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걸음으로 신나는 책읽기 63
황선미 지음, 하니 그림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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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퇴근길에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보았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주 보는 장면이 아닌데다 난 리트리버만 보면 너무 좋다. 그 친절함과 신사적인 모습에 호감이 절로 솟구친다. 더구나 안내견이라면, 고맙고 안쓰럽고 그렇다.

 

그 안내견은 침착하게 주인을 인도했고, 횡단보도 앞에서 정확히 멈춰섰고 초록불에 정확히 출발했다. 우연히 가는 길이 같아 한참을 그 뒤에서 걸었다. 그들은 우리집 근처 아파트에서 입구 계단을 정확히 올라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뒤 우리집 반려견, 리트리버와는 전혀 다른 말썽견 녀석이 아팠다. 초음파에서 혹이 보여 절제수술을 하고 겨우 퇴원했는데, 며칠 괜찮더니 이번엔 토하고 침을 줄줄 흘리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염증 수치가 높다고 했다. 또 입원. 수액치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수치는 천정부지로 더 치솟았다. 직장에서 그 소식을 접하며 별별 생각이 다 들어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말하자면 마지막까지 생각해보았다는 뜻.ㅠㅠ 다행히 다음날부터 수치가 좀 잡혀서 밥도 먹게되고 퇴원을 했다. 피골이 상접해 꼴이 말이 아니더니 먹기 시작하자 금세 멀쩡해지고 있다.ㅎㅎ

 

개와 관련된 이런 개인사들이 나를 이 책으로 인도했나보다. 단숨에 읽었다. 창비의 저학년 문고인데 내가 볼 때는 3,4학년에 적당해 보인다. 책 속 주인공들이 2학년인 것이 좀 부자연스럽다. 대화나 생각의 내용으로 봤을 때 적어도 3학년은 되어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화는 완전 고학년 말투다. 살짝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지엽적인 문제고, 감상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주인공 고영재의 성격은 흔하지는 않지만 매우 공감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바로 내가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사람이 부담스럽고 웬만하면 말 안하고 그냥 피하지만 마음속에는 차곡차곡 쌓여있는.... 영재의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를 자청하며 퍼피 워커와 텃밭 농부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여기서 안내견 후보 리트리버 바론이 나온다. 안내견이 되기 전 일반가정에서 1년간 가르치며 적응시키는데 그 역할을 영재 아빠가 맡으신 것이다.

 

영재는 바론과 정이 들어가지만 바론을 보고 관심을 가지며 들이대는 같은반 친구 더블 파워들은 부담스럽다. 남의 마음을 살필 줄 모르고 자기주장만 하는 아이들과 영재 같은 아이는 상극이지... 하지만 영재는 그 아이들을 무시하진 못하고 끌려다닌다. 끝까지 거절하지 못해서 바론을 데리고 나갔던 날.... 사건이 터진다. 결국 바론의 안내견 적응은 한참 뒤로 뒷걸음질쳐야 했다.

 

더불어 영재의 마음속에 해결 못하고 쌓인 문제도 과제로 남아있다. 황선미 작가님은 대가답게 길지 않은 동화에서도 단선적이지 않으면서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이야기 구성을 보여준다.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고의든 아니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는가? 이 책은 가장 좋은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궁금한 이야기, 바론은 안내견 테스트에 합격했을까? 이후 바론과 가족은 어떻게 될까? 내겐 여러 가지로 의미있고도 재미있는 결말이었는데 다른 독자들은 어떠실지 모르겠다.

 

지난번 길에서 본 안내견도 그렇고, 영재 아빠가 대학생 때 강의실에서 보았다는 안내견도 그렇고, 본능을 누르고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개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거거까지 미치지 못한다 해도 개가 주는 마음은 참 특별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개에게만 집착하고 너무 오버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함께 걸어가면 서로에게 힘이 된다. 제목으로 사용하신 강아지 걸음은 조심하는 걸음이고 내 친구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는 걸음이라고 작가의 말에 쓰여 있다. 개와 사람,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함께 걷는 일. 특별함을 바라지 않고 앞다투지 않고 그저 나란히 걷는 일. 그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잔잔한 평안이 아닐지.

 

함께 멈추고, 함께 출발하던 그날 두 존재의 발걸음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천지분간 못하는 말썽견이지만 곁에 걷는 우리 개의 발걸음도 소중하고. ‘강아지 걸음을 나도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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