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사계절 중학년문고 5
고정욱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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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다.

하지만 공허하진 않다.

왜냐하면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게... 말하자면 현실이 씁쓸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맞다. 현실은 씁쓸하다. 어디 씁쓸하기만 한가. 참혹한 일들도 천지다.

그러니까 미담사례가 아닌 이런 씁쓸한 책이 나온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정욱 님의 <사랑의 도서관>을 읽고 바로 이 책을 읽었다. 사랑의 도서관에서의 천사는 사서 선생님, 그리고 이 책에서의 천사는 경찰 아저씨인가...? 했더니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천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 많지 않은 천사가 책에만 잔뜩 있다면 그건 책 읽을 맛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현실을 반영한 씁쓸한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걷지 못하고 업마 등에 업혀 다니는 동수는 시골 작은 학교에서 서울 큰 학교로 전학 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히 모든 일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중 동수의 등하교를 돕겠다는 경찰 아저씨가 나타난다. 아저씨는 멋진 오토바이에 동수를 태우고 다녔고, 이 일은 유명해져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동수를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생기지만, 인터넷 까페를 만들어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지켜보는 동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치 않고 우울하다.

어느날 평소처럼 경찰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기다리는데 아저씨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저씨가 이 일로 특진을 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며칠을 앓아 누웠던 동수는 털고 일어나 엄마가 장만해주신 스쿠터로 등교를 한다. 그런데 학교로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 아저씨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그동안 이러저러해서 못왔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음... 그런 사정이 있었겠구나... 라고 독자인 나까지 납득을 하려는 찰나, 아저씨는 본심을 드러내고 만다. 경찰서 게시판에 자신을 위한 글을 좀 써달라는..... 아저씨는 반 아이들의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퇴장하고, 동수를 애자라고 욕하고 놀리던 친구들까지 한마음으로 분노하며 멀어지는 순찰차를 바라본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경찰 아저씨가 처음에는 정말 동수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그 일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동수 어머니의 큰 짐을 덜어줬다는 점에서 큰 보람도 느끼며 그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알려지고 찬사를 받으며 아저씨는 결국 졸업 때까지 그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기 때문이다. 난 이 아저씨를 심하게 비난할 마음이 없다. 나보다 아주 크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 같으면 약속은 했으니 어떤 방법으로든 지키기는 하겠다. 하지만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살면서 나의 간사한 마음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비록 세상의 씁쓸함을 알게 했을지라도 동수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하고 지켜보는 친구들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을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대체로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 -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인생을 개척해 갈 수 있으며, 그렇게 가다보면 동행하는 진실한 사람들 몇은 곁에 있을 거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기우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진 점은 좀 걱정이 된다. 어떤 직업군이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섞여있기 마련인데, 이런 공개적인 매체에 자신의 직업군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면 나같이 소심한 사람들은 상처받는다.^^;; 훌륭하신 분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2011년에 다른 곳에 썼던 것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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