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문학동네 동시집 70
김창완 지음, 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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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을 특별히 좋아해서 팬클럽에 들거나 기를 쓰고 공연을 가거나 했던 추억이 없다. 정말 그랬나?....... 음반을 빠짐없이 샀던 가수는 있었다. 산울림의 김창완씨. 용돈도 궁했던 중고딩때.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 음반까지 구해(3집으로 기억함...) 빠짐없이 갖춰놓고 좋아라 했으니 그만하면 팬질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때 모았던 테입들은 지금은 무용지물이라 다 버려졌지....

어렸을 때여서 그들의 음악적 가치나 경향, 대중음악사에서의 위치 같은 건 잘 몰랐다. 그냥 별로 가창력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김창완 아저씨의 졸린듯한 목소리가 꽤 매력있는 음악이 되고 때로 호소력있는 샤우팅도 되는 걸 신기해하며 좋아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가사를 좋아했었다. 시인듯 시가 아닌 그 가사들을 예쁜 공책에 옮겨 적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가사들.

동화의 성 (10집 앨범 수록곡)

돌아가고파 나 어릴 적 놀던
동화의 성으로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잡초 우거진 성문밖에
나 지금 홀로 서서
꿈이었던가 온갖 것이
살아 얘기하던 때는
동화책 속으로 숨어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다 지난 어린 날은
먼 훗날 그대 성숙한 여인으로
나 푸른 양복 신사가 된다해도
건초더미 위 따뜻한 봄볕
무심코 누운 들판의 흙내 민들레
솟아오르는 새 저 깃털
가슴 속 피어나는 내 꿈
내 동화의 성은


취직하고 결혼하고 주변에 눈도 못돌리고 살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다시 만난 김창완 아저씨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 어떤 단막극에서 빵집 아저씨로 나왔다. 그가 혼자 몰래 좋아하는 아가씨는 빵집에서 야채빵을 사갔고 아저씨는 매일 그녀를 위해 정성껏 야채빵을 만들었다. 그제사 팬질하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그후로 김창완 씨만 나오면 나를 놀렸다. "빨리 와봐~ 자기 좋아하는 야채호빵 아저씨 나왔어~"

그러더니 이분은 그 수더분한 이미지마저 버리고 비열한 악역를 연기하기까지.... 정치적으로 어떻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대체 이분의 관심사와 행보는 어디까지인가..... 그런데!!

이젠 시인이 되셨다. 문학동네 동시집의 한권이 김창완 동시집이 되었다. 시집을 읽어가다 몇 번을 웃었다. 이제보니 김창완 아저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동시였다. 사실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내 느낌으론 그렇다. 내 어린시절 아저씨, 이젠 할아버지인 김창완씨 안에 이런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는 게 참 놀랍다.

가끔 동시가 아닌 시도 섞여 있다. '글쓰기'란 시에서 시인은 늦은 밤 글쓰기에 집중하려 하나 실패하고 결국 치킨집에 전화한다. "아직 열었어요?" 하고.ㅎㅎ '마른 우물' 이라는 시에선 좀처럼 붙잡기 어려운 시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마지막 장의 '인생'도 그만큼 세상을 살아온 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시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쓴 동시들이다. 아이들은 억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안그런 척 누굴 좋아하기도 하고, 자연을 보고 신기해 하기도 한다. 이 시집이 도서실에 여러 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공감가는 시를 골라보라고 하고 싶다.

재밌는 시들이 많아 우열을 가리기 어렵고, 여러번 웃었는데 그중 작가 머리말을 읽고 가장 크게 웃었다. 김창완 아저씨의 육성을 듣는 듯했다. 일부를 옮겨적고 마치겠다.

"나는 말이 느리게 나온다.
말하는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라
말이 나오는 길이 너무 멀다.
(중략)
그것들을 햇살 아래 늘어놓으니
이건 나물도 아니고
어포도 아니고
주전부린지
공깃돌인지
먹는 건지 뱉는 건지
쳐다보고 있으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김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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