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 : 오즈의 마법사와 끝없는 모험 이야기
마이클 모퍼고 지음, 에마 치체스터 클락 그림, 김서정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와우, 보자마자 표지부터 딱 맘에 끌리는 책이었다. 녹색계통과 노랑은 내가 좋아하는 배색이다. 이 조합 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좋아하던 오즈의 마법사를 마이클 모퍼고가 다시 썼다고?? 마이클 모퍼고는 내가 동화를 다시 읽기 시작한 30대 중반에 그 기폭제가 되었던 작품 <켄즈케 왕국>을 쓴 작가다. 100권이 훨씬 넘는 동화를 쓴 영국의 국민작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그중 일부만 번역되어 있고 켄즈케 왕국을 빼고는 잘 팔린 작품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진지한 주제의식이 담겨있으면서도 무겁기만 하지는 않은 그의 작품을 나는 좋아하는데 국내에선 그다지 인기가 없다. 그래도 나는 내 동화사랑을 일깨워준 그에 대한 예의(?)로 신간이 나오면 꼭 읽어본다. 명작을 다시 쓴 이번 작품은 어떨까?

화자가 없는 원작과는 달리 이 책은 1인칭 시점으로 쓰여졌다. 화자는 토토. 토토? 도로시도 양철나무꾼도 사자도 아닌 토토? 읽은지 오래되어 토토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있었다. 맞아,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집이 날아가던 그날부터 캔자스의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까지 도로시 옆에는 까만 강아지 토토가 있었지.

이 책에서 토토는 이제 아빠개가 되었다. 꼬물꼬물 아기 강아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나도 거기에 있었단다.'로 시작된다. 강아지들은 모두 듣다 잠들지만 막내 리틀 토토만은 아빠 토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거의 끝까지 읽어도 화자가 토토라는 점 말고는 원작과의 차이점을 찾기 어려웠다.(읽은지 오래되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음) 패러디 동화는 아니고, 단순한 재화인가? 어쨌든 토토의 시점에서 서술된 이야기는 마이클 모퍼고의 생생한 서사와 어울려 새로운 재미를 주긴 했다. 그래도 굳이 이걸 다시 쓰는 의미가 있나? 계속 의아해하며 읽고 있다가....

결말에 가니 원작과 다른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서쪽마녀를 물리치고 온 도로시 일행에게 오즈의 정체가 밝혀지고, 마법사가 아닌 오즈는 최선을 다해 일행의 소원에 응답하려 하는데..... 원작에선 허수아비의 머리에 '뇌(같은것)'를 양철나무꾼의 가슴에 '심장(같은것)'을 넣고 사자에게 약을 마시게 하여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졌다는 믿음을 주었다면, 이 책에선 격려로 그들을 설득한다. "허수아비야, 넌 이미 지혜로워! 네가 할 일은 너 자신을 믿는 일이야. 넌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란다. 널 그렇게 만드는 데 마법사의 도움은 하나도 필요 없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원작에선 허수아비가 오즈 대신 에메랄드 시를 다스리게 되는데 여기선 그냥 먼치킨 나라로 돌아간다고 한다.(대신 사자가 남음) 원작에서의 마지막 난관(남쪽 마녀 글린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가는 여정)이 이 책에선 빠져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오즈가 열기구를 만들어 타고 떠날 때 도로시와 토토를 놓치기 않고 잘 태웠기 때문이다. 결국 도로시와 토토는 마법의 힘이 아닌 열기구를 타고 캔자스로 돌아왔고 남쪽 마녀를 찾아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결말의 변형은 작가의 어떤 의도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원작의 결말이 긴장도나 완성도 면에서 더 완벽한 거 같은데...^^;;; 억지로 짐작해 본다면 마법에 의지하지 않은 주체적인 해결? 인물들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원작에선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가 모두 어딘가의 왕으로 자리잡으며 끝나는데 이 작품에선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음) 그리고 도로시 일행이 여행 중 위기를 겪을 때마다 각자가 가진 장점을 발휘하여 친구들을 돕고 역경을 물리치면서 우정이 깊어지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 원작에도 나타나 있지만 이 책에서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마도 강아지 토토 화자의 힘인 듯하다. 그냥 도로시의 부속품처럼 느껴졌던(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토토가 생생하게 다가오며 그가 묘사하는 친구들의 모습 또한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원작의 번역본 중엔 초등학생들이 읽기 지루한 책들도 있는데, 이 책은 초등 중학년 이상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림작가 에마 치체스터 클락의 그림도 이 책의 매력을 더해준다. 난 번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김서정 님의 번역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매력적인 오즈의 마법사 한 권이 또 탄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이클 모퍼고라 해도 원작을 넘어서진 못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그게 원작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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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르가리타의 모험 1~3 세트 - 전3권
구도 노리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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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광고를 보고 시리즈 3권을 모두 수서했는데 책이 올 때까지도 그림책인 줄 알고 있었다. 도착한 책의 판형이 너무 작아 깜놀. 아 동화책이었구나! 더 좋았다. 그림책도 좋지만 오늘은 동화책이 더 반갑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좋고. 단 이 책은 읽어주기만 하기엔 아깝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꼭 다시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작가의 우당탕탕 야옹이 시리즈도 좋아한다. 학급문고에 있는데 2학년 아이들이 아침독서 시간에 잘 가져다 읽는다. 며칠전 좀 필요해서 집에 가지고 왔더니 그 책이 왜 없냐며 귀신같이 알아채는 아이들.(우리 교실엔 그림책만도 몇백권이 있다)

이 책은 그림책에서 글밥이 제법 있는 책으로 넘어가는 다리 단계로 아주 딱이겠다. 흑백과 칼라가 섞여있긴 하지만 모든 장에 그림이 있고, 그림의 질이 높아 그림만으로도 만족도가 높으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아주 귀엽고 매력적이다. 우당탕탕 야옹이 시리즈를 접한 아이들이 이어서 읽으면 독서의 다리를 어느새 훌쩍 잘 넘어가겠다.

주인공은 마르가리타(곰)와 마르첼로(꿀벌).
1권 [수상한 해적선의 등장] 초반에 이들은 바닷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요리사다. 마르첼로도 이것저것 재주가 많다. 수도 잘 놓고 피리도 잘 불고. 어느날 해적선이 다가왔다. 해적들이 하는 일이란 '보물'을 가져가는 일. 마르가리타의 보물인 조리 도구들을 털어가버린다. 허탈해진 둘은 레스토랑 지붕을 뒤집어 배(카사 호)로 만들고 해적선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만난 해적들.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었으며 함께 어떤 모험을 했을까?

2권 [사라진 봄의 여신] 에선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썰매가 되어 눈의 나라를 달리게 된 카사 호. 문제가 생겼다. 마르가리타는 곰이라는 점. 겨울나라에 왔으니 겨울잠을 자야지? 마르가리타가 잠에 빠져있는 동안 마르첼로의 활약이 눈부시다. 시바견들을 만나고, 숲의 괴물(어쩌면 현자)과 봄의 여신을 만나고.... 여기서 해결의 열쇠가 된 달빛의 소라는 해적들이 남겨준 보물. 이렇게 1권의 내용은 2권으로 이어지고 봄의 여신이 준 마법호두는 3권의 어떤 장면으로 이어질까?
(2권에서 만난 시바견들은 카사 호를 끌어주었다. 우리집 개를 구박할 때 "야! 너가 하는 게 뭐 있어! 썰매도 못 끌고!!" 했던 게 생각나서 웃었다. 요즘 시바견들이 애견인들한테 인기라더니 정말 귀엽게 생겼네.^^)

3권 [기묘한 마법 사탕] 봄의 여신에게 받은 마법 호두는 정말 마법 같은 일로 둘을 이끌어간다. 뒤편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지 않고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느낌이다. 메기 혼자 지키던 외로움이 늪이 음악과 파티가 있는 우정의 늪으로 바뀌는 마법. 이들과 작별을 고한 카사 호는 다시 그들의 바다로 흘러와 레스토랑으로 돌아간다. 마르가리타의 메뉴판이 넘넘 맛있게 생겼다. 이렇게 3권의 이야기가 끝났지만 모험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것 같은 느낌.^^

난 이미 어른이니 애를 쓴다 해도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볼 순 없다. 그래도 짐작을 해본다. 내가 아이였을 때 이 책을 봤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림도 없는 책, 영상도 없는 라디오 드라마에 온갖 공상을 펼치던 때가 있었지. 그 나이에 이런 책을 봤더라면 얼마나 아름답고 재미나고 환상적이었을까. 요즘 아이들 솔직히 별로 부럽지 않지만 이거 한 가지는 부럽다. 그러니 많이 읽혀봐야지. 누릴 수 있는 건 한껏 누려 보라고. 정말 아름답고 귀엽고 맛있고 달콤한 책.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품에 꼭 안았을 듯한 사랑스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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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딱지 - 제15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주미경 지음, 정지윤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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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첫 책> 작가의 다음 동화가 나온 것을 보고 따질 것도 없이 바로 구입했다. 이번 책은 생활동화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아, 그냥 생활동화라기엔 '마술'이 좀 들어가긴 했구나. 딱지의 마술.

주유라는 예쁜 이름의 10살 소녀가 주인공이다. 동탁이와 딱지왕을 다투는 활기 넘치는 소녀지만 요즘 마음이 편치 않고 복잡하다. 엄마와 단둘이서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봉추 아저씨라는 새아빠가 들어왔다.

요즘 아이들의 가정은 다양한 형태, 다양한 사연을 안고 있다. 그걸 궁금해할 필요도 알려고 들 필요도 없겠지만 다양한 가정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접하게 해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주유를 그려낸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 독자에게도 주유는 참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주유에게 '새'아빠가 생겼지만 '헌'아빠는 원래부터 없었다. 엄마는 대학때 주유를 낳았고 임신 소식을 들은 남친은 꽁무니를 빼 버려서, 주유는 엄마 성을 갖고 엄마와만 살아왔다. 새아빠가 생겨 제일 서러운 것도 엄마 품에 자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다 아빠가 별로 멋져 보이지 않는다. 뚱뚱하고, 깔끔하지도 않고, 집에만 있고, 동화를 쓴다고 하는데 아직 결과물은 없다.

그래도 살얼음판 갈등은 없는 것이 이 책의 편안함이다. 그냥 좀 아쉬울 뿐이다. 엄마와 온전히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새아빠와의 어색한 시간이 아쉽고.... 그런 주유의 마음을 알아주는 '마술딱지'. 이 딱지가 부린 마술은 결국 무엇일까?^^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났다고 잘 살라는 법은 없다. 상처는 서로의 상처를 더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새 가족은 잘 살 거라는 확신이 든다. 외로워도 혼자 설 수 있던 사람들이어서. 서로가 한쪽은 기대고 한쪽은 괴어주며 잘 살겠지 싶다.

이런저런 동화들에서 눈에 익은 정지윤 님의 그림도 이 책에 잘 어울린다. 야무지고 씩씩하면서도 한쪽 끝이 외로운 지유와 헐렁한 듯 사람좋은 새아빠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 한가지 미심쩍은 것은 '이 책은 아이들에게 어떤 매력이 있을까?'하는 의문이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딱지'라는 매개체? 탁월한 심리묘사? 새로운 가정의 결합을 너무 심각하지 않고 따뜻하게 그려낸 분위기? 이상은 내 마음에 든 부분인데 아이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많이 읽어본 편인데 요번 책은 감이 쉽게 오질 않는다.^^;;; 딱지에만 꽂혔다가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을 것 같고, 감정의 결이 섬세한 아이들은 주인공들의 외로움과 손잡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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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슬펐어?
고정욱 지음, 송혜선 그림 / 거북이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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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작가님의 책 중 읽은 것을 헤아려보니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안내견 탄실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등 10여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이게 많이 읽은 게 아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작가님의 책 중 20분의 1정도(?) 읽은 것이니까. 주로 장애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읽었지만 텃밭 가꾸는 아이, 친일파가 싫어요 등을 읽었을 때는 아, 이분이 장애 소재의 작품 뿐 아니라 더 다양하고 넓은 작품세계를 갖고 계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까칠한 재석이 등 청소년소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하고 있다.

이 책도 장애를 소재로 다룬 책이다. 장애가 있는 아빠를 가진 아들 준이가 주인공이다. 실제 모델은 작가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동화 속의 아빠는 바로 작가 자신인 것. 이 책을 작가 자신이 홍보하시는 영상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보게 됐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셨는지, 학교에서 울고 온 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그 말씀에 숙연해졌는데 정작 작가 자신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셔서 보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쓰신 책이다.

동화작가인 아빠는 집필, 강연 등으로 늘 바쁘다. 그러면서도 장애인의 날에 본인의 동화책에 싸인을 해서 아들 딸의 학급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아빠는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야! 너네 아빠 장애인이잖아. 너 같은 게 뭐가 잘났다고 잘난 체야!"
이런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던 아들에게 해준 말. 바로 동영상에 나왔던 말이다.
"아빠가 장애인이라서, 그래서 슬펐어?"
"네."
"넌 아빠가 장애인이지? 난 본인이 장애인이야. 그래도 하나도 안 슬픈데?"
"네?"

아빠가 가진 이런 당당함과 긍정의 힘도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아빠의 어린 시절 회상 장면에는 아빠를 '찔룩이'라 부르며 괴롭히던 아이가 나온다. 아빠도 지지 않으려 맞붙었지만 깨닫게 된다. 주먹으로, 싸움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고통과 결심의 시간들이 흐른 후에 동화작가로 굳게 설 수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홧김에 준이에게 막말을 쏟아냈던 가람이도 이내 후회하고 부끄러움을 알았을 뿐 아니라 깊이 사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막말과 남탓을 보기는 쉽지만 진정한 사과와 용서와 화해는 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 책의 결말이 무척 훈훈하다. 이런 훈훈한 결말을 아이들도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훈훈함을 가져 온 한 마디. 이 책의 제목이다.
"그래서 슬펐어?"
상처받은 아이에게도, 상처 주고 후회하고 있는 아이에게도 손내밀어주는 위로의 말. 세상엔 착한 사람들이 그래도 더 많다고 믿는다. 작가님이 바라는 따뜻하게 어우러진 세상을 나도 바란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으로도 적당하겠다. 중학년 눈높이로 쓴 책인 것 같고 2학년까진 읽어줄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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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2019-09-2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정욱 작가님 신간 <나에게도 자존감이란 무기가 생겼습니다>도 강추예요~ ^^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사계절 중학년문고 5
고정욱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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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다.

하지만 공허하진 않다.

왜냐하면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게... 말하자면 현실이 씁쓸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맞다. 현실은 씁쓸하다. 어디 씁쓸하기만 한가. 참혹한 일들도 천지다.

그러니까 미담사례가 아닌 이런 씁쓸한 책이 나온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정욱 님의 <사랑의 도서관>을 읽고 바로 이 책을 읽었다. 사랑의 도서관에서의 천사는 사서 선생님, 그리고 이 책에서의 천사는 경찰 아저씨인가...? 했더니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천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 많지 않은 천사가 책에만 잔뜩 있다면 그건 책 읽을 맛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현실을 반영한 씁쓸한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걷지 못하고 업마 등에 업혀 다니는 동수는 시골 작은 학교에서 서울 큰 학교로 전학 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히 모든 일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중 동수의 등하교를 돕겠다는 경찰 아저씨가 나타난다. 아저씨는 멋진 오토바이에 동수를 태우고 다녔고, 이 일은 유명해져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동수를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생기지만, 인터넷 까페를 만들어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지켜보는 동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치 않고 우울하다.

어느날 평소처럼 경찰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기다리는데 아저씨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저씨가 이 일로 특진을 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며칠을 앓아 누웠던 동수는 털고 일어나 엄마가 장만해주신 스쿠터로 등교를 한다. 그런데 학교로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 아저씨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그동안 이러저러해서 못왔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음... 그런 사정이 있었겠구나... 라고 독자인 나까지 납득을 하려는 찰나, 아저씨는 본심을 드러내고 만다. 경찰서 게시판에 자신을 위한 글을 좀 써달라는..... 아저씨는 반 아이들의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퇴장하고, 동수를 애자라고 욕하고 놀리던 친구들까지 한마음으로 분노하며 멀어지는 순찰차를 바라본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경찰 아저씨가 처음에는 정말 동수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그 일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동수 어머니의 큰 짐을 덜어줬다는 점에서 큰 보람도 느끼며 그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알려지고 찬사를 받으며 아저씨는 결국 졸업 때까지 그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기 때문이다. 난 이 아저씨를 심하게 비난할 마음이 없다. 나보다 아주 크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 같으면 약속은 했으니 어떤 방법으로든 지키기는 하겠다. 하지만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살면서 나의 간사한 마음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비록 세상의 씁쓸함을 알게 했을지라도 동수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하고 지켜보는 친구들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을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대체로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 -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인생을 개척해 갈 수 있으며, 그렇게 가다보면 동행하는 진실한 사람들 몇은 곁에 있을 거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기우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진 점은 좀 걱정이 된다. 어떤 직업군이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섞여있기 마련인데, 이런 공개적인 매체에 자신의 직업군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면 나같이 소심한 사람들은 상처받는다.^^;; 훌륭하신 분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2011년에 다른 곳에 썼던 것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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