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교사의 사회 - 영화, 교사에게 말을 걸다
차승민 지음 / 케렌시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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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민 선생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수업이다. 첫 저서도 영화수업이었고 초등교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혜성같이 등장한 것도 영화수업 관련이었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나처럼 오래된 교사가 아니면 모르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차쌤의 영역은 영화라는 매체에 갇혀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정확하고도 유연한 통찰력을 가졌고, 그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잘 파악하며 지도법을 잘 찾아간다. 흔하고 단순한 표현을 쓰자면 '생활지도의 달인' 이랄까. 학생들의 내면에 대한 이해와 조언을 담은 <학생사용설명서>나 <열두살 나의 첫 사춘기> 등의 책들도 그래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차쌤이 이번에는 교사와 교육에 대한 성찰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놀랐다. 제목과 표지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바로 연상시킨다. 목차에서는 25편의 영화제목과 연결된 에세이 제목들을 볼 수 있다. 교육에 대한 고민과 성찰, 고백과 제언을 이렇게 영화와 연결지어 할 수 있다니, 차쌤 내공의 결정체인 책이라 할 만했다.

내 개인적인 한계는 영화에 취미가 적어서 본 영화가 거의 없다는 것인데, 읽다보니 큰 상관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글을 통해 보고싶은 영화가 생기는 거꾸로 효과가 있었다. 나는 본 영화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교육에 대한 영화는 더욱 잘 안 본다. 차쌤이 성찰의 텍스트로 삼은 영화들 중엔 교육이 전면에 드러난 영화도 있고 교육 소재가 전혀 아닌 영화도 있는데, 다양한 소재의 영화에서 길어올린 교육적 사색이 나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또 교육영화를 외면한 나의 성향에 회피하려는 태도가 숨어있음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의 직면은 용기있다.

제목의 모티브가 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 글을 페북에서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이해하든 아니든, 동의하든 아니든 공식처럼 되어 굳어진 가치를 삐딱하게 보긴 쉽지 않다. 그 가치가 보수적 가치에 대한 반작용에서 형성된 가치일 때 더더욱 그렇다. 나도 멋있는 포지션에 있고 싶고 비난받기 싫다. 하지만 교사의 역할은 매우 섬세하고 유동적이라 한가지 상황이 절대적일 수 없다. [키팅 선생님이 불편하다]라는 글은 그래서 용기있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너네는 왜 키팅 선생님이 아니냐고 가스라이팅 하는 이들이 바로 '페리의 아버지'라는 일갈은 후련하고도 슬프다. 이 글을 페북에서 봤을 때, 나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이 책의 작업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던 중이었구나.

이 책의 25편의 영화와 그에 따른 에세이는 한 편 한 편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다. (저자는 언변도 좋으시니 북토크 하면 재미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리뷰에 각 편을 다 다룰 수 없어서 몇 편만 골라 이야기해 보겠다.

[학교가 망가지면 안전판이 사라진다-고독한 스승]
모건 프리먼이 교장으로 나온 오래된 영화다. 실화 기반이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손쓸 방법이 안 보이는 미국 공교육 어느 곳의 모습이다. 우리보다 훨씬 심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공교육이 겉으로 망가진 외상이 많이 보인다면, 우리의 공교육은 안에서부터 망가지고 있는 내상이 더 크다." 라고 평한다. 작년에 그 내상이 폭발하고 피가 철철 흘러 모두가 알게 되었음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상태다. 영화에서 교장은 기본교육을 세우기 위해 극단처방까지 쓰며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수많은 반발에 부딪치며 고전한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짐작만으로도 약간 벅찼던 장면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울려퍼진 'Lean on me' 였다. 나 이 노래 무척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것이 바로 영화의 원제다. ('고독한 스승'이라고 번역한 이유도 알 것 같긴 함) 이 노래가 한방에 분위기를 반전하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하겠지만, 이 노래가 서사의 클라이막스에 연주되고 영화의 제목이 된 것에 난 감동받을 것 같다. 영화를 꼭 보고싶다.
"We all need somebody to lean on."
맞잖아. 아닌 사람 없잖아. 그게 이번엔 너고, 다음엔 나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상처주고, 마음의 문을 닫고, 마음의 감각을 모두 마비시켜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곳이 학교가 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이 비극은 이미 진행형이다.ㅠ

[가르침의 새로운 엔진을 얻기까지-선생 김봉두]
나는 이 영화 너무 싫어했다. TV에서 해줘도 안봤다.ㅎㅎ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차쌤이 하신 성찰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네. 바로 이런 대목이다.
"아이의 성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나타난다. 이 순간 교사가 쓴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가 성장한 아이를 통해 교사에게 전달된다. 아이의 성장은 교사에게 새로운 연료가 된다. 더불어 아이에게서 새로운 가르침의 엔진을 얻는다." (91쪽)

교사라면 교직인생에 크고 작게 이런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배터리가 꺼질 것 같던 순간에 나를 충전해 주었던 그 아이. (그 아이는 자신이 그 역할을 했다는 걸 꿈에도 모를 것) 그렇게 우리는 함께 나아간다. 이게 앞에서 말한 'Lean on me'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갈수록 닫히는 걸 느낀다. 그게 진정한 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사 없이는 시민도 없다-코치 카터]
이 영화는 위기에 빠진 고등학교 농구부를 되살리기 위해 투입되었던 카터 코치의 이야기다. 카터는 선수들에게 '기본소양'을 가르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안해도 될 고생을 많이 하다가 결국은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저자는 '신사'와 '시민'을 논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신사가 전제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얼핏 들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보면 너무나 맞는 이야기다.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신사의 자질을 갖추고 난 이후 비로소 저항권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신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바람직한 민주시민 교육을 하는 것은 어렵다." (111쪽)

난 이 대목에서 나의 해묵은 의문 하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교과전담으로 각 교실을 떠돌던 해의 이야기다. 인권친화를 표방하는 쌤(A)이 계셨고 다소 강압적이라는 평을 듣는 쌤(B)이 계셨다. A반에서는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교사에게 결정권이 없었다. 일방적인 지시에 분개했다. 도를 넘고 주제넘은 행동들이 판을 쳤다. B반의 수업은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고 활기있었다. 100을 준비하면 120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수업의 내용 뿐 아니라 마음까지 주고받는다고 느꼈다.

A반의 문제가 바로 이 장에서 차쌤이 지적한 그 문제다. 신사가 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섣불리 저항권만 가르친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신나게 휘둘렀다. 요즘 B교사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내 신변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학교에 A를 요구하며 동시에 실력을 키우고 인성도 훌륭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라고 한다. 천원 주면서 31에서 아이스크림 큰 통으로 사고 300원 남겨오라는 요구보다 더 부당하다. 많은 교사들이 이 틈바구니에서 염증과 환멸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 사회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가르침 속에 내재된 채찍질-위플래쉬]
이 영화의 서사를 대충 들었는데 영화는 안 봤다. 보기 싫었다. 플레처 같은 지도자(교사)에게 동의할 수 없다. 성과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위에서처럼 학생들의 기본소양을 엄격히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도, 이토록 비인간적으로 한계로 모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차쌤의 성찰을 읽어보니 이건 우리 교사 모두가 조심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성품이 유약한 나조차도, 채찍질의 조절을 잘못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 서늘한 느낌이었다.
"가르침에 담긴 폭력성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르치는 자의 의무다." (198쪽)
교단은 어찌보면 평균대나 외줄인지도 모른다. 늘 균형잡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 외에도 많지만 이정도에서 마무리를 써야겠다. '이 책은 네모다'를 공모한다면 나는 '동전물티슈'라고 응모해서 상을 받고 싶다.ㅋㅋ 그 특징은 '응축'이다. 200여 쪽 보통 두께의 책이지만 물을 부으면 쭉쭉 부풀어 오르는 압축티슈처럼 수많은 이슈와 키워드들이 들어있다. 많은 건설적 대화의 소재가 되어 꽃을 피우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초등교육에 차쌤처럼 외면과 내면 모두가(ㅎㅎ) 듬직한 존재가 계신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많은 후배님들이 차쌤의 통찰을 기반으로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하고, 바꾸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어려운 상황인 거 알지만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난 열심히 응원하다 조용히 물러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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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스웩이 넘칠 거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강경수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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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떠나보내는 행복한 주말에 아주 골때리는 책을 읽었다.
송언 선생님 동화책 주인공의 표현을 빌자면 '기분이 아주 브라보'였다.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어이없는 웃김.ㅎㅎ

근데 이 골때리는 책은 많은 사람들을 품어준다.
방황하는 청소년,
걔네들을 보고 한숨짓고 잔소리하고 실랑이하는 평범한 부모,
이 넓은 세상에서 내 자리 하나 잡지 못해 젊은 날을 다 꼬라박고 있는 취업준비생,
이렇듯 모자란듯 평범한 모든 사람들, 단 못되고 악독하지 않은 사람들.

세상은 이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도 그중의 한사람이면 된다. 그러면 대략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것인데, 하지만 이 사회는 그렇지가 않지. 불안감에 빠져 방향도 모른채 박차를 가하고, 머리좋은 누군가는 그 불안감을 조종하고 증폭시킨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달리기의 대열에서 약간 이탈한 듯한 고딩 두 명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솔직히 보수적인 내 관점에서 한심한 면이 없지는 않은 녀석들이다. 화자인 김준호는 영화감독을 꿈꾼다지만 걸맞는 노력은 하고 있지 않다. 영화 좀 봤다고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공부하기 싫고 빈둥대고 싶은 핑계를 그렇게 대는 것이라는 엄마의 의심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의 친구 달리(본명 이승철)는 힙합을 좋아하고 래퍼를 꿈꾼다지만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똥폼 하나는 잘 잡는다. 그가 추구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웩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뭔가 멋지다, 간지난다 이런 뜻인것 같다. 하지만 얘야, 스웩이 말로만 되니? 똥폼 잡는걸로 당연히 안되지. 공부는 아니라 해도 니 안에 가득찬 생각과 창의의 결과여야 고개를 끄덕여 줄만하지. 말끝마다 '유남생?'만 붙인다고 될 일이니? (난 이 말을 몰라서 검색해보고 알았다.ㅋㅋ)

'시덥잖은 청소년소설인가?' 하며 넘겨버릴 수도 있었던 이 책의 책장을 잔뜩 기대하며 넘긴 건 작가의 이력 때문이었다. 이분은 원래 그림책 작가가 아니셨나? 라가치상을 받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물론이고, '꽃을 선물할게' 같은 책들도 너무 좋았는데. 그리고 '코드네임' 시리즈. 두권쯤까진 도서실에 수서하면서 읽었는데 이후로 몇권까지 나왔는지는 세보지 못했다. 이제 소설로 진출. 그림과 만화를 잘 그리는 분이 스토리 능력이 이렇게 뛰어나고 대사도 찰지고 웃기다는게 정말.... 몰빵 능력을 가진 분들은 참 인생이 재미나시겠다. 아니 힘드시려나?^^;;;

이 책은 그 두 청소년에서 시작되어 역시 그들로 끝나는데, 대부분의 서사가 그렇듯 뒤의 그들은 앞의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리에 있고 겉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속은 달라졌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게 스토리의 관건이다.

그런데, 길지도 않은 그 며칠의 서사가 넘나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해.ㅎㅎ 준호는 엄마와의 거래 때문에 억지로 시작한 과외에서 첫사랑의 미인을 만났고, 동네에선 괴이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는 동시에 너무나 미스터리한 인물이었고.... 그녀의 뒤를 쫓았던 준호와 말리는 믿을 수 없는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녀는 소시오패스 범죄자인가, 그녀의 주장대로 외계인인가? 전자라면 스릴러고 후자라면 SF가 되겠다.

하룻밤 사이에 두 청소년은 범죄물과 SF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데, 결국 그들의 몸과 마음은 '신의'와 '도움'을 따라갔다. 그래, 그게 스웩이 넘치니까! 철없는 청소년들의 좌충우돌은 결국 지구에 좋은 일이었고 스스로의 정신도 차리게 되었으니 더할나위 없는 해피엔딩이라 하겠다.

주연은 아니지만 준호의 할아버지가 특별출연하시는데
"이게 진짜지."
가 그분의 주요 대사다.
과연 뭐가 진짜일까? 우리의 시간들은 진짜를 위한 일들로 채워지고 있는 걸까? 어리든 젊었든 늙었든, 새삼 돌아봐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 이게 진짜지. 스웩이 넘치잖아, 유남생?
(이 말투를 내가 흉내내기는 영 어렵구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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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울고 있다 한림아동문학선
고데마리 루이 지음, 카시와이 그림, 최현영 옮김 / 한림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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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동화다. 목적성이 있는 주제는 좀 부담되거나 서사의 재미를 해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게 큰 장점으로 보였다. 판타지를 이용하지도 않은 현실 서사이고 유머적 요소도 없고 로맨스는 아주 살짝? 있는데 꽤 흥미롭게 읽혔다.

초등 6학년 나나미는 소위 다문화가정의 아들이고, 학교에서 '반쪽' 소리를 듣는 학생이다. 하지만 "반쪽이 아니고 더블이라니까!" 하고 받아칠 수 있다는 건 꽤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래도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여름방학이 되었는데,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어떤 숙제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에 시달린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자유연구 보고서'다.

널부러진 시간들 속에 방치될 뻔했던 나나미는 엄마의 여행 제안으로 귀한 만남을 갖게 된다. 미국인인 엄마와 함께 하와이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환경 예술가 두 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후 나나미의 남은 여름방학은 하루하루가 아쉬울 정도로 밀도높은 시간들로 채워진다.

하와이의 해변에서 만난 사람은 어거스트 씨. 베트남 참전 병사였던 그는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었고 오랜시간 자기 삶을 파괴하며 살았다. 지금은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예술가로 살아간다. 마침 그룹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나나미 모자를 초대했다.

전시회에서 만난 사람은 벽면 작품을 제작한 어린 예술가, 베트남 이민가족인 피카케라는 여자아이였다.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진다. 몸도 마음도 늘어져있던 나나미를 바짝 세워준 사람도 피카케였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메일 연락을 주고받기로 한다. 의미심장하게도 나나미라는 이름에는 '일곱개의 바다' 라는 뜻이 있다. 피카케는 그 이름을 듣고 놀라며 기뻐한다.
"일곱 개의 바다는 모든 바다야. 모든 바다는 하나의 큰 바다고. 나나미는 하나의 바다인 거네."

제목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다가 울고 있다> 나나미는 하와이 바다에서의 만남을 통해 바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았고, 피카케에게 큰 영향을 받고 행동을 다짐했다.

일본 집으로 돌아온 나나미는 자유연구에 온 힘을 쏟는다. 독자들은 나나미의 자유연구를 따라가며 배우는 게 꽤 있다. 이 책의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나나미의 행보는 산으로, 강으로도 이어진다. 큰 깨달음이다. 지구의 자연은,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어디 한군데만 지킨다고 될 일이 아닌 것.

후반부에 피카케의 작업 중 부상이라는 위기와 나나미의 심리적 위기가 같이 닥치지만 희망적으로 끝나서 다행. 고학년 어린이들에게 환경도서를 권하고 싶고, 그 형식이 동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번 살펴보시길 추천한다. 의미있는 요소들이 꽤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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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장바위 깜장바위 북멘토 그림책 18
윤여림 지음, 무르르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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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림 작가님 이름 보고 골랐는데, ‘무르르라는 그림작가님 이력에 관심이 간다. 초등교사 중 동화작가들은 많은데 그림책에 그림을 전문으로 맡으신 작가님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림이 맘에 들었다. 전작인 손톱도 좋을 것 같다.

 

큰 편이고 가로로 긴 판형에 두 바위가 나란히 앉아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당연히 바위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두 바위 사이로 엄청난 번개가 떨어진 것이다. 땅이 쩍! 갈라질 만큼.

 

그 순간 둘의 선택은 갈린다. 요즘 말로 하면 ‘I’라고 할까? 감장바위는 무서워서 땅 속으로 들어가는 걸 선택했고 요즘 말로 ‘E’에 가까운 깜장바위는 흔들리니까 재미있다며 땅 위로 굴러다니는 걸 선택했다. 오랜 세월 가까이 있던 둘은 그렇게 천리만리 멀어졌다.

 

땅속을 선택한 감장바위는 조용하고 포근하게 푹 파묻혔다. 하지만 거기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들은 있었다. , 두더지, 벌레들...

깜장바위는 굴러다니며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하루하루가 재미났다.

 

두 번째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감장바위를 휘감았던 나무가 뿌리채 뽑혔고, 감장바위는 오랜만에 햇살과 만났다. 동시에, 깜장바위와도 만났다. 아니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바위가 아니었다. 감장돌멩이, 깜장돌멩이였다. 둘이는 예전처럼 나란히 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오래 쉬었다. 감장흙, 깜장흙이 될 때까지. 그리고 빗물 타고 멀리멀리 흘러갔다....

 

이 서사는 개인에 적용하면 개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 보면 엄청나게 긴 자연의 흐름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함께 흘러가던 둘은 어딘가에 가라앉았을 테고, 그렇게 오랜 세월 눌려서 또다른 암석이 된다. 이제 감장깜장얼룩 바위가 되었다! 이 얼마나 긴 세월의 서사인가.

 

인생의 사이클이든, 자연의 사이클이든 물론 주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점은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생긴 대로 살아! 억지로 남을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아! 나름대로의 삶이 다 의미가 있고 결국엔 모이고 섞이고 하나가 되기도 해. 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다. 이런 메시지를 어린이들이 발견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면서 읽지 않을까. 거의 모든 그림책들이 그렇듯이.


나로 말하자면 감장바위처럼 땅으로 숨어드는 것을 택하는 인간이지만.... 때로는 뿌리째 뽑히는 나무와 함께 눈부신 햇살에 강제노출되는 순간도 있었고, 앞으로 깎이고 깎여 돌멩이가 되고, 흙이 되고 하는 순간도 다가오겠지. 내 곁에는 나와 다른 깜장바위 친구들도 있었고. 자연의 거대한 흐름에 인생의 흐름까지 잘 녹여낸 그림책이라고 생각된다. 글과 그림이 모두 예쁜 그림책이다. 집과 교실에 책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추가하지 말아야될 지경이지만 그래도 욕심이 나는 그림책. 빈 자리를 내어 잘 꽂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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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의 팬티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102
투페라 투페라 지음, 김보나 옮김 / 북극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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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페라 투페라' 라는 작가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일까 하고 작가소개를 보니 일본인 작가 그룹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곰돌이 팬티>가 이분들 작품이잖아? 그 책 나도 갖고 있는데, 그때는 작가를 눈여겨보지 않았었네. 그 책과 이 책은 소재와 구성이 거의 같다. 다만 판형 차이가 엄청나고 (그 책은 큰 편이고, 이 책은 그림책 치고 아주 작다.) 주인공과 조력자가 뒤바뀌었다. 이번 책은 생쥐가 주인공, 곰돌이가 조력자.

이 책을 읽으며 아주 옛날에 부르던 '도깨비 빤쓰'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도깨비 빤쓰는 튼튼해요. 질기고요 튼튼해요."로 시작하는 노래. 그중에서도 특히 2절.
"도깨비 빤쓰는 더러워요. 냄새나요.
이천년 동안이나 안 빨았어요."
왜 이 노래가 떠올랐는지는 책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ㅎㅎ

이런 책은 '놀이 그림책'이라 할 수 있겠지? '팬티를 잘 빨아 입자'가 주제는 아닐 거 아니야.^^ 구멍책 형식으로 되어있어서 드러난 부분만 보고 다음 장을 유추하는 재미가 큰 책이다. 유아들이 아주 좋아할 거 같고, 초등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림책의 재미를 체험하고 친근함과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판형이 작은 것도 난 맘에 든다. 집단 앞에서 읽어줄 게 아니라면 작아도 충분하니까. 곰돌이와 생쥐의 체격 차이에 맞춘 깊은 의도가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크기가 난 좋았다.

마지막에 둘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어린이들의 삶의 본질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림책의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하겠다.
"생쥐의 팬티
때묻은 팬티
입고 있는 걸
까먹을 만큼
노는 게 좋아
노는 게 좋아
사실은 예쁜
치즈색 팬티"

부모랑, 형제랑, 친구랑 이런 그림책을 보면서 그냥 웃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근데 현실은 책만 늘고 아이들은 줄어.... 작가는 많은데 독자가 없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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