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혼합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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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고, 제목인 이혼도 썩 관심사는 아니다. 우연히 페친이 올리신 이 책 표지를 보았는데, 무슨 맘에서인지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 간 김에 빌려왔다. 400쪽 가까운 분량에 1인칭 시점. 서사는 어찌보면 단순한데, 제법 되는 이 분량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주인공의 심리묘사라 하겠다. 그리고 주인공의 눈에 비친 주변 사람들의 모습.

 

화자인 스미코는 58세 여성이다. 나보다 겨우 두세살 많으니 동시대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의 젊은 시절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그 굴레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 우리랑 비슷한 게 많구나.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약간 더 고루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 한 편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어느날 스미코는 친구에게서 상중엽서를 받았다. 남편의 부고였다. 그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부럽다.’

상당히 극단적인 경우라 볼 수 있지만 이 책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남편들의 유형은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거였다. 섬김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밖에 모르며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남편에게서.

 

스미코는 출산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지금은 급식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파트타임이라고 하지만 일의 강도도 세고 거의 전일제 일인데, 남편은 아랑곳없이 예전 같은 수발을 당연하게 여긴다. 환갑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스미코의 일과에 자유시간은 거의 없다. 조금만 집을 비워도 남편의 못마땅한 표정과 말투가 따라붙는다. 아내랑 같이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없으면 불편하기 때문이지. 이걸 알지만, 그리고 반감도 가득하지만 스미코는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하고 분을 삭이면서 산다. 오랫동안 당해온 가스라이팅은 무섭다. 침잠해 들어간 마음은 좀처럼 솟아오르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마음에 힘을 붙이고, 일어서고 움직인 스미코의 이야기다.

 

가까운 사람에 대한 혐오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 같은 태도가 쌓여 이루어진다. 나를 보는 표정, 내 말에 반응하는 몸짓, 사소한 일에서도 드러나는 나에 대한 무시와 무배려, 거기에 내가 용납하기 어려운 기본생활습관까지 더해지면 그 인간과의 동거는 지옥이 될 것이다. 스미코의 남편은 흔히 이혼의 사유로 거론되는 폭력이나 외도, 돈사고 같은 것은 없었다. 스미코의 친구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스미코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짐작은 간다. 그인간의 숨소리조차 싫어진다는 감정이.

 

이때 스미코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에 이혼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혼을 선택하고 낯선 발걸음에 용기를 낸 모습은 응원받아 마땅하다. 사실 이혼을 망설인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문제였는데, 이건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스미코는 이 이유로 주저앉진 않았고 부족하나마 현실적인 대책으로 준비를 해나갔다. 쉽지 않을 것 같았던 과정은 의외의 반전과 작가 특유의 무겁지 않은 문체로 어둡지 않게 해결되었다.

 

인간에게는 의존적인 욕구가 있다고 한다. 독립과 자유를 추구하는 마음보다 안정과 의존을 바라는 마음이 크면 스미코처럼 늦은 나이에 스스로 서기는 어렵겠지. 많은 사람들이 남은 인생을 헤아려보며 배우자를 평생 친구로 소중하게 여기기도 하고, 뒤늦게 배우자를 만들기도 하며, 스미코처럼 결연하게 벗어나기도 한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속이는 핑계에 묻혀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미코의 두 딸에 대한 마음도 공감한다. 둘 다 장성하여 타 지역으로 독립했다. 큰딸은 비혼주의자이고 작은딸은 결혼했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느낌이다. 장성해도 자식은 자식이겠지. 엄마의 인생에 동의할 수 없는 딸들에게 새로운 반전을 보여주고 용기를 주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엄마라면, 실패한 엄마는 아니다.

 

시골 마을에서 스미코와 같이 쭉 살아온 친구들, 일찍이 도쿄 등의 도시로 나간 친구들 등 다양한 친구들과의 만남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그 대사들과 심리묘사가 어찌나 적나라한지 인간의 솔직한 바닥을 보게 된다. 가장 표면에 보이는 것은 남에 대한 질투,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핑계와 합리화, 그걸 위해 친구들의 삶을 이용하는 모습 등이다. 친구의 불행을 걱정하는 자리에서까지도 말이다. 특별히 욕할 일도 아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일본 작가의 소설들은 이질감이 없어선지 쉽게 읽혀서 좋다. 여성을 응원하는 책이지만 이걸 딱 성별의 문제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깝든 멀든 타인(나 아니면 다 타인이다)에 대한 고려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삶의 태도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을 힘들게 하고 결국 너 자신도 외로워진다구. 예전엔 니가 잡은 물고기가 참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이제 용감히 속박을 벗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당연한 시대니까. 나이도 이유가 되지 않는 시대니까. 이렇게 더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건가. 부디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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