에 우리를 원점으로 데려다 준다.ㅎㅎ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딨겠나. 그 중에서 지키는 것, 지키는 것중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이거 아이들한테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
시우에겐 저주받은 물건과도 같았던 도깨비폰. 이걸 처치해 버리는 결말이 아니니 아이들과도 무조건 사용하지 말자 보다는 (부모님이 사주는데 교사가 어쩌겠는가^^) 현명한 사용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강력한 빨아들임이 있는 매체를 접하게 해주기 전에 신체활동, 놀이, 예술적 활동, 독서의 맛을 충분히 보게 해주어야 그나마 균형을 잡을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선후는 바뀔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부모님들이 이 부분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고 학생인권과 스마트폰 교내 사용은 좀 연결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 깊게 몰입할 때 맛보는 행복감,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의 기쁨"을 생명의 기운으로 규정한 작가의 시각에도 동의한다. 몰입은 중독과 다르다. 중독은 기를 빨려 폐인이 되지만 몰입은 반대로 충족감과 에너지를 준다. 교실에 이런 기운이 넘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지키는 건.... 절대로 쉬운 게 아니야.' 라는 마지막장의 경구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 글을 쓰며 난 물만 마시고 있다. 나도 마음을 지켜 살을 빼려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