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서평에 여러 권의 책이 떴다. 평소의 나라면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이다라는 닉네임도 그렇고, 평소 저명한 (다수의 저작과 대외 활동, 유튜브 운영 등) 교사들을 반신반의하는 경향이 내게 있어서다. 물론 인간의 능력과 한계치는 개인마다 다르니 나를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면 안되는 건 안다. 그래도 가끔은 좀 아닌 경우도 발견하게 되는지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 같다. 그런데 저자의 책들을 검색해보다가 아주 특이한 이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라는 책이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보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 책이 있길래 바로 빌려와서 읽었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수도원에 들어가 30대 초반까지 머물렀다. 결국 그는 사제나 수사의 길을 내려놓고 수도원을 나오자마자 교대 편입의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내가 아는 바, 그당시는 교대의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 바로 합격하고 결국 교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의 교직경력이 나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건 이런 인생행로 때문이었다.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책을 단숨에 읽었다. 재미있다고 표현하긴 어렵지만 흥미롭고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서평으로 신청한 이 책(사이다쌤의 비밀상담소)을 신뢰를 갖고 읽기로 결심했다. 그의 수도원 생활은 내가 가진 기존 이미지만큼 거룩하고 경건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뭐 얼마나 경건할 수가 있으랴) 하지만 그가 사제의 길을 포기했더라도 인생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한 과정은 치열하고 순수했다. 그의 경험과 그순간 느꼈던 감정에 여러번 동화되었다. 예를 들면 버려진 아기들 돌보는 봉사를 하다가 그 아기가 입양되어 떠난 것을 알게 되고 그리워하는 장면. 나한테 엄마라는 정체성이 이토록 강한가 놀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럴 때다. 저자의 감정과 함께 가슴이 먹먹하다가, 그가 이렇게 말하는 부분에서 함께 위로를 느꼈다.

그때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새벽빛이 들어왔다. 빛줄기 사이로 마음 포근해짐을 느꼈다. 아기가 어디선가 따뜻한 숨결로 잠들어 있음을 그 빛줄기로 알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기운이 서서히 돌아왔다. 아기가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아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기자 가슴이 조금씩 채워졌다. 그 믿음이 나를 살게 해줬다. 자식은 그런 존재였다.” (168)

 

그는 또 티벳 여정 중에 고산증으로 죽음의 손길을 눈앞에서 느끼게 된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견딤을 포기했다. 삶을 마감하려 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을 응시하려 힘을 다해 눈을 떴다. 찰나였다. 창밖으로 고원의 별이 눈에 들어왔다. 그 별빛을 본 순간 한줄기 눈물이 덜덜덜 떨리며 흘러내렸다.” (284)

 

, 학교밖에 모르면서 살아온 나는 이 선생님보다 10년 이상 경력이 많다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선생님의 상담 이야기를 신뢰를 갖고 읽어보기로 했다. <수도원에서...> 책이 이상적이라면 이 책은 현실적이다. 같은 저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당연하고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교사는 현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읽도록 쓰여진 책이다. 가명으로 쓰여진 한 아이의 고민이 제시되고 이어서 선생님의 상담 내용이 뒤따르는 식이다. 이같이 독자 대상은 명확히 어린이지만, 교사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언을 해줄지는 사실 정답은 없고, 매뉴얼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지만 많은 내용을 접해볼수록 통찰이 넓어질테니 말이다.

 

주제별 총 5부로 되어있고 각 주제마다 5,6개 정도씩의 고민이 들어있다. 친구, 가족, 공부, 이성, 나 자신이라는 주제분류도 좋고 각 고민의 내용도 적당하여 웬만한 상담 내용은 거의 들어있다고 볼 수 있겠다. 교사의 입장에서 읽을 때, 학생의 디테일한 상황에 따라 상담과 조언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단 크게 참고가 될 것 같다. 고민을 읽으면서 아 어떡하지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상담 내용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부분도 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나의 부족함을 또 깨닫는다. 좋은 일이다.

 

상담 시 공감에만 집착하면 상담자가 같이 말려들어가 허무한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조언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면 잔소리 같을 수가 있는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서 균형을 잘 맞추는 것 같다. 공감도 하지만 학생이 지향할 방향을 정확히 알려주기도 한다. 조금 냉정해 보일 때가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다 좋았는데 일일이 열거하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고 몇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1(친구문제)애들이 더럽고 거지 같다며 저를 피해요.”라는 고민이 있다. 여기에서 저자가 권력 지향형친구를 언급하신 것에 매우 동의한다. 그런 성향의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이 매우 크기 때문에 나도 학생파악에 일차적으로 그것을 살핀다. 저자는 내담자에게 그 친구의 흐름대로 움직여주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얼마전 읽었던 <보이지 않는 아이>라는 책에서 두려움이 가해자의 먹이였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하겠다 싶었는데, 이어지는 저자의 조언에 감탄했다. ,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해요. 그 아이는 찬수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약해 보이는 아이를 찾아서 비슷한 놀이를 시작할 거예요. 그때 찬수는 그 놀이에 참여하면 안 돼요. 희생자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면 안도감과 함께 지금까지 내가 당했으니까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어요. 그러면 그 놀이에 가담하게 되죠. 찬수는 그러지 마요. 누군가 타깃이 되면 오히려 그 아이랑 같이 놀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해요.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아이의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그게 쉽냐?” 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해야 된다. 못하는 건 그 아이의 또다른 문제다. 일단은 해야 하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렵지만 도전할 용기를 주면서. 쉽다면 처음부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겠지.

 

2(가족문제)에는 엄마 아빠가 자주 싸워서 무서워요.”라는 고민이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두려움과 죄책감의 양가감정에 대해 알려주면서 부모님에게 감정전달을 하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안되면 너 자신에게 집중하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
엄마 아빠의 몫은 엄마 아빠가 지고 가는 거예요. 도선이는 자기 삶을 살아가면 돼요.”

부모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보통 그걸 공감하면서 많이 두둔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독립할 때까지 힘을 비축해. 그리고 독립한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건강한 너의 삶을 살아. 절대 망가지지 말고. 망가지면 너도 똑같아. 핑계는 의미가 없지.

 

3(학교문제)담임선생님이 싫어요에서 저자가 타인을 보는 태도에 대해서 조언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한 사람에 대해서도 구분을 해야 해요.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수용해서도 안 되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걸 거부해서도 안 돼요. 한 사람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어요.”

무척 동의하면서, 나는 이걸 잘하고 있나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았다.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꼭 필요하다는 것 인정.ㅎㅎ


개인적으로 4(이성문제)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런 상담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기도 하고 특히 성문제는 되도록 언급하고 싶지 않은 문제라... 저자의 조언은 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아주 건전하기도 했다. 휩쓸리는 연애 욕구가 사실은 감정의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짚어주기도 하고, 신체의 문제에서 되고 안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별을 잘 배우라는 조언도 아주 현명했다.

 

마지막 5부는 좀더 심각한 고민이어서 치료를 권해야 하는 단계의 상담이었다.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자해, 거식증 등.... 이런 경우도 아주 드물지는 않기에 관심있게 읽었다. 혹시 이것이 나의 상담이 된다면 부모님의 협조 없이는 힘들기에 그 부분도 생각하며 읽어보았다.

 

이렇게 읽고 나니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인 것 같다. 저자의 전작부터 읽기 시작한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혼자 고민하고 있을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썼어요.” 라고 하신 말씀처럼 이 책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상담의 효과를 받기를 바란다. 나의 빈 곳도 많이 채워준 책이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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