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이너스 2야 - 제2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1
전앤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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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에 작가들은 또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뱉어낸다. 그중에 ', 이 느낌은 처음이야' 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쉬울까? 내 감각의 컨디션이 요즘 좋지 않아서,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쓸어보는 작품을 만나기 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만난 이 작품. 확실히 낯선 느낌이었다. 처음 가보는 어떤 길에 혼자 내려진 느낌 같기도 했고 난생 처음 꾸어보는 꿈 같기도 했다.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웃기다가도 끝모를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겨우 열여덟 고딩 아이들의 삶에서 말이다. 이 책은 청소년소설 중 우수작을 뽑는 '사계절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각기 홀로였던 세 청소년이 주연인 이야기다. 화자인 홍미주, 쌍둥이 남매인 김세정과 김세아. 그런데 셋이 얽힌 건 세아가 학교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부터다. 이 설정부터가 슬프다. 왜 어떤 것은 떠나버린 후에야 내 마음에 들어오고 나는 그 안타까움에 더 슬퍼해야 하는가. 모를 때는 평평하던 사건들이 알게 된 후에는 그토록 세밀하고 뾰족한 요철로 내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가. 나는 이게 싫어서 많은 일들을 "알고 싶지 않다."는 한마디로 넘겨버리며 산다. 이건 옳은 일인가. 미주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세아의 귀신(이렇게 표현하기 싫은데 딱히 부를 말이 없다)이 미주를 찍어서 찾아와버렸기 때문.

 

판타지도 아니고 어정쩡한 이런 설정을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서는 달리 피할 길이 없는 느낌으로 지켜보았다. 세아(의 귀신)는 미주네 집에 찾아와 아주 눌러앉았다. 이 상황이 너무 불편한 미주에게 떠나주는 조건으로 세정이를 세 번 만나줄 것을 제안한다. 세정이로 말할 것 같으면 덩치만큼 목소리 크고 무개념 과잉행동으로 비호감의 조건을 다 갖춘 남학생이다. 세아랑 쌍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고 본인들도 굳이 티내지 않아서 아는 아이들만 안다. 사고 현장에 둘은 같이 있었고 직전에 티격태격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는데.... 지금 세정이는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을까? 과잉행동은 더 심해져 기행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딱히 슬픔에 잠겨 보이진 않는데.....

 

너도 솔직히 세정이가 쪽팔렸던 거 아니냐며 거부하는 미주에게 세아는 말한다.

그래서 지금 후회하고 있잖아. 난 세정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야.”

세정이가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게 싫었어.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

 

셋이 혼자였던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혼자는 혼자를 알아보는 걸까. 세아는 전에 미주한테 백일장에 같이 나가보지 않겠냐며 접근한 적이 있다. 수행평가로 제출한 미주의 시에 뭔가가 있다면서.

너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

종점은 바다 같아.

너는 얼어붙은 겨울바다였다가 힘차게 밀려오는 파도였다가 갇혀버린 별 같아.

이런 대목에선 문예창작을 전공하시고 고등학교 문학교사라는 작가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미주가 혼자가 된 이유는 화자인 미주가 하도 천연덕스럽게 밝혀서 초반부터 알게 된다. 미주의 어린시절 상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세정이의 상처가 밝혀지는 순간은 안타깝고 충격적이었다. 세아도 죽고 나서야 알았다니... 그래서 세아는 바로 떠나지 못하고 미주의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나오는 대목이 난 맘에 들었다.

마이너스 1과 마이너스 1을 합치면 0이 아니고 마이너스 2. 김세정과 내가 딱 마이너스 2라고. 근데 우리가 굳이 만나야겠니?”

미주야, 마이너스가 꼭 나쁜 거야?”

?”

함께 있어서 외로움이나 슬픈 게 줄어들 수도 있잖아.”

그렇구나. 우리가 마이너스 2면 어떻고 마이너스 3이면 어떨까. 내가 플러스여야만 누구 옆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미주가 기억도 안나는 500원 도움을 세아한테 빚졌고 다른 친구에게 베풀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빚지고 다른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 진로수업 선생님의 '사람인'자 해설처럼 서로 등을 기대고.

 

죽고 나서야 친해진 세아를 떠나보내는 미주의 마음이 그려진다. 얼어붙은 겨울바다 앞에 서있는 심정으로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갇혀버린 별은 이제 자유롭게 어디선가 빛날 것이다. 세정과 미주는 서로 기대어 한 친구를, 쌍둥이 누이를 그리워할 수 있겠지.

그런 뜬금없는 순간에 깨닫게 돼. 이제 세아 없구나.”

세정이가 했던 말이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어찌 살게 된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우리 교실에 혹시 세정이가 있다면 내가 그 아이의 상처를 간과하고 못마땅해만 해서 마음을 더 굳게 닫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작가가 현장 교사시라 그런지 교사들이 평범하고도 호의적인 모습으로 나와서 마음이 부대끼지 않아 좋았다. 슬픔이 들어있지만 청소년 화자의 엉뚱하고 명랑한 문장 덕에 재밌고 유쾌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을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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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혼합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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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고, 제목인 이혼도 썩 관심사는 아니다. 우연히 페친이 올리신 이 책 표지를 보았는데, 무슨 맘에서인지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 간 김에 빌려왔다. 400쪽 가까운 분량에 1인칭 시점. 서사는 어찌보면 단순한데, 제법 되는 이 분량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주인공의 심리묘사라 하겠다. 그리고 주인공의 눈에 비친 주변 사람들의 모습.

 

화자인 스미코는 58세 여성이다. 나보다 겨우 두세살 많으니 동시대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의 젊은 시절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그 굴레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 우리랑 비슷한 게 많구나.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약간 더 고루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 한 편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어느날 스미코는 친구에게서 상중엽서를 받았다. 남편의 부고였다. 그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부럽다.’

상당히 극단적인 경우라 볼 수 있지만 이 책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남편들의 유형은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거였다. 섬김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밖에 모르며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남편에게서.

 

스미코는 출산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지금은 급식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파트타임이라고 하지만 일의 강도도 세고 거의 전일제 일인데, 남편은 아랑곳없이 예전 같은 수발을 당연하게 여긴다. 환갑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스미코의 일과에 자유시간은 거의 없다. 조금만 집을 비워도 남편의 못마땅한 표정과 말투가 따라붙는다. 아내랑 같이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없으면 불편하기 때문이지. 이걸 알지만, 그리고 반감도 가득하지만 스미코는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하고 분을 삭이면서 산다. 오랫동안 당해온 가스라이팅은 무섭다. 침잠해 들어간 마음은 좀처럼 솟아오르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마음에 힘을 붙이고, 일어서고 움직인 스미코의 이야기다.

 

가까운 사람에 대한 혐오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 같은 태도가 쌓여 이루어진다. 나를 보는 표정, 내 말에 반응하는 몸짓, 사소한 일에서도 드러나는 나에 대한 무시와 무배려, 거기에 내가 용납하기 어려운 기본생활습관까지 더해지면 그 인간과의 동거는 지옥이 될 것이다. 스미코의 남편은 흔히 이혼의 사유로 거론되는 폭력이나 외도, 돈사고 같은 것은 없었다. 스미코의 친구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스미코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짐작은 간다. 그인간의 숨소리조차 싫어진다는 감정이.

 

이때 스미코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에 이혼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혼을 선택하고 낯선 발걸음에 용기를 낸 모습은 응원받아 마땅하다. 사실 이혼을 망설인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문제였는데, 이건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스미코는 이 이유로 주저앉진 않았고 부족하나마 현실적인 대책으로 준비를 해나갔다. 쉽지 않을 것 같았던 과정은 의외의 반전과 작가 특유의 무겁지 않은 문체로 어둡지 않게 해결되었다.

 

인간에게는 의존적인 욕구가 있다고 한다. 독립과 자유를 추구하는 마음보다 안정과 의존을 바라는 마음이 크면 스미코처럼 늦은 나이에 스스로 서기는 어렵겠지. 많은 사람들이 남은 인생을 헤아려보며 배우자를 평생 친구로 소중하게 여기기도 하고, 뒤늦게 배우자를 만들기도 하며, 스미코처럼 결연하게 벗어나기도 한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속이는 핑계에 묻혀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미코의 두 딸에 대한 마음도 공감한다. 둘 다 장성하여 타 지역으로 독립했다. 큰딸은 비혼주의자이고 작은딸은 결혼했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느낌이다. 장성해도 자식은 자식이겠지. 엄마의 인생에 동의할 수 없는 딸들에게 새로운 반전을 보여주고 용기를 주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엄마라면, 실패한 엄마는 아니다.

 

시골 마을에서 스미코와 같이 쭉 살아온 친구들, 일찍이 도쿄 등의 도시로 나간 친구들 등 다양한 친구들과의 만남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그 대사들과 심리묘사가 어찌나 적나라한지 인간의 솔직한 바닥을 보게 된다. 가장 표면에 보이는 것은 남에 대한 질투,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핑계와 합리화, 그걸 위해 친구들의 삶을 이용하는 모습 등이다. 친구의 불행을 걱정하는 자리에서까지도 말이다. 특별히 욕할 일도 아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일본 작가의 소설들은 이질감이 없어선지 쉽게 읽혀서 좋다. 여성을 응원하는 책이지만 이걸 딱 성별의 문제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깝든 멀든 타인(나 아니면 다 타인이다)에 대한 고려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삶의 태도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을 힘들게 하고 결국 너 자신도 외로워진다구. 예전엔 니가 잡은 물고기가 참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이제 용감히 속박을 벗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당연한 시대니까. 나이도 이유가 되지 않는 시대니까. 이렇게 더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건가. 부디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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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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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 연말에 온것도 아닌데 엄청 붐볐다. 숙제와 같은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집근처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저번에 신청한 책이 왔다고. 김미옥 작가님 서평집인데, <미오기전>을 읽고 이끌려서 신청했던 책.

일단 각 꼭지의 제목과 책제목만 훑으며 넘겼다. 아이고 이런이런.... 예상은 했지만 내가 읽은 책은 없네. 진정 한 권도 없는 것인.......가? 오우 딱, 한 권 있네. 휴.ㅎㅎㅎ

서평집 또한 처음 읽어보는 종류다. 워낙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이런 종류의 책도 이렇게 많이 읽히고 잘 팔리는구나. 대상 책을 읽지 못했다 해도 글 자체로 괜찮은 내용. 거기에다 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덤. 이 책을 빌린 도서관에 검색을 해보니 몇몇권이 있다. 당분간 도서관 들락거리며 이렇게 독서가 이어지겠다는 예상을 해본다.

저자의 서평은 일단 선택에서 나왔을 것이다. 세상 수많은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들었을 터이고, 그 읽은 책들 중에서도 의미가 있어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골라 서평을 썼을 테니까. 게다가 이책은 그 서평들 중에서도 추려 편집하였을 테니. 그 구성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서평가의 메시지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아직 끝까지 정독도 못했는데 그걸 한마디로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작가의 다른 책 '미오기전' 을 읽고 그 삶이 견뎌온 어려움에 놀랐다. 그래서인가 그가 추천하는 책들도 삶의 질곡과 차별, 그 안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인간됨, 나아가서 조금 더 나은 세상, 조금 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추구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서평이 그 자체로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님을 통해서 알게 된다. 나도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알라딘 서재에 1년에 100편 정도 써 왔는데, 내가 썼던 건 이분의 글에 비하면 서평이라 할 만한 것도 못되지만 이 책을 읽고 더 많이 써야겠다거나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쓰기에 욕심내기보다 더 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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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교실 어떻게 할까? - 초등참사랑 이영근 선생님의 빛깔 있는 독서교육 살아있는 교육 46
이영근 지음 / 보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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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교사를 셀럽이라고들 하던데 별로 쓰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굳이 써 본다면 이영근 선생님은 1세대 셀럽이다. 전통적 셀럽이라고도 하겠다. 젊은 시절 교육청 연수가 아닌 자발적이고 진보적(?)인 연수에 가보면 꼭 이분이 강사로 계셨다. 주로 학급운영이나 글쓰기를 강의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잠깐 반짝하고 보이지 않는 셀럽들도 많은데 이분은 내 교직인생 전중후반부에 일관되게 보인다. 참 꾸준하고 한결같은 분이라 생각한다. 관심분야도 쭉 넓히셔서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이분의 연수는 토론 관련이었다. 꾸준함이 깊이로 이어지는 결과를 보는 듯했다. 지금은 아마도 어떤 쪽에서인가 그때보다 더 깊어져 계실 듯하다.

독서교육 책을 딱히 읽고싶진 않았다. 나는 가소성이 무척 부족한 사람이라 남의 책이 나에게 적용되려면 상당한 시도와 노력이 필요한데 보통은 안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취약 분야가 많아 시급하게 더 배워야 할 분야도 넘치는데, 하지만 서평게시판에 뜬 제목을 보니 마지막으로 한번 읽어보자는 욕심이 생겨 신청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이영근 선생님의 교실은 자연스러움이 특징인 것 같다. 규격화된 것들, 강제된 것을 최소화하고 여유있고 융통성있게 간다. 하지만 그 안에 편안함만 있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갈수록 치열함도 들어찬다. 그걸 자연스럽게 이끄는 게 선생님의 내공이다. 예를 들면 독후활동을 할 때 다양한 양식이나 맞춤형 자료를 사용하진 않고 무제공책 하나로 다 커버하는 편이다. 하지만 단계별로 간추리기부터 교사와 하나하나 함께 해나가다보면 나중에는 자유롭고 알차며 각자의 개성이 담긴 결과물들이 나오게 된다. 아이들도 교사도 부담이 덜한 방법이라 하겠다. 교사들마다 방식이 많이 다른데, 교사의 내공이 들어가 있다면 각기 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문장도 그렇다. 대화 나누듯이 자연스럽게 들려주는 글투를 사용한다. 낱말 하나도 되도록이면 우리말을 사용하고, 쉬운 내용이라도 상대방이 다 알거라는 전제를 빼고 친절하고 상세하게 쓴다. 그 교실도 이와같은 분위기일 거라는 짐작이 되고, 편안하고 허용적이면서도 노력하는 교실일 것 같다. 요즘 이런 교실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이 책은 독서교육 책이지만 학급운영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주고받는 선물과 편지 속에 싹트는 사랑도 있다. 책선물과 쪽지 편지 쓰기가 그것인데, 협력교사 선생님과 이별할 때의 훈훈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감사를 가르치고 싶어서 '우리의 배움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께 편지쓰기' 같은 활동을 연 1회 하곤 하는데, 이 방식도 따라해보고 싶다.

이영근 선생님의 전문성이 가장 집약된 장은 마지막 독서토론 장이었다. 따로 집필된 책이 있을 정도니까 아무래도 그렇겠다. 그림책과 그에 따른 논제 소개가 아주 감사한 자료였다. 나는 찬반토론을 힘주어하진 않으니 내가 하는 토론은 그냥 '돌아가며 생각 말하기' 수준이다. 저자는 '비경쟁 독서토론' 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셨는데, 들어보니 맞는 말이긴 하다. 용어 상으론 그렇고, 어떤 방식이든 생각을 충분히 말하게 할 수 있다면 좋은 방식일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 방학 알림장을 쓰면서 '심심 책읽기' 라는 표현을 도용했다.ㅎㅎ '가을 아래 책 읽기'도 해보고 싶은 활동 중 하나다. 무엇보다 조급해하지 않는 영근샘의 여유있는 태도를 가장 배우고 싶다. 역시 책을 읽기 잘했네. 꼭 배울 점이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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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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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필력이 뛰어난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책이 그냥 쭉쭉 읽힌다. 이분은 불세출의 서평가라고 한다. 이 책 말고 또 한권의 책이 있는데 그건 서평집인 모양이다. 그 책도 읽어보고 싶다. 근데 그 안에 내가 읽은 책이 있을랑가 모르겠다.

이책은 '전'자가 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일대기다. 굳이 말하자면 자서전이라 하겠다. 원래 남의 이야긴 재밌는데 이 책은 특별히 재밌다. 작가의 필력이 첫번째고 두번째는 인생 자체가 다이나믹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공통점이 너무 없는 분이다. 이 책의 리뷰는 아무래도 이분과 나의 차이점 늘어놓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겪으신 일로 보아 나보다 몇살 많거나 비슷한 또래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아주 평범한 순한맛 집안에서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성장한 것에 비하면 이분의 성장 배경은 악천후 속의 거친 들판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 자리를 확실히 잡기까지 모든 일이 풍파였다. 반면 주인공은 너무 똑똑하고 출중했으며 성격 또한 보통이 아니었으니 필연적으로 전투가 벌어진다. 미오기라는 검객이 칼 한자루를 들고 세상과 챙챙 싸우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다 이제야 조금 쉴만해진 이야기?

보통의 일대기가 시간순인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시간 면에선 뒤죽박죽이다. 의식의 흐름 순이라고 할까? 부제는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자신의 과거를 소환해 충분히 삭힌 후에 글로 엮었다. 그래서인가, 아픈 기억에도 유머가 있고 때로는 남얘기하듯 툭 던지기도 신나게 쏟아붓기도 한다. 그 여유가 내게는 무용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긴, 무용담이 맞긴 맞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여러 남매를 데리고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어머니는 미오기를 도구 취급했다. 그녀의 출중함을 기뻐하고 칭찬하긴 커녕 못마땅해했다. 요즘 세상이면 그 천분의 일만 해도 아동학대이고 자식은 금쪽이 방송에 나와야 할만큼 정신적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당당하신 어머니와, 그 어머니와 잘 지내는 미오기. 시대의 차이인가 난 잘 모르겠다. 이와 같이 과거로 곰국을 끓여 이해하며 화해한 탓이겠지. 이렇게 스스로 곰국을 끓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다행인가. 드물게 강한 사람. 그래서 나랑 비교된다.

어릴 때 그녀에게 구원은 책이었다. 나도 아주 약간 그렇긴 했는데 작가님과 수준 면에서 비교가 불가하다. 대단한 독서력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 그 밑바탕이 되는 예술적 교양을 두텁게 가진 사람. 그래서 그의 서평집이 기대된다. 내가 읽어본 책이 한 권도 없을지라도, 아니 그래서 더욱 읽어봐야겠다.

그에게 살아갈 의미를 부여해준 스승님이 6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안도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주었다. 보통 과거를 회상할 때 개차반 교사들을 많이 언급하는데, 친부모보다 더한 관심과 사랑과 기대를 주었던 선생님이 계셨다니. 지금은 과거와 같은 개차반 교사도 잘 없지만 이렇게 모든걸 내어놓는 분도 잘 없다. 옛날엔 모 아니면 도였던가...^^;;;; 나는 모도 도도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부족함은 인정한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 결혼해서는 남편과 시아버지, 지금은 주변 언니들에게 매우 의존적인 나는 작가님의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젊은 시절에 경의를 표한다. 스스로 생존하면서 그 많은 지식과 교양을 쌓았다는 점이 가장 놀랍다. 양육이나 직장생활 묘사는 주로 무용담 같았지만 그또한 대단했다. 부동산 쪽 얘기 읽어보니까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내는 사람 같아서 살짝 무섭기도.... 나는 기가 쎄고 억척스러운 사람과는 잘 안친해지는 편인데 그래도 이 책과의 만남은 참 즐겁고 반가웠다. 딱 한 군데서 작가님과의 동질감을 느꼈는데 '독학형 인간' 이라는 꼭지에서였다. 물론 작가님과 학습의 깊이는 다르지만....
"살며 부딪히는 모든 일들이 내게 스승이었다. 성공하고 실패하며 복기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배우는 건 나의 선택이고 검증도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들이 좋았다. 아직도 배움이 남아있다는게 꼭 삶이 남아있다는 말과 비슷하게 내게는 느껴져서다.

시뻘겋고 날카로운 날것의 재료들이 푹 고아지면 부드러운 곰국이 되듯이 작가님도 이제 인생을 깊이있고 부드럽게 관조하며 그 성찰을 독자들에게 나눠주시는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뭘 바라면서 책 리뷰를 쓴 건 아니고 단지 잊어버리지 않게 적어놓는 용도로 쓴 것이지만 이분의 서평집을 읽게 되면 엄마야 이런게 서평이구나 하면서 놀랄 것 같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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