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호랑이가 왔다 - 제11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웅진책마을 105
김정신 지음, 조원희 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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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호랑이가 왔다 / 김정신 /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문학상 수상작들을 대부분 좋게 읽었는데 이 책은 느낌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주 싫은 건 아니지만 호감도 가지 않는 느낌. 그 느낌이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종의 불편함인 것 같다. 나는 왜 불편함을 느꼈을까.

이야기꾼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학교에 호랑이가 찾아오는 이 이야기도 그렇다. 말도 안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이런 시작이 나는 좋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들은 작가의 주제의식이 선명히 보이는 것 같으나, 아니 그래서인지 왠지 몰입되지 않았다. 활짝 열려있는 결말 앞에서도 시원한 느낌은 없었다.

내 불편함의 근원을 정확히 지목할 순 없지만 짚이는 부분이 두 군데 있다. 첫째는 이야기에 등장한 어른들의 모습이다. '여자아이 99명을 삼키고 마지막 1명을 찾는' 호랑이가 학교에 찾아왔는데 어른답게 대응하는 어른이 아무도 없다. 교장선생님은 간교하고 비열하며, 담임선생님은 무력하고 비겁하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자기자식만 보호해 준다면 상대의 인격과 도덕성 등에는 상관없이 짝짜꿍 손뼉을 치며 칭송한다. 호랑이만이 통찰력을 가지고 이 모든 요지경을 굽어본다.

그리고 호랑이가 선택한 아이는 '분홍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준희였다. 긴 머리에 분홍 옷과 분홍 가방, 분홍 장화를 신은 조용한 준희. 누가 봐도 여자아이인 준희는 실은 남자아이였다. '남자아이'라면 호랑이에게 먹힐 자격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반발하는 나머지 아이들을 두고 준희를 은근슬쩍 희생양으로 밀어 내몬다. 이 부분이 특히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 그렇지만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런 모습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ㅠ

두번째 불편함은 내가 의식과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인가 하는 자책감 때문인 것 같다. 양성평등에 많은 장애물이 있고 아직도 가는 길이 멀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진 잘 모르겠다. 지나간 세대와 우리 세대에서는 물론 심했지만 지금 아이들 세대는 많이 달라졌고 딱히 어떤 성이 크게 차별받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나또한 어떤 성을 우선한 적이 없고 말이다. 다만 성역할, 성특성 고정관념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 고정관념 자체가 불평등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젊은 부모들의 양육방식은 이것까지도 많이 극복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 내겐 여러가지 사회 현안 중에서 양성평등의 문제는 비중이 약한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불편함이 비롯된 것 같다. '내가 문제인 건가' 라는 불편함 말이다. 남들이 이토록 문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잘 못 느끼는 나에 대한 불안감?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건 여자가 하는 일이잖아요." "이런 건 남자가 해야죠."라는 말을 하는 아이를 요즘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니 이게 뭐지?' 했던 적은 최근에 있었는데, 그게 바로 색깔 고정 관념, 바로 분홍색에 대한 기피 현상이었다. 색상지를 나눠줄 때 게시판에 고루 붙이려고 여러 색을 배분하여 골라가게 하면 분홍색만 최후에 남는다. 남자아이들은 "남자가 왜 분홍색을?" 여자아이들도 "내가 여자라고 분홍을 고를소냐" 라는 태도를 보인다. 성고정관념이 가장 많이 투사된 것이 바로 색깔, 그중에서도 분홍색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도 이것을 소재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준희가 우리반이라면 난 예뻐했을텐데. 분홍색 도화지로 멋진 작품을 만들고 난 그걸 아이들 앞에서 칭찬해줬을 텐데. 이 분홍 기피현상이 해소된 걸 성고정관념 탈피의 지표로 보아도 되려나.

'호랑이'라는 존재와 '호랑이에게 먹힌다'는 것, 그리고 '호랑이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작품의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리고 활짝 열어놓은 이 책의 결말 때문에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뒷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그 안에서 아이들의 어떤 생각을 엿볼 수 있을지, 그건 또 나의 고정관념을 얼마나 뒤집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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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문학동네 동시집 70
김창완 지음, 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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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을 특별히 좋아해서 팬클럽에 들거나 기를 쓰고 공연을 가거나 했던 추억이 없다. 정말 그랬나?....... 음반을 빠짐없이 샀던 가수는 있었다. 산울림의 김창완씨. 용돈도 궁했던 중고딩때.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 음반까지 구해(3집으로 기억함...) 빠짐없이 갖춰놓고 좋아라 했으니 그만하면 팬질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때 모았던 테입들은 지금은 무용지물이라 다 버려졌지....

어렸을 때여서 그들의 음악적 가치나 경향, 대중음악사에서의 위치 같은 건 잘 몰랐다. 그냥 별로 가창력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김창완 아저씨의 졸린듯한 목소리가 꽤 매력있는 음악이 되고 때로 호소력있는 샤우팅도 되는 걸 신기해하며 좋아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가사를 좋아했었다. 시인듯 시가 아닌 그 가사들을 예쁜 공책에 옮겨 적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가사들.

동화의 성 (10집 앨범 수록곡)

돌아가고파 나 어릴 적 놀던
동화의 성으로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잡초 우거진 성문밖에
나 지금 홀로 서서
꿈이었던가 온갖 것이
살아 얘기하던 때는
동화책 속으로 숨어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다 지난 어린 날은
먼 훗날 그대 성숙한 여인으로
나 푸른 양복 신사가 된다해도
건초더미 위 따뜻한 봄볕
무심코 누운 들판의 흙내 민들레
솟아오르는 새 저 깃털
가슴 속 피어나는 내 꿈
내 동화의 성은


취직하고 결혼하고 주변에 눈도 못돌리고 살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다시 만난 김창완 아저씨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 어떤 단막극에서 빵집 아저씨로 나왔다. 그가 혼자 몰래 좋아하는 아가씨는 빵집에서 야채빵을 사갔고 아저씨는 매일 그녀를 위해 정성껏 야채빵을 만들었다. 그제사 팬질하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그후로 김창완 씨만 나오면 나를 놀렸다. "빨리 와봐~ 자기 좋아하는 야채호빵 아저씨 나왔어~"

그러더니 이분은 그 수더분한 이미지마저 버리고 비열한 악역를 연기하기까지.... 정치적으로 어떻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대체 이분의 관심사와 행보는 어디까지인가..... 그런데!!

이젠 시인이 되셨다. 문학동네 동시집의 한권이 김창완 동시집이 되었다. 시집을 읽어가다 몇 번을 웃었다. 이제보니 김창완 아저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동시였다. 사실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내 느낌으론 그렇다. 내 어린시절 아저씨, 이젠 할아버지인 김창완씨 안에 이런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는 게 참 놀랍다.

가끔 동시가 아닌 시도 섞여 있다. '글쓰기'란 시에서 시인은 늦은 밤 글쓰기에 집중하려 하나 실패하고 결국 치킨집에 전화한다. "아직 열었어요?" 하고.ㅎㅎ '마른 우물' 이라는 시에선 좀처럼 붙잡기 어려운 시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마지막 장의 '인생'도 그만큼 세상을 살아온 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시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쓴 동시들이다. 아이들은 억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안그런 척 누굴 좋아하기도 하고, 자연을 보고 신기해 하기도 한다. 이 시집이 도서실에 여러 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공감가는 시를 골라보라고 하고 싶다.

재밌는 시들이 많아 우열을 가리기 어렵고, 여러번 웃었는데 그중 작가 머리말을 읽고 가장 크게 웃었다. 김창완 아저씨의 육성을 듣는 듯했다. 일부를 옮겨적고 마치겠다.

"나는 말이 느리게 나온다.
말하는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라
말이 나오는 길이 너무 멀다.
(중략)
그것들을 햇살 아래 늘어놓으니
이건 나물도 아니고
어포도 아니고
주전부린지
공깃돌인지
먹는 건지 뱉는 건지
쳐다보고 있으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김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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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여행에서 나를 찾다 - 일상의 익숙함을 벗어나 낯섦과 마주하며 알게 된 것들
차승민 지음 / 교육과실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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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딱히 한가하지 않지만 직장에서 놓여났다는 점에서 마음만은 편안한 명절연휴, 틈틈이 이 책을 읽었다. 사실 여행은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내평생 비행기를 딱 세번 타봤는데 그중에 두번이 제주도. 외국은 남편과 대만을 다녀온 게 유일하다. 많은 시간, 많은 비용, 고생을 감수하고 떠날만큼 해외여행은 내게 도전을 주진 못한다. 국내도 좋은 데 많은데.... (라고 하면서 국내도 많이 다니진 못함. 한마디로 방안퉁수.ㅎㅎ)

대체심리인지, 견문을 담은 책을 보는 건 좋아한다. 간접경험이라 할까. 게다가 차승민 선생님의 책이라니 여행견문 플러스 알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라든가, 교대입학도 졸업도 가까스로 했던 학교성적이라든가.... 그러나 저자는 지금 교사로서 전국구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의 글들은(출판된 것 외에 페이스북의 글들까지) 많은 동료교사들에게 공감과 통찰을 주고 있다. 그 힘이 뭘까. 그의 여행에 어느정도 답이 있는 것 같다.

1. 저질러본다.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지역 언어도 잘 모른다. 여행정보로 무장한 것도 아니다. 패키지 아니며 가이드도 당연히 없다. 심지어 길치다. 이런 경우 나는 포기한다. 난 멘붕을 겪는 걸 고통스러워하고 미리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의 멘붕.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하지만 저자는 용감했다. 먼 길을 나섰다.

2. 사람을 만난다.
버스에서 동석했던 사람,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사람 등 우연히 만난 인연과 짧고 깊은 만남을 가졌다. 나누었던 대화들이 서로에게 많은 도움과 도전이 되었을 것 같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이게 안된다. 그리고 그렇게 깊이있고 적극적인 대화를 이어가기도 어렵다. 안면은 없지만 페북에서 본 바로 짐작해보면 차쌤의 강점 중 하나는 '이빨'이 아닐까 싶다.(실례^^;;;;)

3. 문화에 대한 감수성
이건 나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내가 전공자가 아니라는, 기능도 안목도 부족하다는 위축감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기존에 나온 감상에 의존하고 내 고유의 감상은 굳이 드러내지 않거나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차쌤은 그러지 않는다. 미술과 특별히 인연이 없었던 차쌤은 첫 여행에서 미술관에 꽂혔는데, 이후 미술관 위주의 여행을 하며 나름대로의 안목과 개성적인 감상능력을 키워간다. 이것은 그의 미술수업(자칭 '얼렁뚱땅 미술수업')으로 이어진다.

4. 태도의 탁월함
차쌤의 첫 전문분야는 영화수업이다. 가장 먼저 쓴 책도 영화수업 관련 책이었다. 이후 학생, 학부모교육 관련 책들을 출판했고 여행 관련 도서(바로 이 책)에 이어 바로 위에 언급한 미술수업 책도 출간한 것으로 안다. 이렇게 영역을 넓혀 전문가가 되어가는 모습이 초등교사로서의 한 모델이 된다. 초등교사는 되도록 멀티면 좋다. 하지만 모든걸 다 잘하는 사람은 없고 나처럼 특별난 재주가 없는 사람도 있지.... 그런데 위안이 되는 것은 차쌤도 처음에는 미술에 문외한이었고 지금도 본인의 기능이 뛰어나신 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대상과 '대화' 했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찾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나름대로의 감상을 했고 그것을 학생들과 나눌 방법들을 찾아갔다. 여기에서 난 생각한다. 차쌤의 강점은 바로 그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차쌤의 저서나 페북글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가 학생들에게도 '태도'를 엄청 강조한다는 걸. 이 책에도 태도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이 책의 핵심은 아니라해도 감상은 어차피 자기가 꽂힌 대로 하는 거니까, 다소 길지만 인용해본다.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것과 표현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 방법이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걸 용기라 부르기도 한다. 일관성은 이런 작은 용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던히 하는 태도의 산물이다.
.....특히 태도의 능력은 몸에 배어야 하기에 노력만큼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훗날 엄청난 격차를 낳고 이것이 바로 진짜 능력으로 발현한다."(본문 100쪽)

차쌤이 갖고 있는 태도, 바로 용기, 도전, 실천, 무던함, 작은 자극에 움츠러들지 않음 등등이 그의 경쟁력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태도는 점차 능력을 발현케 한다. 그의 여행기를 통해 이런 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이 바로 이런 점이다.

5. 때로는 나 자신에게 깊이 집중하기
40세에 시작한 차쌤 여행의 시작은 홀로 여행이었다. 이후 제자, 가족과 동행하기도 했지만 혼자 떠날 때가 많다. 건강이 좋지 않으실 때도 있는데 이를 무릅쓰고 볼 수 있는만큼만 보리라 결심하고 떠난 여행의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최대한 많이 보려고 헐레벌떡 다니는 여행과는 다르고 어찌보면 본전도 못 건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쌤은 이러한 여정에서 자신을 깊이 만나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것도 차쌤 특유의 담대함과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나와 만나기 위해 그 먼 길을 떠나기도 하는 것이니.

6.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무슨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차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흔한 말에도 약간의 의문을 제기한다. 차쌤 자체가 이론으로 무장하고 예술을 접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로 시작한 그의 예술 감성은 미술로 이어지고 누구에게 배워서가 아닌 스스로의 감상세계를 구축해갔다. '예술적 안목'에 대한 그의 견해를 옮겨보면 이렇다.
"예술은 삶 그 자체이고 인간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인데, 예술적인 소양이 뛰어난 예술가들이 펼쳐놓은 것을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기만 해도 예술적 안목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술적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가?
좋은 것을 본다.
많이 본다.
자주 본다.
보고 싶을 때 본다."(본문 172쪽)
이 안에는 "작품 네가 날 감동시켜 보라"는 당당함도 포함되고 일상에 충실할 때 예술적 간절함이 충전되어 보고 싶은 감정이 차오른다는 조언도 들어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와 일맥상통하는가? 일상과 예술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충실한 일상 후의 예술활동이 큰 기쁨이 되는 것을 나도 경험해 보았기에 공감이 간다.

7. 호기심
학생들이 호기심으로 충전되어 있다면 교사의 수업은 날개를 단다. 하지만 교사는 호기심을 유지하기보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교사가 호기심을 갖지 못하면 일상이 지루해지고 정체된다. 차쌤은 이것을 여행을 통해 극복한다. 여행을 시작한 순간 그의 호기심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수업도 일종의 여행일 터, 진정한 여행을 해 본 교사, 수업의 깊이도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꼭 찝어 어디가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도전 하나가 고개를 드는데 그건 '낯선 곳에 나를 밀어넣기'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들어가보고 그걸 즐기기. 그걸 되도록 퇴직하기 전에 해보기. 왜냐하면 퇴직하고 나서 "아이구, 이런건 현직에 있을 때 좀 해볼걸" 하고 후회하면 안타까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고, 돈버는 일상의 루틴을 무사히 해내는 것만 해도 지치는 내가 뭘 많이 할 수 있을거 같지는 않지만,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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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만든 평화의 다리 생각을 더하는 그림책
바겔리스 일리오풀로스.그리스 리오 시 어린이들 지음, 김배경 옮김 / 책속물고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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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 때 특별한 느낌은 못 받았다. 비유가 너무 식상하면 직접어법보다도 더 촌스럽다. 살짜쿵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근데 이 책이 쓰여진 건 최근이 아니고(15년쯤 전인 듯), 더구나 작가들이 어린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까탈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아이들의 귀엽고 순수한 생각들이 담겼고, 내가 식상하다 느낀 부분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다리'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다.

그리스의 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이 책은 그리스의 두 해안마을을 연결한 다리 완공을 기념하여 그중 한 마을인 리오 시의 아이들이 글을 쓰고, 그림 역시 아이들이 그린 책이다. 연필자국이 그대로 보이고, 세련되지 않은 스케치나 채색이 정겹다. 특별한 기법을 배우지 않은 아이들의 그림(교실에서 흔히 보는^^)인데 책의 격을 떨어뜨리기는 커녕 오히려 살려준다고 할까?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의 표현은 언제든 창작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아이들과 창작 수업을 하게 될 때 동기부여를 잘 해줄 것 같다.^^

실제 다리가 놓여진 두 마을처럼 이 책에도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소곤소곤 마을과 두근두근 마을이 나온다. 두 마을 사람들은 늘 웃으며 정답게 지냈다. 마법사 용이 이걸 보며 심술이 나서 이들의 평화를 파괴할 전략을 짰다. 무기를 선물하고 나쁜 마음을 일으킬 재료들을 섞어 마법의 입김을 불었다. 그 재료들이란 의심, 질투, 편견 같은 것들이었다.
딱 봐도 너무나 완벽한 전략 아닌가?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적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평화가 깨진 두 마을엔 두려움과 불안만이 흘렀다.

이 상황을 안타깝게 보고 도와주려 애쓰는 존재는 작은 새였다. 그 전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우정을 잃지 않고 몰래 마음을 나누는 아이들이 있었다. 작은 새는 아이들을 돕는다.
양쪽 마을 아이들은 서로의 성 위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흘린 눈물방울이 하늘로 올라갔고 햇살이 비추자 무지개 다리가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다리를 만든 재료들은 아이들의 눈물진주, 동화책 갈피끈, 또 거기에 걸린 추억들. 이 모든게 의미심장하다. 용은 맥을 못추고 물러났고 두 마을 아이들은 작은 새와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른다.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감탄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상적인 내용이라고 느낀다. 난 이제 평화가 어떻게 오는지 모르겠다. 살수록 느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절대 가져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 다만 완벽할 수 없을지라도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내안에 꾸역꾸역 쌓이는 욕심을 알아채고 덜어내는 일. 그것만으로도 힘겹다. 그리고 나보다 더 큰 욕심을 가진 괴물 용의 수작을 알아채고 거기에 놀아나지 않는 일. 이것 또한 어렵고도 중요하다. 점점 아래로 대물림되는 이기심과 진흙탕 싸움 속에서 아이들을 격려하고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울 수 있도록 중심을 지키는 교사. 이것이 나의 최대치 모델이다. 아직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이 책이 거울이 되어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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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신은 늑대와 무적의 고양이 장군 봄볕어린이문학 15
엘 에마토크리티코 지음, 알베르토 바스케스 그림, 박나경 옮김 / 봄볕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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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이름도 반갑고 이 익숙한 그림체도 반갑다.(근데 작가이름 못외움... 스페인 작가라는 것 밖에^^;;) <행복한 늑대>의 후속편이다. 행복한 늑대는 한 시기 우리반 친구들과 함께 했었다. 독서취향이 제각각 다르지만 이 책은 모두가 좋아했다. 사납고 난폭한 늑대라는 이미지를 뒤집은 착하고 다정한 아기늑대. 삼촌 페로스의 압박에도 아랑곳없이 특유의 순진무구함으로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켰다.

이 책은 아기늑대보다 삼촌이 더 많이 나온다. 잔혹함과 사악함을 버리고 숲속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나 파리만 날리는 날들이 계속되자 삼촌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기 늑대가 가져온 그림을 보고 숲속 동물들의 영웅인 '장화 신은 고양이 장군'에 대해 알게 된다. (이 시리즈의 특징 : 옛이야기나 명작동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첫 권에서도 그거 찾는 재미가 있었다.^^)

삼촌한테 장화 한 켤레를 받은 아기늑대는 좋아라 뛰어나가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고 친구들은 부러워하며 갖고싶어 하는데.... 이 모습을 본 사악한(아니 영리한이라 할까?) 삼촌의 머리속엔 어느새 사업구상이 펼쳐진다. 바로 장화신은 고양이 굿즈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다. 장화에 이어 칼, 모자, 망토, 벨트.... 고양이 장군의 인기만큼 굿즈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제 숲속 동물 중 고양이 장군 복장을 하지 않은 동물이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진 1단계였다. 사악..(아니 영리)한 삼촌의 마케팅 전략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고양이 장군을 만난 삼촌은 그에게 다양한 선물을 하고, 그것은 또 새로운 유행 아이템이 되어 돈을 벌어들였다.

나는 워낙 돈쓰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 많이 해당되진 않지만 현대사회의 소비 패턴을 풍자하는 우화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그렇게나 살까? 그리고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그렇게나 버릴까? 이에 대해서 멋지게 꼬집은 철학동화 <오! 멋진데!>도 같이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사악해도 조카에 대한 애정만은 깊은 삼촌은 아기늑대의 이런 말을 듣고 자신의 행보에 비로소 제동을 건다.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매일 모험을 천개쯤은 즐겼어요. 나무에 오르고,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바보처럼 장난치며 숲을 누비고 다녔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삼촌이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은 오로지 돈으로 물건을 사고 또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그래서 같이 재미있게 놀던 친구들이 모두 떠났어요."
소비가 미덕이어야 하는 자본주의의 맹점까지 잘 짚어낸 부분이다. 조카의 소외와 슬픔 앞에서야 정신을 차린 페로스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저학년 대상의 짧고 쉬운 동화이면서도 그 안에 각자의 층위에 맞는 사유를 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근데 1번 가수의 가창력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음 가수들의 노래를 다 듣고도 1번을 누르는 청중평가단처럼, 나도 한 권을 고르라면 첫번째 책 <행복한 늑대>를 고르겠다. 착함의 가치가 훼손된 시대에, 바보 이반도 아닌 귀여운 늑대의 착함은 내게 너무 소중했다. 물론 이 책도 그 연장선이긴 하다. 이 시리즈는 계속 나온다고 하니, 같은 물줄기로 더욱 재미있게 구불구불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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