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대한 책을 읽기가 좀 망설여졌다. 몇 해 전 예멘 난민이 대거 입국했을 때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어떤 곳에도 의사표현을 한 적이 없었고 사적인 모임에서도 입밖에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으로라도 내가 그런 입장에 있었다는 게 지금까지도 좀 꺼림칙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자신있게 판단은 못할 것 같다. 원론은 있고, 그걸 알고도 있지만 세상은 워낙 복잡하니까. 사람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남의 호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냥 잘 분별했으면 좋겠다... 라는 막연한 의견인데 그게 쉽다면 문제도 아니겠지.

 

내 팔자가 (비교적) 편하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극한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굳이 보지 않으려 한다. 내가 어쩔 수도 없는 일들을 알아서 뭐하겠어... 이런 태도를 아이들에게서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뜨끔한다. 그래도 그건 아니구나, 아이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본다. 기득권이 된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밑창은 언제든 빠질 수 있는데 우리는 영원히 빠지지 않을 것처럼 마음의 끈을 놓아버린다. 이런 면에서 나를 경계하는 건 중요하겠다. 그래서 이런 책도 읽어봐야 한다.

 

먼저 동화를 한 권 읽어보았다. 난민 소년과 수상한 이웃(베아트리스 오세스/꿈꾸는섬) 제목은 평범한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초반부에서는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중반부로 넘어가면서는 감탄하게 되었다. 와 이런 내용을 이렇게 풀다니? 참신하다, 경쾌하다, 엉뚱하다, 특이하다, 신선하다 등 여러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다. 난민 소년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집중하지 않고, 이웃과의 교감에 집중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법정 장면이었다. 판사와 변호사, 검사와 증인들이 등장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오마르는 난민보트에 탔다가 바다에서 부모님을 잃고 홀로 육지에 도착한 소년이다. 난민보호소에서 나와 변호사인 마리네티 할머니의 집에 들어갔다. 말하자면 불법 이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변호사님, 법정에서 이 소년을 호두라고 주장하며 사적재산 보호법에 따라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으니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증인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은 어떤 말들을 할까? 검사는? 마지막으로 판사는?

 

현실일 수는 없는 황당한 이야기지만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작가의 독창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흔한 이야기들의 홍수 속에서 아주 돋보였다. 그 주제의식 또한 매우 의미있었다.

 

다음으로 그래픽노블을 읽었다. 밝은미래 출판사의 그래픽노블 시리즈도 참 좋은 것 같다. 이중에선 엘 데포만 읽어보았는데 나머지 책들도 천천히 봐야겠다. 두 번째로 읽은 이 책 불법자들(오인 콜퍼,앤드류 던킨/밝은미래)은 숨막히게 책장이 넘어갔다.

 

가나 출신 소년 이보가 사하라사막을 지나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하는 여정이 그려진 책이다. 현재 시점(보트 안에서 표류)과 과거 시점(가나에서부터 보트를 타기까지)의 교차구성으로 진행된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함께 있던 사람들을 차례대로 잃어가며(마지막으로 절대 잃을 수 없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까지) 간신히 도착한 그곳. 이후의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이보가 이젠 새로운 땅에서 정착해 행복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왜 지구상의 어떤 곳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 하는 곳일까. 대부분은 인간이 하는 짓이다. 욕심 때문이지. 약육강식의 맹수들도 자신들의 터전을 지옥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일단 지옥을 만드는 행위부터 어떻게 좀 할 수 없을까.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ㅠㅠ

 

이보 같은 난민들은 어떻게든 돕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 되지 않으려면 닫아거는 세상보다는 포용하는 세상이어야 할 테니까. 분별이 필요한 상황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겠지. 나도 외면하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실의 아이들도 그래야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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