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마이너스 2야 - 제2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141
전앤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평점 :
이미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에 작가들은 또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뱉어낸다. 그중에 '오, 이 느낌은 처음이야' 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쉬울까? 내 감각의 컨디션이 요즘 좋지 않아서,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쓸어보는 작품을 만나기 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만난 이 작품. 확실히 낯선 느낌이었다. 처음 가보는 어떤 길에 혼자 내려진 느낌 같기도 했고 난생 처음 꾸어보는 꿈 같기도 했다.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웃기다가도 끝모를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겨우 열여덟 고딩 아이들의 삶에서 말이다. 이 책은 청소년소설 중 우수작을 뽑는 '사계절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각기 홀로였던 세 청소년이 주연인 이야기다. 화자인 홍미주, 쌍둥이 남매인 김세정과 김세아. 그런데 셋이 얽힌 건 세아가 학교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부터다. 이 설정부터가 슬프다. 왜 어떤 것은 떠나버린 후에야 내 마음에 들어오고 나는 그 안타까움에 더 슬퍼해야 하는가. 모를 때는 평평하던 사건들이 알게 된 후에는 그토록 세밀하고 뾰족한 요철로 내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가. 나는 이게 싫어서 많은 일들을 "알고 싶지 않다."는 한마디로 넘겨버리며 산다. 이건 옳은 일인가. 미주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세아의 귀신(이렇게 표현하기 싫은데 딱히 부를 말이 없다)이 미주를 찍어서 찾아와버렸기 때문.
판타지도 아니고 어정쩡한 이런 설정을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서는 달리 피할 길이 없는 느낌으로 지켜보았다. 세아(의 귀신)는 미주네 집에 찾아와 아주 눌러앉았다. 이 상황이 너무 불편한 미주에게 떠나주는 조건으로 세정이를 세 번 만나줄 것을 제안한다. 세정이로 말할 것 같으면 덩치만큼 목소리 크고 무개념 과잉행동으로 비호감의 조건을 다 갖춘 남학생이다. 세아랑 쌍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고 본인들도 굳이 티내지 않아서 아는 아이들만 안다. 사고 현장에 둘은 같이 있었고 직전에 티격태격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는데.... 지금 세정이는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을까? 과잉행동은 더 심해져 기행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딱히 슬픔에 잠겨 보이진 않는데.....
너도 솔직히 세정이가 쪽팔렸던 거 아니냐며 거부하는 미주에게 세아는 말한다.
“그래서 지금 후회하고 있잖아. 난 세정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야.”
“세정이가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게 싫었어.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
셋이 혼자였던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혼자는 혼자를 알아보는 걸까. 세아는 전에 미주한테 백일장에 같이 나가보지 않겠냐며 접근한 적이 있다. 수행평가로 제출한 미주의 시에 뭔가가 있다면서.
너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
종점은 바다 같아.
너는 얼어붙은 겨울바다였다가 힘차게 밀려오는 파도였다가 갇혀버린 별 같아.
이런 대목에선 문예창작을 전공하시고 고등학교 문학교사라는 작가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미주가 혼자가 된 이유는 화자인 미주가 하도 천연덕스럽게 밝혀서 초반부터 알게 된다. 미주의 어린시절 상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세정이의 상처가 밝혀지는 순간은 안타깝고 충격적이었다. 세아도 죽고 나서야 알았다니... 그래서 세아는 바로 떠나지 못하고 미주의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나오는 대목이 난 맘에 들었다.
“마이너스 1과 마이너스 1을 합치면 0이 아니고 마이너스 2야. 김세정과 내가 딱 마이너스 2라고. 근데 우리가 굳이 만나야겠니?”
“미주야, 마이너스가 꼭 나쁜 거야?”
“어?”
“함께 있어서 외로움이나 슬픈 게 줄어들 수도 있잖아.”
그렇구나. 우리가 마이너스 2면 어떻고 마이너스 3이면 어떨까. 내가 플러스여야만 누구 옆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미주가 기억도 안나는 500원 도움을 세아한테 빚졌고 다른 친구에게 베풀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빚지고 다른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 진로수업 선생님의 '사람인'자 해설처럼 서로 등을 기대고.
죽고 나서야 친해진 세아를 떠나보내는 미주의 마음이 그려진다. 얼어붙은 겨울바다 앞에 서있는 심정으로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갇혀버린 별은 이제 자유롭게 어디선가 빛날 것이다. 세정과 미주는 서로 기대어 한 친구를, 쌍둥이 누이를 그리워할 수 있겠지.
“그런 뜬금없는 순간에 깨닫게 돼. 이제 세아 없구나.”
세정이가 했던 말이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어찌 살게 된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우리 교실에 혹시 세정이가 있다면 내가 그 아이의 상처를 간과하고 못마땅해만 해서 마음을 더 굳게 닫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작가가 현장 교사시라 그런지 교사들이 평범하고도 호의적인 모습으로 나와서 마음이 부대끼지 않아 좋았다. 슬픔이 들어있지만 청소년 화자의 엉뚱하고 명랑한 문장 덕에 재밌고 유쾌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을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