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여행에서 나를 찾다 - 일상의 익숙함을 벗어나 낯섦과 마주하며 알게 된 것들
차승민 지음 / 교육과실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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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딱히 한가하지 않지만 직장에서 놓여났다는 점에서 마음만은 편안한 명절연휴, 틈틈이 이 책을 읽었다. 사실 여행은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내평생 비행기를 딱 세번 타봤는데 그중에 두번이 제주도. 외국은 남편과 대만을 다녀온 게 유일하다. 많은 시간, 많은 비용, 고생을 감수하고 떠날만큼 해외여행은 내게 도전을 주진 못한다. 국내도 좋은 데 많은데.... (라고 하면서 국내도 많이 다니진 못함. 한마디로 방안퉁수.ㅎㅎ)

대체심리인지, 견문을 담은 책을 보는 건 좋아한다. 간접경험이라 할까. 게다가 차승민 선생님의 책이라니 여행견문 플러스 알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라든가, 교대입학도 졸업도 가까스로 했던 학교성적이라든가.... 그러나 저자는 지금 교사로서 전국구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의 글들은(출판된 것 외에 페이스북의 글들까지) 많은 동료교사들에게 공감과 통찰을 주고 있다. 그 힘이 뭘까. 그의 여행에 어느정도 답이 있는 것 같다.

1. 저질러본다.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지역 언어도 잘 모른다. 여행정보로 무장한 것도 아니다. 패키지 아니며 가이드도 당연히 없다. 심지어 길치다. 이런 경우 나는 포기한다. 난 멘붕을 겪는 걸 고통스러워하고 미리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의 멘붕.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하지만 저자는 용감했다. 먼 길을 나섰다.

2. 사람을 만난다.
버스에서 동석했던 사람,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사람 등 우연히 만난 인연과 짧고 깊은 만남을 가졌다. 나누었던 대화들이 서로에게 많은 도움과 도전이 되었을 것 같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이게 안된다. 그리고 그렇게 깊이있고 적극적인 대화를 이어가기도 어렵다. 안면은 없지만 페북에서 본 바로 짐작해보면 차쌤의 강점 중 하나는 '이빨'이 아닐까 싶다.(실례^^;;;;)

3. 문화에 대한 감수성
이건 나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내가 전공자가 아니라는, 기능도 안목도 부족하다는 위축감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기존에 나온 감상에 의존하고 내 고유의 감상은 굳이 드러내지 않거나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차쌤은 그러지 않는다. 미술과 특별히 인연이 없었던 차쌤은 첫 여행에서 미술관에 꽂혔는데, 이후 미술관 위주의 여행을 하며 나름대로의 안목과 개성적인 감상능력을 키워간다. 이것은 그의 미술수업(자칭 '얼렁뚱땅 미술수업')으로 이어진다.

4. 태도의 탁월함
차쌤의 첫 전문분야는 영화수업이다. 가장 먼저 쓴 책도 영화수업 관련 책이었다. 이후 학생, 학부모교육 관련 책들을 출판했고 여행 관련 도서(바로 이 책)에 이어 바로 위에 언급한 미술수업 책도 출간한 것으로 안다. 이렇게 영역을 넓혀 전문가가 되어가는 모습이 초등교사로서의 한 모델이 된다. 초등교사는 되도록 멀티면 좋다. 하지만 모든걸 다 잘하는 사람은 없고 나처럼 특별난 재주가 없는 사람도 있지.... 그런데 위안이 되는 것은 차쌤도 처음에는 미술에 문외한이었고 지금도 본인의 기능이 뛰어나신 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대상과 '대화' 했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찾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나름대로의 감상을 했고 그것을 학생들과 나눌 방법들을 찾아갔다. 여기에서 난 생각한다. 차쌤의 강점은 바로 그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차쌤의 저서나 페북글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가 학생들에게도 '태도'를 엄청 강조한다는 걸. 이 책에도 태도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이 책의 핵심은 아니라해도 감상은 어차피 자기가 꽂힌 대로 하는 거니까, 다소 길지만 인용해본다.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것과 표현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 방법이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걸 용기라 부르기도 한다. 일관성은 이런 작은 용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던히 하는 태도의 산물이다.
.....특히 태도의 능력은 몸에 배어야 하기에 노력만큼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훗날 엄청난 격차를 낳고 이것이 바로 진짜 능력으로 발현한다."(본문 100쪽)

차쌤이 갖고 있는 태도, 바로 용기, 도전, 실천, 무던함, 작은 자극에 움츠러들지 않음 등등이 그의 경쟁력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태도는 점차 능력을 발현케 한다. 그의 여행기를 통해 이런 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이 바로 이런 점이다.

5. 때로는 나 자신에게 깊이 집중하기
40세에 시작한 차쌤 여행의 시작은 홀로 여행이었다. 이후 제자, 가족과 동행하기도 했지만 혼자 떠날 때가 많다. 건강이 좋지 않으실 때도 있는데 이를 무릅쓰고 볼 수 있는만큼만 보리라 결심하고 떠난 여행의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최대한 많이 보려고 헐레벌떡 다니는 여행과는 다르고 어찌보면 본전도 못 건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쌤은 이러한 여정에서 자신을 깊이 만나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것도 차쌤 특유의 담대함과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나와 만나기 위해 그 먼 길을 떠나기도 하는 것이니.

6.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무슨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차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흔한 말에도 약간의 의문을 제기한다. 차쌤 자체가 이론으로 무장하고 예술을 접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로 시작한 그의 예술 감성은 미술로 이어지고 누구에게 배워서가 아닌 스스로의 감상세계를 구축해갔다. '예술적 안목'에 대한 그의 견해를 옮겨보면 이렇다.
"예술은 삶 그 자체이고 인간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인데, 예술적인 소양이 뛰어난 예술가들이 펼쳐놓은 것을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기만 해도 예술적 안목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술적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가?
좋은 것을 본다.
많이 본다.
자주 본다.
보고 싶을 때 본다."(본문 172쪽)
이 안에는 "작품 네가 날 감동시켜 보라"는 당당함도 포함되고 일상에 충실할 때 예술적 간절함이 충전되어 보고 싶은 감정이 차오른다는 조언도 들어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와 일맥상통하는가? 일상과 예술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충실한 일상 후의 예술활동이 큰 기쁨이 되는 것을 나도 경험해 보았기에 공감이 간다.

7. 호기심
학생들이 호기심으로 충전되어 있다면 교사의 수업은 날개를 단다. 하지만 교사는 호기심을 유지하기보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교사가 호기심을 갖지 못하면 일상이 지루해지고 정체된다. 차쌤은 이것을 여행을 통해 극복한다. 여행을 시작한 순간 그의 호기심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수업도 일종의 여행일 터, 진정한 여행을 해 본 교사, 수업의 깊이도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꼭 찝어 어디가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도전 하나가 고개를 드는데 그건 '낯선 곳에 나를 밀어넣기'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들어가보고 그걸 즐기기. 그걸 되도록 퇴직하기 전에 해보기. 왜냐하면 퇴직하고 나서 "아이구, 이런건 현직에 있을 때 좀 해볼걸" 하고 후회하면 안타까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고, 돈버는 일상의 루틴을 무사히 해내는 것만 해도 지치는 내가 뭘 많이 할 수 있을거 같지는 않지만,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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