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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장바위 깜장바위 ㅣ 북멘토 그림책 18
윤여림 지음, 무르르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윤여림 작가님 이름 보고 골랐는데, ‘무르르’라는 그림작가님 이력에 관심이 간다. 초등교사 중 동화작가들은 많은데 그림책에 그림을 전문으로 맡으신 작가님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림이 맘에 들었다. 전작인 ‘손톱’도 좋을 것 같다.
큰 편이고 가로로 긴 판형에 두 바위가 나란히 앉아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당연히 바위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두 바위 사이로 엄청난 번개가 떨어진 것이다. 땅이 쩍! 갈라질 만큼.
그 순간 둘의 선택은 갈린다. 요즘 말로 하면 ‘I’라고 할까? 감장바위는 무서워서 땅 속으로 들어가는 걸 선택했고 요즘 말로 ‘E’에 가까운 깜장바위는 흔들리니까 재미있다며 땅 위로 굴러다니는 걸 선택했다. 오랜 세월 가까이 있던 둘은 그렇게 천리만리 멀어졌다.
땅속을 선택한 감장바위는 조용하고 포근하게 푹 파묻혔다. 하지만 거기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들은 있었다. 뱀, 두더지, 벌레들...
깜장바위는 굴러다니며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하루하루가 재미났다.
두 번째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감장바위를 휘감았던 나무가 뿌리채 뽑혔고, 감장바위는 오랜만에 햇살과 만났다. 동시에, 깜장바위와도 만났다. 아니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바위가 아니었다. 감장돌멩이, 깜장돌멩이였다. 둘이는 예전처럼 나란히 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오래 쉬었다. 감장흙, 깜장흙이 될 때까지. 그리고 빗물 타고 멀리멀리 흘러갔다....
이 서사는 개인에 적용하면 개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 보면 엄청나게 긴 자연의 흐름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함께 흘러가던 둘은 어딘가에 가라앉았을 테고, 그렇게 오랜 세월 눌려서 또다른 암석이 된다. 이제 감장깜장얼룩 바위가 되었다! 이 얼마나 긴 세월의 서사인가.
인생의 사이클이든, 자연의 사이클이든 물론 주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점은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생긴 대로 살아! 억지로 남을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아! 나름대로의 삶이 다 의미가 있고 결국엔 모이고 섞이고 하나가 되기도 해. 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다. 이런 메시지를 어린이들이 발견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면서 읽지 않을까. 거의 모든 그림책들이 그렇듯이.
나로 말하자면 감장바위처럼 땅으로 숨어드는 것을 택하는 인간이지만.... 때로는 뿌리째 뽑히는 나무와 함께 눈부신 햇살에 강제노출되는 순간도 있었고, 앞으로 깎이고 깎여 돌멩이가 되고, 흙이 되고 하는 순간도 다가오겠지. 내 곁에는 나와 다른 깜장바위 친구들도 있었고. 자연의 거대한 흐름에 인생의 흐름까지 잘 녹여낸 그림책이라고 생각된다. 글과 그림이 모두 예쁜 그림책이다. 집과 교실에 책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추가하지 말아야될 지경이지만 그래도 욕심이 나는 그림책. 빈 자리를 내어 잘 꽂아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