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놀이집 - 초등 3~4학년군
구진명.최미라.김혜진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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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조성실 선생님의 수학연수를 듣고 놀이 수학에 관심을 가졌고, 시도도 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신경 쓸 때만 잠깐 잘될 뿐 쉽게 체득되지는 않았다. 참 오래된 얘기다. 내가 30대 초반일 때, 조성실 선생님도 앳된 30대였을 때니까.... 조성실 선생님은 어느새 교육계 대선배가 되셨고 나또한 왕언니가 되어가고 있으니.... 조성실 선생님께 배운 것은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도입, 그리고 놀이를 통한 원리 이해와 숙달이었다. 2학년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시도해 보았던 것 같고, 고학년을 가르치는 요 몇 년동안은 그냥 교과서와 문제풀이에만 급급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러다 운좋게 이 책의 서평 이벤트를 보고 눈이 번쩍 뜨여서 바로 신청했다.

 

지금 4학년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책이 3~4학년군 용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일단 지금 써먹을 게 아니면 나중에 자세히 보자하고 미뤘다가 활용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일단 지금 하는 단원부터 펼쳐보았다.

 

4-1-4 평면도형의 이동 단원인데, 도형의 이동방법(밀기, 뒤집기, 돌리기)를 카드놀이로 익히게 되어있다. 회전판 놀이와 빙고놀이 두 가지가 있는데, 둘다 적절하고 재밌어 보인다. 당장 인쇄를 해두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가면 자료가 완전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출판사가 함께한 자료라서 디자인도 잘 되어 있어 활용하기 더욱 좋다.

 

다음 단원은 4-1-5 막대그래프인데 그래프로 무슨 놀이가 될 게 있을까? 놀이라기엔 학습지 같은 활동도 있지만 자료의 퀄리티가 좋아서 흥미를 끌 것 같고, 바둑돌 튕기기 놀이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4-1-6 규칙찾기 단원은 다양한 놀이로 진행하기에 적당한 단원이다. 도둑잡기 놀이 재밌겠다! 메모리 카드 게임도 익숙하면서 한번쯤 해볼만한 놀이다. 그리고 단원마다 뒤에 <손으로 하는 수학활동>이라는 보충자료가 들어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학습지인데, 일반적인 학습지보다는 아이들이 흥미있게 풀 수 있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아 부담이 적다.

 

모든 단원을 열거하기는 그렇고, 이런 식으로 활용도가 아주 높은 구성으로 되어있다. 놀이를 위한 놀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으로 좀 살펴보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상당히 고민하고 적용하신 끝에 개발한 놀이들을 소개하신 것 같다. 놀이의 난이도가 높지 않으면서 (너무 높으면 설명하다 시간 다 가고 짜증내는 학생들이 생김ㅠ) 내용 숙달의 효과를 꾀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개발하신 것 같다.

 

큐알코드를 통해 놀이방법 영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영상, 자료 모두 접근성이 매우 높은 점이 이용자들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다. 이런 책은 적용해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다. 당장 이번 단원부터 적용해 보면서 진가를 실험해 보겠다. 메마른 수학 수업에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큰 행운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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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걸음으로 신나는 책읽기 63
황선미 지음, 하니 그림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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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퇴근길에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보았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주 보는 장면이 아닌데다 난 리트리버만 보면 너무 좋다. 그 친절함과 신사적인 모습에 호감이 절로 솟구친다. 더구나 안내견이라면, 고맙고 안쓰럽고 그렇다.

 

그 안내견은 침착하게 주인을 인도했고, 횡단보도 앞에서 정확히 멈춰섰고 초록불에 정확히 출발했다. 우연히 가는 길이 같아 한참을 그 뒤에서 걸었다. 그들은 우리집 근처 아파트에서 입구 계단을 정확히 올라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뒤 우리집 반려견, 리트리버와는 전혀 다른 말썽견 녀석이 아팠다. 초음파에서 혹이 보여 절제수술을 하고 겨우 퇴원했는데, 며칠 괜찮더니 이번엔 토하고 침을 줄줄 흘리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염증 수치가 높다고 했다. 또 입원. 수액치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수치는 천정부지로 더 치솟았다. 직장에서 그 소식을 접하며 별별 생각이 다 들어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말하자면 마지막까지 생각해보았다는 뜻.ㅠㅠ 다행히 다음날부터 수치가 좀 잡혀서 밥도 먹게되고 퇴원을 했다. 피골이 상접해 꼴이 말이 아니더니 먹기 시작하자 금세 멀쩡해지고 있다.ㅎㅎ

 

개와 관련된 이런 개인사들이 나를 이 책으로 인도했나보다. 단숨에 읽었다. 창비의 저학년 문고인데 내가 볼 때는 3,4학년에 적당해 보인다. 책 속 주인공들이 2학년인 것이 좀 부자연스럽다. 대화나 생각의 내용으로 봤을 때 적어도 3학년은 되어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화는 완전 고학년 말투다. 살짝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지엽적인 문제고, 감상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주인공 고영재의 성격은 흔하지는 않지만 매우 공감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바로 내가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사람이 부담스럽고 웬만하면 말 안하고 그냥 피하지만 마음속에는 차곡차곡 쌓여있는.... 영재의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를 자청하며 퍼피 워커와 텃밭 농부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여기서 안내견 후보 리트리버 바론이 나온다. 안내견이 되기 전 일반가정에서 1년간 가르치며 적응시키는데 그 역할을 영재 아빠가 맡으신 것이다.

 

영재는 바론과 정이 들어가지만 바론을 보고 관심을 가지며 들이대는 같은반 친구 더블 파워들은 부담스럽다. 남의 마음을 살필 줄 모르고 자기주장만 하는 아이들과 영재 같은 아이는 상극이지... 하지만 영재는 그 아이들을 무시하진 못하고 끌려다닌다. 끝까지 거절하지 못해서 바론을 데리고 나갔던 날.... 사건이 터진다. 결국 바론의 안내견 적응은 한참 뒤로 뒷걸음질쳐야 했다.

 

더불어 영재의 마음속에 해결 못하고 쌓인 문제도 과제로 남아있다. 황선미 작가님은 대가답게 길지 않은 동화에서도 단선적이지 않으면서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이야기 구성을 보여준다.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고의든 아니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는가? 이 책은 가장 좋은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궁금한 이야기, 바론은 안내견 테스트에 합격했을까? 이후 바론과 가족은 어떻게 될까? 내겐 여러 가지로 의미있고도 재미있는 결말이었는데 다른 독자들은 어떠실지 모르겠다.

 

지난번 길에서 본 안내견도 그렇고, 영재 아빠가 대학생 때 강의실에서 보았다는 안내견도 그렇고, 본능을 누르고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개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거거까지 미치지 못한다 해도 개가 주는 마음은 참 특별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개에게만 집착하고 너무 오버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함께 걸어가면 서로에게 힘이 된다. 제목으로 사용하신 강아지 걸음은 조심하는 걸음이고 내 친구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는 걸음이라고 작가의 말에 쓰여 있다. 개와 사람,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함께 걷는 일. 특별함을 바라지 않고 앞다투지 않고 그저 나란히 걷는 일. 그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잔잔한 평안이 아닐지.

 

함께 멈추고, 함께 출발하던 그날 두 존재의 발걸음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천지분간 못하는 말썽견이지만 곁에 걷는 우리 개의 발걸음도 소중하고. ‘강아지 걸음을 나도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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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최후의 날 - 제1회 비룡소 역사동화상 수상작 일공일삼 105
박상기 지음, 송효정 그림 / 비룡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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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역사일수록 사료가 적고,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가 사실인 양 이어져 온 오류도 많을 것이다. 아쉽게도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전모를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관습적 해석에만 의존하지 말고 최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해보려는 시도는 필요할 것이다.

 

조선시대보다는 고려시대가, 고려시대보다는 삼국시대가 그래서 더 어려울 것이다. 판단이 어려운 만큼 역사동화를 쓸 엄두를 내기도 그만큼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새로 제정된 비룡소 역사동화상수상작이 백제시대를 다루고 있어서 반가웠다. 바꿔!부터 시작해서 박상기 작가님의 작품은 몇 권 읽어보았다. 초등교사이시면서 다양한 공모에서 수상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신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역사동화 수상까지! 진작 찜해둔 책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몇 달이 지나 읽게 되었다.

 

학생들과 역사수업을 하는 것을 꽤 좋아했었는데, 얼마나 좁은 지식을 가지고 수업을 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가끔씩 찾아온다. 무엇이든 꾸준히 공부해야 말 한마디를 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니 무식쟁이로 살지 않으려면 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거여? 이 동화책을 읽으면서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는 것들이 꽤 있었다.

 

제목처럼 백제의 마지막을 그려낸 동화다. 백제의 멸망 하면 가족을 먼저 베고 결사항전한 계백 장군, 그리고 방탕한 의자왕(곁들여 삼천궁녀)을 떠올리는 것이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언제부터인가 의자왕에 대해서 재조명한 해석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왕은 고뇌에 가득찬 힘겨운 한 늙은 인간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왕자와 공주의 말에서 왕족으로 살기도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공감한다. 배가 고픈 생존의 문제가 무엇보다 우선이겠지만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다는 것 또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삶이었을 것 같으니. 지금 세상도 좋지는 않지만 옛날에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 산다는 건 이토록 고통이고 이 아픔들이 역사를 쌓아올린 벽돌들인 것을.

 

작가님은 주인공으로 부모를 잃고 여동생을 지키며 생존의 전선에서 살아가는 한 소년을 그려냈다. 지켜줄 사람 없는 목숨이니 악다구니를 피할 수 없는 캐릭터. 나는 도덕적인 결벽증이 좀 있는 편이라 도둑질을 하고 믿어준 이를 배신하는 소년 석솔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은 들었다. 뿐만 아니라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응원하게 되었다. 석솔은 살아내기 위해 애쓰면서도 할 말은 하고, 동생과 친구를 사랑하고, 주어진 시대상황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할 줄 아는 아이였다. 어리지만 파란만장한 석솔의 삶을 따라가며 독자들은 백제라는 나라의 마지막을 그려보게 된다.

 

흑치상지라는 장군의 이름도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는 못했는데 이 책에 나오길래 찾아보게 되었다. 백제의 명장이었으나 당나라에 귀화한... 그걸 어떻게 봐야 할까? 어린시절 같았으면 무조건 가위표를 그었겠지만 사람의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서나 나이에 따라서나 변하는 것 같다. 웅진성 성주 예식에 대해서도 이 책을 보기 전엔 잘 몰랐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의 실마리가 되었다고 소개한 뉴스. 공산성에서 최고급 갑옷이 발굴되었는데 발견된 지점이 성안 마을의 연못 바닥이었다는.... 이런 내용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그러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 역사동화를 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겠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시간순서로 보면 마지막장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선 본문과 조금 달라진 석솔의 의연하고 결의에 찬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죽음으로 지키는 것은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누가 그 정답을 알고 있을까만, 역사를 쌓아올린 벽돌들은 대부분 피가 묻어있고, 그것이 문학작품으로 이와 같이 재연될 때 독자들은 잠시나마 생생한 상념에 젖어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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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 전2권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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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이 책 안읽었으면 주시겠다고 해서 "아 안읽었어요" 하고 넙죽 받았다. 알라딘 대문에서 한참동안 봤던 책.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매우 낯익은 책이지만 읽어볼 생각은 못했는데 책이 안겨졌으니 읽어봐야지. 1권은 틈틈이 읽었고 2권은 토요일에 읽었다.

명성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내 읽기 수준이 이제 어린이, 청소년에게 맞춰져서 그런 걸수도 있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기도 하고.

재일조선인 가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라 하겠다. 깊게 생각해본 적 없던 문제라, 일단 새로운 공감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작가 또한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작가의 가족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무렵 일본으로 건너간 가족들의 삶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작가가 이런 어려운 소재를 선택한 데에는 본인의 배경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어렸을 때부터 재일동포, 재일동포 많이 듣기는 했는데 그들의 삶에 이렇게 원천적인 한계가 가로막혀 있고 실존적 문제까지 드리워져 있을거란 생각은 잘 못했다. 무식해서기도 하지만 남의 삶에 관심이 없으니까. 문학의 역할이 이러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은 평생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이곳이 내 터전이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공교로운 상황 속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들이 떠날땐 하나였던 고국이 돌아가고자 할땐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이념이 끼어들었을테고 나라도 귀향을 포기하고 머물렀을 것 같다. 하지만 머무르기엔 그곳도 나를 달가워하는 곳이 아니었으니.... 선자-아들-손자에 이르는 3대에 걸쳐서까지도 말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선자의 장남 노아의 자살. 가장 반듯했고 똑똑했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려고 했던, 와세다대학교까지 들어가고 집안의 자랑이 될 것 같았던 노아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알게되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잠적해 버렸다. 이주민의 멍에는 노력과 성실로 극복하려 했지만 출생의 비밀까지는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난 솔직히 마지막을 알리는 문장에 헉, 하고 놀라면서도 '이게 뭐야'라고 생각했다. 아니 살육자 전두환의 손자도 사죄하려 애쓰며 살아가는데 야쿠자가 뭐 죽기까지 할 일이야? 남은 이들은 어쩌라고? 잔인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절망이 있었던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억지로) 해본다. 남의 아픔을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으니까. 이러한 일을 겪으며 이국땅에서 유년을 뺀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선자의 삶의 무게는 어떠했을까.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그시대 처녀로 노아를 임신한 선자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와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준 남편 백이삭은 선자 옆에 오래 있어주지 못했다. 마지막장에서 선자는 남편의 묘를 찾는데, 거기에서 죽은 노아가 출생의 비밀을 안 후에도 죽기 전까지 이삭의 묘를 찾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삭의 비석 아래 노아의 사진을 묻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는 선자. 삶이란 이렇게 힘겹게 버텨야하는 것인지, 그저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인지. 제법 살았는데도 잘 모르겠다.

작가의 시각은 조선인들의 고난을 그리되, 일본인들의 악함을 부각시키려 한 것 같지는 않다. 어디에나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선자의 손자(둘째아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가 미국에서 공부했음에도 연인과 이별하면서까지 미국행을 선택하지 않은 걸 봐도 그렇다. 그리고 제목인 파친코. 재일한국인과 파친코가 이렇게 연관이 있는지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나는 있던 곳에 계속 있으려는 경향이 강해서 이주민으로 살 생각은 절대 없고, 어울리는 사람과만 어울리려는 경향도 강해서 내 주변에 이주민이 있는 것도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주민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평화로운 어울림을 고민해야만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픔을 겪고 나서야 돌아보지 말고. 하지만 인간은 기어이 아픔을 자초하는 존재라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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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해방일지 - 우리 내면의 빛을 깨워줄 교사들의 아름다운 성찰일지
권영애.버츄코칭리더교사모임 지음 / 생각의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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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적이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감정은 순간적인 것인데, 그 흔적이 남는게 싫기 때문이다.

또 내 감정이 이용되고, 속된 말로 호구가 될까봐서 그런 것도 있다.

나는 성격이 강하지 못해서 그럴 위험성이 높고, 살면서 크게는 아니지만 살짝씩 낌새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순간을 나는 후회한다. 더이상 사랑 타령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이후 내가 교사로서 조금은 더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모습에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그런 내게 가슴을 부여잡고 감정의 격동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내어주고, 그게 상처로 돌아올지라도 감수하는 모습. 아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야.... 수없이 실패했던 모습이야....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고 결심했던 모습이야....

 

하지만 생각한다. 케이트 디카밀로 작가가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에서 이렇게 말했지. 사랑 없이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겠냐고. 그리고 비어트리스의 예언에서도 말한다. 사랑, 그리고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렇다면 지금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사들의 심장을 딱딱하게 만들어버린 일이 아닐까. 사랑의 열정보다는 자기방어를 하게 만든 풍토. 나도 그런 쪽이라 볼 수 있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 내가 죽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살아야 사랑도 뭣도 할 수 있지. 그러니 사랑도 냉정하게 해야 돼. 안 그러면 죽으니까. 일단 살아야 해. 이 사이클에서 빙글빙글 맴돈다.

 

나는 감정을 갈수록 깊은 서랍에 넣고 있을 뿐 사랑 자체를 잃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상당한 호의가 있고, 학생들도 내게 그런 편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것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이것도 나름대로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아이만의 단 한 사람이 되어주려고 가슴이 깨지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는 이 모임의 선생님들이 추구하는 사랑과는 상당한 수준차이가 있다. 이 수준과 그 수준 사이에는 상당히 넓고 깊은 강이 있다. 나는 차마 건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저자샘들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과 그것을 정말 솔직하게 표현하셨다는 점이다. 그것이 부족한 독자샘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같은 약점을 발견하고 위안을 받으면서도, 거기서 마음을 다잡고 한발 더 나아가는 저자샘들을 존경하게 된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다. 길 위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힘들지만 한 발 더 가보자고, 지금까지 온 길에서 수없이 발을 삐었더라도 헛되지 않았다고.

 

나의 해방일지드라마를 좋아했던 나는 이 책에 해방일지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가늠해본다. 염미정과 구씨는 서로를 추앙하며 해방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을 묶고 짓누르는 것들을 떨쳐낼 힘을 끌어모았다. 우리 교사들도 어쩌면 지금이 그럴 때인 것일까. 서로를 추앙해서라도 이 진창같은 현실에서 꽃을 피울 힘을 얻는 것. 그게 우리를 구원하고 아이들을 구원하는 길은 아닐까. 이 책이 진정한 해방일지가 되길 응원하며 특히 나보다 많이 어린 후배 선생님들께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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